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헌장(陳獻章, 1428-1500) 묘소
2024년 6월 28일 광동성 진헌장 묘소를 찾아가서 주위 자연환경을 살펴보고 참배하였습니다. 주변 자연환경은 산이 낮고 평탄하고 얕은 야산에 묘지가 있습니다. 묘소는 크게 만들지 않았고 진헌장 성격처럼 소박합니다. 후손들이 묘지를 깨끗하게 정비하였다고 안내판에 써놓았습니다. 누구나 찾아가기 쉽습니다.
진헌장(1428-1500)은 명대 학술사에서 심학을 일으킨 학자로서 높이 평가합니다. 진헌장은 적어도 10년 이상 정좌공부를 하여 본체를 보는 체험을 거쳤습니다. 37살에 본체를 체험하고 44살에 소위 청호공안( 淸湖功案)을 제시하여 수양공부 종지를 공개하여 당시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명대 학술의 전환과정에서 주목할 학자 2명이 있는데 진헌장(1428-1500)과 가깝게 지냈던 장무(章懋, 號楓山, 1436-1521)입니다. 진헌장은 심학을 일으켰고 장무는 정주학을 부흥시켰습니다. 사실상 명대 수정 주자학은 장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진헌장의 과거시험 경력과 수양공부 과정 및 여러 학술주장을 살펴보면 특히 입성(立誠) 종지는 아주 중요합니다. 유학과 성리학에서 성(誠)이 중요하기에 성(誠)을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사실상 왕양명(1472-1529)도 44살에 입지(立志)공부를 내세우기 이전에는 진헌장처럼 입성공부를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정좌를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왕양명은 진헌장 공부가 조금 어설프다고 평론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진헌장이 유식불교 지식이 부족하였다는 것을 지적한 정도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