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말연시의 마지막 주말인데 생각보다 손님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자체 분석을 해보지만 잘 모르겠네요. 올해 S-H 합격생을 내지 못한 에예공은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에예공! 인생이 원래 그래! 그래서 인생이 콩밥 아니겠어! 잠-글쓰기(영화)-먹방 중 선택하시라! 영화 <역린>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를 제거하려는 노론 벽파 세력의 정조 암살 시도인 정유 역변을 소재로 삼은 영화입니다.
-
역린의 뜻은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한다는 뜻으로 임금의 분노를 비유하는 말입니다. 정조는 노론 벽파 세력에 의해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은 불운한 왕입니다. 뒤주에 갇혀서 죽어간 아버지를 똑똑히 기억하는 정조는 어려서부터 정치에는 관심 없는 척하며 학문과 무예에만 매진합니다. 실제로 정조는 어려서부터 자객 등에 의해 수차례 죽음을 맞이할 뻔했습니다.
-
따라서,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조는 일찍부터 무예를 단련했고 그 결과 조선의 왕 중에서 가중 무예가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특히, 활쏘기는 명사수였다고 합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이 되면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 벽파에게는 큰 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노력 벽파 세력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영조의 처 정순왕후 김 씨가 정조를 제거하려는 <정유 역변>을 일으켰습니다.
-
그날 < 정유 역변>1777년 7월 28일 밤 11시를 전후로 24시간을 담은 영화입니다. 실제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히 따른 영화는 아니고 소재만 모티브로 따왔기 때문에 영화 전체를 사실로 믿으면 안 됩니다. 정유 역변 자체는 하나의 해프닝 밖에 안되는 작은 사건인데 반해 영화 <역린>은 이 정유 역변을 크게 확장해서 정조를 제거하려는 거대한 세력과 정조의 진검 승부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정유 역변>은 일명 '정조 시해 미수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당시 아버지 홍지해를 귀양 보낸 정조에게 불만을 가진 홍상범 등이 주축이 되어 장조의 서자인 은전 군 이찬을 추대하려고 했다는 역모 사건입니다. 정유년 7월 28일 밤 11시 무렵 정조가 있던 경희궁 존현각에 자객이 침입한 흔적이 발견됐고 정조는 바로 금위대장 홍국영을 불러 대궐을 수색하게 했고 자객이 지붕 위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러나 범인은 잡히지 않았어요. 이후 정조는 거처를 경희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깁니다.
-
이후 정조는 범인을 잡는 데 소극적인 우포도대장 이주국을 파면하고 구선복을 책임자로 임명합니다. 구선복은 8월 9일 밤 임금을 암살하기 위해 서쪽 담장을 넘던 범인을 붙잡았는데 이 사건으로 암살을 주도한 홍상범의 시체를 거리에서 찢어 죽이는 책형을 당했으며 연루된 인물들 역시 모두 사형을 당한 역사입니다. 보통 이렇게 시간을 정해 놓고 시작하는 영화는 짜임새가 중요합니다. 역린은 이 짜임새가 너무나 허술하게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
그 이유로 영화가 하나의 플롯에 집중해야 하는데 무려 4개의 플롯이 동시에 시작합니다. 영화의 주요 플롯은 정조를 제거하려는 정조의 할머니인 정순왕후 김 씨와 정조의 대결입니다. 이 대결은 폐륜적인 구도라서 처음에는 조금은 역하지만 궁궐 내의 권력 암투를 밀도 있게 다룬다면 아주 흥미로운 플롯입니다. 이 플롯에 좀 더 집중했어야 하는데 영화는 이 구도를 긴 호흡으로 가져가긴 하지만 중간중간 다른 플롯이 치고 들어옵니다.
-
정조를 중심으로 한 암살 세력과의 진검 승부와 정조와 상선(정재영)과의 우정이라는 플롯이 돌아가고 왕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살수(자객)인 을수(조정석)의 형제애와 을수의 사랑 이야기까지 끼어들게 됩니다. 물론 을수를 중심으로 한 2개의 플롯은 크게 다루고 있진 않지만 이 4개의 플롯이 동시에 등장하고 그 플롯 각각이 유기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전혀 없고 작위적이고 성긴 이야기 구조에 스릴보다는 짜증이 밀려옵니다.
-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의 왕과의 대결은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서로의 당위가 강하게 부딪혀서 강한 차 괴음을 내야 하고 서로의 당위가 강한 상태에서 진검 승부를 해야 눈에 힘이 들어가면서 한 동작 한 동작을 자세히 보는데 이 역린이라는 영화는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니들은 싸워라 난 어떤 결말이 나오던 관심 없다가 되어 버립니다. 시나리오도 흥미가 떨어지지만 연출력도 별로 좋지 못하네요.
-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2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매체인데 드라마 하던 감독(이재규)이 영화를 해서 그럴까요? 현빈과 정재영, 조정석, 한지민, 정은채 김성령, 박성웅 조재현 이 이름만 봐도 주연급 배우가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습니다. 그래서 제작사는 멀티캐스팅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출연 배우 면면만 보면 아주 화려합니다. 그러나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는 현빈 정도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초반에 흥행한다면 그 이유는 전적으로 현빈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
그러나 현빈의 연기가 저에게는 딱히 와닿지가 않네요. 현빈이 연기한 정조는 시종일관 근엄함만 보여줍니다. 중간에 환관 갑수(정재영 분)와의 장난 어린 대화가 나오는데 이 장면을 좀 더 길게 담았으면 감정의 진폭이 커질 텐데 이 장면 말고는 시종일관 근엄하고 화가 난 얼굴로 나옵니다. 현빈도 현빈이지만 자객인 을수로 나온 조정석의 캐스팅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조정석의 이미지가 조금은 가볍고 코믹스러운 이미지인데 왕의 목을 따는 어마 무시한 자객 역할을 하기에는 미흡해 보입니다.
-
정재영이야 워낙 연기를 잘하는데 이 영화에서 그냥 소모품 취급 당해서 안타깝기만 하네요. 그리고 한지민, 시사회 평들을 보면 한지민의 의상(혼자 퓨전 사극 찍음)과 연기력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저는 큰 기대를 하는 배우가 아니라서 그냥 그렇게 봤습니다. 대부분의 주연 배우들의 배역이나 연기가 와닿지 않으니 그냥 주말에 하는 사극 드라마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나마 조재현과 정은채가 이 주연 배우들이 끌어내지 못하는 울림을 그나마 끄집어냅니다.
-
스릴러라서 큰 액션이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새로운 액션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역린에서 새로운 액션 볼만한 액션은 정조가 호수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감시자를 향해서 애기살을 날리는 장면은 아주 시원 통쾌하더군요. 낮게 호수 위를 나는 애기살의 속도감은 아주 좋습니다. 또한, 클라이맥스에서 정조가 쏘는 화살 액션은 꽤 볼 만은 합니다. 그러나 다른 액션은 과장된 액션 또는 기시감 느껴지는 액션이 가득해서 별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
정조가 직접 칼을 들고 을수와 대결하는 장면도 아무리 정조가 무예가 뛰어난 왕이라고 해도 저렇게 칼을 직접 들고 싸우는 행동이 조선시대에 가능한가?라는 생각만 들게 되네요. 사극에서 왕이 칼을 들고 직접 자객과 대적하는 장면은 처음 본 듯합니다. 이게 이 역린의 차별성이라고 하기에는 무리한 생각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네요.
2.
연말연시의 마지막 주말인데 생각보다 손님이 없다. 이것저것 자체 분석을 해보지만 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올해 S-H 합격생을 내지 못한 에예공은 조용히 쓸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에예공, 인생이 원래 그런 거다. 그래서 인생이 콩밥 아니겠어. 잠-글쓰기(영화)-먹방 중에서 하나쯤은 붙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화다. 영화 〈역린〉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제거하려는 노론 벽파 세력의 암살 시도, 이른바 정유 역변을 소재로 삼는다.
-
‘역린’이란 용의 턱 아래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하며, 이를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한다는 의미로 임금의 분노를 비유하는 말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장면을 기억한 채 성장한 불운한 왕이다. 정치에 관심 없는 척하며 학문과 무예에만 몰두했고, 실제로 수차례 암살 위협을 겪었다.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무예를 단련했고, 조선 왕 중에서도 활쏘기에 능했던 왕으로 기록된다. 이런 인물이라면 충분히 영화적 매력이 있다.
-
그런데 질문이 생긴다. 이토록 입체적인 인물을 영화는 왜 끝내 평면적으로 소비하고 마는 걸까? 영화는 1777년 7월 28일 밤 11시 전후, 단 24시간을 다룬다. 정유 역변은 실제로는 비교적 작은 사건이었지만, 영화는 이를 정조와 거대한 권력의 진검승부로 확장한다. 문제는 그 확장의 방식이다. 시간제한이 있는 영화일수록 짜임새는 중요하다. 그런데 〈역린〉은 하나의 플롯에 집중하지 않는다. 무려 네 개의 플롯이 동시에 움직인다.
-
정조 vs 정순왕후 김 씨의 권력 대결
정조와 암살 세력의 대립
정조와 상선 갑수의 관계
자객 을수의 형제애와 사랑
-
이 많은 이야기는 과연 서로를 밀어 올리는가, 아니면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 특히 핵심 플롯인 ‘할머니와 손자의 대결’은 매우 도발적이다. 폐륜적이기까지 한 이 구도는 제대로 다뤄졌다면 밀도 높은 정치 스릴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 플롯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중간중간 다른 이야기로 시선을 흩트린다. 그 결과 관객은 긴장하기보다 피로해진다. 작위적이고 성긴 구조 속에서 스릴 대신 짜증이 쌓인다.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
클라이맥스는 더욱 아쉽다. 왕과 자객의 최후 대결은 서로의 당위가 강하게 부딪혀야 한다. 그래야 눈에 힘이 들어가고, 칼 한 동작에도 의미가 실린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은 묻고 싶어진다. 싸우긴 싸우는데, 그래서 뭐가 중요한 거지? 시나리오도, 연출도 결정적인 한 방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드라마 연출 경험이 많은 감독이 영화라는 매체의 압축을 끝내 체득하지 못한 듯하다.
-
배우들의 이름은 화려하다. 현빈, 정재영, 조정석, 한지민, 김성령, 박성웅, 조재현… 하지만 화려한 캐스팅이 반드시 좋은 영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현빈의 정조는 시종일관 근엄하다. 그나마 환관 갑수와의 장면만이 인간적인 숨을 틔운다. 그 장면이 조금만 더 확장됐다면 감정의 진폭은 훨씬 커졌을 것이다. 조정석의 을수는 캐스팅 미스에 가깝다. 가볍고 코믹한 이미지가 강한 배우에게 ‘왕의 목을 따는 자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
연기를 잘하는 배우와 역할에 맞는 배우는 과연 같은 말일까? 액션 역시 아쉽다. 정조가 호수 건너 감시자를 향해 애기살을 날리는 장면은 분명 인상적이다. 클라이맥스의 활 액션도 볼 만하다. 그러나 왕이 직접 칼을 들고 자객과 맞붙는 장면에서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이것이 과연 역사적 상상력인가, 아니면 무리한 차별성인가. 사극에서 ‘처음 보는 장면’은 언제나 의미 있는가? 결국 〈역린〉은 묻는다기보다 설명하려 들고, 파고들기보다 나열한다.
-
그래서 끝내 정조의 분노, 그의 역린을 건드리지 못한다. 연말의 쓸쓸한 주말,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주말 사극 드라마 한 편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만약 이 영화가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해서, 아니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끝까지 붙잡지 못했기 때문일까?
2025.12.29.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