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의 ‘닮았을 뿐이야’
19년 전? 17년 전? 나는 열심히 세어본다. 그때는 분명히 미술대학에 막 들어간 때라서 아직 친구들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였다. 대강의실에서 강의가 끝난 뒤에 모여 앉아 떠들고 있는 우리에게로 마스크를 쓴 여자가 다가왔다.
“저 서양화과의 **입니다. 저기요.”
그래 그때도 스카프를 쓰고 있었지.
“저 마루겐에 삼촌이 계셔서 화집이나 비싼 책을 쉽게 구할 수 있어요.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계라고 아나요? 즉 다 같이 돈을 모아서 순서대로 책을 사는거예요. 그런 식으로 해주겠다고 하는데 우리 반에서 이미 모으긴 했는데 사람이 많을수록 더 비싼 책을 살 수 있거든요.”
거기서 그 제안에 응한 것은 유미코와 나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미코와 내가 가장 가난했다. 나는 마리코에게 천 엔을 줘서 스카프의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서양화과 **이니까.”
하지만 서양화과에 **는 없었다. 그 여자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친해진 서양화과의 마스카와 씨에게 물었더니 서양화과 사람들도 열 명쯤 그 여자에게 돈을 건넸다고 했다. 바지 한 벌 밖에 없는 남자 아이도 거기에 걸려들었는데 그 친구는 풀뿌리를 헤쳐서라도 붙잡겠다면서 매일 중앙선 역에서 스카프를 두른 여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나와 유미코는 화가 나기보다는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돈을 꿔준다고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천 엔은 나의 한달치 용돈의 전부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전철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스카프와 마스크르 한 여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잊었다. 17년, 아니 18년.
나는 물끄러미 학부모회 임원인 이데씨의 얼굴을 보고 있다. 아이들의 학부모회 임원회의에서, 나는 늘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처다본다. 이데씨는 자진해서 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섰다. 참으로 야무져서, 무척 능숙하게 회의를 진행시켰다. 그러나 나는 이데씨가 오면 허둥거리다가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러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멀리서 구멍이 뚫릴 정도로 이데씨를 처다보고 있다.
나는 오늘은 아래만 처다보고 있었다.
3학년의 한 그룹이 1학년에게 10엔, 20엔, 돈을 갈취한다. 물론 3학년 쪽에서도 선생님들이 대처하고 있지만 아이들에도 결코 돈을 주지 말라고 부모가 주의를 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선생님의 보고가 있었다.
이데씨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주의한다고 해도 아이들은 3학년이 무섭 거든요. 혼자서 3학년들에게 둘러싸이거나 보복을 당할까봐 돈을 줘버린다고요. 잘 아시잖아요. 그 그룹을 해산시켜 버릴 수는 없나요?”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이데씨의 목소리만 듣고 있었다.
“3학년 선생님들도 열심히 가정방문을 하거나,1대1로 대화를 하면서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학부모 누군가가 선생님에게 말했다.
“우리 아이도 협박을 당했는데 자기 용돈이 없다보니 제 지갑을 가져갔어요. 정말 큰일이예요.”
“선생님, 이 문제는 학교 전체, 지역 전체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작은 일 같지만 이건 사회 전체의 축소판이에요. 아이일 때 무엇이 좋은 일이고, 무엇이 나쁜 일인지를 똑 바로 알게하는 것이 부모나 교사의 책무이지요. 즉.”
즉------ 맞아. 그 스카프의 여자는 마루잰의 계를 설명할 때 ‘즉’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즉’------ 그러고 다그치듯이 뒤집어씌우는 듯한 빠른 말투로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발언했다.
“즉, 사회의 모럴을 어떻게-----”
사회의 모럴“ 나는 흘끗 이데씨를 처다보고 바로 눈길을 돌렸다. 아니야, 아닐지도 몰라. 비슷한 사람이 많잖아. 그 여자는 마스크를 하고 스카프를 쓰고 있었다. 얼굴 전체를 본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 여자가 다른 사람이라면 이데씨한테 실례가 아닌가? 학부모회는 갑자기 술렁거리더니 제각기 옆 자리의 어머니들과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잔코 아래를 보고 있었다.
“이치로는 피해를 안 당했어요?”
옆자리의 야마모토씨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직 물어보지 않았는데요.”
“물어보는 게 좋겠네요.”
돌연 내 목구멍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온다.
“우리 식구는 사기를 잘 당하는 것 같아요.”
야마모토씨는 어리둥절해서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협박을 하는거라고요.”
나는 어쩔 줄을 모른다. 학부모회 때마다 나는 이데씨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결코 이데씨 곁에 다가가지 않는다. 학부모회를 하는 동안 내내, 십 몇 년이나 지난 옛날의 그 대학의 대강의실 일이 되살아난다. 지금까지 떠올리는 일도 없었다. 먼지에 뒤덮인 실내로 노란 광선이 사선으로 내리쬐던 곰팡내 나던 그 텅 빈 강의실, 바지가 한 벌 밖에 없어서 세탁하면 바지가 마를 때까지 팬티만 입고 방 안을 털복숭이 정강이를 드러낸 채 돌아다녀야 했던 남자아이, 이름도 잊었다. 마리코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됐고 못 만난 지 벌써 몇 년이나 됐다. 18년이 흘러 모두 당당한 중년에 접어 들었다.
18년, 각자의 인생이 있었던 거다.
학부모회는 질질 끌다가 끝났다. 신발장 있는 데로 오자 눈이 내리고 있다.
“어마나, 눈이야.”
아이 엄마들이 소녀같은 목소리를 냈다.
“우산이 없어.d"
"금방 그칠거야.“
“어마나, 이데씨는 준비성이 좋네요.”
나는 돌아봤다.
“그래요, 항상 이것만 준비해요.”
이데씨는 코트 주머니에서 빨간 천에 파란 꽃무뉘가 있는 스카프를 꺼내어 펄럭펄럭 펼쳐서 삼각으로 접었다.
그만 둬, 하지 마, 쓰지 말아 쥐, 하고 나는 마음 속으로 외치는데, 써 봐, 하고 또 다른 마음이 동시에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