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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1/17.주일설교}
*2016년에는 저 천국행버스를 꼭 타야하는데/사 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가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장 6-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벌써 새해 첫달의 세번째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구정명절도 보름정도 남았습니만, 갑자기 며칠 전부터 급격히 추워졌습니다. 이번주부터 날이 더 추워진다고 합니다. 오가시는 발길에 미끄럼을 조심하시고 감기에도 조심하세요.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육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도 우리들의 의무이며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쉽게 돈벌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그래서 도박이 법으로 보호를 받는 미국의 라스베가스나 마카오 같은 곳에는 도박 꾼들이 세계 각처에서 몰려와 밥새도록 불야성을 이룬다고 합니다.
도박은 분명히 범죄입니다. 범죄라기보다는 자신을 망가지게 하고 가정을 파탄으로 이끄는 길이기도 합니다. 오직하면 도박에 미치면 마누라와 자식까지도 팔아서 노름을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처음 도박을 시작할 때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자신과 가정 그리고 자녀 형제들까지 빛더미 속으로 몰고 갑니다. 그리고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저주하며 이를 갑니다.
지난해말에도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들이 마카오에 가서 도박을 하고 온 나라를 떠들석하게 하였지요? 그래도 그 선수들은 얼마 안되는 금액이었습니다.
7-8년 전인가 우리나라의 구로동에 있는 큰 교회의 이 모 목사라는 양반이 미국의 라스베가스에서 도박을 하였던 내용이 방송을 탔던 일도 여러분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도박은 이처럼 순식간에 사람을 악한 인간으로 변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 뿐입니까? 언제인가, P.D수첩에서 방영된 전주 모 통합측 교회의 사모가 교회의 학생들을 시켜서 밤마다 인삼 밭을 털고 판매조직책까지 갗춘 집단적인 범죄를 하였다고 하였을 때 세상 사람들(믿지않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손가락질을 하신지 아십니까?
이런 일이 한번씩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변명의 말도 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왜 그런 사람들을 목사를 만들고 사모를 삼았느냐고, 어찌하여 일선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순종하는 목회자와 진실한 성도들에게 핍박을 받게 하느냐고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어쩌지를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6절의 말씀,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가 여호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두루 찾아다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을 영어로는 ‘find’가 아니라, ‘추구한다, 찾는다’는 뜻을 가진 'seek'를 씁니다. 본문 6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씀의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주를 불러야 합니다. 주를 부른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어려워합니다. 대표기도가 어려워서 직분을 맡지 않으려는 분도 계십니다. 기도를 잘하려면 성경적인 지식도 많아야 되고 종교적인 언어도 잘 구사해야 되며 말주변도 좋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하면 많은 장애물이 내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을 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기도하라’는 종교적인 용어 대신에 ‘부르라’는 쉽고 단순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를 부르라’(Call upon Him). 부르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맨 처음 언어를 배울 때 ‘엄마’를 부릅니다. 그 다음은 ‘아빠’를 부릅니다. 학생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선생님’하고 부르면 됩니다. 앞에 가는 남자가 누군지 모르면 ‘아저씨’하고 부르고, 여자가 누군지 모르면 ‘아주머니’하고 부르면 됩니다. 식당에서 김치를 더 시키려면 ‘웨이터’를 부르면 됩니다. 이처럼 부르는 일은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부르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날 도와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날 용서해 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날 구원해 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내가 피곤하니 힘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내가 지쳤으니 날 새롭게 해 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내 갈 길을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여호와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이고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으로 인정받는 이어령 씨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어령 씨의 딸 미나씨는 국제변호사입니다. 미나씨는 1992년에 갑상선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모두 재발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미나 씨의 아들도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로 인해 유치원에 가서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미나 씨는 점차 시력을 상실하여 거의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어령 씨가 하와이에 살고 있는 딸을 방문하고 자기가 도와줄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어령 씨는 하와이에 있는 작은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미나에게서 빛을 거둬가지 않으신다면 나의 남은 삶은 주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이어령 씨가 이 기도를 한 이후에 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망막이 정상으로 되돌아와서 시력이 회복된 것입니다. 이 일후에 이어령 씨는 딸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지식도 돈도 너를 구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네게 빛을 주셨구나. 네가 시력을 잃었을 때에 본 빛을 나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렴” 이런 고백을 한 후로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신앙을 간증하는 간증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만나주기고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씀의 두 번째 의미는 악한 길과 불의한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 7절 말씀에는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찾으며 동시에 악을 행하고, 불의한 생각을 갖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남자가 조강지처를 버리고 첩을 얻어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조강지처를 찾아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에게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본처가 물었습니다.
“그 첩과는 헤어졌습니까?”
그러자 남자가
“아니오, 첩하고도 계속 살아야지.”라고 대답하면 본처의 반응은 뻔합니다.
“나를 찾으려면 첩과 헤어지세요.”
본처를 찾을 때는 첩을 버려야지, 본처를 찾으면서 첩과 계속 동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려면 불의한 길과 악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던 악한 예를 하나 보여줍니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사 8:19)" 마술사나 신접한 자들은 스스로를 죽은 자와 교통하는 ‘영매’라고 자처를 합니다. 진짜 그렇지는 않는데 죽은 자와 교통하는 영매라고 자처하면서 속살거리고 지절거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살거리거나 지절거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들으라’고 선포하십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의사소통 방식은 눈짓하는 것과 발짓하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밥 먹는데 발짓하면서 의사소통을 하거나 손으로 가리어 사람들에게 ‘속닥속닥’하는 의사소통 방식도 싫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접한 자나 마술사, 또는 사단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말씀을 공포하시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때는 얼굴과 눈을 보면서 정상적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속살거리고 지절거리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술사나 영매들은 속살거립니다. 죽은 자의 영매로 자처하는 자들에게 산자의 일을 구하는 것은 악한 길입니다. 귀신을 숭배하고 점치는 것도 악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 하나님께 구하라, 하나님을 찾으라 이런 사악한 길은 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널리 용서하신다’고 하십니다. 점치러 다니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은 총선을 앞둔 때이므로 사람들마다 점쟁이를 찾아가서 “이 후보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저 후보 되겠습니까? 이 후보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저 후보의 약점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점쟁이 들이 대목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한 길입니다. 우리는 산 자의 일을 위하여 죽은 자의 영매로 자처하는 자들에게 물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살아있을 때에도 못한 일을 죽어서 할 수는 없습니다. 산자의 일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악한 길을 버리고 불의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두 번째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를 찾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31장 1절은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3절은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신이나 영이 아닌 존재를 찾아서 도와달라고 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는 말씀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를 앙모하고 그분을 찾아서 도움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위기, 가정적인 위기. 개인 영혼의 위기, 그리고 교회적인 위기에 신도, 영도 아닌 존재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고 거룩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찾는 세 번째 단계입니다.
고아의 아버지이자 기도의 대가로 불리는 영국의 죠지 뮬러는 “내가 평생 말씀과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구했을 때는 언제나 성공했다. 그러나 마음의 정직성이 결여되어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를 잃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닌 사람들의 충고를 의존했을 때는 모두 심각한 실패를 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를 찾는 것은 악한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삶은 일시적인 재미는 있지만 그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입니다. 영국의 케임부리지 대학의 교수였던 루이스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과 현대교인들을 (엄청난 이혼)이라는 책에서 예리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지옥의 거리에는 날마다 비가오고 언제나 어두워서 하루도 살고싶지 않답니다.
그러나 지옥에도 빛나는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은 마련하셨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정기버스가 있습니다. 이 버스는 시간마다 떠나기 때문에 기회는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천국행 버스를 타는 사람은 매우적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버스시간에 맞추어 정거장에 나옵니다.
요금은 무료이기에 누구나 탈 수 있지만 그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 버스를 타면 못할 일이 너무많아! 남 흉보는 재미도 없어지고,약간의 눈속임으로 사람의 박수를 받으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재미도 없고, 자랑하고 으시댈 수도 없는 곳을 무엇 때문에 가는가? 더구나 저곳에는 돈의 위력도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이혼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헤어져 사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한 주일에 한 번쯤 정거장(교회)에 나왓다가도 천국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죄악의 길을 반복하여 갑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천국행 정기버스의 운행이 중지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천국행 버스가 엄춰버리면 그때는 아무리 그 버스를 타고싶어도 늦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들이 이설교 글이라도 읽고 천국행 버스를 타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람에게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아야 천국행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2016년의 첫달인 지금 바로 오늘의 이 말씀으로 믿음의 성장이 한 발 더 앞서는 성도들이 되시어서 천국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고 꼭 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후 2016년 1월 17일의 주일말씀
박종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