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채소 따 먹으며 슬슬 가을 농사 준비할거나
씨앗 이야기 좀 해보자.
볍씨는 한 알을 심으면 계속 줄기가 벌면서(이것을 ‘새끼치기’ 또는 ‘분얼’이라고 한다) 13∼20개의 이삭을 낸다.한 이삭에선 보통 80∼140개의 낟알이 달린다(한 이삭당 낟알 수를 ‘수당립수’라고 한다). 곧 볍씨 낟알 하나가1040∼2800알을 만드니, 가장 적게 잡더라도 다음 세대에 1000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참고로 쌀(현미)1000알의 무게를 ‘천립중’이라고 하며, 쌀은 알이 너무작아 크기 구분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이 1000알의 무게를가지고 종자가 큰지 작은지를 확인한다. 쌀의 천립중은30g 안팎이다.
마늘은 통 전체가 아니라 낱개인 쪽(이것을 ‘인편’이라고한다)을 심으며, 쪽 하나를 심으면 다시 한 통이 나온다. 마늘은 크게 중부지방에서 재배하는 한지형과 남부지방에서 재배하는 난지형으로 나뉘는데, 한지형은 6∼7쪽,난지형은 10∼12쪽이 달린다. 아들 세대에 최대 12배 늘어나는 셈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수량이 얼마 안 되기에, 요즘은 씨마늘에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주아(마늘종에달리는 크기가 아주 작은 2차 비늘줄기)를 배양해 이용하기도 한다.
감자는 씨감자로 심으며, 보통 감자 한 알을 잘라 4∼8개의 씨감자를 낸다. 감자 표면을 보면 곰보 자국처럼 옴폭들어간 곳이 있는데, 이곳이 감자 줄기가 나올 눈이다. 씨감자용 쪽을 낼 때는 이 눈이 반드시 달려 있게 해야 한다. 씨감자를 심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수미’ 품종 기준으로 7∼10알이 나온다. 한 알로 치면 28∼80배 늘어나는 셈이다.
옥수수는 예전에는 한 포기에서 여러 자루(옥수수자루의 식물학적 용어는 ‘이삭’이며, 영어로는 ‘ear’다)를 수확했으나 요즘은 똘똘한 한 자루만 키우는 쪽으로 품종이 개량됐다. 곧 한 포기에서 한 자루가 달리는데, 한 자루에 480알(12줄×한 줄당 40알)이 달리니 아들 세대에 480배 로 늘어나는 것이다. 옥수수는 알이 쌀보다 크기에 무게를 달 때 천립중이 아니라 100알 무게인 ‘백립중’을 주로 쓴다.
수박은 씨 하나로 딱 한 통을 생산한다. 옥수수와 마찬가지로 똘똘한 한 놈을 얻기 위해 나머지 열매는 모두 따낸다. 모종도 종자를 그냥 심는 게 아니라 호박이나 박 대목에 접을 붙이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이러다 보니 접목묘의 가격도 비싸 한 주에 1000∼2000원이나 한다. 우리가 먹는 수박의 과육은 씨를 둘러싸고 있는 ‘과피(중과피)’와 ‘태좌부’로, 씨를 보호하고 지탱하는 주변부를 먹는 것이다. 수박 과육 속에 씨는 많지만, 오늘날 심는 수박 씨앗은 교배를 거쳐 만들어낸 교잡종자(F1)라 형질이 유전되지 않기에, 과육 속 씨는 심어도 수박이 달리지 않는다.
이처럼 작물들은 저마다의 고유 형질에 따라 질서 있는대물림을 이어가는데, 아들 세대에 늘어나는 씨앗 수로 보자면 볍씨를 따라갈 작물이 없다. 씨앗 하나가 다음 세대에 수천 배로 늘어나는 작물이 벼이니 농부 입장에선 ‘굶어 죽더라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고 할 정도로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곡간(穀間)에서 인심 나고 민심이 천심이니, 쌀과 밥이 곧 하늘이란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열매채소 수확하는 달]
7월은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달이다. 장마와 더위로 일하기가 어려운 데다 벼뿐 아니라 모든 작물이 두루 알아서 잘 자라니 농부들도 이때 좀 쉰다. 근래 들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장마의 리듬이 깨졌다고는 하나그래도 7월은 비가 많다. 농부들은 어디 논둑 터진 곳은 없나 둘러보고 심하게 자란 풀을 정리하는 정도로 망중한을 즐긴다. 주말농부도 마찬가지다. 7월에는 좀 게을러도 좋다(그래서 기자도 이번 호엔 서론인 씨앗 얘기를 길게 했으며, 본론인 주말농장 이야기는 분량을 줄였습니다). 다만 고온다습한 철에는 작물뿐 아니라 잡초도 잘 자라기에 장마철에 텃밭이 밀림으로 변하지 않도록 제초는 챙겨야 한다. 풀 자람새를 도저히 못 따라가겠으면 호미로 일일이 뽑지 말고 낫으로 베어주기만 해도 된다. 어차피 8월 무·배추용 밭 만들 때 다시 갈아엎고 정돈해야 한다. 7월의 잎채소로는 들깨 정도가 남는다. 상추도 토종 종자는 7월 초까지 가기도 하지만 무더위에 이내 추대(꽃줄기를 내는 것)가 일어나며 맛이 써진다. 들깨는 감자 캐낸 자리에 두세 포기씩 듬성듬성 심어두면 잘 자라 금방 깻잎 이용이 가능하다.
굳이 깻잎 하나로는 뭔가 좀 아쉽다 싶으면 호박잎을 이용해볼 만하다. 호박 줄기는 여름 햇빛을 혼자 다 빨아먹나 싶을 정도로 잘 자란다. 줄기 앞부분의 보드라운 잎들을 꺾어다가 살짝 찌면 이런 별미가 없다. 호박잎 쌈은 강된장·양념장·고추장 어디에 싸 먹어도 맛있다. 이달에는 고추·가지·오이·토마토 등 열매채소 따 먹는재미를 본격적으로 누릴 수 있다. 7월에 한창 쏟아져 나오는 것은 고추다. 어찌나 주렁주렁 달리는지 댓 포기만 있어도 이웃들과 나눠 먹고도 남는다.
지난달 얘기했듯 청양고추는 더욱 쏠쏠해, 여무는 대로 따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향신료로 이용하면 좋다. 가지도 일주일 만에 가보면 꼭 반찬 할 것 몇 개씩은 달려 있다. 고추와 가지는 마디 사이에서 끊임없이 곁순이 올라오니 농장 갈 때마다 순지르기를 해주도록 한다. 오이와 토마토도 주렁주렁은 아니지만 따는 재미를 느낄 만큼은 충분히 열매를 단다.
[큰비 대비해 지지대·유인줄 보완해야]
이맘때 열매채소 말고 먹을거리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고구마 줄거리(잎자루)다. 밭을 가득 메운 고구마 줄기를 들어 올려 잎자루가 큰 것만 따서 소금물에 잠깐 담갔다가 잎 부분을 아래로 꺾어 내리면 질긴 겉껍질이 벗겨지는데, 이렇게 껍질을 벗긴 줄거리를 살짝 데치면 훌륭한 찬거리가 된다. 고구마 줄거리는 된장에 무쳐도 맛있고 기름에 볶아도 맛있다. 된장국에 넣어도 좋다.
굵직한 작업은 없는 달이지만, 큰비에 대비해 고추·가지의 지지대는 더 튼튼한 것으로 보완하도록 한다. 비바람에 한 번 쓰러지면 이후 바로 잡더라도 그때부터는 자람새가 확연히 약해지기 때문이다. 오이와 방울토마토의 유인줄도 새로 손본다. 열매가 달리면서 느슨해진 끈을바싹 당겨 통풍과 채광이 잘 되도록 해준다. 이외 비 없는날을 골라 고랑도 좀 깊이 파놓는 것이 좋다. 장마철에 배수가 안 되면 작물들이 생육에 지장을 받고 병이 오기도쉽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이달에는 일부러라도 짬을 내 내 밭만 아니라 밭 사이에 난 풀, 수돗가 등 공유 공간 주변의 풀도 솔선수범해서 좀 베자. 훤해진 주말농장을 보며텃밭 공동체 구성원들의 흐뭇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장마 대비 지지대 보완하기]
7월엔 쉬엄쉬엄 보내도 좋을 달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장마 대비다. 미처 지지대를 세우지 못했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하고 이미 지지대가 있더라도 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점검해야 한다. 지지대 작업은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 짧게 비 온 다음 갠 날이 좋다. 땅이 젖어 지지대를 박기 쉽다.
< 일대일 지지대>
식물체 하나에 지지대 하나를 세우는 방법이다.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지만 손이 많이 가고 재료비도 많이 든다. 가지·토마토처럼 열매가 무거운 종류는 일대일 지지대가 적합하다.
< 줄로 지탱하는 지지대>
여러 그루를 열로 심었을 때 2∼3m 간격으로 지지대를 세우고 그 사이를 끈으로 연결해 식물체를 지탱하는 방식이다. 개별 지지대보다 비용이 덜 들고 설치하기 간편하지만 자칫 장마나 태풍으로 쓰러지면 끈에 묶인 것들이 동시에 쓰러져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두 가닥의 끈으로 줄기를 엮듯이 꼬아주면 지지력이 더 높아진다. 고추를 대량으로 재배할 때 용이하다.
< 합장식 지지대>
지지대 2개를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A자가 되도록 설치하는 방식이다. 합장식 지지대는 한 두둑에 두 개를 세우는 일반 합장식과 고랑을 가운데 두고 두 두둑에 걸쳐서 세우는 고랑 합장식으로 나뉜다. 고랑 합장식을 설치했을 때 고랑에 풀이 자라면 베어내기 힘드니 미리 멀칭을 해주는 것이 좋다. 오이·방울토마토 등 넝쿨식물용으로 많이 쓴다.
<전원생활에서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