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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기기 백성호의 궁궁통통
“행복 어원은 ‘Happen’이다”…산상수훈 ‘팔복’에 담긴 뜻
카드 발행 일시2023.01.09
에디터
백성호
백성호의 궁궁통통
관심
산상수훈의 팔복은 수평선이다
#궁궁통1
고(故) 차동엽 신부에게
산상수훈의 ‘팔복(八福)’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차 신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신약성서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하나는 ‘주기도문’(주님의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산상수훈’이다.”
차동엽 신부는 “주님의기도(주기도문)가 수직선이라면 산상수훈은 수평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주기도문과 산상수훈,
둘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차 신부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주기도문은 수직선이다.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성 교본’이다.”
그럼 산상수훈은 어떤 걸까요.
“산상수훈의 팔복은 수평선이다.
우리에게
수평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실전 교본이자 생활 교본이다.”
듣고 보니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가 되더군요.
주기도문은
수직선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늘의 뜻이
땅으로 뚝,
수직으로 내려옵니다.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근처의 언덕에 세워진 팔복교회. 예수는 이 일대에서 산상수훈을 설했다고 전해진다. 백성호 기자
반면에
산상수훈의 팔복은
수평선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수평의 바다를 헤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영성 교본이고,
산상수훈의 팔복은
생활 교본이라고 했나 봅니다.
#궁궁통2
저는 또 궁금해졌습니다.
모든 교본에는
목표가 있고,
종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팔복’이라는
이 생활 교본의 종점은
어디일까요.
차 신부는 이 물음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종점은 다름 아닌 행복이다.
산상수훈의 팔복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팔복은 모두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하여라, ~한 사람들!’
그러니
팔복은 행복을 지향하고,
팔복의 종점 역시 행복이다.”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다들 고민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차 신부는
이 물음에 대해
예수님께서 내놓으신 답이
바로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에 다다르기 위한
길이 ‘팔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궁궁통3
산상수훈의 팔복을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합니다.
말과 운율과 비유와 울림이
구절마다 날아와
가슴에 꽂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의문도 듭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이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지지고 볶는 우리의 삶에
대입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노래는 아닐까요.
그런 의아심을 차 신부에게
던졌습니다.
이게 정말,
우리가 걸을 수 있는
실질적인 길이냐고 말입니다.
차동엽 신부는 “팔복은 관념의 길이 아니다. 아주 실질적인 길이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차 신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팔복은 관념적인 길이 아니다.
상당히 실질적이고,
매우 구체적인 길이다.
그러니 팔복은
아름다운 시(詩)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실천 강령에 더 가깝다.
이걸 굳이 시라고 하자면
현자(賢者)의 시에 가깝다.”
왜
현자의 시일까요.
차 신부는
왜 그걸 ‘현자의 시’에 가깝다고
표현했을까요.
왜냐하면
거기에는 ‘꿰뚫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땅과 하늘을
꿰뚫어보는 이치의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누구의 눈이냐고요?
맞습니다.
예수의 눈입니다.
그 눈으로 봤더니
행복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생겼더라.
그러니
여러분도 그 길 위에
발을 올려 보라고 하는
가슴절절한 당부가
팔복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차 신부는
‘팔복’을 가리켜
‘쇼트컷’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어로 ‘지름길’이라는
뜻입니다.
“‘팔복’이라는 지름길은
우리가 인생에서
헛다리 짚지 않게,
시간을 허송하지 않게,
거짓에 속지 않게 도와준다.
그러니 그 길이 값지지 않나.”
#궁궁통4
궁금했습니다.
팔복은 행복으로 가는
아주 실질적인
지름길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그 ‘행복’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피테르 브뤼헐의 작품 ‘산상수훈’. 예수는 갈릴리 호숫가에 몰려든 이들을 향해 하느님 나라에 가는 길을 제시했다. 그 핵심이 ‘팔복’이다. 중앙포토
이걸 물었더니
차 신부는 오히려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행복(Happiness)의 어원이 뭔지
아느냐고 말입니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차 신부가 말했습니다.
“행복의 어원은 ‘Happen’이다.
일어나다, 발생하다는 뜻이다.
행복은 그런 거다.
발생하는 거다.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누가 발생시키느냐.
나 자신이다.”
이 말은 참 놀라웠습니다.
다들 행복을 찾으려고,
얻으려고,
쟁취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나요.
차 신부는
그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내 안에서
내가 발생시키는 거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발전소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내 안에서 행복을 발생시키는
‘행복 발전소’ 말입니다.
차 신부는
내 안의 행복 발전소에 불을 켜고,
발전기를 돌리는
여덟 가지 방법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편부터 산상수훈의 ‘팔복’을 하나씩 풀어갑니다. 내 안의 행복 발전소를 어떻게 돌려야 할지, 차동엽 신부의 팁을 들어봅니다.〉
에디터
백성호
관심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3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