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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7일까지 3일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오큘러스VR 개발자 컨퍼런스인 오큘러스커넥트3(Oculus Connect 3)이 열렸다. 이 행사에선 오큘러스VR이 선보인 가상현실 헤드셋인 리프트와 달리 PC 없이 작동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인 산타크루즈(Santa Cruz) 외에 가상현실용 컨트롤러인 오큘러스 터치(Oculus Touch) 출시 일정, 오큘러스 리프트 최소 사양을 내리는 등 다양한 정보가 발표됐다.
먼저 리프트의 최소 사양을 낮출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운 API인 비동기 스페이스워프(Asynchronous Spacewarp)라고 불리는 기술을 채택했기 때문. 이 API를 채택한 덕에 권장 이하인 45프레임 동작 표시도 90프레임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까지 최소 요구 사양의 경우 인텔 코어i5-6400에 엔비디아 지포스 GTX970 이상이었지만 앞으로는 코어i3-6100, 지포스 GTX960으로 내려간다.
가장 관심을 끈 것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가상현실 헤드셋인 산타크루즈. 프로토타입 형태로 공개된 이 제품은 고성능 PC와 유선 연결해야 하는 리프트가 하이엔드 모델, 스마트폰과 결합하는 기어VR이 엔트리 모델이라면 그 중간급을 노린 것이다. PC 없이 무선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고품질 가상현실 체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타크루즈의 외형 자체는 리프트와 비슷하지만 머리에 장착하면 뒤통수에 위치하는 부위에 유닛이 자리잡고 있다. 본체에 케이블을 연결할 필요는 물론 없다. 이 제품은 전용 외부 센서가 없더라도 사용자 이동을 추적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착용자가 걸어가면 가상현실 영상의 시점도 이동한다. 이는 본체에 갖춘 카메라를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해 가능해진 것이다.
다음은 오큘러스 터치. 이 제품은 리프트 전용 컨트롤러다. 이 제품의 예약 시작일은 10월 10일이며 가격은 199달러, 배송은 12월 6일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오큘러스 터치에는 VR스포츠챌린지(VR Sports Challenge), 언스포큰(The Unspoken) 등 가상현실 게임 2종이 포함되어 있다.
오큘러스 터치를 지원하는 타이틀 수는 35종 이상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보다 더 몰입도가 높은 가상현실 체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현실 공간에서 손처럼 조작할 수 있는 컨트롤러는 몰입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HTC바이브 같은 제품에는 컨트롤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플레이스테이션VR 역시 마찬가지다. 오큘러스 역시 이들 제품과 본격 경쟁을 하게 된 셈이다.
오큘러스VR은 모바일 생태계도 꾸준히 확장할 계획이다. 이미 기어VR을 비롯한 모바일 가상현실 헤드셋은 400개가 넘는 응용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오큘러스VR은 이를 더 확장시키기 위해 모바일앱 개발자에게 제공중인 모바일 SDK에 기능을 추가한다. 덕분에 유니버설 메뉴를 이용해 페이스북 생방송을 기어VR 프로그램으로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또 가상현실과 친화성이 높은 새로운 플랫폼인 오큘러스 아바타(Oculus Avatars)도 발표했다. 다양한 질감을 갖춘 아바타를 이용해 디지털 공간에 또 다른 자신을 만들 수 있는 것. 출시는 2017년 예정이라고 한다.
그 뿐 아니라 8명까지 보이스 채팅을 하면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오큘러스 파티(Oculus Parties), 친구와 VR방 같은 곳에서 영화를 보는 등 같은 앱을 즐길 수 있는 오큘러스 룸(Oculus Rooms)도 발표했다. 오큘러스 파티와 룸은 기어VR용은 곧 공개할 예정이지만 리프트용은 2017년 초에 나올 전망이다.
오큘러스VR은 그 밖에도 리프트용 이어폰인 오큘러스 이어폰(Oculus Earphones)도 발표했다. 가격은 49달러다. 또 가상현실 공간에서 마음껏 노래방을 즐길 수 있는 싱스페이스(SingSpace)를 내년 4월 출시한다고 한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상현실 시대, 어디까지 왔을까?
가상과 현실 경계를 파괴할 블루칩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란 컴퓨팅을 이용해 특정 환경이나 상황을 가상으로 만들어 마치 실제 상호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쉽게 말해 “가상으로 현실 같은 세계를 구현해준다”고 생각하면 쉽다.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30년도 넘는 얘기다. 가상현실은 사람의 오감을 속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핵심 격인 시각을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HMD(Head mounted Display)’로 교란하는 것이다. 요즘 시중에 선보인 가상현실 헤드셋인 ‘오큘러스 리프트’나 ‘HTC 바이브’ 제품도 HMD의 한 종류다.
HMD가 처음 등장한 건 1968년. 컴퓨터 역사를 뒤바꾼 발명품 50선(2014년 MIT 선정)에 선정되기도 한 GUI 프로그램인 스케치패드 개발자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 박사가 개발했다. 물론 당시만 해도 HMD는 무게가 상당해 천장에 매달아 놓고 써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일렉트로닉 토킹 뷰마스터(Electronic Talking View-Master)를 비롯한 입체 영상이나 음향을 즐길 수 있는 간단한 초기 가상현실 뷰어 격인 제품도 나왔다. 1983년 선보인 뷰마스터 같은 제품도 슬라이드 디스크를 특수 카트리지에 끼워서 슬라이드 쇼처럼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했다.
▲ HMD는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기기로, 눈 앞에 거대한 화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가상현실이 지금처럼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파괴할 블루칩” 대접을 받았던 건 아니다. 이 미완의 기기가 다시 관심을 끌 게 된 건 2012년 해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 공개된 오큘러스 리프트 때문이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당초 목표액 25만 달러보다 무려 10배에 달하는 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어 구글이 2014년 개발자 콘퍼런스인 구글 I/O의 참관객 전원에게 골판지로 만든 가상현실 헤드셋 카드보드(Cardboard)를 배포하며 관심이 커졌다. 사용자가 직접 만드는 이 간편한 가상현실 헤드셋을 포함해 구글은 필요한 소재나 앱도 모두 무료 공개했다. 가상현실 시대의 대중화를 예고한 것이다.
▶ ‘구글 카드보드’는 두꺼운 종이와 렌즈로 이뤄진 조립식 기기로, 10달러 이하의 저렴한 가격에 만들 수 있는 HMD다.
이젠 어디를 가도 가상현실을 말한다. 일단 하드웨어 보급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앞서 소개한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 등 PC용 가상현실 헤드셋은 이미 출시된 상태다. 소니는 오는 10월, 올해 1월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판매량이 3,590만 대에 달하는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4를 기반으로 한 ‘플레이스테이션 VR(PlayStation VR)’을 내놓는다.
윈텔 진영도 마찬가지. 마이크로소프트는 ‘홀로렌즈(HoloLens)’라고 불리는 증강현실 헤드셋을 선보였다. 3월에 개발자 버전, 8월에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판매도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2017년 윈도10 업데이트를 통해 가상현실 플랫폼인 ‘윈도 홀로그래픽’을 지원할 계획도 밝혔다. 이렇게 되면 PC에 가상현실 헤드셋을 연결하면 홀로렌즈에서나 가능하던 가상현실 인터페이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인텔 역시 ‘프로젝트 얼로이(Project Alloy)’라고 불리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모두 지원하는 올인원 헤드셋을 발표했다. 이 기기는 PC나 컨트롤러에 연결할 필요 없이 머리에 쓰기만 하면 간편하게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다. 인텔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API까지 2017년 모두 플랫폼을 오픈해 공개한다. 누구나 기술을 가져다 제품을 만들라는 것이다.
▶ 인텔 리얼센스 기술이 탑재된 융합현실 기기 ‘프로젝트 얼로이’
가상에서 증강까지, 늘어난 용어들
이렇게 시장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가상현실 관련 용어도 많아졌다. 크게 보면 가상현실보다 조금 먼저 이슈가 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대표적이다. 증강현실이란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에 CG로 만든 가상 물체를 겹쳐서 보여주는 기술을 말한다. 요즘 인기를 끈 ‘포켓몬 고(Pokemon Go)’ 같은 게임도 증강현실을 활용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포켓몬 고가 인기를 끌면서 서비스가 가능한 속초나 울산까지 원정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포켓몬 고는 실제 GPS 정보와 연동, GPS 좌표가 찍힌 해당 지역에 가면 CG로 만든 포켓몬이 나타난다. 그것을 몬스터볼로 잡는 것이다. 만일 가상현실이었다면 100% CG로 만든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게임이니 굳이 실제 장소까지 갈 필요가 없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차이다.
▲ 출시하는 국가마다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포켓몬 고의 플레이 모습
물론 이런 용어만 있는 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홀로렌즈를 발표하면서 현실과 가상을 혼합했다는 개념을 강조해 ‘복합현실(Mixed Reality)’이라는 말을 썼다. 투명 디스플레이를 통해 현실 공간에 가상을 겹쳐 표현하므로 이런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인텔은 반면 ‘융합현실(Merged Reality)’이라는 용어를 쓴다. 주변 환경과 사용자 손가락까지 가상공간에 가져와 융합해 현실과 가상을 더 몰입도 있게 결합했다는 의미다. 물론 복합현실이나 융합현실 모두 크게 보면 증강현실을 뜻하지만,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 기술의 차별화를 위해 마케팅적 용어에 가까운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왜 가상현실이라는 과녁을 쏘려 하는가
가상현실 시장에 글로벌 IT 기업들이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일단 시장 전망이 밝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가상현실 하드웨어 시장은 앞으로 10년 안에 1,110억 달러 규모까지 커질 전망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인 트렌드포스는 가상현실 원년으로 불리는 올해 가상현실 기기는 1,400만 대가 팔릴 것이며, 오는 2020년에는 3,800만 대까지 수직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가상현실은 최근 정체기를 겪는 IT 분야에 새로운 화수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미 성장세가 꺾인 PC 시장이나 성숙기를 넘어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차별화가 절실해진 스마트폰 시장, 마찬가지로 프리미엄 요소가 필요해진 콘솔 게임 시장까지 가상현실을 추가하려 한다. 그뿐 아니라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사업자도 소셜 VR을 미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보고, 유튜브 역시 360도 영상 서비스를 시작한 상태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대중화에 필수적인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도 가상현실이라는 과녁에 화살을 조준하고 있다.
▲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가상현실이 차세대 소셜 플랫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강현실을 포함한 가상현실 시장의 가능성도 메가톤급이다. 포켓몬 고의 경우 얼마 전 누적 매출 1.6억 달러를 넘어섰다. 기네스북 기록만 해도 5개나 된다. 다운로드 수는 한 달 만에 러시아 인구와 비슷한 1억 3,000만을 넘었고 전 세계 70개국 앱스토어에서 동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포켓몬 고의 성공은 IP, 지적 재산권의 가치를 증명한 게 1차적 요인이지만 동시에 일반 소비자에게 익숙하지 않던 가상(증강)현실에 대한 관심이나 사업성을 보여준 것도 계기가 됐다. 이미 중국 알리바바가 가상현실 쇼핑 기술인 ‘바이플러스’를 선보여 가상현실 공간에서 미리 물건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하거나, 국내에서도 ‘여기어때’ 같은 기업이 가상현실을 접목하기도 하는 등 가상현실을 마케팅에 접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경험 공유하는 소셜 VR 등장 예고
기술적 난제가 없는 건 아니다. 가상현실의 핵심 기술은 헤드 트래킹이지만 그뿐 아니라 위치 트래킹이나 제스처 등 다양한 입력 방식의 발전이 있어야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케이블 처리나 여전히 낮은 해상도, 지연시간 같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가장 큰 숙제는 가상현실이 인체에 미치는 긍·부정 효과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가상현실 시장은 어떻게 될까. 가상현실이 단순히 게임 정도가 아닌 건 분명하다. 구글이 발표한 ‘프로젝트 탱고(Project Tango)’는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 스마트폰을 실내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하거나 사람처럼 공간을 기억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들어 준다. 인간 수준의 공간 인식 능력을 스마트폰에게 부여하려는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는 방안에 가상으로 선을 그어서 치수를 재거나 가상으로 가구를 미리 배치해볼 수도 있다.
◀ 가상현실 기술은 스마트폰에 공간 인식 능력을 부여할 수도 있다.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내 일부 대학과 제휴해 의과 대학 수업에서 3차원으로 만든 인체 모형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는 등 해당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방에서 포켓몬이 아니라 가상 애완동물을 키울 수도 있다. 또 페이스북이 밝힌 소셜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도 기대해볼 만하다. 이제까지 소비자는 기술 발전에 따라, 자신의 삶을 텍스트에서 사진, 영상의 순서로 공유해왔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삶의 공유가 가상현실과 만나게 되면 ‘경험의 공유’ 시대를 불러올 수 있다. 현실과 허구를 혼합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시대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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