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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세상 보기] 사형제 찬성, 반대 아직도 고민하시나요?
“신부님! 마지막 코스에서 만나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하셨지요?
솔직히 저도 스산한 형장에서 신부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거든요. 음산한 죽음의 자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한다면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한 달 뒤 미사를 약속하고 헤어지는 발걸음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운데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라니요!”(사형수 형제의 편지글 중에서)
12월이 되면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항상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다.
7년의 보좌신부를 마치고 교정사목위원회에 발령을 받고 교도소를 다니며 수용자들을 만나고 미사를 봉헌한지 한 달 정도 되는 날이었습니다. 막 퇴근하려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사형집행이 있습니다. 아침 9시까지 구치소로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비밀로 해주십시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사형집행!!!
이제 교정사목에 온지 겨우 한 달 되는데… 일반 수용자들을 만나는 것도 어색하고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형수를 사형집행장에서… 정신을 차리고 위원장 신부님과 밤늦게 연락이 돼서 위원장 신부님이 집행되는 사형수를 위해 함께 하시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사형수와 사형집행, 사형폐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사형수와 사형집행이라는 것이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다음 날 총 23명의 사형수가 5곳의 사형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위원장 신부님은 하루종일 사형수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그것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1997년 12월30일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정권을 인수인계하던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다음날 2명의 사형수를 위한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사형집행장에 안 들어갔지만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심신이 피폐해지고, 제 감정을 어떻게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집행형장에 함께 있던 신부님은 어떠하셨을까.
다음해 4월에 처음으로 사형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사형수를 만나러 가던 날은 긴장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긴장감과 두려움은 직접 사형수들을 만나자 마자 사라졌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최고수(사형수를 최고의 형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최고수라고 부름)들을 보면서 ‘아! 우리와 똑같네. 사형수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형제도는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반 생명의 문화
교정사목을 하기 전에 사형제도에 대한 깊은 고민과 관심이 없었습니다. 빈민과 교정사목을 함께 하시던 존경하던 선배 신부님이 사형수에 대한 얘기를 하셨지만 관심 없이 흘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형집행형장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집행이라는 것이 눈앞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사형수들을 만나 그들이 겪었던 삶의 애환과 아픔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참회하면서 매일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보면서 사형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왜 사형수들을 오랫동안 만났고 함께 했던 신부님, 스님, 목사님과 변호사님들이 중심이 되어 사형폐지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형집행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교정사목을 13년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계속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다면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 역시 가톨릭출판사 사장과 교정사목을 하실 때 사형집행에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집행형장에서 사형대가 부러져 사형수가 두 번 교수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가 당시 젊은 김수환 신부에게 태연하게 다가와 “제가 지금 제일 죽기 좋은 때입니다. 모든 준비가 다 돼 있습니다.”라며 위로하더랍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형수 미사를 요청할 때마다 마다하지 않으시고 사형수를 찾아가 미사를 봉헌해 주시며 사형폐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셨습니다.
추기경은 사형폐지에 대한 반대의견이 많은 시절에도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의 찬반 논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이때 생명 존중 사상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면 사형 제도를 폐지할 수 있을 것”라며 사형폐지를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사형제도를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반생명의 문화”이며,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흉악범을 엄벌에 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생명만큼은 살려둔 채 용서하고 화해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형제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공식 가르침은 사형제도에 반대하면서도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미 매년 11월30일을 사형 반대의 날로 선포하고, ‘시티 오브 라이트’(City of Light) 운동을 벌여, 이 날이 되면 사형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콜로세움에 불을 밝혔고, 기회 있을 때마다 사형폐지에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형폐지 운동은 생명운동
사형폐지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8월2일 사형을 조건부 허용하던 기존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67항을 “사형은 용인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개정할 것을 지시하며 사형반대로 입장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공정한 절차를 거친 사법부의 권한으로 행사된 사형구형은 몇몇 중대한 범죄에 대한 적합한 대응으로, 또한 그것이 극단적이라 하더라도 공동선의 보호를 위해 동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심각한 범죄를 범한 후에도 인간의 존엄은 침해할 수 없다는 인식이 더욱 생명력을 지닙니다…. 교회는 복음에 비추어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성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전 세계의 사형제 폐지를 위한 결의를 통해 가르침을 살아갑니다.”
교회가 사형폐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생명권과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형제 폐지는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운동입니다. 어릴 때부터 잘못한 사람은 죽여도 괜찮다는 교육을 받으면 자신의 생각과 가치, 이념이 다른 사람들은 죽어도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생명 유무를 판단한다면 그보다 무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어릴 때부터 잘못한 사람은 벌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의 생명만큼은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가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이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생명까지도 존중되고 지켜지는 사회가 된다면 국민 모두가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고 보호하는 문화가 싹트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형폐지운동은 사형수의 형 집행을 막자는 것을 뛰어넘어 이 사회에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생명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세상 보기] 사회적 참사와 공동체
개인의 슬픔과 고통, 공동체의 무관심
“사회적 참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사’란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개인이 겪게 되는 고통과 슬픔이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사실 온 세상이 한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그분의 뜻에 의해 질서 지어진 것이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는 참사는 없습니다. 모두가 사회적 참사가 될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지역과 공동체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 참사인 경우, 다시 말해서 영향이 큰 참사인 경우에 사회적 참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단지 비극적인 일을 당한 당사자 중심으로만이 아니라 더 큰 공동체의 것으로 판단될 때 그 사회는 이 참사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공동체의 아픔과 고통으로 받아들여 이를 함께 처리하고 치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회적 참사를 겪어왔습니다. 특별히 1990년대 이후 들어온 것만 해도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아현동 가스폭발, 마우나 리조트 붕괴,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를 겪었습니다. 참사가 일어나면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히 “왜?”였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궁금함 뒤에는 불안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알아야 다음에 일어날 참사를 막을 수 있는데 과거에는 단순히 원인만을 밝히는데 급급했습니다. 다리가 무너진 것은 하중을 견디지 못해서, 불이 난 것은 방화로, 가스폭발은 압력이 조절되지 않아서….. 이런 식으로 단편적인 원인 규명에만 머물러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까지의 모든 연결 고리를 풀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회사나 기관이 적당한 보상을 통하여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사회적 참사는 그 해결과 치유 또한 사회적인 방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데 사회적으로 대처하기는커녕 개별적으로 끝내버리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참사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견딜 수 없는 무게를 용납하고, 버틸 수 없는 한계를 묵인하고,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것을 개별적인 책임과 처리로 해결했기에 사회적인 영향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영향이 없으면 변화도 없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대형 참사가 일어난 뒤 원인들을 조목조목 따지지만 얼마 되지 않아 똑같은 원인들로 인해 반복되는 다른 사고가 이미 준비되고 있습니다.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가지고 있듯이 모든 사회적 참사에는 공동체에 그 사회적 원인이 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예수님의 대처법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참사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그 원인을 찾아내실까요?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 13, 2-5)
예수님께서는 사고 당사자에서만, 피해 당사자에서만 그 원인을 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공동체의 일로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 공동체에서 불법과 탈법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다른 이들의 공익을 무시하여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공동체의 범죄라며 개인에 국한시키지 않고 세상의 일로 들어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모든 사건을 바라보실 때 온 백성과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어느 하나의 아픔에 국한하지 않으시고 하나의 아픔에서 모두의 고통을 보고 계십니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볼 때 공감은 이루어집니다. 개별화하지 않고 사회화하는 것입니다. 묻지 않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확산시키십니다. 모두의 문제가 되면 중하게 여기게 되고, 중하게 여기게 되면 실질적인 해결의 수순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고통과 슬픔은 예방 가능한 미래의 신호등이 되는 것입니다.
잠자는 공동체를 일깨우는 외침들
손목에 노란 팔찌를,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벌써 한참 전부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귀에 못이 박혔습니다. “아직도?”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 6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티를 내냐고 말입니다. 사실 세월호가 똑같은 조건에서 오늘 밤 출항한다면 똑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거대한 해양 참사가 일어났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여태껏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똑같은 조건이라면 어느 때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에 대비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시된 것은 돈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특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피해자 가족들은 이 모든 것보다 진상규명과 앞으로 같은 참사가 없기를 바라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미련하게 보이고 고집스럽게 보이지만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 전국 각지에서 “부모이기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는 글귀가 새겨진 노란 옷을 입고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아픔을 공동체의 문제로, 사회적 쇄신의 열쇠로 삼은 것입니다.
피해자 가족들의 이런 활동과 같은 희생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고자 모든 것을 공동체적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시민들과의 헌신이 맞물려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고 말입니다.
몸을 이루는 지체들
사도 바오로의 결정적인 말씀들이 우리 사회를 깨웠으면 좋겠습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코린토 전서 12장의 말씀들처럼 우리 모두가 가로막고 있는 모든 벽을 부수어 한 몸으로 살아갈 때 우리가 겪은 사회적 참사는 우리를 안전하게 이끄는 이정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으로 세상 보기] 밥줄
아침 출근길에 상쾌한 기운을 맡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청와대에서 경복궁으로 내려가는 길가에 허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국민 먹거리의 위기·농정 적폐 청산과 대개혁 촉구”를 요구하는 농민들의 단식농성장입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농업의 문제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해마다 수확의 때가 되면 기쁨을 누려야 할 농부들의 시름은 깊어만 갑니다. 봄이 되면 씨를 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스팔트 농사라는 상경투쟁이 매년 있었습니다. 3년 전 이맘때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농사를 짓던 백남기 임마누엘 농민이 그 처절한 호소를 온 몸으로 하다가 물대포의 물줄기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져 1년에 가까운 투병 끝에 재작년 9월25일 숨을 거두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농가인구, 즉 농민들의 숫자가 감소함에 따라 그 목소리까지도 작아져서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농민들의 요구에 ‘국민 먹거리의 위기’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농민들은 자신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졌음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먹고 살아야 하는 곡식을 책임지는 사람들로서 지금 국민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 보는 관점에서 오늘날 먹을거리들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이냐는 고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농부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같아 국민들의 건강 걱정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표시조차도 되지 않는 GMO, 곧 더 많은 생산과 편리한 관리를 위하여 유전자 변형마저 거리낌 없이 행하여 근본을 알 수 없는 농산물들이 시중의 먹을거리들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농업은 생명, 경제적 이득만 따질 수는 없어
도시빈민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그 고민의 시작은 도시화, 산업화였습니다. 제조업에 일손이 부족하자 농민들을 도시로 불러들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유입되어 판자촌을 이루어 살게 되었습니다. 농작물을 가꾸는 손이 도시노동자의 손으로 바뀌었습니다.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장이 이익을 내야하고, 이를 위해서 노동자들의 몫은 많을 수 없었습니다. 적은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은 생활비를 유지하여야 했고, 적은 생활비로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매일 먹는 밥을 짓는 쌀값을 올리면 안 됐습니다. 결국 낮은 쌀값을 유지하기 위해 수매가는 매년 같은 낮은 가격을 지속하고, 농민들은 살기 힘이 들어 다시 도시로 발길을 옮기는 이농이 지속된 것입니다.
농민들이 줄어들어 이제는 농업의 앞날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고 걱정들입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정책 없는 농정입니다. 23%로 하락한 낮은 식량자급률에도 불구하고 농업은, 농민은 계속해서 희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농가 평균소득 1,005만원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40대 미만의 농가는 1%도 되지 않습니다. 귀농의 바람이 분다 하지만 밥 한 그릇 300원 가치를 요구하는 농촌은 여전히 살아가기 곤궁한 곳이며 자연이 주는 혜택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살기 힘든 지옥이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거를 수 없는 밥상을 책임지는 가장 기초적인 축대가 무너져버렸습니다.
가톨릭 대학생연합회에서는 여름이 되면 당시로서도 퇴물이 되어버린 농촌활동이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각 마을로 들어가서 열흘 정도의 기간을 함께 살아가는 체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딱히 일머리가 없는 학생들을 받는 농촌 가정으로서는 오히려 골칫덩이일 수도 있었겠지만 농민들은 엄마의 마음과 아빠의 너그러움으로 반겨주었습니다. 학생들은 농촌을 체험하면서 자신들의 밥상이 마트의 진열대로부터 시작되지 않고 땅에서 시작되었음을 배웠습니다. 공장의 제조과정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아니라 씨를 뿌리고 정성을 다하여 돌보는 수많은 과정을 거친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살아 있는 것을 먹고 사람도 살아간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그 후로 몇몇 학생들은 지역의 농부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지냈고, 농민들의 삶을 연구하는 농촌사회연구가가 되기도 하고, 지금도 농촌에 대한 애정을 갖고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관계없던 농촌이 내가 아는 사람이 살고 있고, 내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시에 학생들이 농활을 가던 곳은 생명을 살리는 유기농을 하는 곳들이었습니다. 힘이 들더라도, 수확이 적더라도 생명을 살리는 농업이라는 자부심이 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는 점점 줄어들어 갑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원가 절감을 따지고, 유통은 그 단계가 늘어감에 따라 마진을 떼어가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버티는 데 한계가 온 것입니다. 농업은 생명을 이야기하는 곳인데 이 자리에서 경제적 이득만을 생각하게 한다면 생명은 뒷자리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농촌은 생명 공동체의 시작이자 바탕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라고 당신과 하느님 아버지를 설명하십니다. 아버지이신 농부는 모든 피조물이 당신이 가꾸시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을 바라십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고 돌보는 하느님의 창조의지가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생명의 원리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것에 마음을 두어 자신의 생명마저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섰을 때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도시로 전기를 운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도시를 위해서 땅에 씨를 뿌리고 열매를 가꾸는 사람들은 소외된 것입니다. 밀양의 활동가들은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도시의 불빛은 밀양 할매들의 눈물입니다.” 농촌과 도시는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농촌과 농부와 농업을 이처럼 옥죈다면 결국 도시도 그 삶의 뿌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뿌리를 잃은 나무는 생명을 마치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농촌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곧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회개는 인간의 정신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뉘우침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세우신 생태계 전체의 질서와 공식을 훼손해 온 우리의 오만과 남용과 방관을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회심하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우리의 미온적인 태도가 하느님의 피조물에 어떻게 해를 끼쳐 왔는지를 성찰하고, 우리가 생명으로 더 가까이 가고자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며 어떻게 삶을 변화시켜 나아가야 할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생명을 돌보고 가꾸는 농업과 농촌 그리고 밥상을 살리는 것은,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하는 생태적 성찰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생태적 성찰은 세상의 다른 존재들과 함께 보편적 친교를 이루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친교는 다른 존재들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과 생명을 살리고 건네는 상생의 생명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농촌은 생명 공동체의 시작이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입니다. 농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생명 공동체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2018년 제23회 농민주일 담화 중에서) 농촌은 우리를 살리는 밥줄입니다.
[복음으로 세상 보기] 주변부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청년들을 위한 밝고 정갈한 방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을 위한 방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흔히들 외국, 특히 선진국의 예를 들면서 성인만 되면 독립을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지만 대체적으로 나이가 차면 부모의 곁을 떠나 스스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혼자 사는 아파트를 얻던 맘에 맞는 사람끼리 함께 방을 얻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도 부모님 곁에 꼭 붙어 청년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고 빗대어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독립을 해야 할 청년들이 스스로 독립을 할 처지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명 없이 그저 현상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방 하나 얻기에 너무 비싼 방값이 문제입니다. 특히 다니는 학교나 직장에서 가까운 곳은 터무니없는 고가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 두 시간 걸리는 통학 및 통근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대학생 기숙사는 대부분 민자 기숙사로 바뀌어갑니다. 그만큼 기숙사비도 비쌉니다. 하숙비도 이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집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발걸음은, 특히 진학 및 취업 때문에 살던 곳을 옮길 수밖에 없는 이들의 그것은 무겁기만 합니다.
점점 밀려만 갑니다. 도심 외곽에 가서야 겨우 몸을 뉘일 곳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허름한 건물 지하방이나 옥탑방이 이들에게 허락된 곳입니다. 계단을 내려가 컴컴한 지하방에 들어가면 먼저 환풍기의 스위치를 눌러야 합니다. 햇볕조차 들지 않고 환기도 되지 않기에 환풍기를 켜도 장마철이면 꽃처럼 피어나는 곰팡이와 함께 합니다. 그렇다고 아주 저렴하지도 않습니다. 월세를 낼 때가 되면 허리가 휩니다. 언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 맑고 밝은 스위트 홈을 가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더 참담해집니다. 도무지 그런 날이 올 것 같지 않은 불안감이 엄습해옵니다.
1인 청년가구가 많이 살고 있는 곳은 최저주거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곳입니다. 전국의 청년가구 중에 주거빈곤에 해당하는 이들은 17.6%이고 서울의 경우 30%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을 택하게 되는 것일까? 당연히 너무 비싼 방값 때문인데 이는 삶의 자리를 상품으로 규정하고 투기하는 일 때문입니다. 도무지 세입자를 돌보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일정한 재산이 없는 청년들에게 보증금은 넘을 수 없는 벽입니다. 그래서 비싼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청년들을 위한 주택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형편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소득은 늘지 않는데 월세는 올라가니 소득대비 주거비용 부담이 무거워집니다.
빈민사목위원회에서는 아주 작은 시도이지만 보증금과 월세의 부담이 너무 무거워 살아가기 힘든 이들에게 삶의 자리를 제공해주고 싶습니다. 지역에 있는 선교본당 중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곳에서 전셋집 하나를 구해서 몇몇 청년들과 함께 살아갈 공간을 함께 꾸미는 것입니다. 비록 화장실 부엌 등의 공동공간을 함께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보다 저렴하게 청년들의 등을 기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세입자 정책이 지속되는 한 어렵기만 합니다.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고민해야 하고 이런 조건을 갖춘 집을 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일이 교구의 모든 본당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많아져서 소유하고 있는 집을 청년들에게 제공하여 이들이 자립하여 독립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사람의 아들 예수님께서 금수저 흙수저 논쟁에 빠져 젊은 날의 정기를 잃지 않고 곧고 맑게 성장하도록 말입니다.
장애인들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장애인들 또한 독립적인 주거 공간이 보장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거주시설에서 평생을 살거나, 지역사회에서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면서 살거나, 편의시설이 부족한 집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장애인들에 대한 최선의 복지는 안락하고 편안한 복지시설에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인도 편하고 가족도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역사회와 분리되어 장애인 거주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3만 명이 넘습니다. 정신의료기관에 수용된 정신 장애인은 7만 8천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비장애인이라면 살 곳이 있는데도 시설에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당장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장애인들 역시 많은 경우 탈시설을 원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이웃과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손상되지 않는 인권을 누리고 존중받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탈시설 정책은 서울을 비롯한 몇 개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사업으로 진행되며, 그 대상도 제한적입니다. 이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권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시설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방임이라는 소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인권침해의 피해를 입더라도 적절한 지원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시설 거주인은 시설 밖 지역사회가 폭력에 대응하는 원활한 구조로 보호받을 가능성이 무척이나 적습니다. 심각한 인권침해 피해가 입증되더라도 시설 거주인들은 다른 시설로 옮겨질 뿐 지역사회에 거주할 권리를 받지 못합니다. 한국 정부는 장애인 가구 대상의 주택구입자금 저리 융자, 임대주택, 주택 개조 융자 등의 주거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가구는 해당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알 수가 없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장애인의 필요에 맞는 정책을 제공하지 못하며 정작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책은 예산의 부족으로 집행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는 당사자로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풀립니다. 환자가 아픈 곳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해결을 당사자를 제외하고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아프고 슬픈 사람들은 공동체와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사람들은 일어나 다시 공동체로 돌아갑니다. 진정한 치유는 단지 병이 낫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삶의 복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애를 갖고 사는 분들이라도 삶의 복원이 이루어진다면,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고 이분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펼쳐진다면 치유된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살리시고 깨우시고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되돌리는 일입니다. 참된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삶의 형태가 변하고 있습니다.
1인가구가 4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청년, 비혼자, 장애인들은 많은 경우 1인가구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짓고 있는 신규주택의 40%는 1인가구에 맞는 집을 지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설현장에서 혼자 살기에 적당한 규모의 집이 지어지는 것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필요한 것은 작지만 충분히 안정감을 가지고 살아갈 집이건만 지어지는 것은 호화롭고 커다란 규모의 집뿐입니다. 작은 집이 작은 가격에 공급될 수 있다면 작은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비가 새끼 두는 둥지를 갖는 것처럼 모든 이들이, 특히 작고 연약한 이들이 보금자리에서 삶을 누리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복음으로 세상 보기] 정치공동체, 국가란?
사전적 의미에서 국가란 일정한 영토를 가지며 거기에 사는 국민들로 구성되고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진 집단을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주권을 갖는 조직입니다. 국민들의 주권은 주로 투표로 행사되며 선출된 사람들을 통하여 국가는 운영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 1조와 2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 같지만 대통령도 5년짜리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일상의 삶에서 펼쳐지게 노력하는 것이 선출직 공무원들의 의무입니다.
대통령의 경우 취임식 때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합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한마디로 대통령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한 직책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대통령이 마치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오랜 왕정시대, 일제 강점기, 전쟁, 군사 독재 등의 암울한 역사를 지내면서 굳어져서 그렀다고들 합니다. 지난 역사 동안 국민이, 그 집단의 구성원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람들은 들쥐 떼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그 지도자를 따른다.”는 한국에서 오랜 시간 근무했던 어떤 외국군인의 발언도 반박하지 못할 만큼이나 우리 국민들이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며 살았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던 중 지난 1~2년 사이에 시민들의 의식 안에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이 중심을 잡게 된 것은 무척이나 바람직하고 반가운 일입니다. “이게 나라냐?”는 질문과 “이게 나라다!”라는 증명이 거듭되는 동안 국가에 대한 생각이 우리들 머리와 가슴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국민으로, 세계시민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정치공동체의 토대와 목적
간추린 사회 교리 384항에는 “정치 생활의 토대와 목적은 인간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정치공동체 즉 국가로 표현되는 통치 집단은 그 근본과 목적을 인간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기완성에 이르는데, 정치공동체는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인 공동선 달성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정치 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인간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정치공동체 즉 국가는 그 구성원의 완성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 구성원들의 완성을 돕기 위해서 일정한 힘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찰이나 군인이 필요하고 공무원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국민들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힘을 부여하는데 이를 공권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지 다른 개인적 이익이나 필요에 의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공권력의 남용이 되는 것입니다. 공동선의 요구는 공권력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 나타난 권리들을 쉽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며, 각개인의 의무를 이행하는 환경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하는 일입니다.(지상의 평화 63항)
그러므로 공권력은 철저하게 국민들의 권리를 쉽게 행사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힘입니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공권력이라는 말이 힘없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고통을 더 가중시키는 힘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정당한 요구를 외치는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의 외침을 잠재우는 데에 쓰인 것입니다. 이제 정치공동체에 맡겨진 공권력은 그 구성원들에게 친절한 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항권
정치공동체가 정의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저항권 행사를 위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무기의 사용까지도 허용하는 데 그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본권이 확실하고 심각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침해를 받을 때 2) 다른 수단을 모두 사용하고 난 후에 3) 더 심한 무질서를 유발할 우려가 없을 때 4)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일 때 5)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더 나은 해결책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설 때 등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폭력 의존에 따르는 위험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어떤 경우에서든 도덕적인 원칙에 더욱 부합하고 성공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가진 방법인 소극적 저항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400-401항 참조)
예수님과 정치공동체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 특히 그분의 존재가 못마땅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예수님과 국가권력을 대립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저 유명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라는 말씀도 이런 사람들의 부추김에 대응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이유는 그가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서가 아닙니다.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돈으로 백성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대립시키는 사람들은 마치 세금을 내는 것이 황제를 인정하고 안 하고의 문제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을 드러내는 구절이 성경에 있습니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는 루카복음 22장 25-26절의 말씀입니다.
황제가 황제의 이름으로 일을 하는 것은 가장 작은 사람에게까지 헌신하여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설사 그가 권력을 가졌고,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하여도 그는 잘못된 황제일 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는 정치공동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충실한 것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와 정치 공동체
교회와 정치 공동체 모두 조직으로 드러나지만 형태나 추구 목적은 서로 다른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다.”(사목헌장 76항)라고 분명히 못 박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호 자율성은 협력을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둘 다 자격은 다르지만 동인한 인간들의 개인적 사회적 소명에 봉사합니다.
교회와 정치공동체는 사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개인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돕고자 하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소와 시대의 환경을 고려하여 서로 협력을 더 잘하면 할수록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더 효과적으로 모든 사람의 행복에 이바지하도록 말입니다.
[복음으로 세상보기] 가장 비겁한 폭력 – 혐오
예멘에서 내전이 길어지면서 이를 피해 조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예멘 난민들이 무비자를 통해서 제주도로 입국하는 경우가 2018년에 부쩍 늘어났습니다. 제주도에는 무비자로 30일간 체류할 수 있는 여행자 프로그램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2015년까지는 예멘 사람들의 제주도 입국은 없었지만, 2016년에 7명, 그러다가 2017년에 42명으로 늘어나다가 2018년에는 500여명까지 늘어났습니다. 2015년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가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탈출한 일부 예멘인들이 때마침 생긴 말레이시아 국적기의 제주도 직항 노선을 타고 제주도로 입국한 것입니다. 특별히 젊은 남자가 많은데 이는 내전 중에 원치 않게 군대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1992년에 “난민협약”에 가입하였고 국회는 이듬해 이를 비준하였습니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난민을 두고 근거 없는 흉포한 소문이 떠돌면서 난민들의 입지는 무척이나 어려워졌습니다. 이들이 과격한 무슬림이며 테러집단이라는 소문과 범죄 집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성범죄를 걱정하며 뒤숭숭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정작 제주도에서는 고향 떠나온 외롭고 슬픈 이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있지만 육지에서는 말이 많습니다. 수많은 난민들이 밀려들어 가뜩이나 젊은이들 일자리가 없는데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며 집 없고 가족 없는 이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들입니다. 무슬림이어서 성적으로 문란하다거나, 테러의 위험이 있다거나, 일자리를 빼앗는다거나……. 이렇듯이 사실과 다르거나 가능성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것을 혐오라고 합니다. 장애인 공동체나 장례식장 등 꺼리는 시설이 들어서면 이를 혐오시설이라고 적극 나서서 반대를 합니다. 남자가 여자에 대하여, 성소수자에 대하여, 장애인에 대하여, 그밖에 특수한 계층에 대하여, 지역에 대하여 꼬리표를 달아 싫어하고 꺼리는 극단적인 행위입니다.
혐오의 대상자들은 하나같이 약한 존재들
여성이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최근까지도 여성의 세상 참여에 대해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봅니다. 운전을 하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운전자로서 받는 실수에 대한 질책보다 여자이기에 받는 질책이 더욱 신랄합니다. 마치 알에서 태어난 사람들인 것처럼 여자에 대한 편견이 지나칩니다. 실제로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의 격차가 있습니다. 김치녀, 된장녀 등 여성 폄하와 혐오가 여성들을 위험에 처하게 합니다.
장애인이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는 ‘교통사업자와 교통행정기관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접근․이용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서울시의 교통 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운행 비율은 2016년 11월 기준 2816대로 전체 7427대의 37.9%에 불과합니다. 고속버스는 상황이 더 열악해 장애인단체 등이 매년 명절에 ‘우리도 고향에 가고 싶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또 법은 ‘누구든 장애를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가하거나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장애인 비하는 일상다반사입니다. 작년에는 서울에서 장애인학교 설립을 호소하는 부모가 무릎을 꿇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장애인 학교가 혐오시설이고 장애인들이 다니면 주변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었습니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모, 성적 지향, 인종, 신체조건, 국적, 나이, 출신 지역, 이념 등도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혐오의 대상자들은 하나같이 약한 존재들입니다. 약하기에 더 보호받아야 할 터인데 오히려 이를 끊어내려 합니다. 그러기에 약자들에 대한 혐오는 가장 비겁한 폭력입니다.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서 한 선생님께서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참가자들은 “머리요”, “심장이요”, “폐요”, 등등 다양한 신체 부위를 말했습니다. 이를 듣고 있던 선생님은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픈 곳이랍니다. 제일 많이 신경 쓰이고, 손이 많이 가는 곳이지요. 손톱 밑에 생채기 하나 생기면 온 정신이 그곳에 가 있지 않나요?”라고 답하셨습니다. 참석자들은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모두가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혐오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여론을 형성하여 혐오를 부추깁니다. 이에는 거짓 뉴스와 곡해가 사용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채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또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나쁜 여론이 번지게 됩니다. 그러면 혐오피해자들은 너무도 억울하게 사람들의 질시의 대상이 되고 함께 살 수 없게 됩니다. 두렵고 불편하게 만들고, 쫓아내고 끊어내어 마침내 사라지게 하는 방식입니다. 혐오는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키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이를 깨닫지 못하는 혐오의 확대는 자신도 모르게 범죄의 공범이 되어버리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래서 혐오를 조장하는 일은 가장 비겁하고 야비한 폭력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을 통하여 이루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혐오를 국가기관이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70~80년대에 무수히 많았던 간첩단 사건을 비롯하여 국가기관이 만들어낸 혐오사건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통치를 위해서 통치에 방해되는 세력들이라고 여기면 국민들 모두의 혐오를 이끌어내 처벌하고 배제했습니다. 지금은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난 ‘인민혁명당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인민혁명당 사건 또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인물들이 기소되어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날조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이들에게서 하느님의 얼굴 보셔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혐오의 대상자들은 늘 작은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작은이들에게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십니다. 혐오에 대처하는 예수님의 방법이 성서에 전해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끌고 와서 돌로 처 죽이려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하시며 여자에게서 악의에 찬 사람들을 떼어 내십니다. 물론 간음은 죄입니다. 지은 죄에 따라 적절히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적절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람들의 분노를 동원하여 여자를 처벌하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권위까지도 그 분노의 정당성에 이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노를 더해주시지 않으시고 자비를 선보이십니다.
우리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끊어내고 몰아내려는 일에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면 혐오는 더 이상 확산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살아갈 힘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탈출기 23,9) 68년 전! 우리도 피난민이었습니다.
[복음으로 세상보기] 떠나야 하는 사람들
본인의 뜻과는 달리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의 터전이 무너져버린 경우입니다. 살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이민, 강제 이주민,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크게는 전쟁이나 내란으로 살 수가 없어 몸을 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제적 궁핍을 피하기 위해서 떠나기도 합니다. 살던 곳에서의 갈등으로 내쫓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공동체(국가)의 정책에 따라 내몰리기도 합니다.
살 곳을 새롭게 찾아서 떠나는 이들은 고통의 길을 가야 합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기도 하고, 산을 넘기도 합니다. 그렇게 고생 끝에 닿은 곳에서도 환영받을 리 없습니다. 이주민 난민의 문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된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입장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방인이란 늘 경계의 대상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하는 손해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치고야 맙니다.
크게는 세계적인 문제이고 작게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창 국토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댐을 건설하여 물을 막아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습니다. 한 가지 예로 경상북도 청도군에는 운문댐이 있습니다. 태백산 광산지역과 대구광역시의 주변 도시에 생활용수를 대기 위한 댐입니다. 운문면 대천리 등 7개 마을이 수몰되어 3천여 명에 달하는 지역주민들이 이주를 해야 했습니다.
“운문면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살았다는 이유 하나로 이곳 주민들은 캄캄한 바다에 던져진 조각배이고, 사막에 떨어진 씨앗 같은 미물이 되고 말았다는 데 아픔과 슬픔이 있는 것이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2)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996년에 댐이 완공되었고, 91년부터 이주를 시작했으니 그 시절의 일도 다 과거의 일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고향을 떠난 3천여 명에게는 그 근본까지 잃어버린 뼈아픈 슬픔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규모 국가사업에 의해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그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발전소, 핵폐기장, 송전탑 등의 공사로 인해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국가 시설 정비라는 이름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두물머리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수변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쫓겨났습니다.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며 끝까지 남았던 농민들도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떠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디서든지 받아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힘이 있습니다. 이주민은 사회적 약자인 것입니다.
환대하고, 보호하고, 증진하고, 통합하는 것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 그를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19,34). 2018년 제104차 세계 이민의 날을 맞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담화문에 인용하신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교황께서는 즉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람페두사라는 곳을 방문하셨습니다. 아프리카의 난민들이 바다를 건너 온 이태리 최남단의 작은 섬입니다. 인구 5000명의 작은 섬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분쟁으로 살기 어려운 이들이 유럽을 향하는 길의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 교황의 관심은 이주민을 떠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이주민들을 잘 대해줄 것을 호소하셨습니다. 담화문에서는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네 동사를 통하여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곧 환대하고, 보호하고, 증진하고, 통합하는 것입니다.
환대하기는 이민들이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목표한 국가에 들어가도록 돕는 절차입니다. 비자를 쉽게 발급하고, 개인적 공동체적 후원 프로그램을 채택해 특별히 취약한 난민들을 위해 살아갈 길을 마련하는 인도주의적 통로를 개설하기를 촉구합니다.
추방이 아니라 환대 프로그램을 확산시키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국가 안보보다 개인의 안전을 우선시하라는 전임 베네딕도 16세 교황의 뜻을 전하며 이들의 안전과 기본 서비스를 보장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두 번째 동사 보호하기는 법적 지위와 무관하게 이민과 난민의 권리와 존엄성 보호를 위한 일입니다.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나간 사람들입니다. 길을 떠나는 순간 보호는 없었습니다. 아주 작은 아이들의 시신이 바닷가에 밀려오는 모습은 모든 세계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보호는 출신국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안전하게 출발하고 이주한 나라에서 신분증을 직접 소지하고 공정한 사법권에 접근하며 영사관의 지원을 받고 생계를 위한 보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민들이 자신의 존엄에 대한 존중으로 도착국에서 이동의 자유, 취업 기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대한 접근 기회를 제공받는 것입니다.
또한 국적을 가질 보편적 권리가 인정되어 모든 아동이 출생 때 마땅히 국적을 인정받아 무국적 상태로 머물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귀한 사람들이 거부당하고, 배척당해서는 안 돼
증진하기는 본질적으로 모든 이민과 난민이, 창조주의 뜻대로 인간을 이루는 모든 차원에서 자신을 환대하는 공동체와 더불어 인간으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보장하라는 요청입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남의 장막을 짓고 하느님을 경배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그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은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민과 난민이라는 것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고 지닌 능력을 적절히 인정받고 그 가치를 존중받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렇게 가정이 깨지지 않도록,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동사 통합하기는 이민과 난민의 존재로 생겨나는 문화 간 상호 풍요로움을 위한 기회에 관한 것입니다. 통합은 난민과 이민들이 도착국의 문화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잘 반영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함으로써 비록 다른 땅에 뿌리는 내렸지만 그 고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또 다시 자신의 둥지를 얻게 됩니다.
물론 자신의 고향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합당한 삶입니다. 누구도 그 자리를 침해받지 않는 것, 삶의 자리를 건드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피할 수 없는 이유로 훼손당한다면 새로운 자리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우리네 인간은 모두 살도록, 이 아름다운 공동의 보금자리인 이 땅에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창조의 귀한 사람들이 거부당하고, 배척당하고, 내몰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결혼 이주민들이 많아지면서 우리 역시 그분들을 외지인,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그분들을 환대하고 보호하고 증진하고 통합하기는커녕 차별하고 외면하고 낙인찍어 대하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그분들 역시 우리의 이웃입니다. 상처를 입은 여행자를 싸매주고 치료해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대목처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인 것입니다.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모든 이방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는 기회입니다”(2018년 제 104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중).
[복음으로 세상보기] 평화로 가는 길!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이른바 4월 위기설, 코피 작전 등으로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의 정세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미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사상자 오백만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북한과 미국의 강경한 발언에 두려움에 빠지곤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란 없는 것일까? 분단국가에서는 사치스러운 바람일까? 자문해보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며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라며 한탄하시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나와 내 이웃 그리고 또 다른 시민들도 평화를 갈망하며 살아가는데, 그리고 북녘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도 모두 평화를 원할 텐데, 어찌 우리의 운명은 이다지도 암담한가를 생각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오는 고뇌의 순간들을 보냈습니다.
암흑 한 가운데에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도 핵무기로 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미국을 꼭 붙잡고 사정을 해서라도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많은 사람들은 진정 평화를 원했습니다.
평화를 이루기를 원하는 시민들의 마음과 마음이 모아져 드디어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없으며 남과 북이 손을 잡고 함께 번영의 길로 나아가자는 감격스러운 합의였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는 판문점에서의 하루는 마치 한편의 대서사극 같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할을 맡아 끊임없이 연습을 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연극이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되고 때가 되어서 이루어진 선언이 아니라 선언문의 한 글자 한 글자에는 그동안 평화를 염원했던 남과 북의 구성원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담겨져 있습니다.
평화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토록 절절한 사연들이 모여서 비로소 물꼬를 트는,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인 평화입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리듯이 끊기면 그대로 굶게 되는, 멈추어서는 안 되는 ‘평화이루기’입니다.
교회는 평화를 갈망하는 공동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4월25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일반알현을 마무리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는 금요일, 4월27일에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입니다. 두 정상의 만남은 투명한 대화를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화해와 되찾은 형제애를 바탕으로, 마침내 한반도의 평화와 전 세계의 평화를 보장하는 구체적인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평화를 열망하는 한국인들에게, 저의 개인적인 기도와 함께, 온 교회가 곁에서 동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성좌는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자 남북의 만남과 우정으로 이루어지는, 이 모든 유용하고 진실된 발걸음에 함께하며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직접적인 정치적 책임을 지니신 분들에게, 평화의 ‘장인’으로서 희망이라는 용기를 지니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모든 이의 선을 위해 시작한 이 여정을, 신뢰를 지니고 추진해 나가기를 권고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모든 이의 아버지이시고, 평화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남한과 북한에 사는 모든 한국인을 위한 기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교회는 이처럼 평화를 갈망하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시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바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었습니다. 평화의 공동체인 교회는 교황 바오로6세의 제정으로 1968년부터 매년 새해 첫 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지내며 평화의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기도해왔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인간의 계획이기 이전에 먼저 하느님의 근본 속성이다.”는 간추린 사회교리 488항의 가르침과 같이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는 교회는 근본을 다루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먼저 아버지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신 직무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평화의 선포로 시작되어 형제자매들과 화해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혈육 사이에 피를 보고야 만 카인과 아벨의 슬픈 이야기가 한반도에서 68년 전에 일어났고 그 전쟁은 지금도 그치지 않고 계속 되고 있습니다. 종전이 아닌 휴전인 상태로 말입니다.
그 후로 수많은 화해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도 갈라진 채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공동체인 교회가 보기에 한반도는 분단의 아픔을 살고 있는 자체로 비구원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그대로 보고 있지만은 않으십니다. 또 다시 처음처럼 평화의 길로, 구원의 길로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사회교리 안에서 평화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평화는 정의와 사랑의 열매라고 합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의 모든 차원의 균형에 대한 존중으로 이해된다. 평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받지 못할 때,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하고 시민 생활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을 때 위협을 받는다. 인권 수호와 증진은 평화로운 사회 건설과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완전한 발전에 본질적인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평화는 정의와 사랑의 열매
또한 “평화는 사랑의 열매이다. 참되고 지속적인 사랑은 정의의 열매라기보다는 사랑의 열매이다. 정의의 역할은 단지 모욕을 가하거나 손해를 입히는 것 같은 평화의 장애물을 없애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 그 자체는 사랑의 행의이며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그러므로 평화는 단지 평온한 상태,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처한 정의롭지 못한 모든 처지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사랑의 행위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경쟁사회, 서로를 돌보지 않는 사회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스로나 이웃을 돌볼 여유도 없이 도무지 내일이란 없는, 하루만 사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이웃들의 이야기들이 떠오르고 지곤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로 나뉘고, 배운 이와 못 배운 이가 나뉘고,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나뉘고, 약자와 강자로 나뉘는 세상에서 평화를 키워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을 귀한 하느님의 자녀로 여길 때, 그래서 그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감춰지지 않을 때 평화는 시작합니다. 마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평화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평화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고 늘 간절히 기도하시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