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수선화 명소 공곶이를 가다
언제던가 거제에 수선화를 가꾸는 고집스런 농부가 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나이가 많으신데 오로지 한길 꽃만, 그것도 수선화를 열심히 가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얼핏 그 노란 수선화 농장 사진도 소개되고 있었다. 이런 소문이면 언젠가는 명소가 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KBS 다큐 프로를 통해 생생하게 소개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프로도 몇 년 전에 나간 것으로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영상으로 볼 때 벌써 주인공 강명식 어르신은 아흔을 넘었고 그 부인 지상악 할머니도 여든 후반의 나이로 두 사람 다 노쇠하여 힘든 일을 하기에는 힘겨워 보였다. 그러나 화면에 보면 강 노인은 꽃 가꾸기에 보통 열성이 아니었고 부인 또한 남편을 도와 부창부수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한 번 구경을 가야하겠다고 벼르다가 갑자기 행동에 옮겼다. 가서 보니 강노인은 벌써 작년 5월에 타계하였고 그 부인도 이미 타계한 모양으로 지금은 이 명소를 거제시에서 관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무튼 궁금한 것은 천천히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그 노랗게 핀 수선화를 만나고 싶었다. 거제 일운면 예구리의 인근으로 이 마을에서 공곶이는 동남쪽으로 직선거리로 5백 여 미터이나 좀 가까운 곳으로 접근하려면 경사가 심한 비탈길을 타야하는 난관이 있었고 아래 해변으로 가면 완만한 길이었으나 둘러가는 길이어서 1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이상하게 그 어디에도 거리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으나 공곶이는 이미 유명 고유명사로 알려진 곳이었다. 제1회 공곶이 수선화축제가 3월 16-17일 양일간 있었다고 하였다. 그 양일은 관람객이 넘쳐 주차를 할 수 없어 근처 와현과 멀리는 지세포에 차를 대고 거제시가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다행이 행사가 끝난 이틀 후 방문이어서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았다. 우선 수선화 꽃밭만 소개하기로 한다.
공곶이 설명(공곶이 입구 게시)
공곶이는 역사적으로 1868년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천주교 신자 윤사우 일가의 은신처였으며, 천주교 박해 때 윤 봉문 형제가 이곳에 숨어 살면서 이 마을 주 관옥 씨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도하게 되었고 그 후 진주의 천주교 신자인 강 명식씨가 이곳과 인연이 되어 1957년 예구마을에 살던 지 상악 씨와 결혼한 뒤 1968년 공곶이에 터를 잡고 밭을 일구어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가파르고 척박한 산비탈이라 농기계는 아예 이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호미와 삽 곡괭이로 손수 농원을 일구었다. 원래 노부부는 5년동안 약 4킬로미터 길이에 2000그루 감귤나무를 김고 가꾸었으나 1976년 한파로 모두 얼어죽어 그 자리에 동백을 심는 아픔을 간작한 곳이기도 하다. 교통이 불편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잘 알려지지 않다가 2005년 <종려나무 숲> 영화 촬영지고 소개되면서 광광명소가 되었다. 겨울철엔 동백꽃으로 물들고 3-4월엔 수선화와 설유화가 만개하여 온통 꽃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라른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나르시스는 연못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물에 빠져죽었는데 그 속에서 수선화가 피었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은 ‘자기주의’ 또는 ‘자기애’이며 여러해 살이 풀로 설중화라고도 한다. 수선화의 생즙은 부스럼을 치료하고 꽃은 향유를 만들어 풍을 제거하며 비늘 줄기는 거담, 백일해 등에 약용으로 쓰인다.
*이 안내문은 여러모로 부족해 보이나 앞으로 보완될 것으로 기대한다.
첫댓글
내가 거기에 가 본지가 이십년이 더 되었네요. 돌 수집하러 갔었지요, 아마 지금은 많이 변했을 겁니다. 그곳은 이름만 들어도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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