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5.일.
어제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중 어떤 방송에서 성룡의 “용형호제 2”가 한창 방송되고 있었다.
여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예뻤고 여 성우들의 감미로운 더빙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성룡 역엔 내가 좋아하는 성우 장세준이 맡아 더욱 성룡이 좋았고 젊은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내 마음이 더욱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2003.1.12.일.
차라리 노가다를 하는게 더 낫겠다.
일이 너무 힘들다.
역시 피아노에 대해서다.
토요일이라서 쉬고 일요일이라고 쉬고 공휴일이라고 쉬고 특별한 날이라고 쉬고 해서는 피아노 실력이 그만큼 더 늦게 향상된다고 생각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쳐야한다.
2003.1.19.일.
한주일간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건 사고가 많아 일기장에 기록할 일이 많았는데 토요일을 지나 일요일이 되니 한주일간 있었던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 목요일 대구재활센터의 전문요원인 김효정 선생님이 우리 직원들이 한창 점심을 먹는 시간에 오셨다.
“윤상식씨 계세요?”
하는 청아한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이 되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가셨다.
이젠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해 주시러 오신다는 것이다.
공장의 위치는 김왕규 총무님이 가르쳐 주셨다.
최영민 정형준 정원준 송광희 김창규 김창근 손명술 김정윤 김상희 윤상식 김희승 석재영 이중석..........등이 있다(공장 직원)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침에 약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차를 타고 직장에 갈 경우 차내에서 밀려드는 잠(약의 부작용)은 전기 100만 volt의 고통이다.
해서 떠오른 대책이 집에서 약을 먹지 말고 회사에 출근해서 먹자는 것이였고 어제 그대로 실천하니 예상대로 잠은 없었다.
하지만 작업도중 밀려드는 잠은 피할 길이 없었다.
피아노를 더욱 열심히 치자.
하루속히 목의 상태를 91년 사고 나기 전의 상태로 되돌리자.
나 때문에 평생 걱정하시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한을 풀어드리자.
옛날의 내 생각은 이러했다.
아니 처지라고 생각한다.
인격이 형편없고 아무것도 잘 하는 게 없어서 모든 사람과의 관계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다 위대해 보이고 잘나 보이고 하는 대신 나는 매일 외톨이 신세였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던가?
10여년의 정신치료 끝에 현재의 내가 되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까진 내 개성을 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2003.1.25.토.
설날이 꼭 일주일이 남았다.
선자와 예림이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송광희(36세 me32세)형이 일이 힘들다며 월급을 두 번 받고 어제 사직서를 냈다.
이미 내 나이에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된 사람을 보았다.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동안 남들이 이렇게 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나?
선자가 25살이고 예림이가 24살이고 내가 설을 쇠면 32살이 된다.
아뭏튼 열심히 해서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해야겠다.
공장의 직원 중 중국사람 10명중 5명이 중국에 갔다.
내가 대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취직이 되어 강대규 선생님과 성서 공단에 가려 할 때 다들 섭섭해 했다.
그 중에 특히 박상숙은 우는 시늉까지 보였다.
그렇게도 유명한 모차르트는 지금은 너무나도 위대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당시의 그의 생활은 돈도 없고 죽어서 그의 무덤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내 생각에 내가 잘나서 남들보다 더 고차원적인 삶을 산다고 해도 현재의 타인이 입증을 해 주지 않으니 내가 죽어서 위대해진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저 살아있을 때 호의호식하면서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고통없이 사는 삶은 진짜 삶이 아니라 해도 막상 고통을 당하면 그 고통을 이기는데는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첫댓글 아픔과 죽음 상실 이러한 것들은 살아가며 노력의 부산물 ,,,,,,, 살다 살다 지져 갈 때.....**
네 그렇겠죠.
인생의 강에서 꿀물만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