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28일 아침 9시 신림동 사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으로 4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맞은편 서광빌딩 3층 옥상에서 이재호와 김세진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구호를 선창했다.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학생들이 도로에 연좌한 채 어깨를 걸고 구호를 따라 외친 지 얼마 안돼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은 학생들을 무차별 구타하며 연행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두 사람이 있는 건물 옥상으로 뛰어올라왔다.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한 시너를 온몸에 끼얹으며 외쳤다. “시위대에 덤벼들지 말라.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가까이 오면 분신할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의 주구였던 경찰은 출세욕에 눈이 멀어 두 사람을 덮쳤고, 두 사람은 라이터를 켰다. 두 사람의 몸에 불이 붙었고 김세진이 순간적으로 뒤로 넘어졌다. 그러나 김세진은 곧바로 다시 일어나 온몸이 화염에 휩싸인 가운데서도 두 손을 불끈 쥐고 계속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쳤다. 얼마 후 이재호가 고통에 못이겨 옥상에서 떨어졌고, 곧이어 김세진도 쓰러졌다. 거리에 있던 학생들은 경찰에 맞으며 끌려가면서도 피눈물을 흘리며 ‘재호 형’ ‘세진이 형’을 외쳐댔고 지켜보던 시민들은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김세진은 65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했으며, 이재호는 같은해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광주의 핏자국이 아직 지워지지도 않은 83년 대학에 입학한 두 사람은 3년이 조금 넘는 젊은 시절의 전 인생을 조국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화를 위해 바쳤다. 김세진이 4학년이 됐을 때 그의 어머니가 1년만 무사히 넘기고 유학갈 것을 권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예수 믿는 분인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대접받으러 오셨나요? 지금 고생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머니 자식만 안일하게 출세해서 편히 살기를 바라십니까?”
“반전반핵 양키고홈”,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자신을 불태워 반미투쟁의 불꽃이 된 故 김세진 열사의 19 기 추모예배를 드립니다.
먼저 가신 님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하는 이번 추모행사에 많은 기독청년들의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제 목 : 김세진 열사 19주기 추모예배 일 시 : 2005년 4월 30일(토) 정오 기독교연합회관에서 10시 전세버스 출발 장 소 : 판교 공원묘지 주 최 :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서울제일교회 후 원 : KNCC인권위원회 행사 내용 : 설교 - 구창완 목사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 추모사 - 황필규 목사 (KNCC 국장) 추모공연 - 암하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