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주는 여자
-정준일
농장에 갈 때마다
아내는 물을 뿌린다
새로 씨를 뿌린 열무밭에는 물론
무성하게 자란 상추나
허약하여 빌빌거리는 고추에도
아내는 물만 뿌린다
장갑을 챙기지 않고
호미를 챙기지 않을 때는 있어도
물뿌리개는 잊지 않는다
잡초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어도
삐져나온 감자알 햇빛을 받고 있어도
아내는 물을 뿌린다
흙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감자밭에서
팔다리에 감겨드는 젖은 잎에
짜증을 내다가 생각한다
아기를 키울 때 아내는 젖만 먹였다
노마에프도 비타쑥쑥도 거절했다
쌀과 야채로 직접 만든 이유식으로 젖을 뗐다
아내는 도회 출신, 처음 하는 농사일이다
비 내린 열무밭에서 동그랗게 놀란 후
고추가 원하는 것 주지 않고
감자가 원하는 것 주지 않고
아내는 물만 뿌린다
아는 방식만으로 가장 성실한 사랑을 한다
현실 삶에서 방임(放任)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간섭한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간섭할 것인가? 이 시의 물주는 여자의 현명함이 그 경계를 확정해 줍니다. 물만 주는 것입니다. 채소의 삶을 돌보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돌보는 것에 대한 아우트라인은 '물은 줘야 한다'입니다. 그 외로는 간섭이라고 철두철미하게 생각합니다. "잡초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어도/ 삐져나온 감자알 햇빛을 받고 있어도/ 아내는" 물만 줍니다. 물론 흙으로 감자 알을 덮어주는 것이 돌보는 것일 겝니다. 고추가 허약해 빌빌거리면 비료를 주어야 할 것이고, 잡초로 하여 채소가 자라는 것이 방해되면 잡초를 뽑아야 합니다. 만약 이파리만 무성하고 열매가 시원찮다면 비료도 가려서 줘야할 것입니다. 영농 기술이 더 발전되어 있다면, 더 구체적인 필요를 찾아 뭔가를 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잘 기른다'고 말합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길러야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분들은 자유방임을 대안으로 내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 둘의 문제점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사이에 상식(물리학에서는 상수常數)으로, 물만 주는 현명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도회 출신으로 농사일은 처음입니다. 처음이어서 의욕적일 수도 있는데, 그녀는 분명한 생에 대한 경험적 이해("아기를 키울 때 아내는 젖만 먹였다")로부터 돌봄의 아우트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돌봄의 아우트라인의 핵심은 '기본은 하면서 굽어보고 대화하고 놀이하는 즐거움' 같은 것입니다. 필요를 찾아서 다 좇아 다니는 것(이것은 반드시 소출을 생각한다!)이 아니라, 물을 주는 기본은 하면서 그들과 놀이를 하듯이 돌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임도 능사가 아니고 시시콜콜 챙기는 것도 능사가 아닙니다. 채마밭 한번 가꿔보지 않은 여자가 "비 내린 열무밭에" 초록 싹들이 틔운 것을 보고, 깨달음처럼 "동그랗게 놀란 후" 갖게 된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에 입각해, "아는 방식만으로 가장 성실한 사랑을 한다"는 것!
-글/ 오철수 시인
******준일인 그런 색시 잘 모시고 살아야 한다^^
첫댓글 내 아내는 있는 화분에 물도 잘 안주는데...불쌍한 우리집 화초들...그러나 애는 잘 키우고 있어요. 텃밭을 분양받아 우리도 농사를 지어 볼까나
하나의 행동을 보고 방임이냐 성실한 사랑이냐, 이렇게 해석이 두 가지로 나올 수 있겠죠. 어쩌면 이것도 결과의 상황에 따른 다양한 해석일 가능성도 있구요.
아는 방식만으로 밀고 나가는 사랑을 저도 한 번 해 볼까요...제 사랑은 언제나 눈치보기 였으니...^^
내는 아는 방식도 없는디 워쩐다냐?
내가 아는 방식이 하나도 없을 때..그 아이의 방식이 내가 아는 방식이 되겠지요. 내가 나를 비우는 것은 제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천하를 들여놓는 것입니다.
제가 모시는 아내님은 진짜 자연주의자지요. 아이들에게 영양제를 먹여 토실토실하게 기르고 싶은 유혹이 없지 않았겠지만, 살아 있는 먹이만 먹였으니까요. 방임에 가까운 그녀의 아이 기르기에 맞서다 여러 대 맞았고,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그것이 옳은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느끼며, 저도 그녀를 닮아가고 있답니다.
아항~ 그랬군요. 시를 읽으면서 한 꼴통 한다고 생각했는데...그러니까 황야의 이리를 기르고 살겠죠.ㅋㅋㅋ
탱크님은 무엇을 타고 출근하십니까? 보리님은 더울 때 무엇으로 시원한 바람을 만드십니까? 소향님은 음식 만들 때 무슨 조미료를 쓰십니까?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지금 보다 훨씬 불편해져야 한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불편을 창의적인 행위로 바꾸는 것!
이리님의 말씀에 천번만번 동감하는 바이옵니다. 인류가 더욱 평화롭게 지속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훠얼씬~! 더 천천히, 느리게 흘러가야 한다는 믿음에 저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느리게 흘러오던 한 때가 있었는데, 그 때가 몸살나게 그립군요.특히 요즘 갈수록 더욱~!^^ 준일님께서는 참말 그런 아내 잘 모시고 사세요^^
빈터님 아이디가 참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공터도 아니고 빈터라......공터와 빈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공터는 그냥 공터이고 빈터는 뭔가로 채워야 하는 터를 비워놓은 상태인가요? 어떤 의미로 빈터를 쓰신 것인지 심히 궁금하옵니다^^
ㅎㅎ 이제야 보았네요^^ 그냥...다 비우고 살고 싶은데,쓰잘데기 없는 것들이 하도 많이 들어차 있는것이 싫어서요.무겁고 때론 칙칙하고 그런 것들 모두모두 다 비워버리며 살고 싶은데요...그냥 바람만 술렁술렁 지나갈 수 있도록 텅 비게....그렇게 살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