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qxDE_KoKEw?si=SEFm8o6G1F0hH23l
포레의 실내악곡 중 최초의 것이라는 이 작품은 그가 31세 때인 성 트노레 교회당에 재직 중에 지은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새롭고 가장 놀랄만한 챔피언이 나타났다는 평도 있듯이 멜로디의 풍부함과 자연스러움을 조화시킨 우아하면서도 힘찬 작품이다.
제1악장 알레그로 몰토 Allegro molto 2/2박자 A장조 소나타 형식.
극히 세련된 기품과 내성을 간직한 프랑스 음악의 정수라 할 만한 이 악장은 생기가 약동하고 있다. 제1테마의 멜로디는 그가 즐겨 쓰던 싱코페이션 형식을 취해 매력 있는 아름다움에 넘쳐 있다. 제2테마는 c#단조로 바이올린에 의해 나타나며 발전부는 F장조로 조바꿈한다. 재현부의 제1테마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옥타브로 노래하게 되며 제2테마는 A장조로 옮겨진다. 얼마 후 코다에서 끝난다.
제2악장 안단테 Andante d단조 9/8박자 3부 소나타 형식.
가곡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인 그는 이 악장에서 가사 없는 동경에 찬 멜로디를 보여 준다. 처음에는 조를 달리하는 2개의 테마가 나타나며 다음에는 2개의 주제가 차례대로 조직적인 변화를 받아 나타난다. 다음에는 첫 번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작은 코다를 지나 F장조로 우아하고 시적인 여운을 남긴다.
제3악장 알레그로 비보 Allegro vivo 2/8박자 A장조 론도 형식.
마치 희롱하는 듯한 기분에 차있는 이 악장의 제1테마는 눈부실 만큼 빠른 템포의 음악이다. 변화 무쌍한 포레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중간부는 트리오 메뉴엣으로서 f#단조이다. 그리고 제2테마는 Db장조의 3/4박자이며 제3주제는 A장조로 되어 있다.
제4악장 알레그로 쿠아시 프레스토 Allegro quasi presto 6/8박자 론도 형식.
아름답고 발랄한, 행복과 생기에 찬 악장이다. 향기 높은 시정에 넘치고 있다. 더구나 제1테마는 한 번 들어도 잊혀지지 않으며 경쾌하면서도 절묘하다. 이것이 여러 갈래로 그 모양을 변형시키고 발전하여 클라이맥스를 이루는데 그 멜로디의 우아함은 물론 화성이 미묘하게 움직여져 전곡을 지배한다.
가브리엘 포레 (1845 - 1924)
여러분들은 얼마 전에 끝난 MBC 드라마 '왕초'를 기억할 것이다. 차인표가 주연으로 나온 거지왕 김춘삼에 대한 드라마 말이다. 거기서 테마 음악으로 나온 음악이 그 유명한 포레의 '파반느'이다. 우리에겐 '파반느'의 작곡가로 알려진 포레는 1845년 피레네 산맥 동단의 아리에즈 현 파미에에서 태어났다.
포레는 1854년, 교회 음악가의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니데르메이의 음악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생활은 스파르타식이었고 훈련은 엄격했다. 슈만이나 쇼팽은 어린 학생들이 배울 교재로서는 '부적당'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수업은 전적으로 그레고리오 성가와 팔레스트리나, 그리고 바하였다. 그러나 이곳의 교육은 교회선법의 용법에 있어서 파리음악원처럼 편협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서 그는 10살 연상의 피아노 교수인 생상스를 만나 평생의 벗이 되었다.
1871년 프랑스 작곡가들의 실내악과 관현악곡을 연주할 목적으로 국민음악협회가 창설되었는데, 포레는 생상스와 함께 이 협회와는 창립 당시부터 관계를 맺었고, 얼마 동안 서기의 일도 보았다. 그런데 이 국민음악협회를 스콜라 칸토룸파가 지배하게 되자, 1909년 포레는 이 파에 맞선 젊은 음악가들의 청을 받아들여 독립음악협회의 회장이 되었다. 당시 포레는 파리 국립음악원 원장이었고 또 프랑스 학사원 회원에 선임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그의 입장은 상당히 미묘했다. 포레는 그 두 협회를 합병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프랑스의 음악계에서 포레의 입장은 모순된 것이었다. 그는 생상스, 댕디, 드뷔시, 라벨 그리고 젊은 작곡가들과 개인적, 또는 공적인 접촉을 가졌고 그들의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주류와는 언제나 떨어져 있었고, 자신의 자세를 헝클어뜨리는 일이 없었으며 고전주의의 원리를 고수하면서 자신의 내부로부터 차분하고 근본적인 혁신을 했다. 그는 최후까지 조성의 작곡가였지만, 유연한 전조, 선법화성, 동명이음 전조, 논리적이며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수단으로 조성, 그것을 한계까지 밀고 갔다.
그러나 그가 독특했다 할 점은 대형식 또는 대편성에 대해서는 전혀 야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바하나 브람스처럼 그는 자기에게 유산으로 전해진 것을 가지고 일하는 것에 만족했다. 바하는 겉으로 보기보다 더 자주 포레의 음악 속에 그 얼굴을 내민다. 또 브람스로 말할 것 같으면, 일반 대중 사이에서의 포레의 음악이 거둔 성공의 정도는 브람스가 심포니나 협주곡을 쓰지 않았을 경우에 거두었을 성공의 정도와 같은 것이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포레의 긴 일생은 대체로 3기로 나눌 수 있다. 그 분할점은 대체로 1878년과 1906년이다. 위대한 창조자는 거의 모두 그렇지만, 포레도 때로는 비약을 보이는가 하면, 후퇴를 보이기도 했다. 1906년 이후의 제 3기에서는 그에게서 어리석은 속물주의가 눈에 띈다. 어쨌든 그의 만년의 작품들이 난해하다는 점은 너무 과장되어 있다.
포레의 업적은 뛰어난 것이었으니까 작품들 전체를 고려해야만 옳았다. 그의 최고의 음악은 되풀이해서 또 집중적으로 들을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안이한 백뮤직의 애호가에게는 반갑지 않은 음악이라는 것이 된다. 따라서 포레는 프랑스의 음악학자 장 미셀 넥투가 편찬한 인상적인 레코드 일람표가 뒷받침해 주는 바아 같이 레코드에 가장 알맞은 작곡자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파반느'op50을 잠시 살펴보면, '작곡가 포레가 '파반'을, 오늘날 이 곡의 연주 때에 흔히 느끼게 되는 로맨티시즘이 아니라 섬세한 유머를 충분히 풍기면서 연주했다'라는 비평을 주의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오늘 날 상당히 감성적으로 풍부하게 연주되는 이 곡이 당시의 작곡자의 입장에서는 좀 더 가벼운 유머러스한 곡이었다는 사실이다. 자료:http://www.sungeo.com/
글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5OgqO8732wY?si=RJlNS3w_KcUhpf9A
( Faure Violin Sonata No.1 in A major op.13 | 슐로모 민츠 바이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