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동 백양산(白陽山)에 있는 사찰. 선암사 仙巖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말사,
신라 문무왕 15년(675년)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백양산 정상에서 낙동강 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장관을 보며 창건했다고 하여, 처음 이름은 견강사(見江寺)였는데, 절의 뒷산 절벽 바위에서 신라의 국선(國仙) 화랑들이 수련하였다고 하여 선암사(仙巖寺)로 부르게 되었다.
선암사라는 이름은 백양산(白楊山)이 금정산(金井山)의 지맥으로 산이 높고 멀리 바다가 내려 보이는 등 경치가 뛰어나 가히 신선이 살만한 곳이어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선암사가 위치한 당감(堂甘)은 본래 제의(祭儀)를 올리는 신성한 곳으로 당(堂)은 신(神)이 내리는 신성한 나무(堂上樹)를 모시는 집이고, 감(甘)은 감로수(물)를 뜻한다. 선암사 약수가 유명한 것도 여기로부터 연유하였다.
선암사기(仙巖寺記)에 의하면 고려말에 왜구들이 불상을 약탈해 가서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재앙이 잦아지면서 비명으로 목숨을 잃는 자가 많아지자 그 불상을 다시 배에 실어 웅천(지금의 진해시 웅천동)으로 보내져 성흥사에 모시고 있다가 현재의 극락전으로 모시게 되었는데, 기도를 올리면 영험이 수승하다고 한다.
조선 성종 14년(1483년)에 각초선사가 중창하였고, 선조 원년(1568년)에 신언, 숙종(1718년)때는 선오스님이 중수하였고, 근세에 와서는 선지식으로 유명한 혜월선사,향곡혜림, 석암스님이 주석하시면서 부터 지금의 사격(寺格)을 갖추게 되었다.
선암사 경내에는 「선암사 괘불탱」[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7호], 선암사 금고[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37호], 선암사 3층 석탑[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3호], 선암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및 복장 유물 일괄[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95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와 종각이 배치되어 있는 극락정토 도량이며 석축 위 동백나무가 매우 수려하다. 또한 최근에는 용왕단 불사를 하여 용왕을 새롭게 모셔,
사찰 내에 작지만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데, 여기가 석조 좌상 한 구를 모시고 용왕당이라 한다. 용왕전 폭포와 신선대의 절경은 가히 선암사 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선암사 경내를 관통하고 흐르는 계곡에 돌다리가 극락교이며, 지금의 선암사 용왕단 뒤쪽으로 흐르는 조그마한 폭포가 선암폭포이다. 또한 선암폭포 위로는 깎아지른 바위가 있는데 이것을 신선암 이라고 한다.
일주문의 계단을 오르기 전 왼편에 선암(仙巖) 새겨 놓은 바위.
일주문 좌우 주련은 '신광불매만고휘유(神光不昧萬古徽猷)'와 '입차문래막존지해(入此門內莫存知解)' 라는 서산대사가 지은 '선가귀감'에 나오는 구절이 걸려있다. '거룩한 빛은 어둡지 않아 만고에 아름답다.. 이 문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세상의 알음알이는 두지 마라' 라는 뜻이다.
대웅전
건물의 양식은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에 팔작지붕 이고, 공포는 다포식이다. 건물의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심우도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그린 선화(禪畵)로, 그 과정을 10단계로 구분하고 있어 십우도 또는 목우도(牧牛圖)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협시에는 부처님의 지혜(智慧)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고, 우협시는 수행과 행원(行願)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함께 모셔져 있다.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을 상징하는데, 문수보살이 들고 있는 연꽃봉우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피어나 성불할 것을 상징한다. 보현보살이 들고 있는 활짝 핀 연꽃은 불성이 드러나 성불하였다는 뜻을 나타낸다.
닫집은 본존불 위에 설치되는 장식물로서 불단과 함께 부처님의 공간을 엄숙하게 만든다. 닫집은 섬세하고 화려한 구조로 꾸며지며 용, 연꽃, 비천, 봉황 등의 장식물에 의해 장식 효과가 더욱 증대된다. 이처럼 닫집을 장식하는 것은 결국 닫집 아래에 있는 불보살을 영성이 충만한 신비스러운 존재로 승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대웅전 어간문 위의 용두, 대개의 사찰 법당들은 밖에는 용두(龍頭)를 두고 있으며, 안에 용미(龍尾)를 두거나 법당 뒤쪽 공포에 용미를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법당을 반야용선의 선실로 상징화 하기 위한 묘책이다. 그리고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나,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기둥의 용두처럼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용이 물고 있는 물고기는 여의주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대웅전 문에 주화 형태로 장식된 빗꽃살문. 대웅전 출입문 아래에 있는 귀면상 장식물이다. 귀면상은 외부로 부터 오는 사악한 자와 나쁜 기운을 막아 법당을 보호하며 내부 공간을 신성하게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범종각 : 범종각은 일반적으로 불이문과 동일선상에 위치하고, 법당 쪽에서 볼때 오른쪽에 위치한다.
명부전 앞에 종각이 있고, 안에는 1996년에 조성한 범종과 법고, 목어, 운판이 걸려 있다. 범종 : 범종에는 비천주악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욕망을 제압하고 , 불이(不二)의 경지까지 힘들게 올라온 구도자를 환영하며 하늘의 천인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범종각이 불이문과 동일 선상에 서있게 되는 것이다.
관음전 : 불교의 자비사상을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을 모셔놓은 법당을 관음전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을 주존불로 봉안한 경우에는 원통전 또는 원통보전이라한다. 속리산 법주사의 경우, 중심 법당이 대웅보전이고, 관음보살을 모신 법당은 원통보전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건물로, 최근에 지은 건물이다. 관음전 내에는 1999년에 조성한 목조 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주위에 대나무 등을 장식한 수월(水月) 관음좌상이다. 금색이 화려하고, 주위에 장식된 조경 등으로 인하여 매우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다.
명부전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 외벽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고승들의 일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벽화를 그렸다. 벽화에 표현된 고승은 구지화상(俱紙和尙), 용파(龍坡) 스님, 희운선사(喜運禪師), 무학대사(無學大師)와 태조 이성계(李成桂), 구다라 존자 등이다. 최근에 조성한 지장보살좌상과 좌우 협시로 도명존자·무독귀왕, 그리고 시왕상 10위와 인왕상 2위가 봉안되어 있다.
극락전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대웅전 뒤쪽에 위치. 안에 있는 현판에 1961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으므로 그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조선시대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 외벽에는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심우도 10폭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극락은 지극히 즐겁다는 말이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십만억 국토를 지난 곳에 있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이신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다. 주존불인 아미타불은 구품인의 수인이고, 가사는 양어깨에 걸친 통견의 모습이다. 좌우협시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선암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 ,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불상내부에 들어있던 책자형 경전과 향 등의 복장유물은 제작연대와 참여한 화원(畵員)의 이름이 기록돼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칠성각 팔작지붕에 정면과 측면 각 1칸씩의 규모를 하고 있다. 전각 외부에는 백장선사(百丈禪師), 강원도 철원 석대암(石臺庵), 해주 속명사(續命寺) 중창에 얽힌 이야기 등 역대 고승과 사찰 창건에 얽힌 고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안에는 1975년에 조성한 칠성탱이 봉안되어 있다. 칠성은 원래 도교신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중국에서 형성된 다음 우리나라에 들어와 수명 장수신으로 불교에 수용되었다. 칠성각은 조선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전각이다.
산신각은 산령각이라고도 부른다. 또는 삼성각을 두어 칠성, 독성과 함께 봉안하기도 한다.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전부터 믿던 토속신인데, 토속신인 산신과 호랑이를 봉안한 전각이다. 불교에 수용되면서 사찰을 수호하는 외호신이 되여 사찰의 제일 위쪽에 위치한다. 그리고 산신각 안에는 호랑이와 산신상을 봉안하거나 산신탱화를 모시기도 한다. 산신 옆에는 호랑이도 함께 하는데, 보통 호랑이와 산신을 같다고 본다. 즉 호랑이가 의인화된 것이 바로 산신이라는 것이다. 소나무는 하늘과 땅의 뜻을 교통(交通)하는 통로라고 한다. 또 동자가 천도봉숭아를 들고 있기도 한다. 즉 불교 바깥의 하근기 중생들을 불교속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건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사전이란 조사스님 또는 사찰의 창건주, 중창주 스님의 공덕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부조상 또는 영정을 모신 전각이다.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1칸씩의 규모로 경내에서 가장 뒤쪽에 자리한다. 전각 외벽에는 두운선사(杜雲禪師), 포대화상(布袋和尙), 도림선사(道林禪師)와 백락천(白樂天), 부설거사(浮雪居士) 등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고승들의 일화가 벽화로 표현되어 있다. 안에는 최근에 조성한 조사도 한 폭이 봉안되어 있다.
칠성각 앞 마당 사이에 석탑 부재가 놓여 있는데, 현재 옥개석 3개만 남아 서로 포개어져 있다. 각 옥개석의 층급은 4층인데,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인 10세기 무렵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 부재는 현재 비록 그 일부만 남아있지만 선암사 연혁의 일단을 말해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