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싱싱한 햇잎사이로 나있는 길과 건너다 보이는 자연조망, 멀리 보이는 산줄기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계족산성이며, 이 산줄기 끝자락에 있을 덕진산성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지기들과 함께 걷는 봄 산길은 즐겁기만하다.
덤으로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인하는 즐거움도 덤으로 얻은 하루 답사 산행길이다.
<1971년판 1:5만 지형도로 본 오봉산, 보덕봉과 봉산동(리) 일대
관들, 배재기, 바구니 나루, 앞바구니, 뒷바구니, 불무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대전둔산경찰서 옆시내버스정류장에서 10분 간격으로 오는 301번 봉산동 행 시내버스를 탄다. 9시좀 넘어서 탄 버스가 종점인 봉산동에 도착한다. 내려서 앞을 보니 금고동/대평리쪽 으로 고개와 북으로 불무산에서 남으로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마주한다. 바구니 교차로에서 본 모습. 해발고도가 300미터도 채 안되는 산줄기인데 경사도가 제법이다.>
<봉산동 301번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 대전둘레산길 제7구간 시점을 찾아나선다. 길 건너편에 보인다. 이정표 보기>
<구간 곳곳에서 만나는 제7구간 이정표, 세부적인 안내가 미흡하다>
<제7구간 시점에서 발견한 구간별 거리 안내: 많이 바래있다.
봉산동 - 오봉산 : 1.81km, 오봉산 - 보덕봉 : 2.01km, 보덕봉- 두리초등학교 :1.3km = 오늘 걸은 거리가 총 5 km가 조금 넘는 셍이다.>
<제7구간 시발점을 지나니 제법 가파른 경사구간에 나무 계단 돌계단이 설치되어있고, 오른쪽으로는 금고동/대평리 방면으로 난 가파른 고갯길로 차들이 힘겹게 넘어가고 있다.>
<산능선으로 올라서니 비교적 평탄한 산길, 신록이 피어나기 시작한 그늘속으로 한참을 지나가니 동으로 봉산동 쪽 법화사와 서쪽으로 둔곡동(두니실)로 이어지는 마차길을 만난다.>
<구룡동으로 가는 길 입구에는 돌무더기도 있고, 소문산성까지는 8km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왼쪽 오봉산 길로 들어선다.>
<봉우리가 다섯개인 오봉산 정상에는 오봉산에서 바라본 전경에 대한 설명이 안내판에 사진으로 되어있다.
갑천과 금강이 만나는 곳에 다리 이름(불무교)이 나와 있다.>
< 카메라로 잡아본 실제 모습>
<바구니 향우회에서 설치한 정상 표석, 왠 바구니?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다.>
<오봉산 정상의 오봉정이라는 정자에도 바구니향우회라는 이름이 보인다. >
<오봉정에서 휴식을 취한다. 땀도 식힐겸, 음료수와 간식을 들고는 자리를 일어선다. 보덕봉 쪽으로 오다가 만나는 곳이 구룡고개다. 봉산동에서 구룡동으로 이어지는 고개, 예전에는 걸어넘던 길이, 시멘트포장길이었다가 이제는 어엿하게 아스팔트 왕복 2차선길로 되어있다.>
<산길에서 만난 애기각시붓꽃의 청초한 모습이 반갑다.>
<송전철탑을 지나니 보덕봉이다., 현지에서는 두루봉이라고 한단다. 봉우리가 두루뭉실하다해서 얻어진 이름, 정자를 위시한 각종 체육시설에 동네유래 안내판도 있다.보덕봉 정상에는 이동통신전파중계시설이 철조망으로 둘러쳐져있다. >
<두루봉에서 동쪽 계족산 줄기를 바라본다. 계족산성과, 봉황정이 있는 봉황산 모습이 실루엣으로 뚜렷하다.
옛 회덕현, 백제 시대에는 우술군의 치소가 봉황정 아래에 있었겠지 생각하면서. 비가 오려면 산이 울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산, 계족산, 그래서 (백제 때)우술군이 나중(신라 경덕왕 때)에 비풍군이 되었다가 고려 때에 배반하지 말고 말 잘들으라는 뜻으로 회덕현이라 명명했나. >
<예전의 구즉면,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송강동, 바구니 이름을 가진 봉산동 등의 지명 유래가 보인다.>
<사방을 둘러보고, 계족산성 쪽도 보고, 옛덕진현이 있었던 자리도 찾아본다. 남쪽으로 난 적오산성(덕진산성)은 다음으로 미루고 송강중학교 길로 내려선다. 점심때도 한참을 지났으니.>
<보덕봉에서 산을 거의 다 내려오니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에어부러쉬로 털고(우리나라 좋은 나라) 나서니 청보리밭으로 꾸며논 길을 걷는다.>
(*보양식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 후 둥구나무를 찾아나선다.)
<5백년 묵었다는 바구니둥구나무를 구즉초등학교 입구에서 머지않은 주공아파트 안에서 찾는다.>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동제를 올린다는데, 아직도 그때 둘른 금줄이 남아있다.>
<바구니동네의 둥구나무라는 뜻의 명패를 붙이고 있다.>
<바구니의 홰싸움놀이에 대한 안내와 자긍심이 담겨있는 비석>
<홰싸움놀이에 참가한 사람들,그들이 한 일의 내용을 알수 있는 맡은 바 역할이 나와있다.>
<비 옆면에 나와있는 보호수 수령이 2000년으로되어있다. 과장되어 있는 것인지, 500년이 맞는 것인지,,, 오래되면, 전설처럼... 되는 것인지....어쨌던 보호수는 싱싱하다.>
<바구니가 순 우리말 마을 이름인데, 한문식 표기로는 백운이란다.(흰 백에 구름 운 :백운)
한글이름을 한문투로 적다보니 생긴 현상, 뒷바구니는 후파곤이라고 공주목 지도에는 기록되어있다.
백운동 경로당에는 바구니둥구나무제전수관도 운영되고 있다.>
<오랜만에 기념사진도 찍어본다. >
(*성지기의 말로는 바구니라는 땅 이름은 봉산동( 바구니) 동네가 곡식이나 먹을 것을 담는 바구니 형상의 지형에서 얻어진 이름이란다.) 바구니라는 이름의 지명은 평안도에서, 황해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