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손녀 이유식을 끓이다
석야 신웅순
“여보 탄내가 나.”
아내는 대답이 없다. 한참을 있었는데 이유식이 탓다는 것이다.
“아까 탄내가 난다고 얘기 했는데.”
“그럼 크게 말해야지.”
아내가 화를 낸다. 못 들었다는 것이다. 말대꾸에는 평소 별말 없는지라 그냥 그런 줄 알았다. 화를 낼 만도 했다. 아내는 손녀 이유식 재료는 전부가 무농약 한살림에서 구했다. 몇 시간이고 서서 끓이고 고았는데 그게 탔으니 재료도, 시간도 그렇고 허리는 또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다시 사서 끓이면 되지 뭘 그래. 스트레스 받지 마”
그 말에 또 얼마나 혼났는지. 손녀 이유식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할머니가 만든 맞춤형인 단 하나의 음식이다. 꾸벅꾸벅 졸면서 새벽까지 불 앞에 있는 것을 지켜본 나였다. 적당히 해서 먹이라 했더니 정성을 쏟아야한다는 것이다. 손녀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많이도 행복하단다.
아내는 건망증이 옛날보다 잦아진 것 같다. 나이 든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것인가. 점점 기억이 짧아져가는 것을 보면 많이도 안쓰럽다.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잠이 들지 않는다. 업치락뒤치락하다 풋잠이 들었다.
아내와 나 둘이 길을 가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풀밭에 풀썩 주저앉는다. 순간 번쩍 들어올려 아내를 안았다. 아내는 내 품에 힘없이 쓰러졌다. 언제나 내 앞에서 늘 건강한 아내였다.
“아내도 별 수 없구나.”
눈물이 왁칵 쏟아질 뻔했다. 퍼뜩 잠이 깼다.
귀뚜라미가 베란다 밖에서 서럽게도 울어쌓는다. 아내 얼굴을 처다보았다. 곤하게 자고 있었다. 마음이 왜 이리 짠하고 산란한 것인가.
한 잔 술 등불 아래 못 달랠 건 정일레라
세월이란 푸섶 속에 팔 베게로 지쳐 누운
당신은 귀뚜리던가 내 가슴에 울어쌓네
저 몸에 목숨 있으면 얼마나를 남았으랴
내 눈길 가다 멎은 갈잎 같은 손을 두고
생각이 시름에 미쳐 갈피 못 잡겠고나
-정완영의「가을아내」첫째, 둘째수
내 마음이 이럴 진데 아내인들 대수이겠는가. 우리들의 남은 날은 얼마나 될까. 미지의 길을 같이 가야하는 부부이다. 누군가가 먼저 갈 것이다.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아버지와 딸’의 양지은 노래가 요새와 가슴을 울린다. 나와 아내의 처지요, 나와 딸의 처지이다.
어른들이 그랬다. 형제 자식 다 소용없고 부부밖에 없다고. 백번 맞는 말이다.
나는 창문을 열려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의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 이생진의 「아내와 나 사이」일부
우리에게 이런 날이 언제 올 지 아무도 모른다. 어제는 이유식 태웠다고 혼났고 오늘 새벽엔 풀섶에 주저앉는 아내의 꿈을 꾸었다.
우리는 같이 살고 있지만 너무 먼 데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랑은 왔다가 가는 것인가. 갔다가 다시 오는 것인가. 나이 들면 사랑은 왔다 갔다 하는 것인가.
-석야 신웅순의서재, 여여재. 2022.8.22.
첫댓글 이름도 성도 모르고 처음으로 어둑한 다방 한켠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슴니다
우연히 만났지만 오래전에서 부터 알고 지내던 이웃집 처녀같이 익숙해 보이던 그녀
충청도 멍청한 총각이 서울 깍정이 처녀를 만난지 어언 반세기, 얼굴한번 붉히지 않고
어려움을 운명이라 여기며 하나가 되어 살아온 나날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갚아야할 짐이라도 있는것처럼 받을것은 생각질않고 줄것만 생각하고 삽니다
그래서 아마 부부는 무촌이라고 한것 같슴니다
아내는 헌신이고 희생이고 사랑입니다
좋은글 마음에 닿는글 ! 감사합니다 * 부부는 남이아닌 바로 나일수있다고 생각해봅니다*
, -춘암 채성소-
아아, 그러시군요.
공감합니다.우리 세대는 그리 살아왔을 겁니다.
얼마간의 헌신 없는 사랑은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혼이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마음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꽃다운 청춘을 오롯이 바쳐 시부모 시할머니 남편까지 병수발 다하며 살아온 한평생
현대판 열녀문인 효부상을 몇개나 받아본들 그 힘든 세월을 어떻게 보상해 주리까?
이제 고희를 지나 무릎 허리 성한 곳이 없어 병원신세 벗어날 길 없음에도 어쩌리오
고장난 몸 다독이며 남은 생 무탈하기만 비는 그대는 정녕 나의 수호신이어라!
몇 줄의 댓글이 가슴을 칩니다.
우리 세댄 그리 살아왔습니다.
우리 세대에 너무나 많이 변했습니다. 사회,정치, 문화 심지어는 도덕,윤리에 이르기까지
정체성에 가끔 멍할 때가 있습니다.
찡한 댓글 고맙습니다.
人生은 커피한잔 !
처음에는 뜨거워서 못마시겠드니
마실만 하니금방 식드라
인생도 그렇더라
열정이 있을때가 좋을 때이다
식고나면 너무늦다
커피는 따뜻할때 마시는것이 잘 마시는것이고 인생은 즐겁게 사는것이 잘사는 것이다
*** 오늘이 가장 즐겁고 젊은날로 기록되시기를 바랍니다***
춘암 채 성 소
그렇습니다.언제나 즐거운 날입니다.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정신은 바짝 차리고 ...끝까지 맑은 정신으로 있다가 가야합니다......가능한 분을 많이 뵈서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만요.
<축서사 보탑성전>
사실 내가 좋아하는 절은 송광사・선암사・통도사・해인사・실상사・쌍계사 등등이지만, 가끔 친정 가까이 있는 축서사에 가서 머무른다. 축서사에 갈 때마다 같은 현판을 자꾸 찍는다.
“선생님~~ 축서사에 가면 현판이 여러개 있는데, 선생님 쓰신 보탑성전 현판은 봐도 봐도 싫증 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글쎄~~ 오래 봐온 글씨라 그렇겠지 뭐.”
이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절은 축서사이다.
우리 선생님의 墨跡이 있는 곳, 선생님 뵙고 싶으면 축서사 탑을 등 뒤로 두고 보탑성전 네 글자의 편액을 보면 된다.
“탑 앞에 서서 뭐 하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사진 찍어요 선생님”
그렇군요.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 때문일 겁니다.
님이 어떤 분이신가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학문의 스승님이 편찮으셔 걱정이 됩니다.
가끔 전화로만 안부를 묻습니다.
전화 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