▶서양 문물의 소개
# 1-56) 서유견문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미국에서 유학한 유길준이 수년 동안의 유학 생활과 서구 여행을 통하여 배운 것을 중심으로 1885년 편찬한 책이다. 이 책에는 음식과 건강의 관계, 서양 식사의 종류, 식사법, 식사 도구와 그릇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곡물과 채소류를 먹는 우리 식습관에서 보면, 칼과 포오크로 고기와 빵을 먹는 서양인들의 식습관이 대단히 흥미로왔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서양 식사에 대한 정보가 상류층이나 식자층에 많이 소개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서양인들의 출입이 잦았던 만큼 서양식은 여러 가지 경로로 소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 1-57) 개다리 소반과 양주병

:1900년의 사진으로, 이 무렵에 이미 양주와 양주 병이 인기를 누려, 여러 사진에서 양주 병이 등장한다. 상류층에서는 여러 양주를 적당히 조합하여 감미료․방향료․고미제와 얼음을 넣고 혼합한 칵테일을 즐기기도 하였다. 오페르트의 ‘금단의 나라 한국 기행’에는 구한말 한국 주재 공사였던 알렌이 당시 친러 내각이던 각부 대신들을 정릉의 자택으로 초대하여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 1-58․59) 궁중의 서양 주방


:창덕궁의 서양 주방이다. 고종 말년 궁중 수라간에는 서양요리 주방이 따로 마련되어 일주일에 몇 번씩 서양요리가 만들어졌다. 커피․홍차 등의 서양 차와 함께 케이크도 간식으로 자주 애용되었다. 고종은 특히 서양식을 좋아하여, 영국 유학생 윤기익을 궁중의 서양식 책임자로 앉히고, 서양식에 필요한 집기와 서양요리책도 사들였으며, 프랑스에서 일류 요리사를 초빙하였다.
〔보충설명: 커피를 좋아한 고종〕
고종은 커피를 특히 좋아하였다고 한다. 고종이 커피당이 된 것은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해 있던 동안이었다. 고종은 덕수궁으로 환궁한 후에도 계속해서 커피를 즐겼다. 이때 통역사로 종직했던 김홍륙이 귀양을 가게 되어 원한을 품고, 고종의 커피에 독약을 넣었다. 다행히 고종이 마시기 전에 탄로가 나서 시해음모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동석한 세자(순조)가 한 모금 마시는 바람에 평생 후유증으로 시달렸다고 한다. 고종이 러시아 공관에 있을 때 러시아 공사의 처제 손탁이 직접 서양식을 만들어 고종에게 바쳤다. 고종은 그 뒤 서양식을 몹시 좋아하게 되었다. 고종은 손탁에게 손탁호텔을 지었는데 이 호텔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팔았다.
# 1-60) 꽈배기 장수

:엿이 들었음직한 목판에 꽈배기가 들어있다. 조선 시대 아이들 군것질은 엿이 고작이었는데 나중에 떡장수가 나왔고, 또 기름에 튀긴 과자, 꽈배기 같은 것이 나왔다. ‘과자’라는 이름의 ‘왜떡’이 팔린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왜떡은 밀가루나 쌀가루를 짓이기어 얇게 늘인 후 구운 것으로, 일본말로는 센베이(煎餠)라고 한다.
# 1-61) 천일제염

:1905년 주안에 설치된 염전이다. 조선 시대 소금의 생산방법은 바닷물을 농축시켜 끓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증가되는 인구에 비례하여 소금을 공급할 수 없었다. 이에 구한말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천일염을 해마다 다량으로 수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량의 연료를 필요로 하는 국내의 소금 생산 법은 저렴한 수입 염에 압도되어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에서는 1907년 일본인 技師 오꾸․오오꾸라를 초빙하여 경기도 주안에 一町步의 천일식 시험염전을 처음으로 축조하였다. 이 시험염전은 생산품이 수입 염에 비하여 손색이 없고 생산비 또한 저렴하였으므로 정부는 천일염전을 본격적으로 축조하였다.
# 1-62) 궐련 광고

# 1-63) 담배 가게

:위 사진은 대한 제국기의 궐련 광고이고, 아래 사진은 일제 시기 담배 가게의 모습이다. 가게 안에는 궐련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고, 간판으로 보이는 깃발에는 ‘담ㅸㆎ ’라고 적혀 있다. 우리 나라에 卷煙은 청국과 일본에서 들어왔다. 청국 상인들은 주로 ‘칼표’라는 영국 상사의 궐련을 가져와 팔았으며, 일본인들은 ‘히로’라는 궐련을 본국에서 가져다 팔았다. 1896년 일본인들이 국내에 들여다 판 궐련 값이 10,450원이라는 거액에 달하였으며, 성냥의 수입도 증가하였다. 1903년 서울에는 일본인에 의한 궐련 제조장이 처음 만들어져 ‘이글’표 즉 매표 담배가 생산 판매되었다. 이것이 우리 땅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궐련이었다. 이 담배는 양절 궐련으로서 한 갑에 10개피가 들어있으며 값은 3전이었다. 우리 나라 일반대중은 아직도 잎담배를 장죽으로 피웠으며, 소위 ‘하이칼라’라고 하는 사람들만이 궐련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