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피
이윤학
아름다운 동산이었던 자리 파헤쳐져 거대한 석축
옹벽이 둘러쳐졌다 오솔길의 산밤나무 굴참나무 오
동나무 소나무 산벚나무 아침안개 속으로 들어가 나
오지 못했다 결혼한 아들 내외와 참초하러 온 그는
망연자실이었다 일찍 여윈 부모님 합장한 산소를 잃
어버린 것이었다 옹벽 한참 아래 살던 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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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쳤다 우거진 풀숲을 헤치고 석축 옹벽 앞에 다
다라 예초기 시동을 걸었다 두툼한 풀들이 눕고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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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류 스티로폼 알갱이들이 날았다 추석 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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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를 조수로 둔 어머니 사랑방 아궁이 앞에서 철
질을 하였다 그날은 자물쇠 채워진 자바라TV를 보
았다 아름다운 동산에 딸린 집과 우물과 밤나무와
토끼풀과 얼마 전에 뗏장을 입은 산소가 있었다 아
버지가 율피를 어질러놓으면 어머니는 항아리에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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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석축 옹벽과 한참 떨어져 있었다 발효를 건너뛴
율피차 떨떠름하여 하늘에 눈물만 그득 하였다
*혼줄의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