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烈婦旌門後叙 *(玉川先生文集卷之八 / 跋)홍열부정문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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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烈婦旌門後叙 (홍열부 정문후서).
내가 어렸을때에 홍열부가 절개를지키다가 죽은일을 들었다.
홍열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이 홍열부의 기이한 절개로 판별해보고 제현이 기록한 전기와 여러 고을의 선비들이 진술해서 드러낸 그 貞烈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읽어보니 마음이 슬프고 아파서 나도모르게 눈물이괴여 떨어졌다. 홍열부가 죽은지45년이 된기유년에 특명(特命)으로정표문려 를 하라하시니 홍열부의 여러 조카 손자들이 나에게 請하기를 나의말로 정표의 왼쪽에 새기고져한다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일의본말을 아직 자세히 알지못하고 또한 지금 그 혁혁한 정열이 사람들의 눈과귀에 확실한데 어찌 덧붙이는 글을 용납하겠는가?"
홍열부가 몸을삼가고 행실을 깨끗이하기를 이와같이하였는데 하루아침에 오명을뒤집어썻으니 누구를 믿겠는가? 世重이 시아버지가 되어서 그 며느리를 항상 사랑하고 존중해서 효부라고 일컬었으며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를 "우리며느리의 행실은 삼강행실도 에 실린다 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하니 이미 홍열부의 현명함을 알아본것이다. 불행히도 못된자식 과 요망한 첩실이 있어서 총애의 구멍을 파면서 재물을 다투어 매얼(재앙을불러들이는 중매장이)이 되는것은 그래도 괞찮으나 잘못된틈을 살피며 끝까지 폄으로서 그 끝을기다리고 서서히물들이기를 이미 오랬동안 했으니 世重의 뜻이 움직이지 않을수가없었다.
자난일을 돌아보고는 협박해서 맹서 하게 하니 크게 떨쳐지는 무고를불러들이게되었다.
정직한 여종에게 거짓글을 올리게 해서 상급 관아에 까지 공문을보내 체포하게한것은 오직 홍씨가 자결을해서 오지 않게함으로써 욕심한바를 얻기위함이었다.홍씨가 어지러운 소식을들음에 옥으로 달려가서 절개를 따라 명백히 변론하고 추관의 앞에서 평평한 가슴과 배를 드러내 보여 원통한 형상을 밝혀 보임에 이르러서는 저들의기색이 사색이되어 막혀서 한마디 말도하지못하였다.저들이헛된말과 증거를 들이댄 것이 모두 거짓으로 꾸민것이라서 한가지도 사실이없었고 가슴에 숨기고 감추어진 자취가 모두 드러나서 남은게 없었으며 무고하고 모독한것이 영원히 씻겨났고 여러사특함과 허물이 해명되었으니 그얼마나 강하고 매운가!홍열부가 이미옥사를나옴에 추관에게 글을올려 감사하고 또한 부모에게 글을올리며 글을마침에 목욕을하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등불을 밝히고 단정하게 앉아서 시비가 깊은잠에 들기를 기다려서 칼로 스스로 를 찔렸다.처음찌름에 죽지않고 두번세번 해서 절명하니 고을사람들이 목이메어 뛰어다녔다.태수가 나와 앉아서 눈믈을떨어뜨리며 말하기를 "조금전에 반드시죽을것이라고 말하였다"하고 병마사가 장례물품을 갖추어서 조의를표하였으며 마을사람들이 정통문을 주변고을로 전달했고 장정들이 상여를메고 나가면서 말하기를"옛사람들이 말하기를 비분강개해서 자살하는것은 쉬워도 말없이의리를 행하는것은 어렵다"고 하니 홍열부로 하여금변고를듣게하여 자진하게했더라도 이것은 비첩과 더불어 자살한것이니어찌 천명을 거부한것과다르겠는가? 하물며 世重의 아들 명기 등이 암담하게 무고를해서 옥사를 지어 일으킴 에랴! 또 심부름꾼을시켜 목청을 돋아가며 말하기를 "간통했다는자가 머리를 조아려 자복하고 올곧은 여자종이 증언했으니 비록 빙옥과 같은깨끗함이 있더라도 말 없이 욕을당할뿐입니다.원컨대 낭자 께서는 스스로를 위한 계책(자살)을세우소서!"하였다.그러나 홍열부가 의연히 관리한테가서 옥에갇혀 도탄에빠질것을 무릅썻으니 그 뜻이 어찌 잠시라도 죽음을염두에 두지않았겠는가?한번죽을것을 참고 큰 치욕을 설욕했으며 이름이 후세에 드리웠으니 아!아!슬프도다!"
태사공이 말하기를 "죽음이 어려운것이 아니라 죽을곳에서 처신하는것이 어렵다"고하니 그 시아버지와송사에서 대면해서는 시아버지에게 禍가미칠 말 을한마디도 하지않았으며 제철의맛있는것이 있으면 반드시 시아버지에게보냈으며 추관과 친정부모에게 글을 올려서 시아버지의생명을 求해주기를 請했으니 시아버지와며느리의 상도를 온전히 한것이다.
또 죽은 남편의산소로 돌아가서는 그 죽을 기약을 급박하게 해서 정조의 의리를 모두 다 했으며 절개와 행실이 모두맑아서 그 차분히 죽음에 나아감에 낙락하기가 이와같았으니 어찌 비분강개 해서 헛되게 죽은것이 겠는가!洪萬濟는 홍열부에게는 사촌형제가되는데 집안에서 효도와 우애로 소문이났다.홍열부를따라 함께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떨어지지 않았는데옥문의바깥에서 넝마옷을입고 주먹밥을먹으며 그 곤액을함께 하더니 마침내 홍열부의시신을 엎고 돌아왔다.또 여종 貞心은 홀로 이씨 집안에 머무르며 협박과유혹속에서도 거짓증언을거부하고 성내며 욕하면서 올곧음으로 주인의 원통함을풀고져 했으며 관청에서 신문을받느라 두 무릎이 부서졌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한결같은 말로 그 무고를밝혔으니 급박하게 몰아치는 어려움 속에서도 의리와주인을 위해 목슴을바친 충성과밝고 분명한 견해를 본받을만 하므로 이글의말미에 붙여 기록했다.
아아!! 홍열부가 수립한것이 이와 같이 뛰어났으니 사림의 선비들이 모범삼아 전파하고 관찰사가 장계를올렸으며 당시의 태수가 전기를지었으며 또한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되어 알려졌다.그 죽은지 수년이 지나서 비로소 표상하는 정려의글을 지으니 그해골이된 영혼에 위로가 될수있을것이다. 그러나 불행했던절의 의 명성이 들어나고 열부가 되었으니 홍열부가 어찌 이러한 명성 얻기를 원했을것인가? 그러나 포상하는 것은 그렇게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것이니 한사람을포상함으로써 많은사람에게 권면하는것이다. 풍속을 교화시키는데 도움이 되는것이니 어찌 그공덕이 경미 하다고 할것인가! 나의말이 어찌 홍열부를 높일수 있겠는가?
다만 이렇게씀으로써 정려문 을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를갖추게 하고 감동하고 흠모하는 마음을일으키고져 하는것이니 즉 말하기를"홍열부는 南陽의大姓으로 영의정 당성부원군을 추증받은 洪世恭의 玄孫이며 아버지는 洪爾遠으로 행실을삼가는 사람으로 품행과 도의가 있었다. 홍열부가 어려서부터 효경과상순함이 있더니 임자년에 진첯ㄴ사람 李命寅에게 시집갔다. 李命寅은 世重의본처 자식이라 명기와명린은후처의소생이다. 홍열부가 시집간지얼마안되어 命寅이죽으니 홍열부가맹서하며 죽음으로 따르려 하다가 못하고 마침내 변고를만나 죽으니 숙종11년5월모일이다*(숙종11년을축1685.5.)
옥천 조덕린(玉川 趙德鄰)지음.
옥천 조덕린(玉川 趙德鄰):(1658.~1737)24세에 선양을목적으로홍열부정문을쓰면서 효(孝)와 의(義)둘을 다하였다고 하였고 절(節)과 행(行)둘다맑았다고 감격해 하였다.
*******玉川先生文集卷之八 / 跋
洪烈婦旌門後叙
余少也。聞洪烈婦節死事。不識烈婦何狀。辦此奇節。及讀諸賢傳記及列邑士子陳顯貞烈叙列詳矣。心惕然傷之。不覺涕涔滛下也。烈婦死後四十五年己酉。特命旌表門閭。其諸姪孫請余言。刻之左方。余謂事本末未易詳也。且至今赫赫在人耳目。奚容贅焉。夫洪氏之飭身潔行如此。一朝被以惡名。誰信之者。世重以其舅。常愛重之。稱以孝婦。誇之鄕里曰。吾 婦之行。雖載三綱行實無愧云。其旣已知其賢矣。不幸而有惡子妖妾。窖寵爭財。爲之媒孼則猶可。舒究觀釁。以俟其終。而浸潤旣久。意不能無動。顧乃刦盟必振誣招。貞婢藉手投狀。發關逮捕。徒幸洪氏之决死不來。因欲爲所欲爲。洪氏聞亂赴獄。逐節辨晢。至坦胷露腹於推官之前。白見寃狀。彼其氣死色沮。不敢置一辭。其游辭立證。皆白撰無一實。隱胷秘迹。盡㬥發無餘。誣衊永雪。羣慝伏辜。何其烈哉。烈婦旣出獄。爲書謝推官。又上父母書。書訖沐浴。更新衣。明燈端坐。俟侍婢熟睡。引刃自刺。初不殊至再至三而絶。 州人失聲奔走。太守出坐垂淚曰。向者固謂其必死矣。兵馬使爲治喪具惟謹。鄕人出文傳通列邑。爲出擔丁護送其喪云。古人曰。慷慨殺身易。從容就義難。向使洪烈婦。聞變自裁。此與婢妾引决。奚異方命。麒等誣以黯黮。締搆起獄。又使揚言曰。奸者首服。貞婢納招。雖冰玉之潔。無辭秖取辱耳。願娘子自爲計。洪氏毅然就吏。逮獄塗炭。志豈嘗須臾忘死耶。忍一死雪大恥。名垂於後世。悲夫。太史公曰。非死之難。處死卽難。其與舅對獄也。略無一言及舅。而時得異味。必送舅所。其上推官及父母書。乞貰舅命。俾全舅婦之 道。歸對亡夫之面。迫死期而不貳其操。遭變事而不失其正。孝與義兩盡。節與行雙淸。其從容就死。落落如此。豈慷慨而徒死者哉。洪君萬濟。於烈婦爲從父兄弟。居家以孝友聞。從烈婦同往終始不離。獄門之外。時其槖饘。共其阨困。卒載屍而歸。婢貞心獨留李家。受脅見誘。抗辭奮罵。以直主寃。官庭刑訊。兩膝糜碎而終始一辭。以明其誣。其急難之義。殉主之忠。焯然著見。法當附書。嗚呼。烈婦之所樹立。如此卓卓。士林齊籲。道臣狀聞。其時太守爲立傳。又扁於試題。而距其死許多年。始有襃旌之典。可以慰旣骨之魂。 而節義之名不幸乃見乃烈婦。則豈願有此名哉。然襃之所以勸也。襃一人而千百人勸。其有補於風敎。豈淺鮮哉。余言奚足爲烈婦重。特書之。使過者式而有所感慕興起云。烈婦爲南陽大姓。贈領議政唐城府院君世恭之玄孫。父爾遠。謹愼有行誼。烈婦自少孝敬祥順。壬子。嫁鎭川人李命寅。卽世重之前婦子。命麒,命麟。其後妻所生。烈婦嫁未幾。命寅歿。烈婦誓以死從不得。卒遭變而死。實明陵十一年五月某日。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