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고린도전서 10 : 16 - 17
제목: 꿈이 이루어지는 곳은 십자가
일시: 2014. 10. 12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미오새 그오새”라는 책을 읽어보셨나요? 미오새는 미운오리새끼의 준말이고 그오새는 그냥오리새끼의 준말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오리새끼에서 못생긴 오리인줄 알았던 미오새가 알고 보니 오리가 아닌 백조였고 삶이 대박이 나 행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오새 그오새의 저자는 대박난 미오새의 행복과 대박보다는 남아 있는 수많은 그오새의 꿈과 행복을 그렸다. 다른 진짜 오리들인 그냥 오리새끼들은 미오새의 꿈이 있지 않을까? 그오새들은 다들 대박난 미오새의 성공을 부러워했고 자신들도 그렇게 되리라는 꿈에 살게 된다. 그러나 그오새는 평생 대박을 치지 못하고 그오새로 남게 된다. 그오새의 인생은 백조가 될 수 없기에 얼마나 좌절했겠는가? 동화를 쓴 저자는 지난 주 말씀을 전했던 박완주목사인데 미오새는 저자 자신의 자화상이며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의 꿈과 행복과 삶의 의미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II. 꿈은 가질 때 행복하다.
다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꿈이 이루어질 때 행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꿈의 매력은 이루어질 때라기 보다 꿈을 꿀 때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마치 파스텔화와 같이 부드럽고 신비하다. Dream comes true!라고 할 때 좋은 것 같지만 그 꿈이 이루어진 현실과 현장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아픔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꿈이 사라지고 현실이 되었을 때는 오히려 낭만이 사라져 버린다. “꿈깨”라고 한다든지 “꿈인가 생시인가”하고 성취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아픔을 느끼라고 하지 않는가? 볼을 꼬집어 보기라도 한다. 현실은 통증이 있지만 꿈은 평안함이 있다.
꿈이 있다는 것은 내일이 있다는 것이다. 꿈이 있다는 것은 기대와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꿈이 있다는 것은 손에 땀을 쥐는 긴장이 있지만 생기가 있는 것이다. 다 성취한 사람을 보라. 재미있을 줄로 아는가? 우리 중에 그러한 사람이 없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겠지. 그러나 솔로몬을 보라. 그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가졌다. 부가 있었다. 지혜가 있었다. 명예가 있었다. 권력이 있었다. 쾌락이 있었다. 하지만 전도서에서 그의 고백은 굉장히 따분해하고 대단히 허무함을 느낀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을 가져 봤지만 그의 최종적인 고백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 이라고 해서 우리를 맥빠지게 만든다. 꿈이 성취가 되면 마치 김이 다 빠진 탄산음료와 같고 이미 승부가 난 경기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이 긴장감 없고 결론을 다 아는 드라마와 같을 것이다.
그러기에 꿈을 꾸고 있는 이 시간이 귀한 시간들이다. 내일의 성취라는 것에서 행복을 갖기 전에 이미 내일에 대한 기대와 소망 속에서 꿈꾸는 “지금” “여기”라는 것에 행복과 의미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영어에서 지금을 의미하는 Present 프레젠트는 선물을 뜻한다. 내일을 꿈꾸고 있는 현재는 우리에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다. 예를 들어 여기 80세가 된 피아니스트가 있다고 하자.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영향력이 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삶을 다 바쳤다. 그를 보는 20대는 그가 내 삶의 모델이 되고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그런데 그가 만일 젊은 나에게 영화에서처럼 삶을 바꿀 수가 있어서 이런 제안을 할 때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평생 쌓아온 물질, 명예, 영향력, 실력... 이 모든 것을 줄테니 너의 20대를 주겠느냐”고 할 때 어떻게 하겠는가? 이름 남기겠다고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용기목사님이 “권목사 내 이름줄테니 너 지금 목회하는 라이프찌히 담임목사자리와 바꾸자”해도 안 바꿀 것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성취가 아니요 바로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아름다운 Present 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 개인적으로 20대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희미해 보였지만 꿈이 있고 긴장이 있고 내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행복을 위해서 저는 꿈을 꾼다. I have a dream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한 마틴루터킹목사처럼 말이다. 꿈을 꾸고 사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슬픈 사람이다.
저의 부모님은 가요무대를 본다. 나애심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 박신자의 댄서의 순정 박재홍의 울고넘는 박달재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현인의 비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저는 종종 저는 7080을 듣는다. 왜? 바로 꿈을 꾸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과 같기 때문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꿈이 있었다.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중풍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물위를 걸으시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주님을 보고 희망을 걸었다. 기존의 정치나 종교계에 거침없이 말씀하시고 책망하시는 주님의 카리스마에 존경심이 넘쳐났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유대임금으로 삼아야 한다고들 했다. 제자들은 주님 옆에서 각자 야무진 꿈을 꾸었다. 주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시면 로마로부터 독립도 하고 나라를 세우면 높은 자리도 꿰 찰 수 있고 경제도 부흥시키고 문제가 다 해결될 줄로 생각했다. 그때가 행복했다.
III. 꿈은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
하지만 제자들의 꿈은 깨어졌다.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모략에 의해 로마통치에 항거하는 반역의 죄목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꿈은 다 깨어졌다고 여겼다. 주님과 3년의 시간은 환상적이었고 한때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멋진 기회였으나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엠마오로 가고 있는 실망한 두 제자를 보게 된다. 그들은 존경하고 그렇게 믿었던 선생 예수를 잃어버렸고 이제 갈릴리에 가서 고기나 잡으면서 살겠다는 것이다. 꿈도 소망이 다 사라졌다. 제자들도 다 흩어졌다.
제자들은 그오새들과 같이 대박이 나지를 않았다. 백조가 되지를 못했다. 그렇다면 정말 예수님이 로마를 몰아내고 유대 임금으로 등극하고 제자들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내부부장관 등 다양한 직책을 얻고 권력을 가지고 부를 축적했었다면 행복해졌을까? 박완주목사님은 미오새 그오새에서 과연 꿈이 이루어진 백조 미오새는 행복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굳이 미오새가 불행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그 행복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을 것이다. 못생겼다고 늘 걱정하던 오리엄마 생각도 많이 났을 것이다.
프리마돈나라고 무대에 선다고 해도 행복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조금만 틈만 있으면 치고 올라올려고 한다고 한다. 챔피언을 하면 편안할까? 김연아와 같이 금메달을 따면 평안할까? 1등이 행복할까?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것 만큼 행복하고 평안하지 않다. 꿈이 이루어졌다고 즐거울까? 아니 이루어진 것이 깨어지고 없어질까봐 두려울 것이다.
꿈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제자들이 생각하기에 꿈이 깨어지고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십자가에서 진정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십자가가 역사를 바꾸어 버리는 것이었다.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주님의 십자가는 반전을 가지고 온다. 마치 그렇게 미운 오리새끼라고 놀림을 받고 엄마 오리로부터 걱정을 끼치던 그 오리가 하루 아침에 반전을 가지고 온 것처럼 말이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 였다. 진정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제자들이 꾸웠던 꿈 우리가 꾸고 있는 그 꿈은 주님 안에서 완성된다.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 꿈을 가지고 왔건만 그들이 도달한 곳은 왕궁이 아니라, 갈보리였다. 이룰 꿈은 바로 골고다 갈보리 언덕이었다. 그들은 흩어졌었지만 십자가가 꿈을 이룬것인 줄 알았다. 십자가는 마치 애벌레가 화려한 나비가 되는 부활처럼 변화를 시키는 것이다. 꿈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십자가에서는 꿈이 이루어진다.
성찬식의 의미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성찬식의 잔은 주님의 언약의 피이며 성찬식의 떡은 주님의 몸이다. 생명의 떡인 것이다. 오늘 말씀에는 “참여”라는 표현이 나온다.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 주님과 연합함을 의미한다. 그것을 성경은 축복이라고 표현한다. 그 잔은 축복의 잔이며 그 떡은 축복의 떡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꿈이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주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 주님이 우리의 타이틀이 되어야 한다. 모든 우리의 꿈은 주님에게 걸려 있어야 한다. 주님은 생명이시니까 그때 우리의 꿈은 생명을 갖게 된다. 주님의 십자가와 연합할 때 영향력을 발휘하고 존재감이 있게 된다.
우리의 존재는 X 하기 0을 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죽음이 곱해지면 다 영이다. 그러나 생명이 곱해지면 다 풍성함이요 결실이다. 우리가 주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IV. 한해를 시작하는 10월이다. 꿈을 꾸라. 공부하라. 사랑하라. 사업하라. 예술활동을 하라. 꿈꾸는 지금 이 현재를 최선 다해 살라. 하지만 성취하는데 목숨을 걸지 말라. 꿈은 성취하는 것에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은 꾸는 것 자체가 매력이다. 바꿀 수 없는 인생의 황금기인 것이다. “그때가 좋을때다”라는 말을 그냥 흘려듣지 말라.
그리고 그 꿈을 해석하라! 꿈보다 해몽이라고 한다. 꿈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꿈은 어떻게 해석을 하는가? 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바울이 그렇게 해석되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맥락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 한해와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주님 안에서 꿈을 꾸라. 예수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자로 살라. 우리가 꿈을 꾸고 행하는 모든 계획과 최선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제대로 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