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매일묵상| 22.11.23(수)
무엇을 가르쳤는가
마가복음 1:22, 27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22절)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가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면서 서로 물었다.”(27절)
본문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더러운 귀신(영)을 축출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그 가르침의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 꾸짖음을 통해 회개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인 것은 분명한데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귀신 축출 이야기가 마가의 첫 기적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있을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 바로 이 가르침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의 구체적인 내용에 알고 싶었던 사람이 또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입니다. 마가복음을 원자료로 사용한 마태는 그 가르침을 나름 수집했습니다, 더욱이 마가복음의 첫 기적이야기를 마태는 삭제했는데 상당히 의도적입니다. 그 중요한 첫 기적 이야기를 그냥 삭제 할 리 만무합니다. 우리는 마태의 편집 의도를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맨 끝 마태복음 7장 28절 후반부에서 마태는 “무리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말하면서 이어 29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1장 22절을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마가의 ‘사람들’이 마태에서는 ‘무리’라고 표현되어 있는 차이입니다. 따라서 산상수훈은 마가복음 첫 기적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는 마가복음 1장 21~27절의 더러운 귀신 축출 이야기를 산상수훈으로 푼 것입니다. 어쩌면 마태는 마가복음의 가장 충실한 해석자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산상수훈은 더러운 귀신(영)를 쫓아내는 주님의 가르침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 축출은 가르침의 권능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가르침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가르침이 기적이고 기적이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 기적을 헬라어로 ‘세메이온’이라고 ‘표징’, ‘표적’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sign’입니다. 하나님의 신호,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아니 일상에서 하나님의 신호, 가르침, 메시지를 알았다면 바로 그 일상이 기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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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행동 47주_ 생태도서관을 방문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