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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 호텔 프라하
08;30출발 영상 4도
또 하루의 꿈을 찾아 떠납니다
▼ 구,시가지 중심으로 진입히는
도로변의 신 시가지 새로운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지난 밤에 보았던 기아차의 광고판
▼ 구릉의 협곡 위에 누셀스키브리지를 통과하며(좌,상)
브리지 통과 직후 최고의 위치에 삼성 휴대폰 광고판(우,하)
유럽 어느 곳이 던지 방사선 철로 연결망의 프라하 중앙역앞에서
현지 가이드 "서현희"씨 픽업
▼ 블타바강위의 흘라브쿠프브리지를 건너며(우,상)
언덕 길로 올라
프라하성 후문의 정차장에서 하차
▼ 검색대에서 줄지어 휴대품을 검사 받고
깊게 패인 해자의 다리를 건너며
프라하성 외벽과 높은 비트 대성당의 첨탐 (높이 100m)
▼ 언덕위의 프라하 성
프라하성은 9세기 중반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카를 4세때 지금과 비슷한 크기 길이 570m 너비 128m의
성을 갖추었다
1918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사용되면서 현재까지 사용되는
성중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 후문으로 들어
제 2광장
왕궁 미술관과 내부 관람을 위해 티켓을 판매하는 관광안내소가 있다
▼ 성 비트 대성당
좌측 문으로 들어 중요한 역사적 건물이 남아 있는 제3광장에
성 비트 대성당은
9세기 성 비타 로툰다를 11~12세기 바실리카 교회로 개축되었고
1344년 카를 4세의 노력으로 로마 교황으로 부터
프라하를 대주교구로 승격시킴으로 프랑스 건축가 마티아스
를 시켜 머릿돌을 놓고 증축을 시작 마티아스의 손자 대에
이르기 까지 공사하였으나 시대적 사정과 전쟁등으로
중단과 재공사로 585년의 공기를 거쳐 1929년에
현재의 모습 길이 124m 폭 60m 높이 33m 첨탑 높이 100m
신 고딕양식 건물로 완공
▼ 내부
▼ 정문위의 장미창(좌,상)은 천지창조를 묘사
좌,우측 벽면의 아름다운 스테인 글라스
성 얀 네포무스키의 묘(우,상)
은 약 3톤으로 화려하게 장식
1393년 프라하 교구 주교였던 그는 보헤미아 왕 바츨라프 4세의
왕비 소피아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 달라는 왕의 요구를
하느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하자
왕이 그의 혀를 자르고 발에 돌을 달아 카를교 아래
블타바강에 던져 지고 그 때 강물위에 별 다섯개가
떠 올랐다고 전해져 그의 청동상엔 별이 함께 하고
18세기 중엽 성인으로 추대 되었다
내부에는 그외 바츨라프 1세의 무덤과 왕관과 보석이
보관되어 있으며 왕실의 무덤도 함께 있다
※바츨라프1세(907~929)
보헤미아가 왕국으로 인정받기 이전의 토착 군주(왕)로
그리스도 도입 반대세력의 음모로 동생에게 살해 당하고
수호성인이 되어 초창기 교회때 부터 모셔지고
보헤미아의 중세 순례지 였다
▼ 오벨리스크가 있는 넓은 제3광장에서
구,왕궁을 보며...
@초등학생들의 의무적 1년에 몇차례식 역사 현장 세뇌교육 모습도...
1627년 합스부르크 왕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때
비 카톨릭 교도에 대한 가혹한 보복조치로 체코인들의
수많은 희생이 있었고 심하게 피박 받았던 식민지 시대의
앙금과 지워지지 않는 체코인 들의 대 오스트리아에 대한 감정은
우리의 일본에 대한 감정의 10배 이상이라는
가이드 설명이고 보면 국가의 중요성을 세삼 또 느끼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독일의 침공시 폴란드는 끝까지 저항
하였지만 체코는 바로 항복했으며 국민성도 폴란드는 강하고
체코는 유하고 순박하며 부드러워 아직도 러시아의
눈치를 보며 체코인들은 얼굴에 웃음기가 없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합니다
▼ 최대한의 거리 확보로도 한 컷에 들어 오지 않는
대성당의 웅장한 외관
▼ 앞 오벨리스크상단부와
뒤로 보이는 첨탑
▼ 되돌아 2광장에서
정문으로 나오는 1광장의 흐리트차니광장
▼ 프라하의 중심 -흐르트차니광장
뭔가 노병들의 추념식이 잇는 듯합니다
※ 체코
알프스산맥의 동쪽 끝자락 지맥의 산군들로 둘러 쌓인
보헤미아분지에 위치(좌,상)
기후는 복잡 온화한 해양성 기후와 동쪽의 거친대륙성 기후
여름은 2달로 짧고(평균 18도) 겨울은 길며(평균 영하 3도)
원시림 삼림지대로 목재가 풍부하고 오크,너도밤나무,가문비나무
사탕무,밀,보리,감자,옥수수,호프가 유명,포도밭,
돼지,소,양,가금류 사육 에너지 자원 빈약하여
천연가스와 석유 러시아에 의존, 철도망 발달
스키와 아이스하키의 스포츠 강국
물이 남,북으로 갈리는 삼수령으로 3개의 큰강이 나뉘어(우,상)
-블타바강=보헤미아산맥에서 발원 북쪽으로 흘러 엘베강(1,165Km)
에 합류하여 독일땅을 적시고 북해도 유입
-오데르강=카르파티아산맥에서 발원 북쪽으로 854Km를 흘러
독일과 폴란드의 구경을 이루고 발트해로 유입
-모라바강=보헤미아분지의 중원에서 발원 남쪽으로 358Km를 흘러
오스트리아에서 도나우강(2,850km)에 합류하여 흑해로 유입
남,북 유럽을 나누는 지정학적 위에서
최초정착은 보이족(켈트계의 게르만족)으로 이때부터
보헤미아라는 지명이 되고
5~7세기 슬라브족 모라바강 근처의 모라바인이 정착후 보헤미아에 합병
895년~프로셰미슬왕조가 지배,
1085년 보헤미아왕국으로 신성 로마 제국으로 부터 인정(1198년 건국)
1306년 까지 존속후
1308년 룩셈부르크가의 통치~1437년 지기스문트 왕때 멸문
1438년 합스부르크왕가의 알브레히트 5세부터 통치
1918년 1차 세계대전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가 패망으로
슬로바키아와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1945년 2차대전시 독일 점령에서 소련국에 의해 해방
1948년~89년 사회주의경제로 주요기업은 정부소유
농지는 국영집단농장과 협동농장
1989년 소련연방 해체후,
1989년 시민혁명으로 바츨라프 하멜 새정부 대통령으로 개혁주도
경제개혁 시장경제 체제로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 분리 독립
(연관된 자료-10부 참조) 1유로=25.37코루나
@ 한국과의 관계
1987년 한국외대 체코어 학과 개설
1990년 외교관계 수립 ,프라하 한국무역관 코트라 개원
1994년 체코대통령 방한
1995년 김영삼대통령 체코 방문
2016년 기준 재체코 동포 2,061명
" 한국 거주 체코인 158명
▼ 대통령궁
깃 발이 나부끼면...집무중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타이탄의 전투 모습 동상 아래에
근위병
▼ 매시 정각에 근위병 교대식을 보며...
▼ 정문의 좌측 방향으로 들면
또 다른 검색대(하단)로 통과후 성 내부로 진입하여
처음 입장했었던 후문으로 나오며 근위병들의 복무 모습
▼ 해자위의 다리를 건너(좌,하)
처음 입장 당시 검색대에 출입 관광객들이
엄청 많이 줄지어 대기 하여 검색하고
▼ 1898년에 처음 운행된 구 트램이 옵니다!
박물관에 보관중인 것을 관광 수입 정책 차원에서
사전 예약후 전세로 운행 할 수있으며
기관사도 전체 6명만이 남아 잇다고 합니다
후문 밖에서 탑승, 아코디언 악사의 음악 반주를 들으며
승무원이 건네는 샴페인에 도취되고
완만한 내림길 언덕을 지그 재그로 서행하여
블타바강의 다리 건너
▼ 구,도심의 카를교옆 카를동상
~상류쪽 강변로를 따라 또 다른 다리를 보고
차내에서는 음악에 맞춰 남녀의 부드러운
왈츠가 승무원의 손 끝에서 춤을 추고
구시가지 외곽 도로를 일주
▼ 프라하성 방향으로
또 다시 블타바강을 건너 갑니다
▼ 유네스코 지정
시 전체가 과학 문화 유산인 프라하
건물 모습도 시민들의 얼국색은 어둡지만
문화를 꽃피웟던 중세도시 답게
낭만과 고풍미가 있었고 또 다른 유행의
박물관 전시 차량이 관광 투어에 뒤 따릅니다
▼ 트램에서 하차 했슴니다!
우리도 승무원도 즐거웠던 올드 트램(1898년 산)의
시가지 관광 투어를 끝내고
박물관으로 돌려 보냅니다!
▼ 잠시 도로로 이동
카를교 초입에서
아름다운 프라하의 휴식처
한국 드라마<프라하의 연인> 촬영지
보행자 전용,프라하성,천문시계와 함께 프라하의 대표 관광지
구 시가지와 말라스트라나를 이어주는
체코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돌다리
길이 520m 폭 10m 30개의 성상들이 마주보며 서있고
카를 4세때 당시 최고의 토목 기술을 동원하여 1357년~1407년 완공
유럽 중세 시대 교량중 으뜸으로 꼽히는 예술적인 카를교
늘 음악과 마술등의 퍼포먼스를 구경 할 수있고
다리 양끝에 타워는 과거에 통행료를 징수 하던 곳이
지금은 전망대 역활,만지면 행운 이 온다는 성상들이 있고
관광 성수기때엔 밀려서 건너는 다리
▼ 건너기 전 준비
화장실 공짜는 없다! ~~1유로 또는 20코루나
비우면 채운다~~체코 전통빵 "뜨로들로" (굴뚝빵) & 아이스크림으로
▼ 하류 방향으로 구시가지
▼ 상류 방향으로
▼ 성 얀 네포무츠키상!
아래에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반질 반질
오픈 연주중 음악가들
▼ 다리를 건너고
카를교 박물관 앞에 카를 4세 동상
▼ 카를교 611살의 교령
▼ 블타바강과
프라하성, 성내 100m 첨탑의 성 비트 대성당,
▼ 중세도시의 석재 보도블록위에서
인연의 끈으로 꽁꽁 묶이는 웨딩 포토의 한 장면
▼ 구 시청사의 세게적 명물 천문시계 (기약도 없는 공사중)
1410년 시계장인 미클라시와 수학자인자 천문학자인 얀 신텔에 의해 만들어져
시간과 날짜,요일 일출과 일몰,농경달력과 별자리까지 알려주고
매시 정각이 되면 죽음의 상징인 해골 인형이 줄을 당겨
종을 치고 상단의 창문 두개가 열리면서
예수의 12제자가 차례로 나타나 황금닭이 한 번 울고 끝이 나는
아주 정교한 예술품
항상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드는 곳으로 <프라하의 연인> 촬영지
▼ 구시가지 광장에서 본
구,시청사는
1338년 룩셈부르크 왕가의 얀 루쳄부르스키왕때 건축하여
여러시대를 거쳐 확장공사로 지금의 복합 양식
구 시청사의 우측 하단부의 폭격 맞은 흔적은
2차 세계대전 발발직전 나치 독일은 체코에
같은 추축국에 들어 올 것을 강요 함에 이에 고민중이였던
시간에 이 건물에 폭격 하였고 체코는 즉각 항복
지금도 그대로 방치 하여 비애의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미래의 민족적 교훈으로 기억 하고 있다
▼ 틴 성당
두개의 첨탑 높이 80m는 성당의 상징 1365년 고딕양식
두 탑 사이 정면에는 황금성배를 녹여 만든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부조;빛나는 부분>가 있어
황금성당으로 불리우며 내부에는 1673년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과
덴마크의 천문학자 무덤이 있다
앞의 구,시가지광장에는 부활절 행사 준비로 가건물이 설치 되어
볼 수는 없었으나 모자이크로 남겨진 27개의 십자가와
1621의 숫자가 종교전쟁중 그 해에 페르디난트 2세 황제에게
이 곳에서 참수 당한 프로페스난트 귀족들의 수로 이를 기리기 위함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에는 소련군의 탱크가 이 곳 까지도 점령
틴 성당 뒷편에 가장 오래된 프라하 카를 대학교(1348년)가 위치 하고
한때 교수를 역임 했었던 천재 물리학자
아인 슈타인의 거주지도 주변에 있다
▼ 골즈킨스키궁전
틴성당의 좌측으로 위치
1748년 체코 공산주의 지도자 고트발트가
이 건물 발코니에서 체코 공상당통치를 국민들을 향해
선언하면서 공산주의가 시작되었다
@ 현재는 국립미술관
▼ 바츨라프광장
프라하의 봄의 현장
바츨라프는 10세기 보헤미안 기사들과 함께
적군을 물리쳐 국난을 극복한 체코의 영웅으로
그 동상이 있는 이곳은
1968년 수많은 청년들이 소련에 대항하여 자유를 외쳤던
"프라하의 봄"의 현장 으로 당시 소련군의 탱크가
진입하여 무력으로 진압 당 하였으나 아직도 소련의 영양력으로
기념비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체코 민주화의 상징이며 역사적인 장소
현대적 건물과 상권의 발달로 태국의 마사지 업소도 진출되어
있는 세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체코의 중심
▼ 화약탑 방향으로 걸어
중국은행도 진출한 프라하 중앙역 방향의
상권근교의 외곽 주차장으로 이동
▼ 프라하성 근교의 외곽
구 전차 종점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중식하고
13;31 (영상11도) 출발
▼ 프라하 시외곽으로 시경(상 2매)
13;50 고속도로 진입후
뉘른베르크 290Km 거리를 두고
서,남쪽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며...
▼ 14;42 프라하로 부터 90Km 떨어진 필젠시가 우측으로 보이며
필젠시는 맥주의 생산으로 유럽에서 대표적인 도시로
공기에도 알코올이 석여 있다는 인구 7~8만
맥주로 살아 가는 도시
체코의 국민차 스코다생산 공장이 있는 도시를 지나
15;20 맥도날드직영 화장실 뮤료의 휴게소에서 휴식후
▼ 구릉평원지(좌,상)및 야산 지대를 지나(좌,하)
15;42 표식없는 체코;독일 국경을 프리패스하고
16;30 뉘른 베르크시 외곽을 회돌아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서 공단지대(하,중)를 보고
17;41 밤베르크시 IC 주변에 위치한
전동공구 세계적 메이커 <보쉬>사 (우,하)
를 두고 고속도로 통행료 없는 독일 고속도로
밤베르크 IC를 벗어나 주차장에 도착 (17;51)
▼ 그라피트
전통벽화와 다른 저항문화의 상징
제 2차 세계대전후 폐허가 된 빈민가나 도심가에서 부터 시작
60년대 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작 뉴욕의 지하철 낙서및
브로크스거리의 낙서화 범람으로 시작된 포플러 아트로
거리의 예술 초현실 주의적 현대적 문화로도 평가 되기도 한다
▼ 밤베르크의 베니스 지구
레그니치 강변에 17세기 어부들의 오래된 집들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
<리틀 베네치아> 라고도 불려 집니다!
▼ 라후어 비어
613년 역사 슈렝케롤라1405~
자작나무 훈제 흑맥아 사용 맥주(아주 색 다른 맛)
잔 보증금 내고(빨간 코인) 반납시 돌려 받고
한 잔들고 햇빛보며 밖에서 서서 먹는다
실내에서 먹으면 2유로 가 비싸다
문밖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과 자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항상 문전 성시 어두워 져도 사람들이 줄어 들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들 보다 주변 도시민들이나 주민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 밤베르크 구 시청사
레크니치강을 사이에 두고 주교 영역과 시민들의 영역으로
양분된 지역에서 두개 다리 사이 강의 중앙에 위치
교회와 세속권 사이 권력 투쟁의 역사 현장
뒤의 큰 건물이 교회 앞에 붙혀 지은 작은 건물이
구,시청사(지금은 박물관)
▼ 밤베르크 대성당
1004년 하인리히 2세때 건립 파손후
1200~1237 재공사후 헌당
역사적, 예술적 가치 높은 내부의 화려한 조각이 유명
독일 최초의 로마 교황을 배출한 밤베르크 대성당
독일 국왕 하인리히 3세의 권유로
당시 밤베르크 교구의 주교인
클레멘스 2세 교황(1046,12,24~1047,10,09 재임)에 선출
로마,이탈리아 출신들로 주로 교황이 되는 선례에서 대단한
이변 (여행길에서 급사로 재임기간은 짧음)
▼ 성당에서 내려 보는 밤베르크
독일 고성가도의 주도 독일 동,남부 바이에른주의
레그니치 강변도시
1,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가 없었으며 옛 건물이 잘 보존되어
시 전체로 1993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인구 7만 이하에서 맥주 공장만도 7~8곳
맥주양조장의 굴뚝이 없는 마을에서는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독일
@ 바이에른 주(독일의 동,남부 위치)
자동차의 기본 부품 공장들과,철강, 보쉬사
제약의 바이엘사 전기 전자의 지멘스사등이 위치하고 있다
▼ 중식당에서 식사후
밤베르크 소재
호텔 드라이브 인에 듭니다
♥ 감사합니다!
-- 10 부로 이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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