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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운전면허시험을 치를 때에는 모든 응시자들이 이론 시험과 주행 시험 이렇게 두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먼저, 이론 시험을 쳐야 했다. 주로 사지선다형으로 교통법규나 운전수칙에 관한 문제가 나온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되면 합격이었다.
이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주행 시험을 치를수 있었다. 응시자들이 직접 차량에 탑승해서 S자형 도로, T자형 도로등을 직접 운전했다. 조금이라도 이탈하게 되면 "삑"하는 소리가 울렸고, 이 소리가 세 번이상 울리면 불합격처리가 된다.
로마서는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1장 까지는 이론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구원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래서 이 부분을 운전면허시험에 비유하자면 이론 시험에 해당된다.
12-16장까지는 주행시험에 해당된다. 이때에는 앞에서 배운 이론을 숙지해서 차량에 탑승하여 실제로 운전해야 한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성도들이 앞서 이론적으로 배웠던 구원, 자신이 받은 구원을 삶의 인생 길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었던 두 구절은 주행시험에 해당되는 첫 번째 단락이다. 그런데 이 단락이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12-16장까지의 전체 내용을 단 두 구절로 요약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두 구절은 독립된 단락이다.
오늘 우리는 이론 시험을 통과한 응시자가 차량에 탑승해서 난생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심정으로 본문 말씀을 묵상하시고 청취하시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오늘 읽었던 두 구절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다. 저에게 누군가가 로마서 전체를 단 두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라고 질문을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오늘 본문 두 구절을 추천한다.
먼저 1절을 읽어보자. 공동번역본에서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릴 영적예배입니다"라고 해석한다.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성도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구절이다.
촛점은?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사도바울은 이같은 사실을 갈라디아서1:10절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즉 성도는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는 세 가지의 유형의 사람이 있다. 자신만을 기쁘게 하는 사람, 타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는 사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
이 세 가지 유형중 우리 자신은 어디에 해당하는 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이제 2절을 읽어 보자. 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어성경이나 영어성경 모두 이 사실을 명확하게 말해준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절은 1절에서 언급했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주동사" 본받지 마라"이다. 헬) "틀에 붓지 마라"라는 의미.
"틀"? 물건을 만드는데 본이 되는 물건을 말한다. 요즘 빵 굽기를 취미로 삼는 분들이 많다. 이 분들의 집에 가 보면 마들렌을 만드는 빵틀, 파운드 케잌을 만드는 빵틀, 하나쯤 다 가지고 있다. 빵틀 모양이 빵 모양을 결정한다. 그래서 마들렌은 전부 나선형이고 파운드 케잌은 전부 사각형이다.
현재 우리 형편을 살펴보자. 현재 우리에게도 "틀"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물질주의"라는 틀이다. 우리는 물질주의라는 틀앞에 놓여 있다.
물질주의? 물질적 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철학을 말한다. 그래서 물질주의자는 물질로 인한 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정신적인 만족을 부차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형편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시간과 능력을 물질적 만족이라는 틀 속에 부어버린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요즘 사람들은 맛있는 한끼 식사를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저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 작년 여름 콩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함께 대구 침산동에 콩국수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그 더운 여름에, 여기보다 더 더운 대프리카에 콩국수 한그릇 먹자고 90을 앞둔 아버지와 함께 2시간을 달려 대구에 도착했다. 콩국수 한 그릇 비우자마자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해서 얻어낸 결과물 즉 성과나 기분을 성공의 잣대로 삼는다. 저도 이때 잠시나마 "나 같은 효자가 어디있어 콩국수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대구까지 오다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낯 부끄러운 개인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속으로 자신을 부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이 세대를 본 받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능을 부어도 아깝지 않을 만한 틀을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 길지 않는 우리 인생을 쏟아 부을 만한 틀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거나 선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사람들 처럼 살지 않기를 원한다. 세상이란 틀에 박힌 생활을 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소년이 술주정하는 아버지밑에서 자랐다고 하자. 어릴 적부터 술주정하는 아버지, 주취로 가족들을 괴롭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렇다면 이 소년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대략 두 가지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살든지/ 다른 하나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든지.
누가 선택하는가? 그 소년이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이 들어가야 할 틀은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밑에서 자란 아들이 전부 술주정뱅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틀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속으로 들어가지 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을 선택하지 않는다. 바로 이 사실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다.
2.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변화를 받아야 한다. 이 구절의 주동사는 "변화를 받다"이다. "변화"? 사물이나 사람의 외형, 성질이 달라진 상태를 말한다. "달라지는 것"이 "변화"이다. 헬) "메타모르파오"이다.
이 단어에서 생물학적인 용어 "메타모르파시스"가 파생되었다. "변태"라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나열되어 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는 것"을 변태라고 한다.
다른 또 하나는? "변태"는 본래의 상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진 상태를 말한다. 본문의 "변태"는 후자이다.
땅을 기어다니던 징그러운 애벌레가 누에고치가 된다. 그 누에고치가 시간이 지나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아름다운 나비의 모습에서 징그러운 애벌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가? 나비는 본래의 상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달라졌다.
이런 현상을 "변태", 헬라어로 "메타모르파오"라고 한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변태"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 180도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본문의 "변화"는 "변태"를 가르킨다.
쉬운 예로, 쌍거풀 시술 정도로 달라진 상태는 "메타모르파오"가 아니다. 서너 번의 성형수술로 예전의 얼굴모양과 이목구비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메타모르파오"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은 후 얼마 만큼 달라졌는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변했다는 말을 듣고 사는가? 예전에 우리를 알던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성공했다. "변태"가 된 것이다.
만약 그렇치 않았다면 좀 더 노력하셨야 한다.
그럼 이렇게 우리가 달라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2절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 보자.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했기에 변태가 되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마음"을 영어성경에서 "mind"라고 번역한다. 즉 "생각"을 가르킨다.
생각을 새롭게 해야 변화를 받는다. 생각을 새롭게 한다? 육신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롬8:6)
육신의 생각은 미움, 낙심, 분노, 좌절, 절망으로 나타난다. 육신을 심는 사람들의 텃밭에는 미움과 낙심과 분노와 좌절과 절망이라는 채소가 자란다.
여러분의 텃밭에는 어떤 채소가 자라는가? 저는 여러분의 텃밭에 가보면 여러분이 무엇을 심었는지 알 수 있다.
상추가 자리고 있다면 상추 씨를 뿌린 것이고 고추가 자라고 있다면 고추씨를 뿌린 것이다.
우리중에 누군가를 오랫동안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일과 하찮은 일에도 하늘이 꺼질 듯이 낙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늘 있어 왔던 일인데도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을 만난 것처럼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으면서도 모든 희망을 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분들은 분명히 자신의 텃밭에 육신을 심었다.
육신을 심었기에 이런 채소를 수확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영의 생각을 심은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언제나 평안하고 생명을 잉태한다.
생각을 바꾼다는 말은 다른 생각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의 생각을 하라는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고서도 여전히 모든 면에서 달라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음이 새롭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우리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결혼한다고 사람이 달라지는가? 군복무를 마치면 남성들이 달라지는가? 성공하고 승진하면 사람이 달라지는가? 혹시 결혼하고 군복무를 마치고 성공하고 승진해서 달라진 사람들을 만나보셨다면 그것은 결혼이 군복무가 성공이나 승진이 그 사람을 달라지게 만든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생각이 달라졌기에 그의 인생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 달라질려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할려면 영의 생각을 우리의 텃밭에 뿌리셔야 한다. 그래야 평안이라는 채소가 생명이라는 채소가 자란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우리를 달라지게 만든다. 저도 참 많이 변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말씀이 저를 변화시킨 것이다. 말씀을 연구하다보니 제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바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말씀이 주는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이다.
3.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한글성경에는 이 구절을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공동번역본에서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간하도록 하십시오"라고 해석.
즉 주동사가 "분별하다" "분간하다"이다.
그런데 영어번역본을 찾아보았다. KJV) "prove" "입증하다" 입증하다? 어떤 증거 따위를 내세워 증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이 구절의 참 뜻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입증하는 사람 즉 증명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린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선한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완전한 것이 무엇인지를 증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저는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입증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입증해 왔는가? 무엇을 입증하기 위해 애써 왔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 벌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운동선수는 올림픽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 보인다.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입증한다. 학생들도 시험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전부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에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혹시 우리도 세상사람들처럼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예수를 믿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하는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입증하며 산다.
이상으로 설교를 요약한다. 1절에서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세 가지로 말했다.
1. 이 세상의 틀속에 자신을 던지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틀과는 다른 틀을 선택해야 한다.
2. 변화를 받아야 한다.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변화는 말씀으로 가능하다.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달라지게 만든다.
3. 하나님의 뜻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입으로가 아닌 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입증해 보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