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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노인이 그려준 약도대로 찾아갔다. 노인이 건네준 돈을 집으로 돌아와 세어보니 어중간하게 구십칠만 원이었다. 아무튼 그 돈은 나에게 떨어진 복권 당첨과도 같은 행운이었다.
근사한 양복을 하나 사 입고, 노인이 일러준 대로 행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약도에 표시된 집은 이층으로 된 흰색 양옥이었다.
집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약도를 펼쳐보았다. 약도에는 이 집이 있는 지점말고, 다른 지점에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나는 지독한 관절신경통 때문에 이제 걸어다니기가 너무 힘들다네. 한 발자국만 움직이려 해도 양쪽 무릎을 바늘로 푹푹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네.'
어젯밤 노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네가 나 대신 잠복 수사를 좀 해줘야겠어.'
나는 담배 연기를 훅 내뿜으며 양옥을 올려다보았다. 양옥의 외관은 조용히 풀을 뜯는 거대한 기린처럼 괴괴한 모습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골목마다 비슷한 구조를 가진 이층 양옥들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었다. 어쩐지 부자 동네인 것 같았다.
담배꽁초가 짧아졌을 무렵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급히 양옥에서 떨어져 전봇대 뒤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대문이 열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까만 생머리를 한 젊은 여자와 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나왔다. 젊은 여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엄청난 미인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이는 언뜻 짐작하기 힘들었다. 삼십대 초반으로도 보이고 어떻게 보면 이십대 초반으로도 보이고,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십대 초반으로도 보였다.
아무튼 두 여자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과는 반대쪽 골목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구십칠만 원만큼의 값을 하기 위해 조용히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녀들이 도착한 곳은 역시 약도에 표시된 또 하나의 지점이었다.
그곳은 중화요리 집이었다.
두 여자가 식당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어떤 남자가 튀어나와 그녀들을 반겼다.
하얀 앞치마를 두른 그 남자는 짧은 커트머리에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어딘지 콧수염이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남자 역시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언뜻 삼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역시 이십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겠고 사십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소녀도 키가 좀 작아서 그렇지 꾸미기에 따라서 이십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그들 세 명은 모두 나이를 짐작하기 무척 애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목 시계를 보니 두 시 삼십 분이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다녔다. 제법 번화한 길목에 자리잡은 중화요리 집이었던 것이다.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소녀가 고개를 휙 돌리며 나를 보았다. 귀엽고 예쁜 아이였다. 소녀는 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계속해서 작은 머리통을 움직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부담되는 시선이었다.
자리에 앉아 헛기침을 하며 주방 쪽을 보았을 때 나는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했다. 주방에서 예의 그 여자와 남자가 나를 빠끔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실내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와 내 어깨를 짓눌렀다. 손님으로 가장해서 자장면과 군만두를 반드시 사먹어야 했다. 그것도 노인이 내린 지령이었다.
잠시 후 소녀가 메뉴판을 들고 내 앞에 섰다.
"뭐 드실 거예요?"
소녀가 물었다. 목소리를 들으니 완전한 아이의 목소리였다. 아무리 봐도 열두 살 이상은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자장면하고 군만두로 줘."
소녀가 주방 쪽으로 가고 나서 나는 실내를 흘끔 둘러보았다. 깔끔하고 단정했다.
탕탕탕탕!
주방 쪽에서 음식을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써는 소리였다. 또한 지글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기름에 튀기고 볶는 듯한 소리였다.
이윽고 긴 머리 여자가 자장면과 군만두를 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세요."
여자가 말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벗고 있었는데 두 눈에 모두 검은자위가 없었다. 오로지 번들거리는 허연 눈동자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장님임을 알 수 있었다. 어딘가 걸음이 묘하다 싶었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소경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로 눈이 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흰자위뿐인 그 눈은 놀라울 정도로 섬뜩함 그 자체였다.
자장면을 먹으며 주방 쪽의 눈치를 살피니 여자와 사내가 도란도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냉랭했던 실내 분위기가 한결 따뜻해지는 듯했다.
식사 후 곧장 노인의 집으로 갔다. 노인은 안방에서 나를 맞았다. 노인의 방은 기름 보일러가 잘 돌아가서 인지 무척 따뜻했다.
나는 하루동안 관찰한 결과를 노인에게 보고했다.
내가 말을 하는 사이 노인은 두꺼운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기록했다.
보고가 끝나자 노인은 수첩을 덮어 안 주머니 속에 넣었다.
"잘했어. 그럼 이제부터 자네가 해야할 새로운 임무를 말해주겠네."
백열 전등 아래 드러난 노인의 눈동자가 새까맣게 빛났다.
"그 식당은 대략 밤 아홉 시가 되면 문을 닫을 것이네. 그러니 기다렸다가 열 시가 되면 그 식당으로 다시 가도록 하게.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일러주는 경로를 통해 식당 안으로 들어가게. 그리고 한 가지를 확인해 주게."
나는 다시 노인의 이상한 주문을 수행하기 위해 밤거리를 나서야만 했다. 이 월이었지만 추위는 여전했다. 볼에 닿는 찬바람이 칼날처럼 매서웠다.
식당 앞에서 시계를 보니 열 시 삼십 분이었다.
식당과 그 식당을 포함하고 있는 골목 전체가 어두웠다. 지나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노인이 일러준 경로를 되새기며 발걸음을 움직였다.
과연 식당 뒤쪽에 아주 비좁은 골목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골목을 따라 안으로 쭉 들어갔다. 골목 끝에는 맨홀 하나가 있었다. 나는 맨홀 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준비해온 가방을 뒤져 손전등을 꺼냈다. 역시 노인이 일러준 경로로 발걸음을 옮기니 지상으로 통하는 사다리가 나왔다. 그 사다리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곳은 시꺼먼 잔디가 깔린 비좁은 마당이었다. 바로 앞에 파란색 철문이 보였다. 그것 역시 노인이 일러준 대로였다. 나는 가방에서 장도리를 꺼내 철문에 달린 열쇠를 비틀어서 부셨다.
철문을 열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주방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주방 뒷문을 통해 주방으로 잠입한 것이었다.
'냉장고 안을 꼭 확인하게나.'
노인의 외침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왜 하필 냉장고 같은 곳을 확인해보라는 것일까.
당시만 해도 그런 의문 같은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나는 한쪽 벽에 곰팡이가 핀 차디찬 골방 신세에 넌더리가 나 있었고 때문에 돈만 준다면, 노인이 어떤 이상한 짓거리를 시켜도 다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던 것이다.
"쳇, 냉장고에 사람 시체라도 숨겨 두었을 까봐 그러나."
그렇게 중얼대며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목이 잘려나간 냉동인간 시체와 마주해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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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다음 장으로 가는 비밀번호를 맞추어 주세요~
방식은 지난번과 같습니다.
다섯자리 숫자이며 중복되는 숫자는 없습니다.
꼬리말로 임의의 비밀번호를 올려주세요. 제가 ()과 []으로 표시를 해드리겠습니다.
()는 숫자와 위치가 일치함을 뜻하고, []는 숫자는 맞으나 위치가 틀리다는 뜻입니다.
비밀번호 다섯자리를 맞춰주세요!!!
첫댓글 45831 재미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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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79 매일 올려주세요.,잼써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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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96 와아 재밌어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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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 재밋어요 ㅋㅋ 8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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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18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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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2...오~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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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8](1)[3][0][2]
83201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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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83
01283 -> 남은 한가지 님, 정답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3](128)[0] -> 아쉽습니다.
아.. 또 정답이 벌써 나오다니;; 근데 정말 흥미진진해요~ 다음편 빨리 보고싶어요 ㅋㅋ
이크~ 벌써 나왔네 ㅜ_ㅜ 아..대체 그 목잘린 냉동시체는 누구란말인가~ 담편이 정말 궁금합니다~
아..무서워요...
흑//늦었다.ㅋㅋ 담편 궁금해요~. 인육식당?.
아...답 맞추러 왔는데 벌써 나왔네요..-ㅁ-;;
답 나왓넹ㅋ 잼께 보고있어용ㅎ
헉... 아우 궁금해... 답맞추러왔는데 너무 늦어버렸넹 ㅎㅎ
처음의 느낌이 좀 그랬는데 역시 사람 고기로 요리를 하는 겁니까?? 다음편도 기대 합니다.
하우...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정말 흥미진진 하군요.
답글주신님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