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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산악회 산행 계획에 따라 '선구마을 보건소 → 옥녀봉 → 암릉 구간 → 응봉산 → 설흘산 → 가천 다랭이마을 제1주차장'의 8km 코스를 5시간 동안 즐길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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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鷹峰山]
높이: 472m
위치: 경남 남해군 남면 임포리
칼날 능선의 아찔함을 체험하면서 남해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는 산.
남해 응봉산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한동안 이어지는 칼날 같은 능선은 설악산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에 비길 정도로 전율이 넘치고 대양으로 열린 남해는 무한한 꿈과 희망, 상상을 갖게 한다. 컨테이너선들이 오가는 바다 풍경에서 희망을, 울퉁불퉁한 벼랑길을 오르내리면서 인생의 쓴맛 단맛, 현실을 반추한다고 할까.
응봉산을 과거 매봉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미뤄 산 이름 ‘응’은 한자 매응(鷹)임을 알 수 있다. 실제 하늘에서 보면 산의 형세가 매가 바다를 향해 날개를 편 모습이다. 응봉산 정상이 머리가 되고 선구리와 설흘산 줄기가 양 날개가 된다. 산 아래에서 보면 매봉산 육조문, 설흘산이 가천마을을 보호하듯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봉화대가 세워진 인근 설흘산 해발이 더 높아 주봉으로 꼽지만 사실 아름답기로 치면 응봉산에 비길 바가 못 된다. 그래서 대개 응봉산과 설흘산을 연계해 산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지역에서 더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가천 다랭이마을과 함께 효율적인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설흘산만 고집하기도 한다. - 경남일보
설흘산[雪屹山]
높이: 482m
위치: 경남 남해군 남면
남면 홍현마을에 있는 설흘산(488m)은 망산(406m)과 인접해 있다. 설흘산에서 내려다보면 깊숙하게 들어온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늑하게 내려다보인다. 인접하고 있는 전남 해안지역뿐만 아니라 한려수도의 아기자기한 작은 섬들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설흘산 정상 부근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원래 봉수대는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정한다. 설흘산 역시 한려수도와 앵강만 그리고 망망한 남쪽 대해를 관측할 수 있는 곳이다. 남면 구미지역과 응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망망대해와 기암괴석 그리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다랭이마을의 풍경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산행코스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한국의 산하
갑진년 3월 마지막 토요일인 30일은 남해의 인기 산 설흘산을 응봉산과 연계해 다녀오기로 했다. 애초 3월 마지막 주는 휴일은 토요 무박으로 강진의 덕룡산, 주작산, 두륜산 이어서 종주할 생각으로 산악회에 신청까지 했으나, 상황이 변해, 좀 가벼운 설흘산을 당일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 세 산은 7년 전인 2017년 9월과 12월에 올랐던 산이라, 목표 산행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다시 오를 생각이 없었는데, 산방 기간 진행할 만한 산이 없는 안내산악회에서 몇몇 산에 몰방하는 바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안내산악회에 계획 산행 중에는 오를 만한 산이 보이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해 근교 산행을 고려하던 중이기도 했다. 해서 인증꾼을 위해 가격으로 승부하는 안내산악회 공지에 세 산 연계 종주 산행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신청했다.
덕룡~주작~두륜 종주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목요 오지팀 산행인 창원 인성산행을 취소한다는 전제하에 신청한 거였다. 하지만, 인성산에 관해 검색을 통해 여러 정보를 얻고 나서, 생각이 바뀌어 인성산을 다녀오기로 하면서, 무박 세 산 종주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물론 토요 무박 산행이기는 하나, 목요 인성산행 후 금, 토를 쉬고 하는 산행이라 크게 무리가 아닐 수도 있지만, 화요일 여수 영취산행도 잡혀 있다. 말인즉 화 여수 영취산, 목 창원 인성산 등 장거리 산행을 격일로 진행한 후, 하루 반을 쉬고 무박으로 21km를 달리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대안을 찾다가 발견한 게 설흘산이다. 설흘산 또한 언젠가는 가봐야 할 산 목록에 있기는 하나, 특별히 찾아서 오를 정도로 우선순위가 높았던 건 아니나, 다른 산이 눈에 띄지 않아, 선택한 산으로 이번 토요일에 오르게 됐다.
당일 날씨는 오전에 맑으나, 산행시간에는 구름 낀 날씨로 변하고, 기온은 영상 15℃~ 16℃, 바람은 1m/s~3m/s, 다소 더울 것으로 예상된다. 설흘산이 조망이 탁월한 산으로 유명하나, 미세먼지의 상태를 현재는 알 수 없다. 다만, 며칠 비가 내렸고, 바람 또한 강하게 불어, 미세먼지가 날려가지 않았을지 기대 중이다. 점심이라기보다는 걸으면서 먹을 수 있는 체력 유지용 김밥은 오랜만에 신사역표를 사 갈 예정이다. 그리고 날머리인 주차장 부근 다랭이마을에 식당이 여럿 있는 걸 확인했으니, 산행 후 그 중 하나에서 하산주를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을 생각이다.
2 – 1
산행 당일 새벽에 기상해 볼일을 보며 밤새 변동 사항이 있나 확인했다. 산악회는 변동이 없는데, 날씨는 변동이 있다. 초미세먼지, 미세먼지는 '좋음'이나, 산행 시간 '구름 낀'에서 '비'로 변했다. 말인즉 우중 산행이다. 고로 미세먼지가 조망을 방해하지는 않겠지만, 비구름이 시야를 방해할 전망으로 조망이 꽝일 거라는 얘기다. 어쨌든 끓인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오랜만에 불광역까지 마을버스로 가기 위해, 5시 45분경 집을 나서, 5시 53분 도착한 차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애초 불광역에서 구파발발 6시 12분 열차를 탈 생각이었는데, 마을버스 시간에 맞추다 보니, 너무 일찍 도착해, 대화발 6시 6분 열차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승차장으로 들어오는 열차 빈자리가 없어, 그냥 보내고 처음 생각한 6시 12분의 널널한 열차를 타고 양재역으로 향해, 6시 46분 도착했다.
양재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통과한 후 5번 출구를 향해, 통로를 걸어가며 보니, 세 개의 김밥집 모두 정상 영업 중이다. 다른 김밥 맛도 봐야 하나, 한 줄로 포장된 건 즉석 빵집 김밥이 유일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두 집을 그냥 지나쳐, 5번 출구 직전까지 가, 급한 건 아니나, 만일에 대비해 일단 화장실에 들렸다. 그리고 나오며 보니, 지하철 만남의 장소 의자에 목요 오지팀 산행 대장이 앉아 있어, 반갑게 인사하고 어느 산으로 향하는지 물어봤다. 고성의 '구절산'이다!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 게시판에 초기 공지가 올라왔을 때, 몇 가지 검색해 보고, 버린 산이다. 구절산은 4번 출구, 설흘산은 5번 출구라, 잘 다녀오라고 인사 후 즉석 빵집으로 가 채소 김밥을 사 주머니에 넣고, 5번 출구로 나갔다. 출구로 나가며 보니, 다들 어디에 있는지 등산객은 별로 안 보이나, 버스 정류장 의자는 다 차지하고 있어, 그 근처에 서서 사당에서 출발한 산악회 전세 버스를 기다렸다.
이후 7시 정각 도착한 산악회 전세 버스에 배낭을 멘 채 탔다. 산행 마감 하루 전 나란히 붙은 두 자리가 빈 걸 발견하고 자리를 변경한 덕에 옆자리가 빈 덕이다. 그리고 창가 자리에 배낭을 내려놓은 후 산행에 불필요한 여분의 옷 등이 든 보조 가방을 꺼내 의자에 두고, 반대로 보조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배낭 옆 주머니에 넣는 거로 등산 준비를 마쳤다. 이후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책을 봤다. 그런데, 7시 3분경 버스가 출발하는 걸 보고 잠이 들었다가, 차가 덜컹거려 눈을 뜨고 상황을 살펴보니,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고 있다. 길이 막힌다는 얘기다. 아무리 상춘철 고속도로지만, 죽전과 영동고속도로 갈림길을 지나고 나서, 이 시간에 막히는 건 사고밖에 없다. 역시 예상대로 부주의한 기사가 일으킨 사고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도로에서 시간을 낭비 중이다. 운전 아무나 시키면 안 된다는 평소 신념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다.
예정에 없던 지체로 짜증이 난 상태인데, 갑자기 방광에서 신호가 온다. 분명 이런 걸 대비해 급하지도 않은 데, 신사역에서 화장실을 다녀왔건만, 소용이 없다. 신사역에서 출발하며, 인솔 대장이 인삼랜드에서 휴식하겠다고 했으니, 거기까지는 어떻게 든 참아야 한다. 해서 책을 보거나, 해파랑길 도보여행을 떠난 마누라는 어느 정도 갔는지 확인하는 등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했으나, 역시 참는 건 쉽지 않다. 어쨌든 폭발하려는 걸 꾹 참고 있으려니, 9시 24분경 버스가 금산랜드로 들어가자, 나만 급한 게 아니었는지, 주차를 하기도 전 승객의 80%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내리려고 아우성친다. 운전을 하면 안 되는 부주의한 기사의 사고가 만든 그림이다. 여기까지 참았는데, 몇 분 더 못 참을 것도 없어, 다들 내리는 걸 확인한 후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로 가, 급한 불을 껐다. 이후 겨울 동안 비어 있던 연못에 지금은 물을 채웠는지 확인하기 위해 휴게소 테마 공원으로 갔다. 예상대로 연못에도 봄이 와, 비단잉어가 노닐고 있어,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20분의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한다. 먼저, 총거리 7.5km에 불과해 3시간이면, 완주가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암릉 구간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사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암릉? 설흘산 소개에는 그런 얘기가 없었는데? 뭐, 가보면 알겠지! 그리고 휴게소로 오는 동안 볼일이 급해 못 잔 잠을 청해 푹 자고 일어났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함양이다. 역시 멀긴 멀다. 해서 책을 보다가 눈이 아프면 창밖을 구경하기를 반복해 12시 17분 들머리인 선구마을 보건소 앞에 도착했다. 산행에 책정된 시각이 5시간이니, 마감은 5시 20분으로, 사고로 지체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기사가 열심히 달렸음에도 원래 계획보다 20분 늦어, 집에 언제 도착할 지 예측이 안 된다.
2 - 2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급한 등산객과 인증꾼은 벌써 임도로 등산로 입구로 가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미리 기동한 등산 앱으로 현 위치의 해발 고도를 확인했다. 62m, 이번 산행 최고봉인 설흘산의 높이가 481m, 20m 내외의 오차가 있지만, 고도차는 419m로 준수한 편이다. 고도차를 확인하고, 앞서간 일행의 뒤를 따라 등산로 입구로 향하자, 첫눈에 띄는 게 심상치 않아 보이는 거대한 나무와 오른쪽 건너의 뾰족한 봉우리다. 예상대로 거대한 나무는 팽나무로 서낭이다. 그리고 바다에 면해 뾰족이 솟은 봉우리가 설흘산이 아닐지, 등산 앱의 지도로 확인했다. 설흘산이라면 이번 산행 코스가 호를 그리고 있어야 하는데, 거의 직진에 가깝다. 고로 설흘산이 아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인간이라 이 산행기를 쓰며, 지도 및 산행기를 찾아봤다. ‘고동산(고동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모습이긴 하다)’으로 지도상에는 등산로가 없어, 선구마을을 들머리로 가상의 종주 코스를 그려봤다. 그리고 가장 최근 산행기가 2014년 5월로, 진행한 코스는 산세를 보고 그린 등산로와 대동소이하다.
12시 20분 '남해 바라길' 갈림길에 도착했다. 직진은 '사촌', 우회전은 '다랭이지겟길'이다. 우리가 진행할 등산로를 '다랑이지겟길'이라 명명한 거 아닐까? 갈림길에서 우회전해 위로 올라가자, 오른쪽 밭에 유채꽃이 한창이라, 사진을 찍었다. 올해 유채꽃을 보는 건 처음인가? 그리고 그 유채밭 끝에서 포장 임도가 끝나고,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당연히 그 입구 나뭇가지에는 온갖 산악회의 상징인 리본이 매달려 있다.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자, 설흘산 이정표가 있어, 고동산을 배경으로 기록으로 남긴 후 급경사라 갈지 자를 쓰고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나무 사이로 작은 동굴이 보인다.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굴 입구로 가 내부를 살펴봤다. 생각보다 깊고, 한 사람 정도는 편하게 누울 수 있는 폭이라, 바로 아래 마을이 있지만, 폭우를 만나면 피난처로 괜찮아 보인다.
굴 관찰이 끝나고 다시 등산로로 들어서 위로 올라가자, 등산로에 뾰족뾰족한 작은 바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최고봉의 높이가 481m에 불과한 산이라, 바로 능선으로 올라설 수 있었고, 약간의 조망도 트여, 비록 날씨가 흐려 시야가 좋지는 않지만, 뒤의 남해와 오른쪽 고동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해 위로 가자, 왼쪽으로 우회로가 있는 암릉이다. 당연히 우회로를 버리고 암릉으로 올라가자, 등산 앱이 정상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벌써? 핸드폰을 꺼내 보니, 생소한 '옥녀봉'이다. 익숙하든 초면이든 이름을 가진 봉우리라, 늘 그래왔듯이 동영상을 촬영하면 완만한 경사를 올라, 옥녀봉이라 생각되는 곳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봤으나, 어떠한 표지도 없다. 그렇다고 거기서 고개로 내려가는 급경사가 있는 것도 아니라, 혹시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옥녀봉일 수도 있어 동영상을 촬영하면 계속 갔으나, 역시 어떠한 표지도 없어, 등산 앱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지나왔고, 아까 그 봉우리가 옥녀봉이 맞다.
사실 거기가 옥녀봉이라 추측할 뿐이지, 어떠한 표지도 없어, 확신은 못하고 계속 길을 재촉하자, 등산로는 바위 군락으로 바뀌고 가끔 꽤 큰 바위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12시 45분경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작은 언덕에 올라서자, 나뭇가지에 잔뜩 매달린 산악회 리본이 보인다. 무언가 중요한 곳이라는 방증인데, 갈림길은 아니고 정상인가? 당연히 어떠한 표지도 없고, 지도를 확인했으나, 지도에도 어떠한 정보가 없어, 산악회 리본이 매달린 가지와 그 옆의 진달래만 기록으로 남기고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가면서 생각하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다. 사실 들머리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17분경이니 그때가 이미 점심시간이고 배도 고팠으나, 등산 중 먹을 생각으로 참고 산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 오르막이라 감히 김밥 꺼낼 생각을 못 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올라왔고, 완만한 경사의 능선이라 배를 채울 시간라는 생각이 들어 신사역표 김밥을 꺼내 먹으며 전진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양쪽이 완만한 능선에서 칼등 능선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왼쪽으로 암봉이 길을 막고 있다. 당연히 길은 그걸 피해,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인간이 아니라 네발로 기어서 바위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그냥 바위 봉우리가 아니라, 끝이 어딘지 모를 바위 능선으로, 곳곳이 방해물이 없는 전망대로 조망이 탁 트였다. 날이 흐려 시야가 나쁠 뿐이지 전망대에는 아무런 문제 없어, 사진이야 어떻게 나오든 그 조망을 기록으로 남기며 그걸 따라가자, 저 앞에 뾰족한 암봉이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앞에 보이는 그 바위 봉우리로 향했는데, 중간이 끊겼다. 말인즉 현재의 암릉에서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야 한다. 해서 아래로 내려가서 보니,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아 보이고 이번 산행을 가볍게 생각해 등산화가 아니라 도보용 신발을 신고와 우회 등산로를 택할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앞의 암봉에 오를 기회가 없을 거 같아,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우회하는 등산로를 가는 일행을 지켜보다가, 암봉으로 오르기 위해 앞을 막는 진달래를 헤치고 암벽으로 접근해,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촬영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상태로 오를 수 있는 암벽이 아니라,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본격적인 네발로 한숨 돌리고, 좀 쉴만한 공간이 나올 때까지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대다. 물론 능선에 올라서려면 더 올라가야 하나,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경치를 감상했다. 이후 다시 동영상을 촬영하며, 바위 능선으로 향해, 1시 10분경 올라섰다. 그리고 뒤로 돌아 지나온 암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동영상을 촬영하며 칼날 능선으로 계속 갔다. 물론, 오른쪽의 남해와 왼쪽 건너 능선을 감상하며, 이렇게 암릉이 좋은 산을 이제야 알았다는 것에 한탄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 보니, 갑자기 등산 앱이 반응한다. 응? 놀라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첨봉'이란다. 해서 다시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는데, 비슷한 높이의 바위 능선이 계속 이어지고 정상 표지가 있는 게 아니라, 어디가 첨봉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나마 다른 곳보다 높고 앱이 알려준 위치로부터 거리를 계산해 첨봉의 위치를 추측했다.
첨봉이라 추측한 암봉을 지나 계속 가니, 칼등능선에 그동안 보지 못한 안전시설로 철 구조물이 나타났다. 여기부터는 절벽이 너무 높아 우회로를 만들 수 없어, 등산객이 바위 능선으로 올라와야 하는 산세라,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암릉 양옆으로 안전시설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 안전시설은 앞에 보이는 봉우리까지 이어진다. 물론 우회가 가능한 곳에서는 오른쪽으로 우회로가 있으나, 그 모든 걸 무시하고 응봉산 직전 바위 능선이 끝날 때까지 암릉으로만 갔다. 와중에 1시 22분경 응봉산까지 남은 거리가 궁금해 지도 앱으로 확인했다. 지도상의 갈림길이 응봉산 정상이다. 고로 거리는 1km가 채 안 남았다. 그걸 확인하고 가끔 뒤돌아, 넘어온 바위 봉우리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며 동진하자, 앞이 거의 수직 절벽이라 어쩔 수 없이 약간 후퇴해 등산로로 내려갔다. 그리고 내려가기를 포기한 암벽 아래에 도착해 유심히 살펴봤다. 오르는 건 어렵지 않은데, 내려오는 건 쉬워 보이지 않는다. 고로 위에서 빠른 포기는 잘한 선택이다.
계속 이어지던 암릉이 절단됐을 뿐 끝난 게 아니라, 다시 바위 능선으로 올라 동진하다가, 해풍을 맞은 진달래는 어떤 맛인지 확인했다. 약간 짭짤하다. 그렇게 노닥거리며 가, 마지막 바위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자, 등산 앱이 반응한다. 응봉산 정상이 반경 50m 내라, 동영상을 촬영하며 올라, 1시 41분경 도착했다. 높이 472m의 응봉산 정상에는 나지막한 돌탑과 투박한 돌 정상석이 있고, 정상이 갈림길이라, 한쪽 구석에는 이정표가 있다. 직진은 설흘산, 우회전은 다랭이마을인 가천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그리고 이정표 옆에서 인솔 대장과 노년의 산꾼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해서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기려는 데, 노년의 산꾼이 찍어주겠다고 자청해 핸드폰을 넘겼다. 이후 주변의 시설물을 기록으로 남기고 진행 방향을 보니, 설흘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관목이 방해해 마음에 들지 않아 주위를 둘러보니, 가천 방향 5~6m를 떨어진 곳에 바위 전망대가 보여, 그리로 갔다. 예상대로 훌륭한 전망대라, 어떠한 방해도 없는 설흘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비구름이야 어쩔 수 없는 거고.
응봉산 정상에서 칼바위, 즉 첨봉은 0.7km, 설흘산 2.02km, 가천마을 1.7km 거리다. 정상을 떠나, 설흘산을 향해 고개로 내려가며 보니, 곳곳이 설흘산 전망대로, 갈수록 설흘산이 크게 보일 뿐 모습이야, 다 똑같아, 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만, 오른쪽 다랭이마을 방향 다랑논은 초면이라 기록으로 남겼다. 사실 그것 또한 어린 시절 보고 자란 마천의 다랑논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암릉은 아니나, 급경사 바위 군락을 내려가자, 길은 완만한 경산의 산책로로 바뀌어 걷는 게 아주 편하고 좋다. 산세로 봐서는 이 길이 설흘산 직전까지 이어질 분위기다. 그 길을 따라 유유자적 가다 보니, 어는 순간 먼저 출발한 인솔 대장과 노년의 산꾼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다 보니, 갈림길이다. 그런데, 이정표가 없다. 응봉산 바위 능선 구간이야 이정표 설치가 어려울 수 있지만, 여기도 없는 건 이상해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비탐 전문 앱의 지도는 분명 갈림길이 있다.
설흘산으로 향하는 길목 왼쪽의 누군가 해학적으로 만들어 돌탑에 세운 대장군의 모습을 잠깐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100여 미터를 가자, 갑자기 길을 경사가 심해지고 다시 바위 군락으로 바뀐다. 설흘산이 멀지 않았다. 오르막길을 계속 가자, 역시 곳곳이 바위 전망대로 좀 전에 있었던 응봉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위로 갈수록 시야는 넓어지나, 산 자체는 모습은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 앞에는 울창한 숲사이로 설흘산의 모습이 보이는데, 생각지도 못한 암벽이라,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애를 써 봤으나, 전망대를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록으로 남기고 50여 미터를 가자, 갈림길 이정표다. 직진 '설흘산 봉수대 0.4km', 좌회전 '홍현2리 0.6km', 우회전 '가천마을 0.9km'다. 여기는 지도에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갈림길이 없다. 어쨌든 정상이 멀지 않았다.
다시 길을 재촉해 가쁜 숨을 몰아쉬면 급경사를 올라가는데, 오랜만에 보는 꽃으로 얼레지다. 여기서 이 꽃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다, 5년 전인가 해남 금산에서 얼레지를 본 듯해 산행기를 찾아봤으나, 언급이 없는 게 다른 산과 착각한 듯하나, 확실히 하기 위해 당시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만개하기 전의 얼레지 사진이 있다. 내 기억이 아직은 정확한 것에 만족하며, 다시 길을 재촉하자, 엘레지가 한두 포기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얼레지는 군락을 이룬다고 알고 있어, 주위를 유심히 살피며 전진했는데, 맞았다. 그리고 설흘산 갈림길 주변은 거의 엘레지 밭이다. 그렇게 얼레지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며 가는데, 앱이 반응한다. 응? 설흘산 정상이 가깝기는 하나, 반경 50m는 아닌데? 하지만 핸드폰을 꺼내 앱을 열어보니, 설흘산이 맞다. 해서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는데, 다시 등산 앱이 반응한다. 응? 이건 또 뭐야? 앱의 오류라 생각하고 좌우의 얼레지 군락을 기록으로 남기며 가다가, 앱을 확인했다.
망산이란다. 망산? 처음 듣는데, 설흘산 길목에 있나? 어쨌든 망산은 이번 산행 코스에는 없어, 무시하고 가자, 갈림길 이정표다. 우는 설흘산 정상이나, 방향 지시가 떨어져 바닥에 있다. 그리고 직진 방향에 분명 인적이 있는데, 어떠한 방향 지시도 없다. 고로 공식 갈림길이 아니다. 아니며, 직진 방향 지시는 아예 사라졌을 수도 있다. 어쨌든 망산의 위치나 길 여부를 알기 위해 이 글을 쓰면서, 지도를 자세히 확인했다. 맞다! 직진하면 높이 461m의 망산이다! 당시에 그걸 알았으면 다녀왔을 텐데, 산행이 끝나고 알게 된 게 아쉬울 뿐이다. 어쨌든 설흘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아 동영상을 촬영하며 마지막 깔딱을 오르자, 저 위로 돌로 쌓은 봉화대가 보이고 그 직전에 안내문이 서있다. '남해 설흘산 봉수대' 소개문이다. 그걸 대충 훑어본 후 다시 동영상을 촬영하며 봉수대로 올라, 2시 28분경 도착했다. 돌로 쌓은 기단 위에 봉수대가 있고, 그 위에 작은 정상석을 뒀다. 그리고 응봉산 정상에서 만났던 인솔 대장과 노년의 산꾼을 다시 만났다.
노년의 산꾼이 인솔 대장의 인증을 찍는 동안, 뒤로 돌아 응봉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노년의 산꾼과 상부상조해 서로의 인증을 남겼다. 봉수대가 있다는 건 사방이 막힘이 없다는 거라, 최고의 전망대다. 다만 비구름이 온 천지를 덮고 있는 게 아쉬울 뿐이나,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건 다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정상을 떠나 다랭이마을을 향해 하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앱의 지도를 확인하고 전망대가 있는 위로 가, 한 쌍의 남녀가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봉수대 못지 않은 전망대로 서쪽으로 보이는 설흘산 봉수대의 모습과 응봉산, 다랭이마을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전망대를 떠나 정말 하산을 시작했다. 내륙의 산에 비해 높지는 않으나, 바로 바다에서 시작하는 산이라 고도차는 내륙의 산에 뒤지지 않고, 경사가 내륙의 산에 비해 급하다. 와중에 뾰족뾰족한 바위가 곳곳에 튀어나와 있는 등산로로 내려가는 고역이다. 뛰고 싶지 않아도 중력과 경사에 밀려, 나도 모르게 뛰어가면서 그대로 처박히지 않게, 좌우의 나무를 잘 이용해야 했다.
그렇게 내려가다가 작은 계곡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겼다. 다랑논의 조건 중 제일 중요한 게 물인데, 그 물을 공급하는 공급처 중 하나다. 그런데, 그 작은 계곡을 지나자, 본격적인 너덜로, 등산로 자체가 너덜 위에 있다. 고로 실수로 넘어지거나 엎어지면 대형 사고다. 2시 54분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이는 마을을 보며, 무언가 이상해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감이 맞았다. 비탐 전문 앱의 지도에는 없는 길이다. 어쨌든 조심조심 하지만, 중력에 밀려 뛰다시피 내려가는데, 반가운 리본이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기록으로 남겼다. 근교 산행 때 많은 도움, 특히 지도를 많이 참고하는 '부산일보 산 & 산' 팀의 리본이다. 그 리본에서 50여 미터를 가자, 너덜이 끝나고 오가는 차량 소음이 들린다. 그리고 비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산행 막판에 조망이 트이면 어쩌자는 건지, 2024년 갑진년이 시작하고 지금까지 산행은 제대로 된 조망을 보여준 산행이 거의 없다.
3시 3분 무덤 옆으로 난 등산로로 도로 바로 위 임도에 도착하는 거로 사실상 산행은 끝났다. 마감인 5시 20분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17분! 그럼, 하산주가 있는 식당을 찾아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다랭이마을 가운데 식당이 여럿 있다는 건 산행 전 확인한 바나, 지도 앱이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아 메뉴가 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해서 마을을 뒤지기로 하고 도로로 내려가기 전 건너편 응봉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상춘객과 그들을 싣고 온 차량으로 정신없는 도로를 따라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 방향으로 가며, 마을로 내려가는 들머리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3시 7분 마을 갈림길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 안내문에 의하면 이 길목에 다랭이마을 식당은 다 있어, 만족하며 그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3시 11분경 앱이 반응한다. 아니, 이건 또 뭔가 깜짝 놀라,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다랭이마을 방문' 인증이다. 별걸 다 인증한다. 그런데, 그 인증 지점이 정확하게 식당 중 하나의 입구에서 불과 2~3m 거리다. 말인즉 3시 11분에 식당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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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야외 식탁에 청춘이 많이 보이는 처음 만나는 '농가 맛집, 산해'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주인장의 아들이자 사장으로 보이는 친구가 나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칼국수는 안 된다며, 식사할 거냐고 묻는다. 여기는 소위 MZ가 아니면, 못 오는 식당인가? 해서, 혼밥도 되는지 물었다. 가능하다고 해,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봤다. 선택지는 위의 셋 중 하나라, 소위 대표 메뉴라 생각되는 첫 번째의 '톳 문어 솥밥 정식'과 '좋은데이'를 주문하고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고 왔다. 그리고 이미 세팅된 밑반찬을 안주로 기대 이상의 응봉산 암릉을 즐기게 해준 산신에게 고맙다고 건배했다. 그런데, 시금치 무침과 종류를 알 수 없는 회무침 외에는 먹는 게 고역이다. 어떻게 이런 집에 소위 MZ라는 친구들이 오는지 궁금해진다. 요즘 청춘은 맛을 모르나? 해서 후기를 봤는데, 제대로 맛을 평한 사람은 처음 후기를 작성한 사람이 유일하다.
조금 후에 나온 솥밥과 비린내가 나는 미역국을 안주로 좋은데이 한 병을 비웠다. 어려서 음식을 남기는 건 죄악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 밑반찬도 거의 다 비웠으나, 김치만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고, 회무침은 술이 떨어져 남겼다. 솔직히 술이 더 당기기는 했으나, 꾹 참고 3시 59분경 식당에서 나왔다. 그리고 버스를 찾기 위해 도로로 올라가는데, ‘고랑모샘’이라는 안내문이 눈에 띈다. 우물이다.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막다른 골목에 있는 우물로 가, 근 45년 만에 두레박을 이용해 물을 길어봤다. 아직 솜씨가 썩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했으나, 물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 마시는 건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해, 도로에 도착해 위에서 아래로 마을을 내려다봤다. 다양한 색깔의 기와가 있는 건 좋은데, 검정 기와는 어디나 꽃이 그려져 있는 건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뭘 표시하고 있는 걸까?
주변의 벚꽃을 사진 찍으며 가다, 어린 시절 자란 주변이 ,이것보다 더 높고 거대한 다랑논이라, 처음 남해의 다랑논을 보고 '애걔' 했지만, 기록으로 남기기는 했다. 그런데, 남쪽으로 내려오며 본, 논에는 모내기를 위해 물을 채웠는데, 여기는 유채꽃이 한참이다. 그럼 논을 밀고 밭을 만들지, 논에다 무슨 유채꽃인가? 다랑논을 왜 만든 줄 모르나, 관광객에게도 다랑논을 만든 이유를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관광안내소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차장이 가까워져 거기 서있는 버스를 보며, 제발 우리 버스도 저 중에 있기를 빌었다. 상춘 차량이 많으면, 주차장이 넘쳐 도로에 주차한 버스를 찾아 헤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빌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우리 전세버스는 안 보이고, 대기업 안내산악회 버스는 있다. 그런데, 대전 소속 관광버스다. 얼마나 잘 나가면 대전 소속 차까지 동원할까!
우리 버스가 안 보여 실망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고, 가로 주차한 버스 사이로 들어가 보니, 다행히 우리 버스도 있다. 하지만, 기사가 부재라, 배낭 둘 곳이 없어 일단 주차장 주변 의자에 앉아 기사가 오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유심해 관찰했다. 대기업 등산객을 태우고 온, 전세버스 LED는 "좋은 사람든"이라고 반짝이고 있고, 가로 주차한 버스는 '달팽이마을 여행'이 반짝이고 있다. 그나마 산악회 버스는 등산객이 오류를 잡아줘, 기사가 수정했는데, 달팽이는 수정할 기미가 안 보인다. 아니, 여기에 다랑논보다 달팽이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렇게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 중 기사가 문을 열어줘 버스에 타고 무장을 해제했다. 그리고 잠을 청하는데, 쉽제 잠을 잘 수 없다. 마감까지 50분 넘게 남았는데, 할 일은 없어 고민하다가, 관광 안내소 야외 식탁에서 컵라면과 술을 마시는 관광객과 등산객이 기억나 버스에서 내려 그곳으로 가봤다. 편의점이다!
유레카를 외치고 편의점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남해생탁’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안주가 될 만한 걸 찾아봤으나, 적당한 게 안보인다. 해서 버스로 가 배낭에서 비상식으로 가져 다니는 육포를 꺼내, 식탁으로 돌아와 인솔 대장 옆에 앉았다. 그리고 같이 한잔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지난 겨울 큰 사건으로 아직까지 맘고생이 심하다는 걸 알고 있어, 위로의 말도 몇 마디 건넸다. 그렇게 막걸리를 다 비우고, 마지막에는 인솔 대장이 마시던 소주를 나눠 비우고 5시 10분경 버스에 탔다. 그런데, 여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마감 시각이 지났는데, 두 사람이 빈다. 만약 식당에서 유혹을 못 이겨, ‘좋은데이’ 한 병 더 마셨으면 버리고 출발하자고 소리쳤을 테지만, 그렇지 않아, 꾹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나 한 쌍이 나타났다. 그런데, 아무런 의사 표시도 없이 당당하다.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는 건가? 아니면, 십분 정도는 기본이라는 건가?
여기까지 오는 중 고속도로 사고로 지체,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은 무개념 등산객 때문에 또 지체해 애초 계획보다, 30분이 넘어 날머리인 다랭이마을 주차장을 떠나는 버스에서 술기운과 산행 피로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과 같이 방광에서 강력한 신호가 와 잠에서 깨, 지도 앱으로 현위치를 확인했다. 이래서 내가 막걸리를 잘 안 마신다. 어쨌든 순천-완주 고속도로로 내려올 때와는 다른 도로다. 아니 왜 다른 길을 택했을까? 내려올 때와 같은 도로가 빠르지 않나? 위치를 확인하고 나와 같이 급한 승객이 있는지 주위를 둘러봤다. 없어 보인다. 그럼, 인솔 대장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 그런데, 다행히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기 전 버스가 오수휴게소로 들어가, 무사히 급한 불을 껐다. 이후 다시 출발한 버스가 신갈, 죽전 순으로 승객을 내려주고, 10시 11분 아침에 출발한 신사역 5번 출구에 도착했으니, 다랭이마을에서 4시간 40분이 넘게 걸렸다. 고로 집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직전이다. 멀긴 멀다!
산악회 산행 계획 대로 '선구마을 보건소 → 옥녀봉 → 암릉 → 첨봉 → 암릉 → 응봉산 → 다랭이마을 갈림길 → 망산 갈림길 → 설흘산 → 전망대 → 가천 다랭이마을'의 8.1km(트랭글) 코스를 2시간 56분 동안 탐방했다. 이동 2시간 45분, 휴식 11분!
산행 하루 전 기상청 예보는 산행 시간 동안 흐릴 거라는 예보고, 산행 당일 새벽 예보는 비가 온다는 예보였는데, 결과적으로 전날 예보가 맞았다. 비야 내렸던, 안 내렸던 비구름에 가려 조망이 꽝이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옥녀봉 이후, 응봉산에 이르는 암릉 덕분에 이 코스 산행을 다시 보게 됐다. 암봉과 암릉을 좋아하는 산꾼이라면 반드시 올라봐야 하는 구간이다. 물론 첫 암봉부터 기어올라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남해까지 내려와 시간이 남아돌아 다랭이마을을 구경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여러모로 이롭다. 산꾼에게 필요한 하산주는 식당이 아니라, 관광안내소 옆, 편의점에서 한잔하는 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