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은 1950~60년대 일본에서 활약한 레슬러다.
그의 원래 이름은 김 신락이고 북한 출신의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씨름을 잘하던 그를 지켜보던 일본 스모계의 사람이 그를 데려다가 스모 선수로 키웠지만,
후에 그는 스모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레슬링을 배워서 일본으로 귀국한다.
그때부터 그는 세계적인 프로레슬러로 활약한다.
그의 재빠른 몸놀림과 당시 '당수'라고 일컫던 그의 필살기 “가라데 촙”은 사람들에게 전율을 일으키는 기술이었다.
그가 세계적인 강적들을 누르고 링 위에 쓰러뜨리며 챔피언이 될 때 패전 후 의기소침해 있던 일본인들은 경악했다.
심지어 그의 경기 시간에 T.V 앞에 운집해 있던 구경꾼들 중에는 졸도하거나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일본에선 일왕을 제외하곤 역도산이 단연 국민 최고의 영웅이었고 한국이나 북한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 역도산은 거의 숭배의 대상으로서,
그가 어떻게 액션을 취했다느니, 어떤 선수를 어떻게 눕혔다느니 진실과 허구가 종합된 이야기가 끝없이 회자되곤 했던 것이다.
그는 몇 여자와 관계를 가졌으나 결혼한 여자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16세 연하의 일본 여자 다나카 게이코다.
역도산은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레슬링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사업가적 기질도 다분했고,
운영하던 사업도 여럿 있었다. 일본의 정재계 스포츠계 인사들이 그와 교분을 쌓으려 했고,
우리나라 정부의 초청에 의해 국빈 자격으로 방한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던 그는 만취 상태에서 누군가의 발을 밟아 시비가 붙는다.
상대는 폭력단원이었는데 시비 도중에 역도산은 칼을 맞는다.
병원에 실려서 수술이 잘 되고 폭력단의 보스도 찾아와 사과하는 등 순조로운 상황 같았지만
이상 징후로 말미암아 두 번째 수술을 하게 되는데 그 수술에서 그는 세상을 떠난다.
두 번째 수술을 받으러 들어갈 때 그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의사 선생님들에게 얼마큼의 약, 얼마큼의 돈이 들어도 괜찮다고 해.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아."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나이 39세.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해야할 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특히 죽음 앞에서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말을 늘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빠르다고 하든지 너무 늦다고 하든지 상관없이 운명은 적시에 찾아온다.
인간의 적기는 바로 지금이다. 믿을 때도 사랑할 때도 용서할 때도 생각할 때도 바로 지금인 것이다.
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요 내일은 내 것이 아닌 시간이다.
그렇게 영웅시 되면서 스포츠 사업 사교 등 다방면에 현란한 족적을 남겨도 구원과는 상관없고,
그렇게 삶의 시기를 보내버리면 그에게 또 찾아올 기회는 없다.
세계적인 프로레슬러보다도, 세계적인 사업가보다도, 세계적인 예술가보다도
지금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게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내가 하나님을 모른다면, 그래서 미래가 없다면 그런 나는 무엇인가?
늦기 전에 믿으라.
2017. 4. 9
이 호 혁
첫댓글 감사합니다. 늦기전에 믿을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늦기 전에 주님 자녀됨을 감사드립니다!!
많은 이들에게 늦기 전에 믿으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들의 삶이 너무 안타깝고 가슴아픕니다..
나를 찾아와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아멘! 기회가 있을때 믿어야하는데...
믿음이란 얼마나 신비스러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