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타 위빠사나, 방법의 차이 / 일중 스님
마음집중·알아차림으로 구분
사마타·위빠사나 명확히 달라, 경전서도 네 부류 수행자 언급
체득한 바에 다른 수행법 안내, 두 명상으로 수행자 정각 성취
동국대 2학기 강의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2년 내내
온라인 원격강의만 하다 학생들을 직접 만나려니
새삼 긴장되고 설레기도 한다.
이번에 맡은 과목은 불교학부 전공인 ‘위빠사나 이해와 실습’이다.
사마타 명상 일부와 위빠사나 명상을 다루는,
몇 년간 반복해 온 명상실습 과목이다.
이번 학기도 학생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재미있게 명상 공부를 해보고자 한다.
지난주에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이
각각의 고유한 몫과 역할이 있다고 했다.
특히 사마타 명상은 마음(삼매)이 계발되고 탐욕이 제거되는 반면,
위빠사나 명상은 지혜가 계발되고 무명이 제거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이 왜 다른 것인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명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굳이 두 가지를 꼭 구분해야만 하나요?
그냥 어떤 명상법을 수행하면 자연스럽게
집중과 지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세한 차원이긴 하지만,
사마타 위빠사나 명상의 방법론적 차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삼매경(A4:93)’은
다음과 같이 4가지 부류의 수행자를 언급한다.
△첫째, 사마타는 얻었지만 위빠사나의 통찰지는 얻지 못한 자
△둘째, 위빠사나의 통찰지는 얻었지만 사마타는 얻지 못한 자
△셋째, 사마타도 얻지 못했고, 위빠사나의 통찰지도 얻지 못한 자
△넷째, 사마타도 얻었고 위빠사나의 통찰지도 얻은 자이다.
첫째 수행자의 경우는 이미 사마타를 얻었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을 배우면 된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모두 성취한 스승을
찾아가서 이렇게 질문하라고 한다.
“‘형성된 것[行, Saṅkhāra]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명상해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은 어떻게 깊이 관찰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하라.
그러면 스승은 그가 본대로 그가 체득한 대로
‘형성된 것들을 이렇게 보아야 하고, 이렇게 명상해야 하고,
이렇게 깊이 관찰해야 한다’고 상세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여기서 형성된 것들(상카라)이란 수행자가 명상을 할 때
매 순간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경험하는 모든 현상들을 지칭한다.
예를 들면 몸의 통증이나 가려움, 열감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많은 생각들,
졸음이나 의심, 욕망이나 분노 등이다.
그러니까 위빠사나 명상은 끊임없이 변화 생멸하는
상카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그것들을 면밀하게 보고 명상하며 깊이 관찰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둘째 수행자는 위빠사나의 통찰지는 얻었지만
사마타를 얻지 못한 경우이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가 이렇게 질문하라고 한다.
“어떻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하나에 고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
여기 질문에서 우리는 사마타가 위빠사나와는
사뭇 다르게 제시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즉 사마타 명상법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방법이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키고 하나에 고정시켜
마음과 대상이 하나가 되게 해 삼매에 들게 하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셋째 수행자의 경우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모두 얻지 못했기에
두 가지 명상 방법을 다 배워야 한다.
그리고 넷째 수행자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모두 얻었기에
미세 번뇌들을 제거하고자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경전을 설명하고 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사마타 명상은 어느 한 대상에 마음을 고정시켜
마음과 대상이 하나가 되게 해 삼매와 선정을 얻는 마음집중 명상법이다.
그에 비해 위빠사나명상은 생멸 변화하는 수많은 상카라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통찰 명상법이다.
이런 두 가지 범주의 명상 방법을 통해 수행자는
괴로움으로부터의 완전한 해탈과 열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 붓다가 제시한 명상법의 큰 구조이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2022년 9월 14일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