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 (조자룡 ~229년 ) 자는 자룡 이며 중국 기주 상산군
진정현 출신입니다 .
삼국지 초기 기주 지역은 거대 군벌 제후 원소 세력권이었으나
젊은 조운은 원소의 안하무인격인 태도와 명분없는
행동에 실망 하였습니다 .
그는 의롭고 백성을 아끼는 군주를 원했고
에 제후 원소의 라이벌이었던 공손찬(161~199 )을 찾아가
몸을 의탁하였습니다 .
공손찬 제후는 기주사람 조운이 자신을 찾아 온것을
의아해하며 "그대의 고향 사람이 모두 원소를
따르는데 어찌하여 나를 찾아 왔는가 ?"
물었고 조운은 당당하게
"천하가 어지러워 누가 옳은지 알수 없으나
백성들은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
저는 오직 어진 정치를 펼치를 곳을 따라
목숨을 바치고자 할뿐 원소 장하를 개인적으로
멀리하고 장군을 사사로히 따르는게 아닙니다 "
라고 하였습니다 .
조운은 가문권력이 아닌 백성을 위한 어진사람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이후 한나라말 허수아비 유협 황제를 끼고 있는
위한 조조에게 쫒겨 도망가는 인의 군자 유비를
만나면서 임시 의탁하였던 공손찬을 떠나
유비를 만나게 되면서 두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시작되게 됩니다 .
조운은 유비의 깊은 인품에 매료되었고
훗날 공손찬 제후가 멸망한뒤 유비를
찾아가 평생 주군으로 모시며 혈맹의 길을 걷게됩니다 ,
서기 208년 유비는 위한 조조의 정예기병 '순풍기 '의
맹렬한 추격을 받으며 남하하고 있었습니다
유비를 따르는 피난 수십만명과 함께 쫒기는
유비의 군대는 "장만파"에서 조조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뒤먈적인 타격을 입고 있었습니다 .
대혼란의 전쟁속에서 유비는 처자식을 내버려
두고 겨우 도망쳤고 유비의 아내 김부인과 아들
아두 (훗날 유선)은 적진의 한가운데에 고립되어
생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
조조군의 추격에 피난민들은 살기위하여
도망치는데 단한사람 상산 조자룡 조운은
거꾸로 조조의 거대한 군대를 향하여 돌진하였습니다 .
유비의 군사들은 유비에게 무릎을 꿇으며
"주군 ,조자룡이 우리를 배신하고 북쪽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라고 말하자
유비는 단호하게 손사례를 치며
"자룡은 나를 배신하고 도망칠 장수가 아니다 "
라고 조운을 신뢰하였습니다 .
조운은 단기필마로 조조의 수십만 대군이
빽빽히 메운 전장터를 유령같이 누비며
유비의 김부인과 아들 아두를 찾아 헤메었습니다 .
조운은 김부인을 찾아 후방으로 대피시키고
부상을 입고 우물가에 쓰러져 있던 '미부인'
으로 부터 어린 아두를 건네 받았습니다.
미부인은 자신이 짐이될까 우려하여 우물속에
투신하였고 조운은 눈물을 머금고 갑옷속에
어린 '아두'를 단단히 묶은채 다시 적진을
돌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조운의 백색 갑옷은 적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고
조조의 장수 수십명을 목을 베고 창을 자유자재로
쓰며 신들린 장수처럼 곡예를 하는 모습을 보고
조조은 적장이지만 감탄하였고 적의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귀환하였습니다 .
조운은 어린 아기씨를 구해 왔다며
아두를 유비에게 건네주자 유비는 조운이
바친 '아두'를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이 어린 자식 하나때문에 천하의 위대한
장수를 잃을뻔 하였구나 !"
며 울부짓는 일화는 군신간에 정이 얼마나
깊은 지를 보여주는 영화의 한장면입니다 .
장만파 전투에서 장비는 조조군의 추격을 더디게
하려고 장비의 작은 숫자의 병력의 말꼬리에
빗자를 달아 마치 병력이 아주 많은것 처럼 위장하여
장비는 조조군에게 위풍당당하게 큰소리 치자
추격하던 조조는 장비의 많은 군대가 장만파에
매복하여 있는줄 알고 추격을 멈추어 더디게하여
장비는 제갈 공명에게 " 선생에게 배운데로 소장도
손자병법에 나와있는 허장승세[虛張聲勢]
로 조조군이 진격을 더디게하여 도망갈
시간을 벌었습니다 "라고 자랑하자
제갈공명은 "장비 장군도 대단한 전쟁
지략가가 다되었구려 !" 하면서
칭찬해 주었습니다
서기 219년 천자를 끼고 있는 위한의 조조와
촉한의 유비가 운명을 걸고 맡붙은 한중 공방전
'한수 전투'가 있었습니다 .
촉한 유비의 장수 황충과 조운은 조조군의 군량미를
탈취하려고 성문을 열고 나가 황충 장군의 본대가
위한 승상 조조의 대군에 포위되어 고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운장군은 단수십명의 기명만을 거느리고
조조의 대군속으로 뛰어 들어 황충장군과 부상당한
병사들을 구출하여 본영으로 되돌아 오는데
조조군의 대군이 바짝 추격하여 조운장군은
병력의 차이에서 조조군에게 택도 없이 부족하여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어 손자병법에 나오는
공성계 (空城計)로 조조군을 속이기위하여 부하들보고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깃발을 모두 내린채
군고 북을 울리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
공성계 (空城計)는 성을 비우고 적을 맞이하는 계책인데
손자병법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
첫번째는 아군이 성을 비운척해서 적을 깊숙히
끌여들여 미리 매복한 군사로 적을 섬멸하는것입니다
두번째는 아군이 성을 비운척해서 허장성세로
적군이 첫번째 방법으로 당할줄 알고 철수하는것입니다 .
조조는 춘추 전국시대 오나라 손자병법을 중국 최초로 해석한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기에 의심이 많아서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조운은 홀로 성문앞에서서 태연히 조조의 대군을 바라
보았고 기세 등등하던 조조의 대군은 활짝 열린 성문
앞에 홀로 서있는 조운을 보자 성내에 거대한 매복이
숨겨져 있는것으로 의심하고 겁을 먹고 퇴각하였습니다 .
적이 돌아서는 순간 조운은 일제히 북을 울리고
적들에게 시뻘건 고온의 쇳물을 퍼붓고 배우를 기습하여
당화한 조조군은 서로 짓밟히고 한수강에 빠져
대패를 하여 돌아갔습니다 ,
다음날 유비는 전장을 둘러보며 조운의 대단함에
깊이 감탄하며 조운보고
"조운은 온몸이 온통 쓸개덩어리구나 !"
하며 명언을 남겼는데 쓸개덩어리는 중국에서는
자신감과 용기를 이야기합니다 .
이후 군사들은 조운 장군을 보고
호위장군(虎威將軍)이라 부르며 경외하였습니다.
조운이 유비와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는 아니지만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결코 사사로운 이익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주군과 국가만을
생각하는 인격자이기 때문입니다 .
211년 조조가 동관 전투에서 마초를 무찌르자
위험을 느낀 한중태수 장로가 익주를 차지하려고
20년 넘게 익주를 다스려온 유장을 공격합니다 ,
유장은 부하 장송을 시켜 유비에게 도움을 청하고
장송은 유비에게 익주를 다스리라고합니다 .
친선도 잠시 유비와 유장은 사이가 나빠져
전쟁을 하게되고 212년 부터 214년 5월까지
형주의 유비가 익주의 유장을 공격해 벌어진
전쟁이며 유비는 유장의 세력을 흡수하여
촉한 건국의 기틀을 맞이하게됩니다 .
유비가 익주 (촉)을 점령한후 승리에 도취한
장수들이 유력 호족의 전답 ,저택을 빼앗아
공을 세운 장수에게 나누어 주자고 주장했을때
조운홀로 나서서 한나라의 고조 유방의
'번쾌일화'를 인용하며 단호하게 반대하였습니다 .
조운의 주장은 " 지금은 백성들에게 땅을 돌려주어
농사를 짓게하여 민심을 안정시킬때이지 장수들이
사치스럽게 재산을 나눠 가질때가 아닙니다 "
라고 하였고 유비는 조운의 생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습니다 .
첫댓글 작가 노숙 김영진이가 쓴 "김천 삼국지"
등장 인물에는 유비역 (배낙호 김천 시장) .
관우역 (송언석 국회의원) 장비역 (이철우 경북도지사)
조자룡역 (조용진 도의원) ,황충역(이우청 도의원),
마초역 (최병근도의원) 이 나오는데
배낙호 김천 시장이 김천 촉한의 주군이고
송언석, 이철우 ,조용진 ,이우청 , 최병근이
오호 대장군역을 맡고 있습니다.
관우 배역을 맡은 송언석 국회의원은
중국 삼국지에도 나오지만 주군 유비에 대한
의리와 충성심이 대단하였듯이 김천
발전을 위해서는 탁상공론만 하고 야당 사람들만
만나는게 아니라 범의 동굴속으로 들어가야
범을 잡을수 있다는 속담을 가슴 깊이 새기고
국회 예산 결산 특별위원회 소속 송언석 국회의원은
2026년 9월7일 여당 민주당 정부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을
만나 2027년 김천의 철도사업 ,미래 성장돌력 인프라 산업,
청년·신혼부부 천원 주택 사전약정형 매입임대주택사업
을 위한 국비 371억원을 증액해줄것을 요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