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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金剛)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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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빛수레 광륜 스크랩 신행이야기☆──── 귀향여로(歸鄕旅路) ③정법인연 수행의 길을 찾아 - 김영일
윤거사. 추천 0 조회 99 07.10.04 11:42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신행일기





귀향여로(歸鄕旅路)③

― 정법인연 수행(正法因緣 修行)의 길을 찾아



김영일



6. 수행자 대신 광부생활 , 매몰사고



1985년 9월에 나는 삭발 출가 대신 탄광으로 갔다. 나를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자신에 대한 절망감도 겹쳐 갈아앉고 싶었다. 강원도 탄광으로 흘러들어갔다.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다. 위장취업(중졸자로 입사)으로 강원탄광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청화큰스님의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을 사서 갖고 다녔다.

강원탄광 광산입사에 도움을 준분은 2년 먼저 탄광촌에서 자리잡고 저항의 붓으로 광부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던 황재형 화백이었다. 태백 황지거리에서 돌아다니다가 만나 믿고 소개해준 덕분에 취업을 하게된 것이다. 지하 1,500m~1,700m막장일은 극한의 상황이었다.


‘천삽 뜨고 허리 펴기’ 아마 그랬을 것이다.

‘3교대 8시간 무휴노동無休勞動

‘동발’ 여섯 자 길이, 일곱 자 길이 그 생나무를 굴 속에서 나르는 일은 내 몸의 무게로는 감내하기 힘든 노역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오면 빨래비누로 온몸을 깨끗이 씻고 탄가루 먼지를 씻어낼 막걸리와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광부들은 일과를 마치고 고통과 땀을 막걸리와 돼지고기로 씻어낸다.

이런 나는 출가자의 심정으로 지냈다.

고통스런 상황을 ‘염불심’으로 위로했다.

검은 땅 검은 물의 태백. 일을 마치고 길거리를 지나 한적한 산길로 접어들면 그 언저리에 절이 있었고 발길이 머물고 불상에 절을 하고 돌아왔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아마 이때는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고 있었다.

내가 내발로 들어온 노동의 현장에서 버티기 위하여 인내를 새기고 설움을 참았다.

그러던 어느날 1986년 1월 어느날 막장작업을 하던 선산부의 곡괭이에 버팀목이 쓰러지며 탄이 쏟아졌다. 막장이 무너졌다. 굴속에서 피할 순간을 주지않고 탄더미는 쏟아졌다. 뒤에서 일하던 후산부인 나와 ㅈ 씨가 묻혔다. 선산부는 재빨리 빠져나갔다.


ㅈ 씨는 바로 누운 채로, 나는 엎어진 채로 묻혔다.

죽음이 코앞에 와 있음을 느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아 이렇게 서럽게 죽는구나’

‘아무런 일도 못하고 이렇게 탄에 묻혀 탄광 막장에서 죽는구나‘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는 하염없이 관세음보살을 염송했다.

‘저를 보살펴 주소서

나무관세음보살...’


천만 다행으로 서로가 반대로 눕고 엎어져서 내팔은 가슴에 포개져서 나도 숨쉴고 있고 ㅈ 씨와 둘은 숨쉴 수 있었다.

긴급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눈앞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목 뒤에서 서서히 쌓이고 있는 탄가루가 머리를 다 덮치면 나와 ㅈ 씨는 그대로 묻히는 것이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 두어시간 작업으로 조금씩 천정의 탄을 막고 구조작업을 해서 빼냈다. 20년 이상 일한 선배광부들의 작업으로 구조된 것이다.





7. 하향취업, 결혼,  어린딸의 病苦



탄광 사고에서 빠져나와 고향에 돌아왔다.  들판 경지정리작업현장에서 아버님과 같이 삽일을 했다. 잠시 머물다  누님한테 여비를 빌어 서울로 올라왔다. 생활을 유지하고 나도 보통사람들처럼 생활해야했다.  ‘나도 그들처럼 살자’ 부끄러운 자리지만 취업시험을 치르고 합격했다. 고향 벗 신순일의 도움, 신현산 삼촌의 도움이 컸다. 걱정하는 부모님이 가슴에 저려왔기에 부모님께 불효를 면하자는 각오로 눈물겨운 일자리를 잡았다.

1986년 12월에 양양이씨와 첫선을 보고 나서 이듬해 1987년3월22일에 결혼을 했다. 공자님의 ‘三十而立’이 앞길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1987년12월26일 이쁜 딸-소담-을 낳고 너무나 신비로운 생명탄생에 경탄했다. 이후 쉬는 날이면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조계사에 들렀다. 혼자 갈 때도 있었다. 부처님 오신날이면 등을 달고 야단법석에 동참했다.


자식사랑과 재롱과 기쁨을 누릴즈음 어린 딸은 병을 얻어 갑작스레 서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어 병원 응급실을 거쳐 신촌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로 ‘감금’되었다.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응급실-일반병실-중환자실-재활원등 159일 병원에서 지낸 아픔을 겪었다. 1990년 네 살때 봄이었다.

1990년3월20일.

원인도 모르고 치료제도 없는 병이라고 했다. ‘길리안바레증후군’

‘다발성신경염’이라 했다. 놀랍고 슬픈 와중에 그나마 사계의 권위있는 고창준박사를 만나서 좀 위안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막막했다. 입원 10일째 네 살 아이를 중환자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호흡곤란으로 위험한 지경에 처할 지 모르니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하루 2회 면회가 허용되고 일주일에 한두명 환자가 죽어 나가는 곳, 중환자실이었다.

아내와 나는 회사에서 퇴근하면 병원으로 출근을 하였다.


딸 소담이 입원13일째, 산소마스크 쓴지 3일째 되는 날 4월1일 주안 용화사에 갔다.

새벽4시에 일어나 회진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였다.

“선생님 우리애 어떻습니까?”

두려운 마음에 아내의 걱정스런 질문과 무슨 좋은 답을 바랐지만

“그저 그렇습니다. 앞으로 예측할 수 있어야지요”

예측도 할 수 없단다.

‘어서 저 산소마스크를 빼야 할텐데...’

결혼 전에 자주 들른 용화선원. 이제 어린 딸아이의 병고를 치료하고자 발원기도차 방문했다. 용화선원 정기법회 있는 날이다. 너른 법당 가득 불자대중들이 모였다.

전강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듣고난 뒤 송담 선원장스님의 법문도 들었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소담이속완쾌”

하염없이 절하고 절했다.

“우리 소담이를 살려주세요”

“어서 중환자실에서 나오게 해주세요” 부처님께 빌었다.

울면서 절하고 절했다. 법회 마칠때까지 절했다.

‘스님, 저의 화두는 소담이 완쾌입니다’

어린 딸을 위하여 쾌유기도를 접수하고 용화사를 나왔다.


친척가족중 기독교신자인분은 그 나름으로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일반병실에서 재활원으로 회복되었다. 159일간 입원했다.

5개월 여 기간 고통과 희망을 보았다. 쓰러져서 걸을 수 있는 재활에 제불보살님의 가피력을 얻었다고 믿는다.

너무나 고마운 딸. 모든분들에게 감사했다.

결혼을 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결혼해서? 아니면 그간 전생의 죄업에 대한 벌인가? 고통의 기간이며 여러 가지 참회의 기간이며 감사의 기간이었다.


이제 딸아이가 여고 3학년 수능수험준비에 고생하고 있다. 1992년1월12일에 아들-한창-을 낳아 이제 중2학년이다.


1997년에는 쓰라린 상처를 받았다. 처음부터 사심없이 노조간부로 추천되어 수행하였으나 마지막 임기 재선에서 순조로이 후배들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좌절됐다. 나의 무능과 피로로 인한 당연한 귀결로 자책했지만 회사측의 집요한 비양심적인 매수공작에 넘어진 것을 알고는 세상사 부정의 판임을 절감했다. 더 앙칼지고 악랄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 당했으니 어쩌랴? 중생심의 교란속에서 언제까지 헤매야 하나? 슬펐다. 피해의식과 분심을 삭이고 있었다.


‘선농일여禪農一如’의 일상을 실현하고 싶어서 농사농자에 미치고 있었다. 유기농사를 짓는 어진 농부들을 만나고 다녔다. 안정되게 땅에 자리잡은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언제까지 방황해야 하는가?

남원 실상사 도법道法스님의 말씀도 들었다. 전국 귀농운동 본부 강좌에서 뵈었다. 논 가까이 자리한 남원 실상사는 특이한 위치다. 농사짓는 분들과 가장 가까운 절이다.

1999년3월11일. 가늠할 수 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다가 헤아릴 수 없는 초월법계인지 화장세계인지 극락세계인지 모를, 어둠을 뚫고 시방세계 확철개오한 경지가 꿈속에서 드러났다. 이렇게 그 경계를 그려보았다.

‘重抑暗長苦 一光破天闊     

 夢裏顯華藏 如是卽淨土’






8. 정법인연 안심입법(正法因緣 安心立法):그리운 법향(法香)



2004년 10월 30일.

나는 광륜사에 처음 참례했다. 초등동창인 윤금자의 권유로 오게 되었다. 친구는 능인선원에 적을 두고 수행해왔다.

너무나 늦게 왔다. 그리운 고향 그리운 정법 문하에. 나는 지각遲覺생이다. 그간 한두번 도봉산을 오르내렸을텐데 2003년에 도량을 새로 지은 걸 모르고 있었으니, 오가는 길을 지나쳤으니 어리석은 나를 책한다. 방탕자의 귀향歸鄕인가. 말로만 불자라고 하고 제대로 수행도 못한 나 아닌가.

이제 천행으로 불법을, 정법을 만나 천행으로 정통조사법문을 만나게 되었으니 행운이 아닌가!  이제라도 정법수행을 하자. 제대로 수행을 하자. 다짐했다.

그후 토요일 정진에 동참하고 있다. 다른 장애없이 꼭 동참 정진하려고 노력한다.


이제 새삼 청화큰스님의 친견 때 하신 말씀 “중노릇 힘든디”를 되새긴다. 이제 사무치게 중노릇하고픈 생각이 든다. 아니 이제 내가 출가승같이 살고 싶다.

이제 무시수행, 무간수행에 들어섰다. 안심입명처를 찾았다. 안심법문을 따라 상행불행常行佛行하면 된다.


늦게나마 청화큰스님의 제자임을 느낀다. 생전에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법담을 듣진 못햇지만 늘 그리움으로 멀리 계시지만 법어집 ‘순간에서 영원으로’를 정독하고 ‘스승’으로 여기면서 살아왔다. 큰스님으로부터 법명도 받지 못했지만.


철저히 쓰러진 2004년은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철저히 낮게 내려와 가눌 수 없는 육신의 허망함을 제대로 보고, 안보이던 부처님은혜도 보이고, 안보이던 법문도 보이고, 안보이던 허공계도 보이고, 안보이던 사랑도 느꼈다.

이젠 슬퍼할 무엇도 없고 집착할 무엇도 없음을 느꼈다.

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착도 놓았다. 오면 가고 가면 오고...

무량수경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절절한 구절이다.


設滿世界火  온세계 불길 가득해도

必過要聞法  반드시 뚫고 나가 법문을 듣고

會當成佛道  모두가 마땅히 부처가 되어

廣濟生死流  생사에 헤매는 이 구제하여라


나는 토요정진 후 일요일 밤을 지난, 2004년 11월 15일 새벽, 꿈에 큰스님을 친견했다.


너무도 맑은 만남

너무도 환한 만남

너무도 편안한 만남이어서


깨고나서 감사의 3배를 드렸다

아, 저에게 큰스님이 오시다니

이제야 비로소 큰스님의 제자가 된 듯하다


昨夜說法懇甘聽  지난밤 스님의 녹음설법을 달게 듣고

淸華禪師夢親見  새벽꿈에 청화큰스님 뵈었네

惺晨輕起謝恩訓  가쁜히 일어나 벅찬 감회로 감사하나니

三界超脫皆成勸  누구나 다 수행으로 삼계 훌쩍 넘으라 하셨으니

款筆談話殊因緣  서필 담화 주시니 이 인연 어찌 각별하지 않으랴

今日?始弟廓然  늦게 오늘에야 아, 비로소 큰스님의 제자가 된 듯 하구나

常念佛是最上禪  부처님을 여의지않는 일상·일행삼매가 바로 최상승선이네

喜勇淨行竟證顯  힘써 정진하고 자성을 활연히 깨쳐 마침내 증득할지니






9. 상행불행(常行佛行):성불도생(成佛度生)의 목표를 향하여




다생겁래에 쌓인 찌꺼기, 숙업을 얼마나 씻어내야 할까?

언제쯤이나 환히 청정적광을 늘 안을까?


한때 일시적인 희열경을 본 적이 있기도 하다.

가끔 공부중에 좋은 경계를 보기도 하지만 난 아직 오욕락에서 완전하 자유롭지 못하니 아직 한량없이 공부해야 한다.


‘구구순숙 장양성태久久純熟 長養聖胎’할 일이다.



이렇게 되려면

‘보보성성염념유재 아미타불步步聲聲念念唯在 阿彌陀佛’(반주삼매경)

-걸음걸음마다 아미타부처님 늘 안여의고,


‘염념상속念念相續’ 하다보면 ‘필경위증畢竟爲證

- 부처님생각 이어가면 마침내 증명하리라


장사경잠(長沙景岑?~868)선사의 게송은 수행과 보살도의 한량없음을 일깨워준다.


백척간두좌저인(百尺竿頭坐底人)

     백척간두 꼭대기에 주저앉은 사람아

수연득입미위진(雖然得入未爲眞)

     비록 도에 드나 참다움은 못되나니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더 내딛어야

시방세계시전신(十方世界是全身)

     시방세계 그대로 부처님의 온몸일세



새벽4시,


변함없이 아침 저녁 108배를 하면서 참회기도 발원을 한다. 의상조사 법성게를 독송하고 금타화상의 보리방편문과 청화큰스님의 발원문을 염송한다.


늘 장애 없이 기도와 염불 독송이 일체시 일체처에서 성취되길 기원한다. 숙세의 업장을 다 씻어낼 때까지...

영생해탈의 지름길은 알았다. 해탈의 티켓은 끊었다.

이제 타고 가면 된다. 철저히 계를 지키며 무애행을 할 때까지.

오욕락을 덜어내고 인계생정 인정생혜因戒生定 因定生慧하며 진정한 고향에 이를 때까지 가야하리라.

부처님 정법을 만나 공부하게 되었으니 그 크고 깊은 인연에 감사한 마음으로 정진하고 싶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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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0.04 14:14

    첫댓글 게으름과 수행정진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요즘의 제게....무념님의 그림자 드리워...겸손과 하심과 철저한 정진, 또 정진의 길을 열어 보여 주시는 아미타불....가슴 깊이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 07.10.05 18:45

    _()_감사드립니다.나무아미타불.

  • 07.10.07 16:18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 07.12.23 23:49

    어머나 ! 무념님이 셨군요 저도 함께 그렇게 가고 싶습니다 절절이 사무처오는 내용들이 었습니다 저도 아침에 108배 법성게 보리방편문 금강경 하고 있는데.. 좋은 말씀 감사히 공양받았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08.09.30 02:14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_()()_

  • 09.01.11 19:25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11.03.01 19:28

    깨달음의 부처되소서. 고통없는 정토의 나라에 임하소서...나무관세음보살~~

  • 12.08.20 08:39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13.11.18 17:08

    성불하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17.11.10 20:07

    성불이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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