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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스크랩 산업혁명 500년 전 영국보다 잘 살았던 송나라, 왜 망했나
文輔정해관 추천 0 조회 148 19.01.03 11: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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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500년 전 영국보다 잘 살았던 송나라, 왜 망했나


유성운의 역사정치] 『수호지』의 배경은 왜 송나라였을까


“의심할 여지없이 퀸사이(Quinsai)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도시이다.”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中)


퀸사이는 지금의 중국 항저우입니다. 마르코 폴로가 방문하기 30년 전 남송의 수도로서 인구 100만이 살던 대도시였습니다.

14세기 중국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의 발달상에 감탄했습니다. 동시기 유럽에서 상업이 가장 발달한 베네치아 출신이었음에도 그의 눈에 비친 중국은 훨씬 높은 단계에 도달한 선진국이었습니다.


송나라 휘종(徽宗·재위 1100~1125) 시기 궁중생활과 미식문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문회도(文會圖)’의 일부. 왕과 귀족들의 연회 장면. [사진제공=교양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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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미스테리 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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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는 역사학계에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불가사의’한 시기입니다.

송은 원(몽골)·금(여진)·요(거란) 등에게 시달리며 돈으로 평화를 산 유약한 국가의 대명사 같은 존재죠.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언뜻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북송 시대 인구는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1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덕분에 상비군만 100만 명 이상을 유지했죠. 당대 세계에서 어깨를 겨룰 상대가 없는 대국임에 분명했습니다.

 

11~12세기 동아시아의 정세


반면 송을 들들 볶았던 주변국을 볼까요.

 

요나라의 정예병은 약 10만 명이었고, 북송이 멸망했던 ‘정강의 변’ 사건 당시 수도를 포위했던 금나라 군사는 6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몽골도 마찬가지인데요. 세력이 가장 강력했을 때 전체 인구가 약 100만~20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송나라의 50분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했던 거죠.

이런 압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국’이 건국 시기부터 일방적으로 주변 ‘소국’들에게 질질 끌려다닌 것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TV 드라마 '마르코 폴로' 시즌1. 몽골군은 송나라 군대보다 훨씬 적은 수로 공략했다. [사진=넷플릭스]


그런데 학자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한 것은 군사력보다 경제 분야입니다. 앞서 소개한 마르코 폴로의 격찬은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송나라의 산업 발전은 당대 유럽 어느 국가도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가령 1078년 송나라의 철강 생산량은 12만5000t이었는데, 이는 1788년 영국 산업혁명 당시 철 생산량을 약간 밑도는 수준입니다.

 

송나라시대 과학자인 소송이 1090년에 발명한 천문시계. 당대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중앙포토]


송대에는 철을 단련하는 용광로와 수력 방직기, 화약과 강노, 물시계 등이 송나라 때 발명됐고, 건축에 아치형 다리와 받침대가 쓰였습니다. 조선업이나 항해술도 대단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나침반과 수력 터빈을 사용했죠.

이같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강남 개발이었습니다. 송대부터 양쯔강 이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됐고, 위에서 언급한 수차의 개발로 계단식 논을 통한 쌀의 집약적 재배가 가능해졌습니다.

 

북송의 수도인 개봉을 그린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의 일부.


잉여 식량이 생산되자 상업이 발달했고, 이와 더불어 운송, 숙박 등 서비스업 등이 함께 발달을 한 거죠. 지폐와 어음도 본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옥스포드 너필드 컬리지의 스티븐 브로드베리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송나라는 1020년에 1인당 GDP가 1000달러(1990년 가치 기준)를 돌파했습니다. 영국이 1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이로부터 400년 가량이 지난 1400년대 부터입니다.

 


송나라와 영국(잉글랜드)의 1인당 GDP 격차. Stephen Broadberry, Hanhui Guan, and David Daokui Li,『CHINA, EUROPE AND THE GREAT DIVERGENCE: A STUDY IN HISTORICAL NATIONAL ACCOUNTING, 980-1850 』에서 인용.


이 때문에 많은 서양 학자들은 송나라가 왜 산업혁명 목전까지 가고도, 결국 도달하지 못했는지 무척 궁금해 했습니다. 영국보다 약 500년 앞선 이 때 산업혁명을 시작했다면 세계사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을테니까요.

과연 무엇이 송나라의 산업혁명 진입을 막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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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의 배경은 왜 송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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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한 답은 고전 『수호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내암이 쓴 『수호지』는 사회에서 이탈한 108명의 호걸들이 양산박에 산채를 만들어 정부 관료층에 대항한다는 내용입니다. 하필 중국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풍족했던 송대를 배경으로 『수호지』가 탄생한 배경을 볼까요.

 

중국 CCTV가 제작한 드라마 '신 수호전'.


“중국의 법률 제도 가운데 백성들의 재부 증가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부러워한 지 약 500년 뒤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중국이 산업혁명에 진입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춘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중국이 500년 전에는 대단히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후 흐름을 지속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는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과 그렇지 못한 중국의 차이를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애덤 스미스 [중앙포토]


중국은 사법정책의 집행에서 공정성과 일관성을 상실한 결과, 성장 잠재력을 잃고 정체되고 말았다.

국민들이 재산의 소유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계약이 법률에 의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지불할 능력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채무를 변제하도록 강제할 수 없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상업과 제조업이 장기적으로 번성한다는 일은 거의 발생할 수 없다.”


“영국에서 선진적으로 상업의 자유와 형평성 있는 사법 집행 제도가 정착됨으로써 경제적 측면에서 경제 주체들에 의한 근면과 생산적 자원개발 노력을 자극할 수 있었으며, 이 점이 유럽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의 토대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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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적 관료들에게 발목이 잡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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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에는 후세에 영향을 끼친 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됐습니다. 주희를 비롯해 주돈이·정이·정호 등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송나라에선 이들을 도학가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를 도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했고, 도덕으로 법률을 대신하려는 경향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유재산 보호 같은 민법을 발달시키기보다는 천리와 인욕, 선과 악 등으로 모든 것을 구별했기 때문에, 실제 현실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송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


가령 명나라 때 명신(名臣)으로 추앙받는 해서조차 “무릇 소송 중에 의심할 만한 것이 있으면 그의 형을 패소시키기보다는 그의 동생을 패소시키고, 그의 숙부나 백부를 패소시키기보다는 그의 조카를 패소시켜라”는 글을 남겼을 정도였습니다.


상인들이 관리가 될 수 없도록 한 것은 탐욕스럽고 비루한 풍속을 방지하고 진실한 기풍을 북돋우기 위한 것(『염철론』)”이라는 관념은 오랫동안 중국 관료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사익 추구는 경계됐으며 최대한 억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경제 정책은 정확한 규정이나 법령에 의해 좌우된 것이 아니라 당대 정권의 도덕적 기준에 맞춰 재단됐습니다.


가령 남송 멸망 직전엔 재상이었던 가사도는 일정 면적 이상을 보유한 계층의 토지를 사실상 몰수해 국방비로 전용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듣기엔 달콤하고 명분도 그럴듯했지만, 지속가능한 정책은 아니었죠.

사유 재산을 뺏긴 민심도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결국 남송 정부는 가사도를 유배 보내고 정책을 되돌렸지만, 이렇게 우왕좌왕하느라 국력이 약화돼 5년도 버티지 못하고 몽골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가사도는 지금까지 남송 멸망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송대의 3대 간신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중국 CCTV가 제작한 드라마 '신 수호지'


무능한 관료에 맞서 양산박에서 활동한 108명의 호걸을 다룬 『수호지』가 송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경제는 유사 이래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서민들의 삶은 생활 여건은 갈수록 피폐해졌습니다.

왕안석의 변법 실패 등 의욕이 앞선 개혁안이 좌초돼 혼란을 가중시켰고,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울 뿐 현실 정책에선 무기력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커졌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레이 황은 송나라의 쇠퇴를 놓고 “도학가들의 사상은 좁게는 군자와 소인의 구분을 강조했고, 개인의 사적인 이익과 관련된 개념을 말살했다. 오늘날 중국의 민법 발달이 미진하고 도덕관념으로 법률을 대신하는 경향을 보이는 건 송대의 유학자들과 무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송나라 이후 중국은 약 700년간 같은 수준을 맴돌았습니다. 아니,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1인당 GDP는 오히려 뒤로 후퇴하지요. 그만큼 송나라의 도학 발달이 민생에 남긴 후유증은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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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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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나서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앞서 소상공인 연합회는 정부가 주도한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소상공인 연합회가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지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해 탈원전, 소득주도 성장론 등을 놓고 다시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도덕적, 당위적 목적으로 추진할 뿐, 경제적 타당성이나 효용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지 1년째, 원전 없이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 수급이 가능하냐를 두고 양 진영의 대립이 첨예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중앙포토]


반면 문재인 정부는 '더 나은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 지금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청와대의 이같은 고수 방침은 학생운동권인 86그룹과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출신들이 대거 입성한 것이 그 배경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참여연대 출신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통 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간 갈등설도 끊이지 않고 있고요.


물론 특정 단체 출신들을 요직에 중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통치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들과 국정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현대 민주국가의 책임정치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그의 출신지인 ‘아칸소 사단’이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요. 조지 부시 정부 때는 소위 '네오콘'이 외교·안보 정책을 이끌었고요.


다만 국가 정책이 도덕적 이상론에 발목이 잡혀 현실 문제에 눈을 감다가 어찌 되는지는, 송나라 이래 중국의 역사가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합니다.

정부 여당이 이런 '역사의 경고'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남송 멸망 무렵 주밀은 도학가들의 책임을 추궁하며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도학가들은) 자신이 과거에 외우고 익힌 시서(詩書)의 신념들을 증명하려는 것에 불과했다.”



※이 기사는 Stephen Broadberry, Hanhui Guan, and David Daokui Li,『CHINA, EUROPE AND THE GREAT DIVERGENCE: A STUDY IN HISTORICAL NATIONAL ACCOUNTING, 980-1850 』, 레이 황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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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부터 고치자.


주돈이·정이·정호 ... 이들을 "도학자"로 하지 않는다. 유학자, 유가라한다,

보통 儒家. 道家. 法家. 佛家... 이렇게 구분한다.

공자.맹자부터 주돈이·정이·정호 주희는 유가다. 

노자, 장자...는 도가다.

법가는 상앙, 한비자를 이른다.

불가는 부처다.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르고 해석도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뭐가 무서운지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 왜 문제만 제기하고 명쾌한 답을 못 쓰나?


당, 송이 망한 이유를 간단하다. 경제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다.

나라지키기, 국방을 스스로 하지 않고 "평화"를 사랑하니 외교로서,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소위 정치가들의 망발이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다. 그들이 부르는 소위 오랑캐들에게 이이제이(夷) 외교를 한답시고 돈으로 매수하여 , 오랑캐라 부르는 이민족에게 국가안보를 맡긴 허황된 평화론자의 정치인이 원인이다.

부정부패. 고위, 부유층 자제의 병역기피 또 가장 중요한 사안은 文을 숭상하고 武를 천대하는 풍토다.


지금의 한국과 너무 똑같다.

병역기피를 권장하는 수준이고, 그나마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철밥통 공무원이라서 그러나 싶다. 

주한미군철수,종전협정, 평화협정, 연방제 실시. 남조선해방 통일전략 완수.

미리 미리 알아서 국군아저씨들 무장해제하는 수순이다.

공공연히 서울 한복판에서 김정은 찬양이 나오고, 그 소리가 곧 이 정권에 충성을 보이는 행태다.

어떤 미친놈은 정은같은 젊은이가 남한에 없다고 한다. 제대로 미친놈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연방제가 뭔지 아시우?

연방제 통일. 포장 그럴듯하게 "단계적 연방제" 

죽어도 알고는 죽어야하지않나?


남북연방제하자고 남북 동수 대의원 선출해 투표하면 결과는 너무 뻔하다. 남한에서 북한 정은이 찍어줄 대의원이 최소 30%나온다. 그러니 끝난거다.

다음날 해방 인민군이 서울에 무혈 입성한다. 남조선 지켜주러.... 청와대 경비는 인민군이 서야겠지?


베트남 공산화 이후 "보트피플"  혹 기억나십니까?


수만인지,수십만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부지하고자 공산화된 조국을 버리고 쪽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다 죽었는지.

주변국 아무도 이들을 받지 않았다. 거의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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