奔奔旅客人, 雲霄高下過 바쁘게 오가는 나그네는 높고 낮게 이는 구름 위를 오간다네. 依稀响翠屏, 隱映歇騶晉 희미하게 푸른 병풍 같은 산기슭 소리가 들리고, 수레를 멈추고 쉬어 가며 서로 인사를 나누네. 陰森下磧礫, 攸忽人和餟 으스스한 자갈길을 내려오니, 어느새 사람들도 단란하게 음식을 함께 나누네. 寫離騷 (슬픔과 회포를 달래며) 《리소》를 베껴 적노라. 乙酉年 仲春月 春日 管雲爲寸字書 을유년 음력 2월 봄날, 관운(管雲)이 작은 글씨로 쓰다.
백사벽화는 리장을 지배했던 나시족(納西族) 토사(木氏 土司) 가문이 조성한 것이다. 목씨 토사 가문은 한족의 유학, 시문, 서예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당나라 시인 맹교의 시나 《리소(離騷)》 같은 한족의 대표적 고전 시문을 각석해 건물의 현판이나 정원 주련으로 게시하는 것이 문명화된 권위와 높은 교양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백사벽화(대정각, 유류전 등) 내부 벽화는 도교, 불교(밀교), 나시족의 동파교(東巴敎)가 한데 섞여 있는 다문화 융합의 결정체이다. 이처럼 건물 입구나 회랑에는 종교적 도상뿐만 아니라 은거, 유람, 세상과의 거리를 노래한 당시(唐詩)나 고전 구절을 새긴 목판을 함께 게시하여 문인적 풍류를 더했다.
(맹교의 〈유소주〉) 시 구절은 높고 깊은 자연 속에 쉬어가며 세상과의 슬픔을 달래는 나그네의 회포를 담고 있다. 옥룡설산 아래 호젓하게 자리 잡은 백사 마을과 사찰 단지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관람객과 문인들에게 선경(仙境)에서의 휴식과 회포를 전달하는 장식적/심상적 역할을 한다.
《리소(離騷)》는 중국 초나라의 위대한 시인이자 정치가인 굴원(屈原, B.C. 340 추정 ~ B.C. 278 추정)이 지은 대표적인 서정시이다. 중국 고대 문학의 쌍벽을 이루는 《시경(詩經)》이 북방의 현실주의 문학을 대표한다면, 《리소》는 남방의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굴원은 초나라의 왕족 출신으로, 나라를 강대하게 만들고자 비판적·혁신적 정치를 펼치려 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한 간신들의 모함과 왕(초 회왕)의 무지함으로 인해 조정에서 배척당하고 결국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조국이 간신들에 의해 기운을 잃고 끝내 강대국인 진나라에게 위협받는 현실, 그리고 자신의 청렴하고 결백한 지조가 인정받지 못하는 절망감 속에서 조국과 임금을 향한 애달픈 마음을 담아 지은 시가 바로 《리소》이다.
유배나 정치적 좌절을 겪은 후대 수많은 문인(동아시아 한문학권 전체)들에게 지조를 지키고 회포를 달래는 최고의 고전으로 꼽혔다. 맹교의 시문 속 '사리소(寫離騷 - 《리소》를 베껴 적는다)'라는 표현 역시 굴원처럼 우국충정과 지조를 가슴에 품고 마음을 달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다.
첫댓글 당나라의 시인 맹교(孟郊)가 지은 칠언율시 〈유소주(遊蘇州)〉의 일부 구절이다. 초서와 행서가 섞인 서체로 목판에 각석(刻石/刻板)된 형태이다.
당나라 시인 맹교가 소주(蘇州) 지방을 유람하며 여정의 고단함, 아름다운 자연 풍경, 그리고 나그네로서 느끼는 쓸쓸함과 회포를 읊은 한시의 일부이다. 마지막에 '사리소(寫離騷)'라는 표현을 더해 굴원의 《리소》처럼 유람 중 느끼는 지사의 감성을 노래하고 있다.
奔奔旅客人, 雲霄高下過
바쁘게 오가는 나그네는 높고 낮게 이는 구름 위를 오간다네.
依稀响翠屏, 隱映歇騶晉 희미하게 푸른 병풍 같은 산기슭 소리가 들리고, 수레를 멈추고 쉬어 가며 서로 인사를 나누네.
陰森下磧礫, 攸忽人和餟 으스스한 자갈길을 내려오니, 어느새 사람들도 단란하게 음식을 함께 나누네.
寫離騷
(슬픔과 회포를 달래며) 《리소》를 베껴 적노라.
乙酉年 仲春月 春日 管雲爲寸字書
을유년 음력 2월 봄날, 관운(管雲)이 작은 글씨로 쓰다.
백사벽화는 리장을 지배했던 나시족(納西族) 토사(木氏 土司) 가문이 조성한 것이다. 목씨 토사 가문은 한족의 유학, 시문, 서예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당나라 시인 맹교의 시나 《리소(離騷)》 같은 한족의 대표적 고전 시문을 각석해 건물의 현판이나 정원 주련으로 게시하는 것이 문명화된 권위와 높은 교양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백사벽화(대정각, 유류전 등) 내부 벽화는 도교, 불교(밀교), 나시족의 동파교(東巴敎)가 한데 섞여 있는 다문화 융합의 결정체이다. 이처럼 건물 입구나 회랑에는 종교적 도상뿐만 아니라 은거, 유람, 세상과의 거리를 노래한 당시(唐詩)나 고전 구절을 새긴 목판을 함께 게시하여 문인적 풍류를 더했다.
(맹교의 〈유소주〉) 시 구절은 높고 깊은 자연 속에 쉬어가며 세상과의 슬픔을 달래는 나그네의 회포를 담고 있다. 옥룡설산 아래 호젓하게 자리 잡은 백사 마을과 사찰 단지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관람객과 문인들에게 선경(仙境)에서의 휴식과 회포를 전달하는 장식적/심상적 역할을 한다.
이 목판작품을 쓰고 각석한 서예가(각수)의 호는 관운(管雲)이다.
《리소(離騷)》는 중국 초나라의 위대한 시인이자 정치가인 굴원(屈原, B.C. 340 추정 ~ B.C. 278 추정)이 지은 대표적인 서정시이다. 중국 고대 문학의 쌍벽을 이루는 《시경(詩經)》이 북방의 현실주의 문학을 대표한다면, 《리소》는 남방의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제목의 '리(離)'는 만남, 만나다(=罹: 근심할 리)
'소(騷)'는 근심, 비애이며
전체의미는 '근심(근심스러운 일)을 만나다' 또는 '근심을 터뜨리다'라는 뜻이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와 나라를 걱정하는 근심에서 비롯된 노래임을 담고 있다.
굴원은 초나라의 왕족 출신으로, 나라를 강대하게 만들고자 비판적·혁신적 정치를 펼치려 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한 간신들의 모함과 왕(초 회왕)의 무지함으로 인해 조정에서 배척당하고 결국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조국이 간신들에 의해 기운을 잃고 끝내 강대국인 진나라에게 위협받는 현실, 그리고 자신의 청렴하고 결백한 지조가 인정받지 못하는 절망감 속에서 조국과 임금을 향한 애달픈 마음을 담아 지은 시가 바로 《리소》이다.
시 속에는 수많은 꽃과 풀(난초, 난초, 혜초 등)이 등장한다. 굴원은 자신과 같은 충신, 혹은 아름다운 덕목을 향초(香草)에 비유했고, 간신과 간사한 무리들은 악취 나는 풀(惡草)에 비유했다.
현실에서의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 신선과 신령들을 찾아 헤매며 자신의 결백을 알아줄 이를 찾는 상상 속의 여정이 펼쳐진다. 이 부분에서 중국 초사 문학 특유의 신화적·낭만적 색채가 돋보인다.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모두가 타락할지라도, 자신만큼은 끝까지 자신의 곧은 뜻과 청렴함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기존 《시경》의 4언체(네 글자 위주의 운문)에서 벗어나, 문장 중간이나 끝에 어조사 '혜(兮)'를 넣어 리듬감을 살린 독창적인 시가 양식인 초사(楚辭)체를 확립했다.
화려한 상상력과 신화적 요소를 서정시 안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이후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등을 거쳐 중국 낭만주의 시문학의 거대한 정통이 되었다.
유배나 정치적 좌절을 겪은 후대 수많은 문인(동아시아 한문학권 전체)들에게 지조를 지키고 회포를 달래는 최고의 고전으로 꼽혔다. 맹교의 시문 속 '사리소(寫離騷 - 《리소》를 베껴 적는다)'라는 표현 역시 굴원처럼 우국충정과 지조를 가슴에 품고 마음을 달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