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따라가다 / 박정숙
“띵 동 띵 동”
퇴근을 하고 저녁 준비를 하려는데 벨이 울렸다. 현관에 나가서 문을 열었다. 체격이 크고, 스포츠형 머리를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방금 샤워를 했는지 머리카락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 미처 수건으로 닦지도 못하고 올라오다니 한눈에도 다급한 모양이었다.
“위층에서 울리는 소리 때문에 아이들이 잠을 자면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애써 솟아오르는 화를 참는지 그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낯선 남자는 이사 온 지 몇 주 되지 않았다며 무슨 단서라도 잡을 듯이 나의 어깨너머 집안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젊은 남자의 무례한 행동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 어떤 소리 때문에 그러세요?”
“ 무언가를 바닥에 끄는 소리가 들리는데요.”
우리 집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게다가 우리는 맞벌이라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며, 딸아이는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주말이면 온다고 설명했다. 우리 집에서 나온 소리가 확실한 것이냐고 물었다. 나의 말에는 듣는지 마는지 여전히 매의 눈으로 집안을 살폈다. 그러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은 아닌 것 같다고 혼자 말을 하더니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그냥 가버렸다.
“띵 똥 띵 똥”
현관문 앞에 아래층 남자가 오른손을 머리에 올려놓은 자세로 서 있다. 자신의 아내가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또 한 번 집안을 둘러보겠단다. 괜찮으니까 들어오라고 했더니 소리가 날 것 같은 물건을 찾으며 돌아다녔다. 확인해 봐도 별문제를 찾지 못했는지 그의 얼굴에 계면쩍은 표정이 스쳤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자신의 아내가 유달리 예민한 사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으로 문제가 좀 있었다고 했다.
그 뒤로 소리에 대한 작은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울리는 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아래층에서 올라오니 속이 상했다. TV를 보고 있는데 마침 아파트 층간 소음이 원인이 된 살인 사건이 보도되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래층 남자도 몇 번 민원을 넣었다가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큰일을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문득 두렵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아래층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위층이 아니라고 하는데 여자는 자꾸만 항의하는 모양이었다. 부부간의 소리가 높아지니까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그 남자의 고함이 통로를 따라 울렸다. 나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밤에 누워 잠이 오지 않았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위의 집이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천장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했다. 소리가 도대체 어디서 나는 것일까, 작은 소리를 따라가며 유심히 들었다. 복도를 따라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울리는 소리, 현관문 닫는 소리, 종잡을 수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용하다가 갑자기 어디에 숨어 있었다는 듯 나오기도 했다. 마치 소리에 지능이 있는지 꼬리를 감추는 것 같기도 했다. 자신들의 진원지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늦은 밤에 위층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망치로 바닥을 치는 소리 같았다. 그 순간 현관문을 여는 소리와 동시에 아래층 남자의 고함이 통로를 따라 울렸다. 그 소리에 놀라 이래저래 불안한 마음이 들어 관리실에 전화했다. 전화하면서도 나의 마음은 이웃을 신고하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정확하게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파트라는 주거 시설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때때로 들리는 소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소리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라 여겼다.
관리실에서 방송하고 난 후 엘리베이터를 타니까 하얀 바탕에 붉은 글씨로 눈앞에 뭐가 하나 보였다. 층간 소음 때문에 민원이 발생하니까 서로 배려를 해 달라는 공문이었다. 큰 기대는 안 했는데 그것을 본 순간 이 문제가 조금은 해결이 될 것 같았다. 주민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마다 공문을 보아서일까, 그래서 그런지 소리가 잦아들었다. 나 또한 지금까지 이웃을 배려한다고 살아왔다지만 일상생활에 바쁘게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무감각했었다.
붉은 글씨가 소리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주었는지 나부터 조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현관문을 닫았던 행동의 변화가 생겨 조용하게 문을 닫았다. 세탁기 사용은 늦은 밤에 자제했다. 방과 방 사이, 거실을 오고 갈 때도 슬리퍼를 신었다. 혹여 나의 몸무게 때문에 아래층에서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서다. 그날 이후, 그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소리라는 것이 나는 곳과 들리는 곳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많은 것들이 끼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도 많다. 그 정보들 역시 원인과 결과 사이에 얼마나 많은 잡다한 것들이 섞여들어 왜곡하지 않던가. 소리의 근원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저 들리는 소리만 듣고 판단하다가는 실수를 한다. 무조건 위층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바로 위에 층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가끔 한 번씩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남자를 만난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를 까딱거린다. 겉으로는 그렇게 해도 속으로는 자신도 미안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 남자도 조금은 그런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