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 <100만 번 산 고양이>
책 제목이 정말 특이하다.
어떻게 고양이가 100만 번이나 살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100만 번 살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궁금증이 생겼다.
이 책에는 100만년이나 산 얼룩 고양이가 나온다.
얼룩 고양이의 주인들은 고양이가 죽을 때 울었지만
얼룩 고양이는 결코 울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얼룩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고양이는 임금님을 싫어했다.
어느 날 고양이는 전쟁에 함께 나갔다가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뱃사공의 고양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바다를 싫어했다.
그러다 고양이는 배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마술사의 고양이로 살았지만
고양이는 서커스를 싫어했다.
어느 날 마술사의 실수로 몸이 잘려서 죽고 말았다.
도둑의 고양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도둑을 아주 싫어했다.
그러다 고양이는 개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할머니의 고양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할머니를 싫어했고
어느 날 고양이는 늙어 죽고 말았다.
여자 아이의 고양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그 아이를 싫어했다.
어느 날 고양이는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고 말았다.
그러다가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적이 있었다.
그때 고양이는 자기 자신을 무척 좋아했다.
어느 날 얼룩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그 날 이후 두 고양이는 부부가 되어 새끼 고양이들을 낳는다.
얼룩 고양이는 자기보다 가족을 더 좋아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 새끼 고양이들은 흩어졌고
얼룩 고양이와 하얀 고양이는 나이가 들어갔다.
그러다가 하얀 고양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얼룩 고양이는 100만 번을 울었다.
그리고 자신도 하얀 고양이 곁에서
생을 마감했다.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고 세 가지를 생각을 해봤다.
첫째는, 싫은 사람과 오래 사는 것보다
사랑하는 이와 깊이 사는 것이 더 낫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사랑하며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마데 테레사 수녀가 말했듯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보다
얼마나 그 일을 사랑으로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둘째는, 인생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며
그러다가 사랑하는 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열매로 자녀를 낳고
때가 되어 죽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인생을 살아간다.
만남, 사랑, 결혼, 자녀, 독립, 늙음, 죽음, 슬픔,
이 8가지 키워드로 이루어진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런 인생은
한번뿐이어서 더 소중하다.
셋째는, 사랑하는 아내가 나보다
먼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얀 고양이를 품에 앉고
100만 번 울고 있는 얼룩 고양이가
내 모습이 되지 않았으면.......
나와 아내는 녹음테이프를 재생하는 것처럼
늘 똑같은 말을 하는 게 있다.
“함께 천국 가요.”
아내는 말한다.
“절대 먼저 가면 안 돼요.
나는 길치라 천국 길도 잘 모르니까 손잡고 안내 해줘야 해요.”
그러나 상황적으로는
아내가 훨씬 더 오래 살 것 같다.
아내의 외할머니는 90세를 넘어 돌아가셨고,
장모님은 73세이신데 정정하시다.
종합검진을 받아도 아내는 늘 건강하다고 나온다.
아내는 늘 피곤하다고 말하지만
실제 아내의 몸은 건강!
그러나 가는 순서를 누가 알리?
세상 떠나기 전까지 충분히 사랑하면서 사는 게
후회를 덜 남기는 길이 아닐까?
우리의 소명은, 사랑이다.
그래도 이별은 언제나 낯설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은
언제나 소망이다.
죽음으로 이별했던 사랑했던 이를
다시 만나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생략)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3-14, 17-18)
첫댓글 한번뿐이어서 더 소중한 인생~~
사랑하며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