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단취장(有短取長)의 배려와 사랑으로….
솔향 남상선/수필가.
조선 시대 어린이들의 인격 수양서인 동시에 교양서인‘명심보감’에‘과전불납이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말이 나온다.
<남의 외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자두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니 남의 의심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훈계어이다.
요즘 사람들은 무지해서인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이런 말에는 무감각인 듯싶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살다보니 엉뚱한 일에만 눈이 밝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도, 단점도 있다. 학력이 높고 잘난 사람이라 해서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불한당(不汗黨)이라 해서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상대방의 단점에만 눈이 밝은 사람이 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닌지 눈을 돌려봐야겠다.
조선의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에 관한 글을 읽다가‘유단취장(有短取長)’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선생 댁의 마당에는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한 그루는 대봉 감나무로 일 년에 겨우 서너 개 열렸고, 다른 한 그루는 많이 열리지만 땡감나무였다. 마당에 그늘도 많아지고 장마 때면 늘 젖어 있어 마당이 마를 날이 없었다. 둘 다 밉게 여긴 성호 선생은 톱으로 한 그루를 베어내려고 두 감나무를 번갈아 쳐다보며 오가고 있었다. 그 때 부인이 마당에 내려와 말하였다.
"이건 비록 서너 개라도 대봉시라서 조상 섬기는 제사상 올리기에 좋고,
저건 땡감이지만, 말려서 곶감이나 감말랭이 해두면 우리 식구들 먹기에 넉넉하죠."
그러고 보니 참 맞는 말이었다. 성호 선생은 둘 다 밉게만 보았고, 부인은 둘 다 좋게 보았던 것이다. 밉게 보면 못나보였고 좋게 보니 예쁜 것이었다. 단점 속에서 장점을 취한 부인의 말을 들은 성호 선생은 톱을 창고에 넣고 나오면서 웃었다.
‘유단취장(有短取長)이라!’
‘단점이 있어도 장점을 취할 것이 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든 장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는 것이 인간이라 하겠다.
내가 교직에 있을 때 우리 반에 문제아 학생 하나가 있었다. 얼마나 문제성이 많은지 반 전체 60명을 지도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일당백(一當百)이라더니 이 학생이 사고 치는데 그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상대방의 단점만 보지 말고 정점도 찾아내어 취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 반 K라는 학생이 문제아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장점도 있으련만 찾아내려하지 않고 눈에 띄는 단점만으로 꾸중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소위 반복되는 과오로‘낙인찍혀’문제아가 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잘한 일도 있으련만 한 때의 잘못으로 불신 받고 살아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불신이 문제아를 만든 것이었다. 불신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불신 얘기를 하다 보니 논어에 나오는‘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연상되었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홀로 설 수 없다.’즉 ‘신뢰가 없으면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니 대인관계의‘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라 하겠다.
아무리 사고뭉치 문제아라 해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해 줘야 한다. 잘 한 것이 있어도 인정해 주지 않고 과거의 잘못, 소위‘찍힌 것’으로 인해 밉게만 본다면 한 사람을 완전히 버리게 되는 것이다. 잘해도 어차피 불신당하는 것 아무렇게나 해버리자는 식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그때엔 개과천선의 의지도 희망도 없는 것이니 속수무책(束手無策)이라 하겠다.
다행히 K 학생은 내가 장점을 찾아 칭찬해주고 신뢰에 인정까지 해 주었더니 나를 잘 따랐다.
사고만 쳐서 고등학교 졸업도 어려웠던 학생이 4년제 대학까지 진학하게 되었다. 신뢰 회복으로 새 사람이 된 것이었다.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단점 가운데에도 장점을 취할 수 있는 유단취장(有短取長)’이 학생 하나를 살리게 된 것이었다.
우리 주변엔 단점이 많은 자신이 상대에겐 완벽을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족 간에도 이웃 간에도 친구 사이에도 사제 관계에도 그렇단 말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유단취장(有短取長)에 눈을 뜨게 해주신 성호 부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유단취장의 배려와 사랑으로….’
성호의 부인은 유단취장(有短取長)하는 마음으로.
거봉 시와 땡감 감나무를 살려내고
‘나’라는 교사는 유단취장의 실천으로
말썽 많던 문제아를 구제했네.
유단취장!
교사들이여, 타산지석으로 삼을지어다.
첫댓글 저희반에서 사고뭉치 말썽꾸러기들이 많은데, 항상 유단취장을 생각하며 아이들을 바라봐야겠네요. 나중에 큰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이니, 귀하게 여겨야겠습니다.
유단취장
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