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새벽 내란과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47일 만이자, 지난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된 지 나흘 만이다.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전날 4시간 50분에 걸쳐 윤 대통령의 영장 실질 심사를 진행한 뒤, 이날 오전 2시 50분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유는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로 단 15자(字)가 전부였다.
윤 대통령은 영장 심사에 출석해 45분간 비상계엄의 정당성과 구속 수사의 부당성을 강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장 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 구인 피의자 대기실에서 심사 결과를 기다리던 윤 대통령은 정식 입소 절차를 거쳐 이날 독거실에 수감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과 경찰을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하는 등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혐의 등을 받는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15일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을 체포했다. 윤 대통령은 체포 당일 조사에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후 추가 출석 요구는 거부했다. 공수처는 지난 1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기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1980년 이후 전직 대통령 8명 중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지만 모두 전직 신분이었다.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중앙지방법원에서 내란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호송차를 타고 서부지법을 빠져나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체포 기한을 포함해 최장 20일간 구속 상태로 조사받고, 다음 달 6일 전에 기소 여부가 결정된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 기소권이 없어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아 보강 수사 후 재판에 넘길지 말지 결정한다.
◇“증거인멸 염려” 한줄, 법조계 “잡범 수준 사유로 대통령 구속”
서울서부지법은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음’이라는 간단한 사유만 밝혔지만, 위헌·위법한 비상계엄령 선포, 계엄 포고령 발령 등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하면 구속영장 발부가 예상됐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함께 계엄에 가담해 구속 기소된 공범들의 진술 등 이미 증거의 대부분이 확보돼 있는데, 도주 우려가 없는 현직 대통령을 구속까지 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휴대폰 교체·텔레그램 탈퇴 등 고려한 듯
윤 대통령 영장 심사는 지난 18일 당직이던 차은경 부장판사가 맡아 다음 날 발부됐다. 영장 심사는 평일에는 전담 판사가 하지만, 18일처럼 주말엔 민·형사부 판사들이 돌아가며 대신 한다.
차 부장판사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전후해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텔레그램을 탈퇴한 점, 윤 대통령 측이 대통령실과 한남동 관저 압수 수색을 거부한 점 등을 강조한 공수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으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차 부장판사는 또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지난 15일을 제외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조사에 불응하고, 범죄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점 등을 증거인멸 요인으로 봤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직무 정지돼 있지만 여전히 영향력으로 국무위원을 회유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했다.
◇“현직 대통령을 꼭 구속해야 되나”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을 꼭 구속 수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형사소송법상 구속영장 발부의 전제는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느냐이다. 여기에 주거가 일정치 않거나 증거인멸 또는 도주의 우려가 있느냐, 범죄의 중대성과 재범 위험성이 있냐 등도 고려한다.
법조계에선 지난달 3~4일 6시간 동안의 비상계엄 상황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됐고, 계엄에 가담한 군과 경찰 지휘부가 이미 윤 대통령 지시 사항 등을 고스란히 진술했으며, 윤 대통령이 계엄 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 사실상 칩거해 특별히 숨길 증거도, 도주할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
법조계 한 원로는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현직 대통령을 굳이 구속 수사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윤 대통령도 사법 절차에 따라 수사에 협조했다면 이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 유튜브 락TV
◇달랑 15글자, 이재명 땐 사유만 600자
이날 차 부장판사가 윤 대통령을 구속하면서 밝힌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음’이라고 한 15글자짜리 사유도 논란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짤막한 영장 발부 사유만 보면 거의 잡범 수준”이라며 “혐의 소명 정도 등을 좀 더 자세히 밝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 공개된 주요 인사들의 구속 영장 심사 결과도 이번처럼 짧지는 않았다. 2017년 3월 법원은 뇌물 수수 등 13가지 범죄 혐의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하면서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어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는 35자 사유를 댔다.
2023년 9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를 600자 분량으로 밝혔다. “위증 교사 혐의는 소명되지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을 감안했다”는 이유도 달았다.
국민의힘은 이날 “이재명도 혐의가 확인되면 (윤 대통령과) 똑같이 구속함으로써 법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했고, 민주당은 “사안의 경중이 다르다. 왜 내란 사태에 갖다 붙이느냐”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