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중년 여인이 전도자를 전해줍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래도 전도지를 받으라 합니다. 그 순간 ‘전도지 받을 만큼 내가 믿음이 없어 보이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 교회에서 나오셨어요?’라고 물으니 강남 대치동의 어느 교회라 말합니다. 더운 날씨에 왜 이 먼 곳까지 오셨느냐 하니, 오다 보니 이곳까지 왔다고 합니다. 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하나님과 나는 어떠한 관계인가?’ 생각해 봅니다.
만남에는 편하게 만나는 경우와 불편함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어느 한쪽이 계속된 인색함을 보이거나, 일방적 대화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 그 만남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크고 작든 함께 나누고 대화의 내용이 서로 맞으면 그 만남은 즐겁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부담 없는 만남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핑계와 변명으로 하나님을 흡족하지 못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이 없기보다 자신의 일방적 요구와 인색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사도 바울은 과거 복음을 핍박하는 완악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자기감정에 의한 충성과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한 열심히 아주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의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영의 눈이 열리므로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사람의 행실로 가득한 위선적 율법에 꽁꽁 묶여 있는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종’ dou'lo" (1401 둘로스 NNMS dou'lo") 노예
* devw (1210 데오) 결박하다. 묶다. 매이다에서 유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영혼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 확신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확신 후 예수 그리스도에게 결박된 종이라 선포합니다. 순종과 복종으로 매여있음을 말합니다. 성경은 사도 바울을 노예라 말하지 않습니다. ‘노예’는 자유를 빼앗긴 주인의 소유물로 생명과 인격을 존중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을 무시하며 자유를 억지로 빼앗지 않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묶여 주인과 올바른 관계의 은혜로 삽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직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그 은혜로 하나님과 함께하며 영원한 삶의 복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 12:18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나의 택한 종 내 마음에 기쁨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큰 기쁨과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의 은혜로 택함받은 종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성령으로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을 보호하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 전 고질적 질병이 있었습니다. 자기 생각과 고집의 하나님을 향한 충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한 올바른 행동이라 고집하였으나 사람이 만든 율법을 위해 열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복음을 짓밟는 바울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택하시고 사도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부르심’ klhtov" (2822 클레토스 ANMS klhto;") 부름받음. 초대받음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 부름심에 자기 생각과 고집으로 회피할 수도 있고, 반면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나올 수 있습니다. 부르심의 대상은 누구인가요? 하나님과 1:1의 관계로, 나 한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깊이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참된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그러하기에 부르심을 회피하여 도망하는 것처럼 참된 불행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도로 하나님이 불렀습니다.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고귀한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롬 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평강과 은혜가 있습니다(롬 1:7). 우리는 부르심으로 사도 바울과 같은 직분을 받았습니다. 직분은 사명 감당을 통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직분자로 부르신 사실에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기쁨으로 순종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다른 교회의 직분자를 자주 만나 대화합니다. 그때마다 대부분이 교회 성도, 장로와 권사의 수를 물으며 자신의 교회가 상대적으로 큰 것을 과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자신의 교회를 향한 무용담(공적을 세운 이야기)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그 무용담에는 작은 교회를 가볍게 여기는 것을 쉽게 봅니다. 저는 이러한 분에게 (단호하게) 속으로 외쳐봅니다. 당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는 처음부터 큰 교회인가요? 큰 교회는 복음을 위해 택정을 받고 작은 교회는 택정을 받지 못했나요? 큰 것은 성공이요, 작은 것은 실패인가요? 사도 바울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 7:20)’라고 말합니다.
롬 1:1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택정함’ ajforivzw (873 아포리조 VPAPNXMS ajfwrismevno")
분리하다. 구분하다. 따로 세우다.
하나님은 믿음 외에 세상의 크고 작은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무가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죄와 분리하여 의인으로 구분하여 세우셨습니다. 이 은혜로 우리는 복음을 위해 택정 받았습니다. 이는 특별한 사람만 따로 구분하여 세우신 직책과 직분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순간부터 모두에게 주어진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택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 충만으로 무장하여 복음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영혼 구원과 믿음 성장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분리되고 구분하여 따로 세워주심은 복음의 생명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 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하나님 나라는 아무나 들어가지 않습니다. 신랑을 맞이하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로 구분된 사람에게 허락되어 있습니다. 양은 하나님의 오른 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 편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지만, 왼편에 있는 자들은 온갖 변명과 핑계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지 않았기에 영원한 불에 들어 가게 됩니다(마 25:41).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 받았습니다. 그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은혜와 복을 누리는 삶 되기를 축원합니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