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양 순 례
몌별*의 해를 떠나보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 새로운 시작은 설렘과 희망이 깃들어 있다. 하여 새해가 되면 덕담을 하고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새해 을사년은 지혜로운 변화를 상징한다는 푸른 뱀의 해이다. 근데 난, 뱀에 대해 깊이 숙고하기보다는 징그럽고 무섭다는 선입감부터 든다. 맹독을 가진 뱀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사냥할 때만 독을 쓰지 그 외에는 헤치지 않는다고 하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람도 그렇잖은가. 예외는 있을지언정 인상이 개운치 않다하여 피한다면 지레 겁을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육십 간지 을사년에 태어나는 아이는 뱀띠가 되겠다. 십이 지간 중 유일하게 파충류인 뱀은 지속적으로 허물을 벗는다. 죽을 때까지 허물을 벗음으로써 새로운 피부로 재생한다. 자연의 속성이다. 털 짐승도 털갈이를 하고 나무도 묵은 껍질을 벗는다. 때가 되면 뱀이 허물을 벗듯 인간도 옷을 갈아입는다. 몸을 씻어 청결하게 가꾸고 각종 병균으로 부터 탈출한다. 약을 쓰고 운동하면서 건강을 다진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비슷비슷한 구석이 있다. 생존 시, 건강 방식만 다를 뿐이다.
뱀은 감각이 발달된 두 갈레의 혀로 눈 역할을 한다. 뱀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모든 생물체는 예리한 감각기관으로 삶을 지탱하게끔 이루어졌다. 오로지 만물의 영장만이 모든 걸 갖추고 본연의 역할을 한다. 눈은 볼 수 있고, 코는 냄새를 맡고. 귀는 들을 수 있고, 입은 말할 수가 있다. 그리고 뇌는 생각하고 판단한다. 정신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관계가 복잡 미묘하기도 하다. 늘 사람과 접촉하면서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다보면 상대에 따라 좋은 관계도 불편한 관계도 발생한다. 때에 따라 먼지 털이도 하면서. 특히 인사청문회 때 보면 도덕성 문제를 들춰 낼 때다. 허물이 크고 작고, 설왕설래가 된다. 그래서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생겼나보다. 사연 없고 허물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리라.
살다보면 온갖 피해를 볼 때가 있고, 심신에 공든 탑이 허물어질 때도 있다. 심신에 병이 드나들 때다. 육신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마음이 아파도 육신이 편찮다.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 소심한 성격은 쉬 잊히지도 않는다. 허나 대수롭잖게 받아넘기는 유형도 있다. 성품에 따라 성격에 따라 받아들이는 빈도다. 때로는 둥글게 네모지게 세모지게 주고받을 때 있다. 생각 없이 씹혀져 나오는 경우는 당황스럽다. 다 좋을 수야 있겠나만 불편함을 일일이 다 분출하면서 살 수도 없다.
때론 못 들은 척 못 본 척 곰곰이 생각의 생각을 다듬어야 한다. 감정을 들어내기 보다는 지혜로운 인내가 필요하다. 마음의 허물을 벗겨내는 과정이다. 묵은 때, 좋지 않은 기억 등 상처로 남은 찌꺼기들일랑 훌렁훌렁 벗어 던지자고 다독인다. 주기적으로 뱀이 허물을 벗듯 그러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이를 먹다보니 그러라고 세월이 가르쳐 준다. 세월 따라 오고 보니 언제 이렇게나 멀리 걸어왔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가마득한 인생길이다.
가만히 가만빛*을 응시한다. 엄마 뱃속에서 뒤집어 쓴 허물을 벗고 세상에 나와 보니 눈이 부셨다. 젖을 빨고 뒤집고 기고 서고 넘어지며 걷고 달음박질하면서 성장했다. 세상은 넓고 길은 많았다. 눈빛이 흔들리고 발걸음은 바빴다. 이리가도 저리가도 끝없는 세상길이었다. 때로는 덜컥덜컥 방지 턱 넘나들고, 유턴도 해가며 훠이훠이 오고 보니 숨이 차다. 숨 한 번 길게 쉬고 먼 산 바라볼 때도 있다. 창공에 떠가는 뿌연 구름에 시선 매달고 멍 때릴 때가 있다. 찬란한 저녁노을빛에 넋을 빼고 볼 때도 있다.
세상의 허물을 벗는 날, 힘은 들었으나 좋은 일도 기쁜 일도 있었으니, 아름다웠다고 행복이었다고 웃으면 좋겠다. 나보다도 하 세월* 힘들었을 어머니 세대들을 떠올리며 고요한 음악에 젖어본다. 억겁의 짐 내려놓고 한 풀어내는 살풀이춤 상상하며 눈꺼풀을 덮는다. 편안하고 조용한 나와의 시간이다.
*몌별 : 섭섭하게 헤어짐을 이르는 말.
*가만빛 : 밝고 엷은 검은 빛.
*하 세월 : 매우 오랜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