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혁신은 포용으로부터 ⑨]
빈곤층·여성·아동 등 취약계층
보건의료 혜택 사각지대 놓여
‘건강 불평등’ 해소하려면
젠더 차이 등 고려해 정책 설계해야
세계보건기구(WHO)가 2023년 발표한 건강 불평등 데이터(Health Inequality Data) 중 성별과 고소득/저소득 국가 교차 분석에 따른 고혈압과 비만 격차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WHO 웹사이트(https://www.who.int/data/inequality-monitor/data#PageContent_C677_Col00) 캡처화면
공평한 건강과 삶의 질이 중요한 사회적 목표로 자리 잡은 현대사회에서 반복되는 팬데믹, 기후 위기로 인한 재해, 전쟁으로 인류의 건강 불평등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고 있다. 사회적·인구학적·경제적·지역적 요인에 따른 인구 집단 사이에 건강 수준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보건기구(WHO)¹는 ‘인구 집단 간에 불공평한, 피하거나 고칠 수 있는 건강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건강 형평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건강 형평성이 확보되지 못함으로써 건강에서의 사회정의와 공평성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빈곤층과 여성·어린이 등 취약계층의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전체 인구 집단의 불평등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².
우리가 건강 형평성 추구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이유는 공정성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나 보건의료의 기술 수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더라도, 불공정하거나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한 부분을 놓쳐서 인구 집단에서 건강 불평등이 고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건강을 인간의 기본권리로 받아들이는 현대 사회에서 건강 불평등의 기전에 형평성의 문제가 관여됐다면, 이는 인간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윤리적·도덕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이 때문에 건강 형평성 추구에 기술적 진보와 정책 설정 등 공공의 개입이 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여진다.
건강 형평 정책은 단순한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 전략이나 자원 배분의 관점을 넘어서 사회정의와 공평성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젠더 포용성을 포함한 포괄적·사회정책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매년 보고되는 건강지표에 나타나는 건강의 사회적 결정인자들, 즉 성별 및 경제력, 학력, 거주지 등이 점점 더 주요한 결정 요소로 확인되고 있다. 다양한 결정인자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는 건강 형평성 추구는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성별과 젠더에 따라 어떻게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엘스비어, Infection, Genetics and Evolution,103호, 2022년 9월) ⓒ사이언스다이렉트(https://doi.org/10.1016/j.meegid.2022.105338) 캡처화면
특히 효과적인 건강 형평 추구를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 유행 여파로 여성의 모자보건 서비스 접근성이 낮아져 산모 사망률 등 건강 위협이 증가하고 가정폭력 및 성적 폭력 등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남성의 사망률은 여성보다 확연히 높다. 이는 위험한 직종 종사 비율이 높아 관련 질병·부상의 위험이 커져 사고와 만성질환, 심혈관질환 발생률이 높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의 자살률도 높다. 정신건강 문제 발생 시 적절한 지원을 받거나 의료 서비스를 적시에 이용하지 않는 경향이 높아 건강 검진이나 예방적 치료를 소홀히 해서 질병이 악화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성별에 따라 질병에 걸릴 확률도 다르고, 건강서비스 접근성도 차이가 있다. UN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2030 의제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 실현을 위해 이러한 다양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과 함께 특히 젠더 포용성 구현이 중요할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³.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자각으로, 건강은 개인의 행태 변화보다 건강 형평 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개선을 위한 노력에는 보건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의 협력이 필수적이며, 보건의료자원은 인구 집단의 건강 요구에 비례해 배분해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건강 형평 정책에서 젠더 포용성이 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지난 10여 년간 건강 형평성 추구를 포함한 공적개발원조 사업에서 성평등 등 젠더 이슈를 담고 있는 사업의 규모와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는 데 반해, 성차를 반영한 젠더 포용성을 수용한 사업은 드문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젠더 포용성을 고려한 건강 형평 정책과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민감성 있는 데이터 및 모델링 도구 개발과, 관련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구축, 젠더 관련 자원을 활용하는 조직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관련 연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³, ⁴.
계속되는 전쟁과 재난으로 취약계층이 더욱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 형평성 문제는 더욱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건강 형평성 확보를 위해서는 국가정책의 변화와 국제적 협력이 필수적이며, 젠더 포용성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모든 인류가 공정한 건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전쟁과 재난을 목도하고 있는 오늘 우리의 과제로 다가온다.
참고문헌
¹ WHO Health equity (who.int)
² Bohren, M. A., Iyer, A., Barros, A. J., Williams, C. R., Hazfiarini, A., Arroyave, L., ... & Oladapo, O. T. (2024). Towards a better tomorrow: addressing intersectional gender power relations to eradicate inequities in maternal health.?EClinicalMedicine,?67.
³ 오지영. (2023). 국제사회의 주요 젠더 이슈와 개발협력 정책과제.[KIEP] 오늘의 세계경제, 1-17.
⁴ Barr, E., Popkin, R., Roodzant, E., Jaworski, B., & Temkin, S. M. (2024). Gender as a social and structural variable: research perspectives from th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Translational behavioral medicine,?14(1), 13-22.
여성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