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0장 1 - 9절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어떤 나라이든 교통 법규가 있기 때문에 그 법규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지 신호를 무시하거나 과속으로 달리게 되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은 것이 상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켄터키주에 살고 있던 렉싱통이라는 여인은 이런 법규에 예외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이 여인은 교통 법규 위반으로 5달러짜리 경고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여인이 투표를 하러 가는 도중에 교통 위반을 했다는 것입니다. 켄터키주의 헌법 149조에 의하면 국가 반역이나 치안 방해 등의 중죄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 유권자는 선거장으로 가고 오는 동안엔 체포되지 않을 특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경고장은 법원에서 기각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법이 억울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데 오히려 억울한 경우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공평하고 공정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지중에, 전혀 고의성이 없이 살인한 사람들에 대해서 구제책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율법에 보면 살인한 사람은 반드시 사형을 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살인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는 고의로 저지른 살인이고, 또 하나는 전혀 고의성이 없는 살인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도끼로 나무를 패고 있는데 갑자가 도끼날이 빠져서 옆에 있던 사람이 맞아서 죽었다면 죽은 사람은 당연히 억울하겠지만 그렇다고 도끼날의 주인까지 살인죄로 판단을 해서 죽인다면 그 사람이나 그 가족들은 억울해서 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 같은 경우는 도피성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일단 그곳으로 피해 도망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재판을 통해 고의성이 발견되지 않았을 경우 사건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도피성에서 살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고의성이 없었을 지라도 과실치사의 법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정도의 제한을 받아야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의 가족들도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를 삼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제도를 통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조치하셨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 기간 동안 피해자의 마음이 조금이라고 풀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는 도피성에서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도피성이 살기 어려웠던 곳도 아닙니다. 레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성이었고 이런 사고로 언제든 사람들이 유입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서 넉넉하게 생필수품을 저장하고 있었던 곳이 바로 도피성이었기 때문에 과실치사로 인한 죄의 값을 묻기에는 매우 합리적인 성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도피성을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은 바로 이런 마음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9장 10절 말씀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사망에 이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반대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런 도피성 제도를 활용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도피성 제도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기억해 보십시오. 히브리서 4장 15, 16절 말씀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렇게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 중 한 사람도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받았거나 받고 있는 억울한 일들도 예수님은 다 아시고 나중에 진실함을 밝혀 주실 것이기 때문에 큰 위로를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사형 집행 하는 날이 다가오자 집행관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하시오.” 그러자 그는 “임금님에게 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직접 임금님에게 드리게 해주십시오.”하고 간청을 했습니다. 이 말을 임금님께 전하니 죽을 사람 소원이니 들어주자고 임금님이 직접 사형수에게 왔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속옷 깊숙한 곳에서 금덩어리 하나를 끄집어내더니 “임금님, 이것은 아주 귀한 금덩어리입니다. 이 금덩어리를 심으면 나무가 되어서 금 열매가 열립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사람이 심으면 금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죄인이므로 심어봤자 열매가 맺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는 임금님께 이 금덩어리를 드리니 정원에 심어 크게 부귀를 누리십시오.” 금을 받은 임금님은 자기가 심었다가는 금이 안 열리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신하를 보고 “나는 이미 금이 많으니까 자네가 심어서 금 열매를 따게.” 했더니 신하 얼굴이 새하얗게 되면서 “아닙니다. 저도 금이 많습니다.”하며 옆에 동료를 보고 “자네가 갖다 심게” 하니 그도 받아서 다른 동료보고 “아니야~자네가 심게.” 하다가 결국 금이 도로 임금에게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사람을 사형에 처하기에는 자신을 비롯한 여기 있는 모두가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너는 참 지혜로운 놈이다. 네 지혜 때문에 방면하노라.”면서 그를 풀어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지혜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억울함 때문에 너무 속을 끓이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위로해 주시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성품을 믿으면서 오늘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도피성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이런 자비로우신 마음을 오늘 하루 충만하게 누리면서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