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단감선물에 대한 유감
박래여
해마다 단감 철이 돌아오면 형제자매에겐 늘 좋은 단감 한 박스씩을 보낸다. 올해는 단감농사를 확 줄였지만 어쩐 일인지 수확을 하려니 피곤하고 힘들다. 단감농사는 농부가 짓지만 뒷바라지 하는 것만도 버거워 허덕거린다. 갑자기 왜 이렇게 늙어버렸을까? 농담처럼 진심을 말한다. 아흔 여섯 해를 살다 가신 시어른을 모시면서 진이 다 빠져버린 것일까. 갑자기 폭삭 늙어버린 느낌이다. 노인의 마지막 서너 달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팽팽하게 당기던 줄이 갑자기 뚝 끊어져버리자 농부도 나도 허탈해진 것일까. 소소한 갈등 때문일까.
그래도 단감 수확 철은 다가왔다. 단감을 저장하지 않고 알감으로 모두 내겠다고 작정했다. 딸과 지인이 오셔서 도와주는 바람에 일꾼 안 쓰는 것만도 편한데 여전히 힘에 부쳐 허덕거린다. 단감을 솎아내는 시기가 끝나고 정품을 따 들이는 시기다. 세 사람이 하루 종일 단감을 따 왔다. 다음날 아침부터 선별했다. 그동안 주문 들어온 것을 모아놨다가 한꺼번에 포장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단감 수량이 많을 때는 주문이 아무리 폭주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단감 수량이 적으니 포장하는 것도 신경이 곤두선다.
날씨 탓인지 여전히 노린재 피해를 입은 단감이 많다. 농약을 가능하면 적게 치려는 경향이 강한 농부다. 우리 집 단감은 씻어서 껍질 째 먹어도 괜찮은 단감이다. 사근사근한 맛과 당도가 높아 못난이는 동네에서 거의 소비한다. 택배로 보낼 못난이가 없다더니 막상 뚜껑을 열자 못난이가 수두룩하다. ‘농사 좀 제대로 지어 볼 수 없소? 다른 집 감은 말끔하니 때깔이 좋은데 우리 집 감은 때깔이 안 나잖아.’ 알면서도 나는 해마다 똑 같은 투정을 부린다. 아무리 그래봤자 쇠귀에 경 읽기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덕분에 우리 집 단감을 선호하는 소비자는 일찌감치 단감 주문을 해 놓고 기다린다. 나는 물건 값을 보내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손님 때문에 안달복달 한다.
겨우 주문량을 채웠다. 그 중에 선물할 곳이 많다. 농사를 많이 짓든, 적게 짓든 선물해야 할 사람은 있다. 다음 날 단감 잘 받았다는 소식이 오면 고맙다. 맛은 여전히 좋다며 재 주문을 하는 바람에 피곤이 가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서울 형님이다. 단감 보내줘 고맙다는 말은 뒷전이고 ‘앞으로 이런 것 보내지 마라.’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나는 너스레로 넘겼다. ‘왜? 해마다 보냈잖아요. 단감에 무슨 문제 있어요?’하자 미안한지 당뇨가 있어 단 걸 못 먹는단다. ‘내년부터는 안 보낼게. 형님 안 먹으면 이웃에 나누어 주든가.’ 편하게 말했다. 뜬금없이 ‘너의 아주버님이 내려갔다.’ 한다. 어디서 자느냐고 묻자 우리 집에 올 것이란다. 전화를 끊고 농부의 표정을 봤다. 농부도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러는 차, 진주에 도착했다는 아주버님의 전화가 왔다. 내일이 시제 날이다. 시제에 참석한 적이 별로 없는 아주버님이 내려온다는 것도 신기하다. 더구나 삼촌을 진주에서 만나 저녁 먹고 온단다. 미리 전화라도 했다면 손님 맞을 마음준비라도 했을 텐데. 또 손님 치게 생겼다. ‘오지마라 할까?’ 농부는 내 눈치를 살핀다. ‘말 되는 소릴 하소. 그럼 어디서 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고향에 오면 우리 집에서 하룻밤이라도 자고 갈 것이고 끼니도 해결해야 한다. 37년 동안 고향에 산다는 이유로 맏며느리 노릇을 해 왔다. 이제 내려놓고 싶은데 시어른 돌아가신 후에도 맏며느리노릇을 해야 할 팔잔가 보다.
읍내에 못난이 단감 배달하러 갔다. 거리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리치리치 페스티벌>이다. 어제는 가수 남진이 왔었고 오늘은 가요제를 한단다. 단감을 배달하고 수영장을 가는데 승용차 세울 곳이 없어 빙빙 돌았다. 결국 멀리 세워놓고 걸었다. 걷기 힘든 나는 불만이다. 축제란 뭘까. 삼삼오오 떼를 지어 거니는 사람들, 거리 음식점이 즐비한 부스를 지나친다. 축제는 사람들에게 돈 벌기와 돈 쓰기를 강요하는 기분이다. 수영장은 텅텅 비어 신나게 놀았다.
딸은 도시에 볼일을 보러 갔다. 나는 어제 따 들인 단감을 완판 했으면 싶어 주문전화를 기다린다. 선물하고 싶은 곳은 수두룩하지만 자꾸 농부 눈치를 본다. 단감농사 적게 지었더니 퍼내는 문제에 봉착한다. ‘다 퍼내고 살림은 무엇으로 살래?’ 시어머님 같다. 어제 보낸 단감을 잘 받았다고 맛있다고 카톡이 춤을 춘다.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재주문도 오니 어제 따 들인 단감은 완판 하려나. 저녁 8시 경 아주버님과 삼촌이 도착했다. 오래 정든 식구는 만나면 그냥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