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95만명인 인천시는 불교세가 약한 대표적인 포교 불모지다. 지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국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전북(12.8%) 다음으로 불자 비율이 낮은 곳이 인천(13.8%)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12명의 인천지역 지역구 국회의원 가운데 불자가 단 한명도 없을 만큼 인천에서 불교의 위상은 낮은 게 현실이다.
인천지역의 열악한 불교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포교현장을 누비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 12월29일 만난 신호승 포교사도 인천지역의 불교발전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한명이다.
인천 정석항공과학고에서 수학교사로 근무한 신호승 포교사는 2003년 파라미타 분회 설립을 추진하다 난관에 봉착했다. 포교사고시 면접관으로 만난 김형중 교법사(동대부중 교감)가 ‘현직 교사인 만큼 파라미타 분회를 운영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곧바로 파라미타 분회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파라미타 분회 설립을 꼭 해야겠냐’며 설립을 만류했다.
신 포교사가 직접 교내 동아리인 ‘사찰답사반’을 설립해 수년째 운영 중인데다가 YMCA 등 개신교 청소년단체도 교내에서 활동 중인 만큼 파라미타 분회 설립을 막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피력했다. 특히 파라미타 분회 설립을 막으려면 이미 활동 중인 YMCA 등 타종교 청소년단체의 분회조차 없애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학교 측은 결국 파라미타 분회 설립을 허용했다.
“사찰답사반을 만들어 운영할 할 때는 아무런 말이 없다가 불교청소년단체의 분회를 만든다고 하니 학교의 중간관리자가 반대의 뜻을 전하더군요. ‘꼭 해야겠냐’는 말은 곧 ‘하지 마라’는 뜻이지요. 불교세가 너무나 약하고 개신교세가 강하다보니 이같이 어이없는 일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났던 것이지요.”
불자인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불교에 입문한 신호승 포교사는 운전하면서 매일같이 불교방송을 들으며 불교에 심취하게 됐다. 1999년 7월 통도사 인천분원 보명사 불교교양대학을 졸업한 신 포교사는 도반들과 함께 ‘하심회’를 설립해 불교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청소년 포교 침체 타개하려면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방편부터 찾고
파라미타 중앙사무국과
각 지역 사무국, 지역 사찰 간
유기적 관계 형성해야”
그 하심회 도반의 제안으로 신 포교사도 포교사고시에 응시했다. 하지만 첫 번째 도전에서 ‘다라니’를 쓰지 못해 낙방의 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 당시에는 다른 문제를 다 풀어도 다라니를 쓰지 못하면 낙방이던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다른 문제를 다 풀고 난 뒤 다라니를 쓴다는 게 깜빡해 비워 둬 낙방하게 된 거예요.”
포교사고시 첫 도전의 실패는 신 포교사에게 오히려 약이 됐다. 포교사고시 낙방 후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신 포교사는 불교에 대한 체계적인 생각조차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만심으로 가득차 있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에 인천불교대학 학생이자 교학과장으로서 포교사고시를 다시 도전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 하심하며 살자’는 참회와 더불어 ‘불교를 위해 뭔가를 해보자’는 원력도 세우게 됐다. 2년 과정의 동산불교대학도 이수했다. 재도전한 끝에 신 포교사는 2003년 9월 제9기 포교사로 품수돼 본격적인 전법의 길에 뛰어들게 됐다.
“2002년 포교사고시 첫 도전에서 합격했다면 지금처럼 불교일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저 혼자 잘났다며 살아가고 있었겠지요. 하심하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다보니 포교사고시에도 합격하고 지금까지 불교일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지요. 첫 시험에서 떨어진 게 전화위복의 소중한 계기가 됐지요.”
청소년 문화재지킴이 지도자
스트레스 이완 요가 지도자
청소년지도사 연수과정 등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파라미타 지도교사로
거듭나기 위해 꾸준히 노력
청소년포교 활성화 위해
불교대학 통한
불교인재 양성에도 앞장서
신 포교사는 포교사 품수 뒤 파라미타활동에 매진했다. 파라미타 정석항공과학고분회 지도자를 시작으로 인천파라미타 사무국장, 파라미타 중앙위원, 파라미타 전국연합캠프 안전부장 및 평가단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천파라미타 사무처장 소임을 맡고 있다.
학생들에게 보다 쉽고 재미있는 불교를 전하기 위해 학생건강관리법 교원연수를 이수했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마사지사, 국민건강발관리사, 대한인명구조협회 응급처지원 자격증 등을 취득하고 허리통증 복부비만 응급처지실습과정도 이수했다.
또한 파라미타 문화재지킴이 지도자 과정과 스트레스 이완 요가 지도자과정, 불교청소년지도사 연수과정, 국립중앙박물관의 들여다보기 과정 등을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파라미타 지도교사로 거듭났다.
2008년 불교청소년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한 신 포교사는 어린이청소년포교에 대한 불교계의 보다 큰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천파라미타의 경우, 2006년 10곳이던 분회가 현재는 정석항공과학고 분회와 인천불교회관 분회, 사무국 분회 등 3곳에 불과하고 인천파라미타 지도자도 채 10명이 안될 만큼 위축된 상태다.
청소년포교의 침체기는 인천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사찰들이 곧바로 포교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어린이청소년포교를 등한시 한데다가 아이들은 진학과 학업에만 내몰리는 현실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결과다.
특히 신 포교사는 청소년포교의 침체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불교계가 청소년들에게 재미를 선사하지 못한 것을 손꼽았다.
“타종교와 달리 불교계는 청소년포교에 너무 등한시 했던 게 사실이지요. 사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면 혼내고 심지어 파라미타가 뭔지 조차 모르는 스님이 아직도 있을 만큼 청소년포교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지요.
하지만 파라미타 중앙사무국과 각 지역 사무국, 지역 사찰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상생효과를 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지요. 특히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방편을 찾는 게 가장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일이겠지요”
신 포교사는 청소년포교와 더불어 지역 불교대학 활성화와 불교인재 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보명사 불교교양대학 졸업한 신 포교사는 부루나포교원의 인천불교대학 교학과장과 조계종 인천불교사암연합회의 미추홀불교대학 교학처장을 거쳐 현재 인천불교회관의 나란다불교대학 부학장 소임을 맡고 있다.
30년 넘게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10년 동안 성심야간중학교에서 야학 교사와 교장으로 활약하며 후학을 양성한 게 불교대학 실무책임자로서 활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신 포교사는 나란다불교대학 부학장으로서 조계종단의 역사와 포교방법론 등의 강좌를 개설했을 뿐만 아니라 연 20시간 이상 자원봉사활동 의무화, 천수경과 반야심경 108번 이상 사경, 불교와 환경 템플스테이 운영 등 특화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인천지역은 불교세가 약할 뿐만 아니라 타종단에 비해 조계종이 열세인 지역입니다. 불교대학 운영도 쉽지 않은 게 안타깝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불교대학을 통해 지역의 불교인재를 양성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지요. 종단 차원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이를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신 포교사는 전문포교사에 도전하고 있다. 조계종 디지털대학 전문포교사과정을 이수중인 신 포교사는 교육분야(불교대학 지도자)와 청소년분야(파라미타 지도자) 가운데 어느 분야를 선택할지 행복한 고민 중이다. 또 스님을 도와 편안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자살률이 높아지는 등 갈수록 각박하고 거친 세상이 돼 가고 있지요. 앞으로도 열심히 스님들을 도와 편안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요. 수행이 곧 포교고, 포교가 곧 수행인만큼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불교를 위한 포교에 매진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 12월29일 서울 조계사에서 만난 신호승 포교사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청소년포교와 지역불교 인재 양성을 위해 더욱 매진하겠다고 서원했다. 신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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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승 포교사는 …
1953년 7월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난 신호승(법명 무인) 조계종 포교사단 인천경기지역단 감사는 서울 배명고와 중앙대 수학과, 인하대 교육대학원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1978년 평택동고등학교(현 신한고) 수학교사로서 교직에 입문, 1982년 인천 정석항공공고(현 정석항공과학고)로 자리를 옮긴 뒤 2014년 8월 교감으로 퇴직할 때까지 총 37년 간 교편을 잡고 후학을 양성했다.
바쁜 교직생활 중에서도 10년 동안 성심야간중학교에서 야학 교사와 교장으로 활약하며 공부에 목마른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2003년 제9기 포교사로 품수 받은 신 포교사는 퇴직 후에도 조계종 포교사단 인천경기지역단 감사와 인천파라미타청소년협회 사무처장, 나란다불교대학 부학장 등을 맡아 열악한 인천지역 불교발전에 매진할 만큼 불심이 깊다.
오랜 교직생활과 다양한 불교계 활동을 통해 조계종 총무원장 표창장과 제26회 포교대상 원력상을 비롯해 보건복지가족부장관 표창장, 인천시장 표창장, 인천시교육감 표창장 등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불교신문3072호/2015년1월10일자]
첫댓글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_()()()_은혜로운일에 감사드립니다.
신호승포교사님의 하시는 일이 순조롭게 형통되시길...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모든 뜻을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