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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목)
어젯밤 센마이다로 돌아온 우리들은 밤늦게 얘기를 나누었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서로에 대한 관심사이다.
그리고 센마이다의 아침햇살이 오르고 우리는 일어나고 옥수수를 먹는다. 그 때 조촌선생이 오전 국어수업을 하잔다. 일본고어는 우리의 그것처럼 수려한 문장이다. 잠깐의 글 속에 인생의 의미를 담는 선인들은 일본에도 있는 것이다. 그 고문 중 사슴의 노래는 예쁜 재혼녀보다 마음이 따뜻한 조강지처가 소중하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유려한 문체로 담고 있다. 마츠모토 할아버지의 애인이 생각난다. 나는 티브이에서 그녀의 옛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의 고문은 아름다움을 눈,꽃,달에 빗댄다. 달에서 내려온 대나무에 담긴 소녀는 이승의 사람이 아니다. 너무 예쁜 그 소녀는 천황의 프로포즈마저 거부하고 달로 가고 대신 불로장생약을 선물로 주나 실연한 천황은 인생의 의미를 잃고서 그 약을 모두 태워 지금도 후지산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내가 시코쿠에서 보았던 많은 소녀들은 이승의 사람인가 저승의 사람인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 얘기와 결말이 다르다. 그런 애틋한 비극적 사랑을 옛사람들은 노래한 것이다.
다음 나가노현의 고려장 얘기다. 어머니를 버리고 순간 이상한 자연현상을 접하고 뒤돌아 서는 아들의 얘기다. 그런 무상감의 얘기건만 한국의 고려장 얘기는 처음부터 고려장을 눈치챈 어머니가 아들의 지게에 실려가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는 그 어머니의 얘기이다.
어느 스님이 쓴 (궁정의, 아닐 수도 있다) 여인의 가장 나쁜 점을 잘 지적한 명문이란다. 알고 보면 여자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남자가 나이와 국적을 초월하여 예쁜 여자에게 끌리는 것이 세상이치란다. 끌리되 경계하면 된다는 결론인가.
오늘 다시 유스하라 고교 교장선생님을 만난다. 같은 김에 중학교 교장선생님도 만난다. 그렇게 사람은 사람으로 만나는 것이다. 태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고 서로의 감성을 억제하면서 우리는 인간임을 확인한다. 어제보다 더 가까워진 사람이 된다.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 두 사람을 본 것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통한 세상과의 접선이란 지역대학 선언문이 기억난다. 하도 많은 민박을 약속하여 집으로 돌아가 만날 아내가 두려워진다.
그 시간 이후 우리는 유스하라의 그 식당을 나와 하츠세 마츠리까지 사이에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록도 없다. 시모무라의 그 라이플 공장을 갔다가 휴일이라 실패하고 다시 센마이다로 가서 잠을 청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여기는 꿈을 꿀 수 있는 센마이다 정도로 해두고 넘어가자.
우리는 하츠세 마쯔리로 간다. 입구에 목각으로 된 환영판이 우리를 반긴다. 마츠모토 할아버지는 그렇게 표현하시는 분이다. 그 목각이 김치공장 입구의 그 유스하라 최고령인 90대 할아버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다카도리 아줌마들은 다시 음식을 만들고 있다. 마츠모토 할아버지는 시코쿠 스페샬의 그 NHK의 앨범을 보여 주신다. 내가 그 프로그램을 보고 쓴 글을 보았느냐고 물어 볼 수 없었다. 나무를 모두 베어 산길을 내여 최적의 촬영지를 잡았다고도 하고, 직접 제작진이 일을 도와 주고 음식을 나누었노라는 얘기도 하고, 고치로 지사로 가서 공식환영을 받은 얘기도 있고, 그 프로그램이 동경의 본사에서 큰 상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집 앞 하츠세 하천에서 뗏목을 타고 시만토강을 따라 시모타까지 같이 가자고도 하신다. 젊은 오토바이는 노년이 되어 뗏목으로 바뀌었지만 사람이 달라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모인다. 다카도리 가족은 물론 인근 하츠세 사람들이 모이고, 유스하라 사람들이 모인다. 나중에 니시와 나츠코 그리고 사와다까지 근 30여명은 모인 것이다. 여기는 지역대학의 최고의 선물이다. 술이 급하게 돌고 나는 금방 취한다. 유스하라와 토사는 술과 사람을 반기는 동네이다. 유스하라의 객인초복과 다실문화의 전통에 대하여 나중에 요시다로부터 들었다. 지역대학의 존립의 문화적 근거가 될 수 있는 설명이다.
오늘은 지난 2월과 달리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실수하고 싶은 생각이 맞붙었고 술을 이기지 못한 나는 판단 받을 여지도 없이 또한 번 망가진 것이다. 그래도 웃어준 사람들이 고마울 뿐이다. 이것도 마츠리의 일부인가 애써 자위하건만 멀리 시만토와 고치시로부터 온 손님들과 아무런 얘기도 나눌 수 없었고, 아무런 말도 없이 짧은 밤을 다시 한탄하고 있다. 미안하다.
그들이 가고 나는 남았다. 여전히 술이 돌고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날을 다 기억하지도 못한 채 하츠세의 밤은 지나갔다. 돌아서서 맞은 센 바람과 비와 논흙만이 남았다. 이런 것도 무상함이리라. 다 마실 수 없는 센마이다의 밤이다.
8.18.(금)
우리는 조금 늦잠을 잤고 다시 조촌선생은 국어강의를 하고 싶어 한다. 비가 계속 내리고 유스하라는 젖었지만 그냥 말없이 점심을 먹는다. 그 후 우리는 영욱이 사는 집으로 갔다. 은동군에 이어 유스하라에서 고생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경험의 일부가 되는 6개월을 들었다. 처음은 누구나 힘든 법이다 그런 과정을 잘 견디고 드디어 6개월이 되었다. 시모무라 부인이 울었다. 영욱은 말이 없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유스하라의 시간이다.
시모무라의 라이플 공장을 가고 그는 배테랑이다. 그의 활달한 성격은 유스하라가 만들었고 그의 정리된 감성은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적은 월급에도 그는 행복해 보인다. 열심히 공장을 설명해 주었다. 술에 힘들었던 그 날의 나를 애써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사람은 가까워지는 것이다.
고원마츠리에서 약속한 가와카미 메구미양의 집으로 저녁초대를 받았다. 춤 출 때 연도에서 요사코이 자신의 챔피언팀을 이탈하여 우리를 보고 활짝 웃는 그녀들의 그 장면은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했던 조촌선생의 카메라가 놓친 것이다.
방금 지은 듯한 목재의 이층집 그 느른 집은 그녀의 대가족과 잘 어울린다. 자신의 방을 보여주기를 꺼리는 소녀의 마음은 손님에게만은 예외인가. 사람은 성의로 만나는 것이다. 국적을 넘은 우정은 여기에도 있다. 그녀의, 대가족이 같이 모였다. 할아버지는 자기 동네로 온 옛 조선인들을 기억하고 있고 나는 아리랑으로 답한다. 그렇게 민중의 마음은 같은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의 얘기를 열심히 듣고 계셨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역사회의 젊은 사람이고 활동적인 분이라 지역활동으로 분주하시다. 나를 보니 그의 꿈이 이뤄졌다는 인사말보다 더한 인사말이 있을까. 두고두고 기억될 말이 될 것이다. 또 한 분의 민박집 초대인이 생겼다. 이번엔 가족 전부라면 고국의 아내가 생각난다.
그녀의 어머니는 윤사마 세대이시다. 연배가 나와 같으니 기꺼이 메구미의 한국인 아버지가 내가 된다는 말에 흔쾌히 동의해 주신다. 나는 앞으로 그녀의 일생을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2월의 눈 내리는 센마이다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성글었던 것이다.
그녀의 젊은 숙부 내와 그의 밝은 친구는 동경과 오사카 주변에서 사는 친구들이다. 젊은 사람답게 신중하면서도 패기 있게 말을 걸어 왔다. 내 동경이나 오사카에 갈 일이 있으면 우연히 연락이 닿아 만날 수 있다면 그 또한 반갑지 않겠는가. 메구미양의 중학생 남동생은 야구를 마치고 돌아왔다. 눈망울이 유스하라의 맑은 하늘을 닮았다. 여동생은 집안의 보물이다. 한국에 있는 또래의 내 피붓이가 생각났다.
밤 9시가 되어 센마에다에 마유미가 있어 자리를 일어서야 한다. 한 가족은 그렇게도 만들어진다면 도선생은 동의할 것이다. 어느 재일교포 여성의 얘기처럼.
밤늦은 센마이다 마유미가 혼자 유스하라 10년의 세월을 표정으로 보여준다. 늘 그렇게 사람이 좋아 10년이 흘렀고 20대 초반이 어느듯 30을 훌쩍 넘긴 것이다. 마유미는 한국에도 여러 친구들이 있고 그 중에는 배재대학교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내 젊은 시절에 갖지 못한 그 경험을 한국에서 같이 듣고 싶다. 소주가 모자라고 밤은 깊을 것이다.
8.19.(토)
이른 아침 다시 늦잠을 자고 마츠모토 할아버지가 센마이다로 손수 오신 것이다. “일본인의 마지막 좋은 얼굴” 그는 그런 얼굴로 우리에게 다시 온 것이다. 같이 온천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젊은 오토바이는 그 때 들은 것이다. 강제동원의 그 시절을 살아 아직도 사람이 무섭다는 사람이 지금도 있는 것이다. 고문의 그 시절이 무섭지 않은 지금의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세월을 산 것인가.
오전 11경 요시다씨가 왔다. 그는 웃는 사람이다. 그 표정을 보지 않았다면 이번 여행은 허전했을 것이다. 발음이 좋고 일본어 선생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더 좋은 사람 소개시켜 주겠다고 한다. 1주일의 가족 민박을 서로 초대하고 말았다. 아내 걱정이 점점 깊어진다. 전경수 선생 얘기가 오가고 우리는 과거의 인연이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같이 마시고 싶다.
도선생의 애교는 곧 할아버지의 애교이다. 같이 그 댁으로 가서 텔레비에서 본 그 곤돌라 건너 논으로 갔다. 텔레비에서도 여름은 한가하였듯이 지금도 한가하다. 6월부터 10월까지 낚시를 하시고 잡은 아유가 너무 귀엽다. 한국의 민물고기도 좋아하실 것이다. 한국에서 같이 낚시 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추억이 있을까. 하츠세의 표정은 오랜 세월이 만든 것이다. 나도 그런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마지막 저녁은 은동군의 가케하시댁이다. 꼬마가 있는 집은 꼬마가 즐거우면 모두가 즐겁다. 고치의 손녀가 여름방학을 보내는 여기는 분명 행복한 집이다. 은동군이 얼마나 좋은 기여를 많이 하였을까 생각하고 또 한번 가족의 의미를 생각한다. 사람이 산다는 것을 생각한다. 족한 인생을 생각한다. 도라무깡은 그런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고추장으로 버무린 오징어와 손녀딸이 만든 도라무깡의 장식에 새겨진 마음을 우리는 먹은 것이다. 맥주가 달다. 그 집 앞 봄사꾸라를 다시 보고 싶다.
우리의 여정은 끝나고 이제 센마이다의 마지막 밤이다. 남자의 꿈, 생명의 공간, 노년의 준비, 네트워크 등은 구체적인 언어들이다. 추억, 간절함, 시간, 짧은 만남은 추상적 언어들이다. 그 모든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새벽으로 갔다.
8.20.(일)
짐을 싼다. 센마이다의 그 집 관리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반기는 사람들. 여기는 시골. 한국과 같은 곳이다. 언젠가 센마이다 마츠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 추수의 계절이 온다면 다시 오고 싶은 것이다.
시모무라의 눈물과 김교수의 눈물은 하늘에서 사람이 내리는 비처럼 마음을 적시고 우리 모두 하나가 된다. 그 10년의 세월이 모두 적셔졌을 것이다. 김교수의 반성과 돌파가 이제 막 시작일 것 같다. 마츠야마 공항 부근 찾집에 앉아서 보는 그 집주인의 진지한 표정은 김교수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다. 지적 호기심.
마츠야마 공항의 비행기와 같이 우리의 여름은 하늘로 날았고 그리고 끝났다. 현해탄의 긴 공간 내내 나는 잠들 수 없었다.(종)
첫댓글 카케하시상댁에서 만난 꼬마숙녀는 유우카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거기서 그녀의 노래를 들을 줄은 아무도 몰랐죠. 장변호사님의 동물농장도 그렇구요. 유우카를 등에 업고 빗속에서 불러주시던 아리랑, 스쿠모의 스케무라선생님댁에서 부르던 아리랑, 카와카미상댁에서 부르던 아리랑, 요코야마상댁에서 부르던 아리랑, 모두 같은 노래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 깊숙이 젖어드는 소리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