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풍요로운 시대에 돌아보는 가난
아이들이 감당하는 삶의 무게에 대하여
노키즈존으로 대표되는 아동 혐오는 어린이를 성가시고 짜증 나는 존재로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어린이는 기본적으로 시끄럽고 제멋대로고 민폐를 끼칠 거라는 짐작과 단정들. 예전 어린이들에 비해 부족함 없이 자라며 어른들이 오냐오냐하며 길러서 문제가 많다는 식의 진단도 쉽게 내려지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최근 가정 내에서 어른 환자나 동생들을 돌보는 어린이 청소년, 이른바 ‘영케어러’에 대한 공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영케어러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늘 존재하던 문제다. 다만, 그동안 복지 시스템 안에 포착되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들은 돌봄의 대상일 뿐 돌봄의 주체일 수 없다는 당연한 주장이 때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아이들의 존재를 지워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돌아봐야 한다. 어떤 아이들은 어른들 못지않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달걀이 탁!』은「달걀이 탁!」「영식이와 나」「파스」「오렌지 팔레트」 네 편의 단편 동화를 엮은 책이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어린 주인공들은 만만찮은 삶의 무게를 지고 있다.「달걀이 탁!」의 지은이는 나이에 맞지 않게 냉장고 속 달걀이나 남은 세탁 세제 같은 걸 헤아리는 아이다. 아빠는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뒤 반신불수 상태가 되었고, 엄마는 집을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졸지에 살림을 맡게 된 지은이는 소맷부리가 짧아진 옷을 입고 작아진 운동화를 꺾어 신고 다니느라 언제나 주눅이 들어 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지은이가 속상한 마음을 풀 방법이란 아빠한테 사소한 심술을 부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시위 삼아 달걀말이를 통째로 밥상에 올리고 아빠의 서툰 젓가락질을 모른 체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결국 아빠의 안타까운 눈물과 사랑을 확인한 지은이는 다음 날 아침, 다시 힘주어 달걀을 탁! 깬다. 지은이가 처한 상황은 변함없겠지만 마음가짐은 어제와 다를 것이다. 그렇게 지은이는 현실을 이해하고 한 걸음 더 성장한다.
「파스」의 민재도 아빠와 단둘이 궁핍하게 살고 있다. 고된 배달 일로 늘 파스 냄새를 풍기는 아빠는 아들에게 넉넉히 용돈을 줄 형편이 아니고, 민재는 늘 고객들에게 쩔쩔매는 아빠가 못마땅하다. 그러던 어느 날, 민재는 아빠한테 잔뜩 투정을 부리고 짧은 가출까지 감행한 끝에 꽤 큰 용돈을 받는다. 맛있는 것도 마음껏 사 먹고 친구들한테 인심도 쓸 수 있다니 돈이 많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지. 하지만 친구 엄마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는 아빠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차마 알은체를 못 하고 돌아서면서 민재는 아빠가 준 용돈의 무게를 실감한다. 돈은 숫자에 불과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한밤중, 근육통으로 끙끙 앓는 아빠를 보고 민재는 남은 용돈을 들고 약국으로 향한다.
저자 소개
고이
다정하고 따뜻한 글을 만나면 가슴이 뜁니다. 꼭 사랑이 내게 온 것만 같습니다. 아이와, 한때 아이였던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긋는 밑줄로 책이 조금 무거워진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2023년 경남 문화예술진흥원 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책 속으로
아이들이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무심하게 지나쳐 갔다. 나는 재빨리 신발 뒤축을 펴고 발을 집어넣었다. 깜깜한 신발 안에서 발이 울었다. 발이 아무리 아프다고 소리쳐도 신발 속 풍경은 아무도 모른다. 그건 나만 아는 아픔이었다.
--- p.17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빠가 나를 본다. 그런 아빠를 보자 속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참지 못하고 아빠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왜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하냐고. 울고 싶은 건 아빠가 아니라 나라고. 나도 엄마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고.
--- p.21
깜짝 놀란 영식이가 뒤를 돌아봤다. 영식이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영식이 얼굴에 반가운 빛이 어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페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전거가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영식이를 두고 달려가 버렸다.
--- p.42
아빠는 모른다. 맘속에 있는 말과 자꾸만 다른 말을 내뱉는 내 입술을. 아빠는 모른다. ‘다음에’, ‘괜찮아’ 같은 말이 가득한 내 마음을. 아빠는 모른다. 다음은 잘 찾아오지 않았고,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다는 것을.
--- p.61
‘또 사면 될 거야.’ 딸깍,
‘언니는 아르바이트도 하니까.’ 딱!
‘친구들이 선물해 줄지도 몰라.’ 딸깍,
‘언니는 친구도 많으니까.’ 딱!
--- p.87
출판사 리뷰
어떨 때는 무겁고, 어떨 때는 가벼운 것은?
뒤늦게 알아차린 어떤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
『달걀이 탁!』에 실린 네 편의 동화는 모두 궁핍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특이하게도 네 작품 모두 엄마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아예 없거나 밤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곁에 없고, 아빠는 몸이 불편하거나 퉁명스럽고 툭하면 아이를 윽박지른다. 모성과 돌봄이 부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때로는 「달걀이 탁!」에서 지은이가 그랬듯,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영식이와 나」에서 친구들의 새 자전거를 부러워하던 ‘나’는 자기처럼 자전거가 없는 영식이와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소리가 듣기 싫다. 그래서 아빠가 주워 온 고물 자전거를 탈 때 남 보기 창피해하면서도 영식이 앞에서는 우쭐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오래 가지 못한다. ‘나’는 영식이의 순수한 호의를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못난 마음을 알아차리면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게 된다.
가난은 아이들을 불편하게 할 뿐 아니라 옹졸하게 만든다. 작아진 운동화 때문에 발뒤꿈치가 까지고, 자전거 없이 먼 길을 걷거나 친구들이 간식을 사 먹을 때 참아야 한다. 그리고 궁핍한 아이들은 당당하게 활개를 치거나 목소리를 높이기 힘들어진다. 「오렌지 팔레트」에서는 폐쇄된 주차장에서 사는 자매가 나온다.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대학생 언니는 선아와 주아 자매가 머무는 고립된 세계에 찾아온 햇살 같은 존재다. 선아가 언니의 화장품 팔레트를 얼떨결에 훔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과 물욕 때문이었겠지만 언니가 머무는 밝고 풍요로운 세계에 대한 선망 때문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도 천진난만하게 즐거움을 느끼는 주아에 비해 선아는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는다. 그리고 마침내 죄책감의 무게를 깨달은 선아는 잘못을 고백하기로 한다.
어린이들은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고 구조적인 빈곤을 해결하는 것은 사회와 어른의 몫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등장인물들이 “뒤늦게 알아차린 ‘어떤 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난한 아이가 명랑하고 너그럽고 다정다감해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겪는 불편과 슬픔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도 결국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는 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어떨 때는 무겁고, 어떨 때는 가벼운 것은 무엇일까요?”「오렌지 팔레트」에서 대학생 언니가 내준 문제는 결국 선아가 ‘마음’이라는 답을 찾으면서 해결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제 몫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아이들은 역경을 이겨내며 누구보다 더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성장의 무게와 희망을 함께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달걀이 탁!』이 갖는 의미는 좀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출처 : 달걀이 탁! - 예스24 (yes24.com)
첫댓글 고이, 첫책이 이리 좋아도 되나? 다음 책도 술술 써내길☆ 축하해 ♡
고이 작가님,
책 발간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