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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 누가복음 23:50-24:53 요절/ 누가복음 24:45 | 2022. 12. 11 | |
누가복음 제 40 강 |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기독교의 두 기둥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오늘 말씀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의 능력을 덧입게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부활을 알지 못했을 때 그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하지만 부활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부활을 믿을 수 있으며 기쁨과 희망이 넘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원수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공회 의원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니고데모와 함께 공회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은밀한 제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의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바위에 판 동굴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아리마대 요셉을 은밀한 제자에서 용기 있는 제자로 변화시켰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온 여인들은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돌아가시고 바로 그 날 급하게 장례가 치루어졌기 때문에 여인들은 예수님께 향품을 바를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은 안식일이라 여인들은 향품을 미리 준비했고,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며 조의를 표하고자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그 여인들은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 날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 주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와보니 입구를 막아둔 돌이 굴려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굴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은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여겼기에 근심했습니다. 그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이었습니다. 굴러진 큰 돌, 빈 무덤, 천사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이런 사인을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찬란한 빛 앞에서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두 천사는 무슨 놀라운 소식을 전해줍니까? 24:5b-7을 보십시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천사들이 전해 준 소식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예고된 것이었고 복음의 핵심입니다. 여인들은 그때서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엄청난 사건을 체험하더라도 말씀의 기초가 없으면 부활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반면에 엄청난 사건을 체험하지 않더라도 말씀의 기초가 견고하면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몇몇 추종자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예고된 것이요 역사적 사건이기에 말씀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여인들은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렸습니다. “우리는 보았습니다. 무덤이 텅 비어 있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들을. 우리는 천사들이 전해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어요!” 여인들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얼굴은 해처럼 밝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첫 증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여인들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실성하여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여인들을 무시하는 마음 때문에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기까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도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이성적 판단이 흐려졌습니다. 그들은 슬픔과 두려움과 혼란과 절망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보니 세마포만 보였고 예수님의 시신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는 여인들의 말을 듣고 현장을 확인함으로서 부활의 세계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13-36절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기쁨과 희망이 넘치게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님 사건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전에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같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는데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현재 예수님은 부활체를 입으셔서 그 전 모습과는 달라졌기에 몰라보았을 겁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저자 누가가 말한 대로 그들의 영적 눈이 가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슬픔과 절망에 깊이 빠지게 되면 세상이 어둡게 보이고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이에 둘 중 한 사람인 글로바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무슨 일이냐?”며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글로바와 그의 친구는 말과 일에 능한 예수님께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이상으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속할 분 다시 말해 다윗과 같은 왕이요 메시아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것을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처형당했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국의 미래도 없고 그들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절망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으로 가서 농사나 짓고자 했습니다. 꿈을 잃어버린 그들의 마음은 슬프고 어둡고 비참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자기 감정에 붙잡혀 불신앙에 빠질 때는 책망을 해서라도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 다시 말해 성경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런 고난’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자기의 영광’은 부활을 가리킵니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가 죽음의 관문을 통과한 후 부활할 것을 증거했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고,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십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및 선지자들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그리스도가 고난 받고 영광에 이른다는 것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경이 증거하는 바로 그 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이 엠마오에 가까이 왔을 때 예수님은 떠나고자 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강권하여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머물며 음식 드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드디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돕는 일을 마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했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야말로 영적 부흥이요 복음역사의 원동력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고서는 삶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생명구원역사를 힘있게 이룰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내 마음이 뜨거워지려면 내가 먼저 성경을 깊이 파서 영혼의 양식을 얻어야 합니다. 내가 말씀의 꼴을 풍성하게 먹을 때 다른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을 전해줄 수 있고 그때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주사 그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십니다. 말씀을 잘 가르칠 뿐 아니라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것이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성경을 잘 풀어주심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지만 그때까지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떡을 떼어주실 때에 비로소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가르칠 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예수님과 교제하고 이웃들과 교제할 때 영적 눈을 뜨고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슬픔과 절망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희망과 용기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들은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제자가 가보니 열한 제자와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 날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상처와 실의 가운데 있는 시몬을 깊이 이해하시고 그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두 제자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였습니다.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할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이르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워하여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일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영은 살과 뼈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살과 뼈를 가진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상처 난 손과 발을 보여주셨습니다. 현재 제자들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은 두 손과 두 발을 십자가에 못 박혔던 바로 그 예수님이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겼습니다.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기뻐하면서도 너무 엄청난 일이라 믿지 못합니다. 감정은 흥분되지만 이성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돕기 위해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보이심으로 제자들에게 단번에 부활신앙을 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이해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히 섬기셨습니다.
열한 사도가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을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와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경의 핵심을 어떻게 깨닫게 하셨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어둡고 딱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닫혀 있고 영적 눈이 감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판단하기보다 그들을 이해하시고 감당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고 대화하시고 음식도 나누시면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교제하고 사랑과 섬김을 받으면서 마음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성경의 깊은 맛을 느끼며 성경의 핵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는다는 이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는 것은 창세로부터 가졌던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요 계획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죄사함과 새생명을 받은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복음역사의 시발점이요 구심점입니다.
4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신자라면 누구나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재림과 그로 인해 임하게 된 죄사함과 새생명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 특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입니다. 증인은 눈으로 보고 체험한 것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은 순교자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하고 예수님을 위해 순교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루살렘은 춘천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걸어야 할 땅은 춘천 5개 대학과 대한민국입니다. 그 다음은 아시아와 유럽과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와 CIS와 아프리카와 중동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고 순교할 수도 있는 증인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증인으로 살아야 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며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하며 기다릴 때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한 사도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지금도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사도들은 승천하시는 예수님께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사도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원수들에게 잡힐까봐 은밀한 장소로 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공개적인 장소인 성전에서 모였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리스도로 충만했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했습니다.
2022년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배우고 삶의 의미와 생명력을 얻게 되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변에는 삶의 의미와 생명력을 잃고 죽은 자와 같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상처와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 죄사함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힘있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