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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한민국이 순채무국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1962년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으로 자본에 깊이 들어간 이래 수십년간 우리나라는 대외채무국이었습니다. 빚으로 나라를 끌고 간 것이었죠. 빚을 들여오면 떡고물도 함께 들어옵니다. 이 떡고물이 오늘날의 부유층을 만든 씨앗이었구요.
대한민국이 채권국으로 돌아선 건 수십년간의 빚에 시달린 끝, 2000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로부터 8년, 다시 대한민국은 빚쟁이 나라가 되는군요.
나라빚은 개인빚과 달라서 그악스런 빚 독촉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만, 빚에 시달리면 대신 내줄 것이 참 많습니다. 어마어마한 이자는 물론 당연히 줘야 하는 것이고, 다른 것들도 줘야 합니다. 예전에는 우리 기업이 그다지 덩치가 크지 못해서 그거 줘봤자 소용없기에 각종 이권, 외교적 종속, 내치간섭 같은 것을 줬습니다만, 요즘은 우리나라 시장판세도 커지다보니까 빚에 몰리면 기업, 금융시장, 이런 것들을 대신 내줘야 합니다. 1997년 구제금융사태(IMF사태라고 합니다)를 겪은 후 돈 될 만한 것이면 은행이든 우량기업이든 뭐든 다 내다팔던 때를 기억하시면 될 겁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청년실업, 민영화, 공적자금퍼주기 등은 모두 이때부터 시작된 현상입니다.
가정에 빚이 많으면 일어설 방법이 없습니다. 끔찍하게도 일가족이 삶을 마감하기까지 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가정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깨지기도 하죠. 그러나 나라 빚이 많아지면 상황이 다릅니다. 가장 먼저 죽는 이들은 빈민들이고, 그들이 다 죽고 나면 서민이 죽고, 서민이 다 죽고 나면 중산층이 죽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누구일까요?
이런 상황이면 일손이 안 잡히죠. 성실히 일하는 사회는 만들 수가 없습니다. 불성실한 사회, 불로소득, 도박판에 온 신경이 가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찾을 수가 있을까요? 그래도 찾아야겠죠?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이 땅, 대한민국이기에.
이제 마지막 아파트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이야기 -나라 말아먹기-
참 숨 가쁘게도 왔다. 아파트는 그저 새로운 주거공간에서 신귀족에 입성하는 돈으로 변했고 신분증명서로 변했다가 마침내 자본권력으로 변하면서 몰역사. 몰사회, 몰대중의 이데올로기를 낳았고 안전 불감증을 낳았으며 패거리문화를 낳았다.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된 작은 생명체가 괴물로 돌연변이해서 서서히 자라나는 것처럼 아파트는 돈에 노출되면서 괴물로 자라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프로젝트를 발진한 정권의 속셈과는 달리, 사람들은 순수했을지 모른다. 좋은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기왕이면 싼값으로 아파트를 사고 싶다. 이런 바람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첨만 되면 엄청난 돈이 되는 아파트에 정신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중고가 신품보다 더 비싼 물건은 아파트와 골동품뿐이다. 당첨만 되어라. 당첨은 돈이 되고, 이 돈은 즉각 우리를 귀족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귀족이 된 사람들은 신분세습으로 눈을 돌렸고 이 땅의 교육은 그들의 신분세습의 서바이벌 게임장이 되어버렸다. 순진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광분, 폭주를 시작했다. 엄청난 시세차익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시세차익. 싼 신품을 사서 비싼 중고로 팔아먹는 이상한 게임. 이것을 우리는 불로소득이라 부른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벌어들이는 돈. 집만 엉덩이로 깔아뭉개고 있으면 돈은 만들어졌다. 땅을 깔아뭉개고 있으면서 부를 축적한 조선의 양반들은 오히려 이들에 비하면 순진하다.
오오, 달콤한 불로소득이여, 위대한 대한민국이여!
땀 흘리지 않고 번 돈은 밝은 곳으로 가지 않는 법이다. 땀 흘리지 않고 번 돈은 절대 건강한 곳으로 가지 않는다. 아파트로 만든 엄청난 불로소득들은 담임선생의 안주머니로, 교수들의 입시사정서류 안쪽으로, 공무원들의 뒷주머니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 돈들은 사회의 질척거리는 진창으로 스며들었다.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은 없었다. 괴물은 서서히 사람들의 뇌세포를 잠식해갔다.
정권의 소원대로 흥청망청은 이어졌다. 술집과 러브호텔이 넘쳐났다. 불로소득으로 빵빵한 주머니는 여성들에게 풀어야 탈이 없는 건가? 룸살롱에서, 가라오케에서, 술집에서, 이발소에서, 안마시술소에서, 노래방에서 여성들은 성 상품으로 전락한다. 직업으로 몸 파는 여성들이 동이 나자 백주대낮의 여성 납치극이 줄을 이었고 시장가다가 납치되어 팔려나간 젊은 엄마들의 아우성이, 그들 가족들의 피눈물이 온 땅에 끔찍하게 메아리쳤다. 꿈도 채 만들지 못한 어린 여학생들이 아빠 나이되는 남자들에게 술을 따르고 가랑이를 벌려야만 했다. 그리 먼 과거도 아닌 1990년대에 이 땅,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이다. 어린 여자를 성의 대상으로 지칭하는 영계라는 말이 보통의 사회언어가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1990년대의 대한민국은 아주 버라이어티 했다. 아파트 시세차익은커녕 임금의 직접적인 박탈과 억압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가스통을 터뜨렸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죽음으로 억압에서 탈출했고, 오로지 돈이 최우선의 가치였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라나는 정신적 공허감을 육욕으로 다스렸고, 대통령을 해먹던 인간들과 그들의 떨거지들은 이 정신없는 상황을 틈타서 상식선에서 동그라미가 두세 개는 더 붙은 돈을 챙기고 있었고, 기업들은 정신없이 국제고리대금업자들의 돈을 들여와 부실한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정권과 기업들이 아무리 미친 짓을 해도 백성들이 두 눈 부릅뜨고 있으면 나라가 망하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다. 이승만이 나라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고 그의 주변에는 아첨꾼들이 득시글거렸지만 미치지 않은 백성들이 있었기에 정권이 무너져도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아무리 온 나라를 병영으로 만들고 역사를 왜곡하고 온 백성의 생존권을 손에 쥐고 기업들에게 백성들의 고혈을 나누어 줬어도, 그러다가 총탄에 비명횡사 했어도 정신 바짝 차린 백성들이 있었기에 나라가 망하는 꼴까지는 보지 않았었다. 전두환이 광주의 시민들 피로 피칠갑을 하면서 권좌에 올랐어도 백성들이 두 눈 부릅뜨고 역사를 지켰기에 대한민국은 온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로 생산되는 불로소득은 마침내 이 나라의 역사를 지키던 건강한 백성들의 뇌세포까지 뭉개버렸다. 착하고 멀쩡한 사람도 아파트 시세차익을 거침없이 말하고 기대한다. 배움 많고 존경받는 이들도 그 불로소득으로 뭘 할까 즐거운 상상을 한다. 불로소득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원래 누구 것이었는지, 그들이 쓰는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지, 그것이 이 땅을 어떤 꼴로 만드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달콤할 뿐이다.
온 나라가, 온 백성들이 불로소득으로 두 눈 멀고 두 귀 먹고 오로지 기름진 배때기와 축축한 아랫도리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던 1997년 11월 20일 밤 10시 20분.
마침내 대한민국은 망했다.
이렇게 불로소득의 달콤함은 몰역사, 몰사회 인간을 만들어내고 마침내 나라를 문 닫게 만든다. 불로소득으로 배부른 백성들의 희희낙락은 전두환, 노태우 일당의 반역사, 반인륜 범죄를 희석시켰다. 그리하여, 29만 원짜리 통장을 갖고 있는 전두환은 아직도 연희동에서 거들먹대며 합천의 일해공원으로 되살아났고 그의 꼬붕이었던 노태우는 그 때 모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친족들과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만하면 되었을 것을, 불로소득에의 열망은 마약과 같은 것인가. 망한 나라를 겨우 일으켜 세운 10년 뒤, 정신 나간 위정자들은 아직도 박정희가 원조인 이 고전적인 수법을 버리지 못하고 판교, 인천송도, 동탄, 송파 등 약발이 떨어질 만하면 신도시 타령으로 온 국민들을 불로소득의 광풍으로 몰아넣었고 그 뒤를 이어받은 정권도 아파트 불로소득으로 나라 말아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서울을 뒤덮고 있는 뉴타운이란 고상한 말은 아파트 따먹기란 말에 다름 아니고 또 다시 만든다는 신도시는 고밀도 불로소득 도박판일 뿐이다.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자나, 찬성하는 자나, 반대하는 자나, 아파트가 어떻게 나라를 물 말아 먹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오불관언이다.
하긴, 그 자들이 다 불로소득으로 배불리고 가세를 키우고 재산을 불리고 정권을 잡은 자들이 아닌가. 평생 돈 버는 직업이라고는 가지지 못한 자들이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수억 원 수십억 원의 재산을 신고하다니, 도대체 그 돈은 어떻게 벌었다는 건가. 이런 판이니 이런 자들에게서 새로운 정책, 새로운 발상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런 지난 30여 년간의 변화가 고스란히 증거로 남아있는 곳이 바로 한강이다. 한강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것은 풍경이 아니고 아파트들이다. 물론, 한때의 영광을 누리던 압구정동을 지나 강남대로를 깊숙이 들어가면 신귀족들이 사는 강남 속의 강남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천민자본주의의 상징적 증거는 한강변을 따라 늘어 서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담는 스틸 컷에는 한강변의 아파트들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고,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야경은 한강변 아파트들의 조명으로 빛난다. 아파트는 그 자체로 상징이 되었다.
강변을 따라 푸르게 펼쳐져 있는 공원과 운동장, 편리한 문화시설, 여름이면 한강야외수영장에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들을 구경하느라 차량이 정체되기까지 하는 넓은 강남북의 대로.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변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한강을 무대로 아파트들이 거대한 몸집을 일으켜 세우고 대한민국 조국 근대화를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파트들은, 60년과 70년대, 쉴 시간이 없어서 오줌도 제대로 못 싸 방광염에 걸린 여공들의 임금을 반토막내고 그것을 끌어 모은 돈으로 만들어졌다. 기업들. 천민자본주의의 천국 대한민국의 기업들, 그리고 기업주들, 그들이 아파트로 불린 자산은 그들의 공장에서 천민으로 목숨을 연명하던 공돌이 공순이들의 고혈이었다. 귀족들. 수천만 원짜리 모피코트를 취미삼아 사고 수백만원짜리 과외비를 눈 깜짝 안하고 지불하고 골프채 메고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날아다니는 그들의 금고를 채운 아파트 시세차익은 이제는 살 길이 막막해진 농부들의 땅, 공돌이 공순이들의 꿈, 도시빈민들이 고단한 몸을 누이던 보금자리를 짓뭉개고 만든 돈이다.
1970년대의 강남개발로부터 시작된 불로소득은 1990년의 신도시에서 터닝 포인트를 찍고 숨을 고른 후 21세기의 동탄으로 판교로 인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불로소득이 자본권력을, 이 땅의 수구기득권자들을 만들었고, 그들이 보호하는, 이 땅을 피로 물들였던 자들은 뻔뻔하게도 국민을 입에 담으면서 오늘도 권력을 탐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 당시에 쌓은 불로소득은 이제 2세에게로 세습되면서 강고한 성을 쌓고 있다.
왜 고속버스 회사도, 과자 만드는 회사도, 맥주 만드는 회사도 아파트를 만드는지, 왜 비리가 터질 때마다 건설회사 대표라는 자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지, 왜 경찰력까지 동원해서 철거민들을, 세입자들을 패고 죽이고 구속시켜가면서 아파트를 만드는지, 왜 삼풍이 무너지고 성수다리가 무너졌는지, 왜 이따위 양심불량사건이 다반사로 터지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한강으로 가서 당당하게 늘어 선 아파트를 보면 된다. 그 아파트들을 만들기 위해 그런 일들을 저지른 것이니까.
증거는 많고도 많다. 아파트로 할 수 있는 말, 해야 할 말은 참으로 많다. 오죽하면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까지 아파트공화국이란 책을 냈을까. 그 많은 증거들을 다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정도만 말해도 한강변에 서 있는 것들은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들의 모든 가치들을 집어삼키는 괴물인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으니까. 역사도 인식도 사회도 이웃도 심지어 미래까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괴물은 한강에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괴물이 괴물 집에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봉준호는 탁월한 선택을 한 거다.
괴물은 원래 끝내주는 생명력을 갖고 있는데다가 번식력 또한 무섭다. 마산에도 대전에도 부산에도 광주에도 전주에도 대구에도 울산에도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도 한강은 있고 당연히 괴물도 출몰한다. 오늘도 사람들은 괴물에게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면서 불로소득의 강고한 세습을 기획하고 있다. 흡혈귀에게 물리면 흡혈귀가 된다. 괴물에게 물리면 역시 괴물이 되거나 죽는다.
그러나, 괴물은 시대의 영웅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힘이 센 사람도 아닌, 어수룩하고 지능도 모자라는 송강호의 쇠파이프에 찔려 죽었다.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것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세상을 구하는 이는 늘 낮은 곳에 있다. 괴물이 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만약 괴물이 된다면 송강호를 조심할 것. 언제 송강호의 쇠파이프에게 찔려 죽을지 모른다. 괴물이 될 것인가, 송강호가 될 것인가. 언제든 선택은 가능하다.
이렇게 괴물의 정체를 까발려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기사 한 조각을 소개한다. 이 기사를 읽고도 우리의 삶이 괴물의 아가리 속에 있음을, 우리 자신이 괴물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뭐,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냥 괴물로 사시라.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쇠파이프는 조심하시고. 아, 그리고 송강호 딸내미는 잡아가지 마시라.
["우린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인가요?" 폐교 위기에 처한 '공고'생들의 절규]
1년여 전의 이 기사 이후, 동호정보공고는 우여곡절 끝에 폐교를 면할 수 있었다. 아직 우리 사회가 바닥까지 썩어있지는 않다는 , 가느다란 희망의 메시지였으나, 우리가 얼마나 괴물로 변해있는지는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첫댓글 답답~ 하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