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500리 가을 식도락 여행
▲ 늦가을 섬진강에선 북태평양에서 돌아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 계곡에서 기어나와 바다쪽으로 내려가는 참게가 만난다. 연어와 참게의 이동방향은 정반대지만, 이동의 목적은 같다. 알을 낳기 위해서다. 사진은 섬진강 압록유원지 근처에서 시간과 씨름하는 낚시꾼. | | 이 강에서 인간은 덤으로 산다. 강은 산과 골을 휘돌며 고기를 키우고, 들판의 곡식을 살찌운다. 은어와 재첩, 참게가 강의 품 안에서 자라고, 구례와 하동의 너른 들판이 모두 이 강을 젖줄로 삼는다. 섬진강은 그래서 남도 생명의 근원이요, 어머니다. 남원에서 곡성, 구례, 하동, 광양에 이르는 섬진강 500리 길을 따라 가을 식도락 여행을 떠났다.
남원 추어탕
남원에서의 섬진강은 유년기다. 남원 시내를 관통하는 요천(蓼川)은 17번 국도를 따라 흐르다 곡성에 닿으면 섬진강에 합류한다. 그 요천의 물을 끌어다 만든 인공 정원인 광한루원 근처에 남원 추어탕집이 즐비하다. 남원의 추어탕은 두 말이 필요없을 만큼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화번호 검색을 해보면 서울에서만 100여개 나온다. 과연 진짜 남원 추어탕집은 어딜까. 남원에서도 가장 유명한 추어탕집은 광한루원에서 곡성 쪽으로 200m쯤 가면 나오는 새집추어탕(063-625-2443)이다. 개업한 지 40년. 토종 자연산 미꾸라지만 고집하며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 고추장으로 맛을 낸다. 추어탕7000원, 미꾸리지튀김 2만원. 부산집(632-7823)도 20년 이상 된 집으로 단골이 많다. 남원 볼거리는 광한루원이 가장 유명하다. 요천 물을 당겨 호수를 만들고, 누각(광한루)을 세운 뒤 다리(오작교)를 놓았다.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 시작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광한루원 건너편에는 영화 ‘춘향뎐’을 찍었던 춘향 테마파크가 있다. 갖가지 조명이 빛나는 밤이 아름다워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좋다.
▲ 남원 추어탕 | | 전남 구례 산채정식
지리산이 끝나는 곳에서 들이 시작되고 들이 끝나는 곳에서 강이 시작된다. 구례는 산과 들과 강이 함께 어우러져 예부터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었다. 다른 섬진강 마을과 달리 구례에서는 지리산에서 나는 산나물을 맛볼 수 있다.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백화회관(061-782-4033)은 지리산 자락에서 손꼽히는 산채정식집. 사장 이은순(56)씨가 돌아가신 시어머니 임판례씨에 이어 2대째 운영하고 있다. 신발 벗고 방안에 들어가면 미리 준비된 밥상이 없다. 주문을 하면 종업원이 밥과 찬을 상째로 들고 나오는데, 1만5000원짜리 산채정식 특상은 40여가지의 반찬이, 보통(8000원)은 30여가지가 나온다. 반찬은 매화장아찌, 산두릅, 돔배젓(전어 창자젓), 김부각 등 옛 맛을 느낄 수 있는 것 들이다. 어머니 손맛을 잊지 못하는 단골 중엔 밥 한끼 먹기 위해 멀리 서울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2인분 이상만 주문을 받는다. 백화회관 외에도 화엄사 가는 길목에 산채정식집이 많다. 그옛날산채식당(061-782-4439)과 지리산대통밥(783-0997)집도 많이 알려져 있다. 요즘 구례의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 피아골 단풍이다. 이달 말이 절정이다. 절 한 곳에서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을 만날 수 있는 화엄사도 들러볼 만하다. 산동면 쪽으로 가면 게르마늄이 함유돼 있다는 지리산 온천도 있다.
▲ 광양 불고기 | | 전남 광양 불고기
전남 광양에 이르면 섬진강은 노년을 맞는다. 광양은 제철소가 있는 동광양 지역과 구시가지가 있는 광양읍 지역으로 나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집은 광양읍 쪽의 대중식당(061-762-5609). 놋화로에 참숯을 담고 그 위에 석쇠를 걸고 고기를 굽는다. 고기는 한우 등심을 쓰는데, 칼로 힘줄을 일일이 발라낸 뒤 결과 반대로 썰어 칼 끝으로 자근자근 두드려 육질이 부드럽다. 맛은 양념이 고기를 앞서지 않는다. 3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 광양읍의 광양시청 제2청사 옆에 있다. 불고기 1인분 1만2000원, 누룽지 1000원. 광양 불고기는 대중식당 외에도 대한식당(763-0095), 백운가든(763-8806) 등도 이름이 났다.
광양은 요새 매실로도 유명해졌다. 광양시 다압면 일대가 온통 매실 밭이다. 농가마다 매화를 심었지만 홍쌍리씨가 운영하는 청매실농원(772-4066)이 가장 유명하다. 청매실농원은 취화선, 다모 등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면서 아예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요즘은 구절초 꽃밭 7000평이 장관이다. 전북 진안에서 시작해 3개 도 212km를 달려온 섬진강은 이 곳 광양의 망덕포구에 이르러 소멸한다. 멀리 광양제철소가 바라다보이는 이곳에선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흘러간다.
포구엔 ‘가을 전어’판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달 말까지가 전어를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일출횟집(061-772-0048)에 들어앉으면 저 멀리 강과 바다와 제철소가 한 눈에 보인다. 회와 무침, 구이 구별 없이 전어 kg당 2만5000원.
곡성 참게, '마파람에 게 눈 감추겄네'
10월 섬진강에서 절정에 달하는 음식은 단연 참게탕이다.
남원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곡성읍을 지나 구례 쪽으로 강변을 달리다 보면 전남 보성에서 발원한 보성강과 섬진강이 합쳐지는 압록유원지가 나온다. 강 2개가 합쳐지는 바로 이곳이 섬진강 참게의 주산지. 가을이 깊어지면 암게는 알이 차고, 수게는 다리살이 통통해진다. 참게는 바다 꽃게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맛은 훨씬 알차다. 때문에 음력 9월부터 서리가 내릴 무렵까지의 곡성 참게는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봄·여름에 산 속 계곡에서 자란 참게는 알이 꽉찬 가을이 되면 산란을 위해 하류로 내려간다. 낮에는 물 속 바위틈에 머물다 밤이 되면 이동을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이때 횃불을 들고 참게를 잡는다.
요즘에는 참게 숫자가 예전만 못하다. 이틀 전에 쳐둔 통발을 거두러 나간 박종화(45)씨의 통발엔 참게 5마리만 들어있었다. 박씨는 “요즘은 참게가 귀해 자연산은 1마리에 1만원을 호가한다”며 “검은색에 노란빛을 띠는 국내산과 달리 값싼 중국산은 회색에 청색을 띤다”고 알려줬다. 참게요리는 탕과 게장이 가장 유명한데, 요즘은 주로 탕을 끓여 먹는다. 게장은 잡은 참게를 끓이고 달이기를 거듭해 몇 달간 숙성시켜야 하기 때문에 봄부터 먹는 것이 보통이다.
압록유원지 일대에는 참게 요리를 내는 식당이 즐비하다. 통나무집(061-362-3090)은 시래기를 푸짐하게 넣고 집에서 담근 된장과 들깨가루를 풀어 구수하게 끓인 참게탕이 메인 요리다. 게 딱지에 밥 비벼 먹고, 다리는 와작와작 씹어 먹는다. 주인 유명자(43)씨는 자연산 참게를 고집하고, 시래기도 가을철에 무밭을 통째로 사서 무청을 말린다고 한다. 참게탕 2만5000(소)~4만5000원(대). 통나무집 옆에 있는 새수궁장(061-362-8352)과 용궁산장(061-362-8346)도 참게요리로 유명한 집들. 새수궁장엔 ‘닭잡아먹은 참게백숙’이란 독특한 메뉴가 있다.
참게로 배를 채웠다면 몸으로 즐기는 체험여행을 떠나보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옛 곡성역에서 출발, 고달면 가정역까지 9㎞ 구간을 운행하는 미니기차는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주말과 공휴일에 하루 4번 무료로 운행한다. 문의는 군청 관광개발사업단(061-360-8289). 기차가 멈추는 가정역에서 강변을 따라 난 자전거 전용도로는 하이킹을 즐기는 연인들이 자주 찾는다. 20분에서 5시간까지 코스도 다양하다. 가정리 청소년수련원에서 자전거를 빌려준다. 1인 하루 3000원(2인용은 4000원).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섬진강 자연학습원(061-363-2999)의 곤충·도예교실도 좋다. 그래도 뭔가 구경거리를 원한다면 압록유원지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보성 쪽으로 들어간다. 태안사 단풍이 곧 절정이다.
하동 재첩, "담백한 국물맛이 속풀이 딱…"
‘가장 낮은 곳에 사는 가장 작은 조개가 가장 깊은 맛을 낸다’. 소설가 김훈이 경남 하동의 재첩국을 두고 한 말이다. 재첩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산다. 모래가 많은 사질 토양에 조수 간만의 차가 큰 곳에서 좋은 재첩이 나온다. 같은 섬진강이라도 바다에 가까운 하동 재첩이 더 좋은 이유가 여기 있다.
구례에서 하동 가는 길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두 갈래로 나뉜다. 경남 하동으로 가는 동쪽은 19번 국도, 전남 광양으로 가는 서쪽 길은 861번 지방도다. 곡성까지만 해도 작은 개천처럼 보이던 섬진강은 구례를 지나면서 강폭을 넓힌다. 하동과 광양을 잇는 섬진교 남쪽에 이르면 강 저편이 아득하다. 바로 그곳에서 재첩 잡이가 한창이다. 재첩은 흔히 5~6월이 좋다지만, 잡기는 사시사철 잡는다. 20년 넘게 재첩을 잡아온 김분례(56)씨는 “강이 얼어붙지만 않으면 언제나 잡는다”고 했다.
재첩은 긴 막대 끝에 부챗살 모양 모양의 긁개가 달린 ‘거랭이’란 도구를 강 바닥에 깊이 박은 후, 훑어 가며 잡는다. 이렇게 잡힌 재첩은 물에 담가 두면 스스로 입을 벌리고 속에 있는 모래, 흙 등 불순물을 토해낸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걸러낸 뒤 물을 붓고 끓이면서 저어주면 껍데기는 밑에 남고 재첩살만 물위에 뜨는데, 이 것을 건져내 국을 끓인다.
남해고속도로 하동 IC에서 하동읍 쪽으로 2.5 km거리에 있는 강변 원할매재첩국집의 이순자 사장은 30년 넘게 재첩국 장사를 해왔다. 푸르스름한 이 집 재첩국은 물안개 낀 섬진강의 새벽 빛깔을 닮았다. 물과 재첩, 소금의 단순한 조합으로 밤새 숙취에 시달린 나그네의 복잡한 뱃속을 어르고 달래는데, 시원하다는 말로는 모자란 깊은 맛이다. 이씨는 “요새 서울서 흔히 쓰는 중국산 재첩은 훨씬 크고 반듯하지만, 껍데기가 딱딱하고 살이 질겨서 국물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재첩은 예로부터 간장병, 황달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각종 무기질도 풍부해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강변원할매재첩국(055-882-1369) 외에, 하동읍내의 여여식당(884-0080)과 동흥식당(884-2257) 등도 섬진강 재첩만 사용하는 전통 있는 집들이다.
하동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야생 녹차다. 화개에서 쌍계사 들어가는 십리 벚꽃길 주변에 9세기경 국내에서 최초로 차를 재배했다는 차 시배지가 있고, 주변에 산골제다(055-883-2511), 화개제다(055-883-2145) 등 다원이 즐비하다.
하동은 먹거리도 많지만, 볼거리만으로도 한 번 들를 만하다. 국보 47호인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있는 쌍계사와 불일폭포,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과 평사리 들판이 있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는 화개장터는 요즘 확장공사 중이라 없는 게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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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