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3]
클레먼트 C. 오웬(Clement Carrington Owen, 1867-1909)②
클레먼트 오웬은 1900년 의료선교사 조지애너 휘팅(Gorgiana Whiting)과 결혼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1903년 미국으로 가서 1년간 머물다가 1904년 다시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12월 유진 벨(Eugene Bell) 선교사와 함께 광주로 이사를 와서 전남 구례, 광양, 여수, 순천, 해남, 완도, 강진, 장흥 등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1909년 3월 22일부터 광주에서 나주, 나주 남평에서 화순, 화순 능주에서 장흥으로 향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주일 만에 장흥에 도착해서 전도를 하던 중 급성폐렴에 걸려 오한과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신자들은 가마에 오웬을 태워서 긴급히 광주로 향했고 3월 31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태가 계속 악화되면서 4월 3일(토요일)에 결국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과 관련해서 몇 가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가 위독한 상태에 있을 때 목포 선교부에 있었던 윌리 포사이드(Willy H. Forsythe)가 전보를 받고 광주로 향하다 길에서 신음하던 나병환자를 보게 되었고,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보고 지나칠 수 없어서 타던 말에 환자를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광주기독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광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웬은 사망했고, 그 나병환자 역시 몇 주후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포사이드가 나병환자를 극진히 돌보는 것을 본 최홍종은 감동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땅에다 광주나병원을 짓도록 했습니다. 그 병원은 나중에 사람들의 반대로 여수로 옮겨 애양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의해 광주 송정리교회(1901년), 해남 선두교회(1902년), 광주 양림교회(1904년) 등 많은 교회들이 전남 지역에 세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