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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자고 구름은 쉬어 넘고
사람은 알아서 넘어야 하는
충북 영동군과 경북 김천시를 가르는
해발 220미터의 평탄한 고갯 마루가 추풍령.
조선시대 한양으로 가기 위해 넘던 주요 고갯마루인 추풍령은 경상도의 포항, 울산, 부산, 김해, 마산, 고성, 창녕, 대구 인근의 사람들이 선산, 상주를 거쳐서 문경새재를 넘어갔거나
그러지 못했을 경우 김천에서 괘방령(과거시험 보던 과거길이며 상인들이 넘던 (商路)이나 추풍령 국가 업무수행에 중요한 관로(管路))를 넘어 황간, 옥천, 조치원을 거처 천안 삼거리로 향했다.
경상도 사람들이 한양으로 올라갈 때
소백산 죽령이나 문경의 하늘재 혹은 문경새재
그리고 김천의 추풍령이나 괘방령으로 향했는데
어디로 가던 백두대간을 넘어야 했기에 힘든 여정인건만은 틀림이 없다.
이번 하천은 추풍령천(川)으로 백두대간 사기점고개 인근에서 발원해 삼도봉(三道峰) 북쪽계곡에서 발원해 흘러오는 초강천에 합류하는 15km의 짧은 하천이다
이른 아침 대문 밖에 비는 내리고 자가용으로 추풍령으로 가서
날머리 영동군 황간면 애교마을 앞에 주차하고
미리 예약해 둔 추풍령 택시로 백두대간길에 만나는 작점고개로 향한다.
추풍령천은 작점고개를 지나 추풍령 종묘회사 안으로 올라 대간길에 접속한다.
사기점(400미터) 고개 마루 인근의 백두대간 시그널.
예전에는 사기(沙器) 그릇을 구워 팔던 마을이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마을은 없어졌으나
깨진 사기 파편은 찾을 수 있다는 곳이다.
그리고 사기점 고개는 김천에서 상주시 공성면으로 가는 여남재(210미터)와 함께 상주시 공성면을 거처 상주에 있던 경상감영으로 갈 수 있었던 길이다.
이쯤에서 추풍령천이 발원하는데
추풍령면 작점리 마을 사람들이 장똥이골이라 부르는 골로 내려가는데
하필이면 장뇌삼(蔘)을 기르는 곳이다.
자칫하면 오해를 부를 수 있기에 주위로 시선을 두지 않고 곧바로 장똥이골로 내려간다
거리:15km
하천 192개 누적거리 1만 0,540km
장뇌삼을 심었다고 알리는 쓰러진 금줄과 푯말이 보이고...
언제던가 경남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에서 수도산의 목통령으로 올라가는 길에 임도 끝부분에 주차하고 산으로 무작정 올랐는데 하필이면 장뇌삼밭이었던 모양이다,
산행 마치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오니 자가용 뒤에 또 다른 차로 길을 막아놓고 주위에서 일하시는 농부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는데 대뜸 배낭부터 한번 보자고 하신다.
목통령으로 올라가는 길에 장뇌삼밭을 지난 일이 있어 그런가 보다! 며
"어르신 배낭을 보여 드리는 건 아무것도 아닌데 어르신께서는 산삼을 단번에 알 수 있죠" 했더니 "그렇다"라고 하신다.
웃으며"그렇다면 산꾼과 약초꾼 정도는 척 보면 구분하지 못하겠습니까?"라며 말씀드렸더니
"미안하다"며 두말없이 차를 빼주신 적이 있다
목통령으로 올라가는 길에 장뇌삼을 많이 봤지만
별로 관심이 없던 터라 남의 장뇌삼 밭에 들어간 잘못도 크고 해서 어르신께 배낭을 열어 보여 드리고 온 일이 있다.
이런 곳을 지날 때는 절대로 허리를 굽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아 몇 자 적어 본다.
산골짜기에 오래전 사기점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던 논으로 추정되는 곳이건만
지금은 10-20년 정도로 추정되는 잡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비가 와서 그런지 습지처럼 되어 질퍽질퍽하다.
이곳이 추풍령천의 최고 상류로 보이나 물은 그렇게 깨끗하지 못하고
그동안 하천을 찾아다니며 전국의 모든 물맛을 봤지만 이곳 추풍령천의 물은 비가 와서 먹을 형편이 못된다.
장뇌삼이나 그 외 약초밭을 지날 때 절대 허리를 굽혀서는 안 되겠지만
쓰러진 나무로 인해 허리 한번 굽혀주고
무슨 버섯인지 알길 없으나 한집안을 이루는 종친이 모두 모여 자라는데 쓰러진 나무를 제 집인양 뿌리를 내리고 있다.
버섯돌이 한녀석 머리 일부를 떼어다가 입에 넣고 맛을 볼까 하다가 골로 갈 것 같아 눈요기만 하고
계곡으로는 온통 묵은 논(畓)으로 보이는고 어느 농사꾼의 솜씨인지 나무만 없으면 당장이라도 벼를 심고 재배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다.
이곳 위는 대간길 사기점 고개라서 지금은 없어진 사기점 마을이 있었던 건 아닌지...
정면으로 보이는 곳은 백두대간길인 사기점고개이며 장뇌삼밭과 묵은 논을 지나오니 작점마을로 이어지는 임도길이 나타난다.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 대부분의 도심에 인구가 줄어들고, 시골의 면(面)은 더더욱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농사지을 사람도 부족하여 산골짝 다락논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언제쯤 이 장똥이골짜기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릴지 ...
장똥이골의 작점 저수지
물은 이곳에서 숨 고르기를 한번 하고 하류로 흐른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이라는데
누군가 직장 상사분의 집에 애완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부고(訃告)가 와서 양복 입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산속에 이런 건물을 보니 농담은 아닌듯하다.
영동군은 포도와 감이 주산지이니 곳곳에 비날하우스가 있고
그 속으로 달달한 포도가 하얀 봉지 속을 꽉 채우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추풍저수지와 백두대간길에 만나는 북쪽이 없어진 금산이 지척이고
농사를 지을 때 물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이기에 1천 톤의 물을 사용해서 1톤의 곡식을 얻는다.
하지만 요즘은 쌀 한 가마니 가격이 17만원 정도 한다고 하니 농민들은 늘 힘들다는 말씀이다.
비는 오고
우산도 없이 걷다 보니 지나가는 트럭이 곁에 서더니 버스 타는 데까지 태워주신다며 얼른 타라고 하신다.
걸어가는 게임이라 걸어야 한다며 정중하게 사양하며 말씀이라도 감사하다며 인사드린다.
백두대간 추풍령의 금산.
대간길에 만나는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의 자병산과 더불어 산의 일부가 사라진 곳인데
자병산은 축구장 400여개 이상이 없어진 상태이며 높이는 100m 정도가 사라졌다
그렇게 쪼개지고 가루가 된 자병산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건축물의 일부인 시멘트(한라시멘트)가 되었다
정상에서 100미터 사라진 자병산 모습인데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땅 위로 거대한 덤프트럭이 분주하게 다니는데 기본 50톤에서 100톤이며 차량 바퀴 하나에 천만원 정도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있다
자병산은 앞으로 2,030년까지 6년간 다이너마이트에 의해 가루가 되어 전국으로 팔려 나갈것이다
백두대간 자병산이 죽어야 사람이 살 집이 생긴다고 했던가
40kg 한라시멘트 한포대기 모습을 보니 마치 백두대간이 통째로 들어간 모습인데
이제 자병산 생각을 뒤로하고 예전에는 김산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금산(金山)으로 불리는 금산
백두대간 금산은 산의 북쪽 경사면이 무썰듯 한 뭉터기 싹둑 잘려나가 많이 훼손되어 있으며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일제 때는 경부선(1905년) 선로에 자갈 공급용으로 해방된 후에 고속철도용 자갈 공급용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공사가 중단되어 낙석 예방차원으로 철조망으로 정상까지 둘러 싸여 흉물스럽게 서있다.
강릉의 자병산처럼 정상 부분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또다시 다이너 마이트로 금산을 갈가리 찢어 자갈로 사용할지 모를 일이다.
추풍령에 들어오기 전에 과수원을 지나면서 주인장께 사과하나 얻어 들고 추풍령을 지난다.
비는 조금씩 내리고 지척에 봉대산과 지장산 그리고 학무산이 줄지어 있다
봉대산(烽臺山) 은 예전에 봉화를 피우던 봉수대가 있어 봉대산으로 유래가 된듯하고
지장산(芝藏山)은 불교색이 강한데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모두 다 구제하기(救濟)하기 전까지 결코 성불(成佛) 하지 않겠다던 지장보살을 뜻하는데 아주 오래전에 산 아래 지장보살을 모시는 작은 절(寺)이나 암자(岩子)가 하나쯤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멀리 강원도 정선땅에 가면 함백산 남, 서쪽에서 발원하는 지장천과 지장산 있고, 전라도 무등산 자락에도 지장산이 있는데 모두 다 죽은 자와 산자를 이롭게 한다는 불교 색이 강한 이름이다.
학무산(鶴舞山)은 말 그대로 학이 춤추는 형국의 산이라 했는데 지금은 백학은 어디 가고 운해가 백학인양 춤을 추는듯하다.
다리 아래로 내려와 흙탕물 한번 건너주고
시멘트 옹벽을 기어오른다
비가 오니 물은 온통 흙탕물인데 바로 앞으로 봉대산이 보인다.
맑은 날에 왔다면 물 본연의 색감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흙탕물이 본연의 색인지 알길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멀리 대간길 조망 좋고 한 성질하는 눌의산이 보이고
그 옆으로 장씨 아저씨가 올라 장군봉이 되었다는 장군산이 이어진다.
그 뒤로 흐르는 물은 모래강인 김천의 감천(甘川) 지류인 직지사천 발원지쯤 되겠다.
하천가로는 더 이상 길이 없고 한풀 죽은 풀만 무성하게 보인다
머리 위로 경부선이 지나는데 경부선은 1904년도 12월 27일 완공되어 이듬해인 1905년 5월에 서울역에서 개통식을 했다.
일제에 의해 철도가 만들어질 무렵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연결한 441km 인근에 사는 조선인들은 토지와 인력 동원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행(恣行)되다 보니 기력(氣力)이 남아있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 전한다.
같은 가축이라도 소(牛)는 달구지 끌며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하기에 잡아먹지 못하고 닭이나 돼지 같은 작은 가축들 경우 남아나지 않았다고...
이후 일제 강제점령기(1910년-45년까지) 우리나라 침략 정책의 발판이 되었는데 1899년 경인선에 이어 두 번째 철도 개통이다.
그리고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경상도에서 상주를 거쳐서 한양으로 청운의 꿈을 품었던 선비들이나 상인들의 애환이 묻어났던 문경새재길은 교통의 발달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철도가 지나는 대전이나 김천이 철도 교통의 중심으로서 크게 성장하고 조선시대 약 200년간 경상 감영이 있었던 상주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였다.
하천가로는 길이 없어 하천옆 4차선 도로 따라가며
도로 가로수나무에는 노란 민머리의 감이 익어간다.
홍시가 더러 보이지만 눈으로만 가을맛을 보고
영동 포도인데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기까지 하다.
하천가에 영동 감 수확하느라 바쁘신데 홍시라도 하나 얻어갈까 하고 기웃거리다 홍시 하나 받아 들고 간다.
가을은 어딜 가나 풍성하고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기까지 하니 이 가을에 부지런히 다니며 오감만족이란 걸 느껴봐야 할 것 같다.
경부선 선로가 보이고 멀리 비구름에 쌓인 직지사를 품은 황악산과 삼도를 가르는 삼도봉이 보일 듯 말듯하다.
선로 아래는 삼도봉에서 흘러온 맑은 초강천이며, 대간길 사기점 고개에서 흘러온 추풍령천이 초강에 합류되는 곳이다.
달이 흐른다는 월류봉이 지척이고 백두대간 용문산에서 학무산 지장산을 거쳐 이어지는 북살미 바위봉이 보인다.
그 뒤로 백두대간 봉황산 동쪽에서 발원한 석천이 흘러와 초강이 되기까지 반야사와 백화산을 품은 곳 쯤되겠다.
추풍령천은 이렇다 할 정도로 볼 것은 없으나
반쪽이로 남은 금산과 관로(官路)였던 추풍령고개
영동 감과 포도만 알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짧은 하천 하나를 마치고 잠시 지나던 백학산으로 향한다
다음 하천은 경남 고성의 짧은 하천으로
첫댓글 "산꾼과 약초꾼 정도는 척 보면 구분하지 못하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멘트를~상상도 못 한 멘트네요! 저는 오해하지 마시라고 하며 가방을 보여 드렸을것 같습니다.ㅎㅎ
가방에 J3시그널 달고있는데~ 더욱 산에서 젠틀하게 행동해야 겠다고 생각이 듭니다.ㅎㅎ
물론 임산물도 돌 보듯해야 할것입니다.^^
후기 잘봤습니다. 방장님~
산에들면 내 것이 아니기에 어떠한 임산물도 배낭에 담아오지 않는편입니다.
송이 밭으로 지날때도 늘 당당하게 지나구요
글 감사드리며 우리는 산꾼으로 당당하게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병산 금산...
대간길에 만났던 다 너무 미안했던 산들. 제가 다름아닌 사람이기에...
눌의산도 다시 만나보고 싶고.
방장님은 강행을 하며 이렇게 또 산을 만나고 계십니다^^
지장보살님의 마음도 살짝 짐작해보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간길 추풍령의 물줄기 이야기
감사히 잘 봅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그렇게 걸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 또그렇게 옹알이 하면서 걸어야 할 때가 다가 옵니다.
제가 애정하는 산들이 즐비한 곳이네요. ㅎㅎ
석천환종주 외곽으로 흐르는 추풍령천이군요.
글 흐뭇하게 읽고갑니다^^
추풍령과 김천의 크고 작은 산들은 두건님 손바닥 안이죠
글 감사 드리고 언제나 건강한 산행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방장님 글에 어느땐 웃다가 어느땐 진지해지기도 하고 여러모로 글이 집중이 잘 됩니다 날씨도 추워 진다는데 내복이라도 잘 입고 다니십시요 다음 목적지인 경남 고성의 하천도 잘 다녀 오시기 바라겠습니다
ㅎㅎㅎ 좀 더 재미있게 쓰고 싶은데 자료로 만들다 보니
그러지 못합니다.
이틀 간 맑은 물의 여정 길에 동행해서 잘 다녀 왔구요
일간 한번 더 올려 드리겠습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강행기가 완주한 곳이 어느듯 200여개를 코앞에 두고 있네요.
새로운 천을 찾고 검색하고 방문하는것도 쉽지 않을것 같은데...
언젠가는 끝나는 그날까지 무사완주를 기원합니다.
올해 안에 6개만 더 진행하면 200개를 걷는데
시골에 사람이 없어 사람 구경하기가 힘든 시절입니다.
대간길 안전산행 기원드리며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정독하고 있는데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니 ㅎㅎ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무탈한길 기원합니다
저도 머리속에 지우개가 들어있는지
10분이면 다 까먹습니다.
몇일 지나면 뭔 글을 써는지도 모르고
사는게 다 그렇죠 ^^
방장님께서 언급하신 자병산을 찾아보다가 지금 현재의 자병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음이 아팠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같네요. 그리고 자병산과 같은 산이 많다고 하는게 더 놀랍습니다.
영월의 배거리산, 단양의 도담삼봉 근처 석회광산 등 많은 산들이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는 것도 슬픕니다.
사랑하는 안졸리나 졸리님
대간 줄기는 아버지
물 줄기는 어머니
대간에서 이어지는 정맥은 삼촌과 같은데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많이 훼손되어 있죠
나름 자료를 찾아봐 주셔서 감사드리며
산행에도 찾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