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추계곡 신록

[주오돈]

용추계곡 신록

사월 하순 목요일이다. 내가 속한 문학 동아리에서 강진으로 기행을 떠난 날인데 참여 못해 동료들 앞에 뵐 면목이 없다. 올봄 농촌 지역 치안 보조로 초등학교 하굣길 안전지킴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하루 정도 휴가를 쓸 수 있는 여건인데 공교롭게 이번 주말과 이어진 다음 주 초 집안 행사로 하루 쉬어야 해서 연이어 이틀을 비우기는 공인으로 사적 시간을 우선하는 듯해서다.

날이 밝아온 아침은 내 나름으로 오전을 보낼 행선지를 정해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로 향하니 미끈하게 자란 메타스퀘이아는 연초록으로 물들어가 눈길을 끌었다.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 다니는 차가 없던 관계로 차도까지 들어가 거리 양쪽으로 도열한 가로수 풍경을 폰 카메라 앵글에 담아보았다. 늦가을의 갈색 단풍과 대비되는 봄날의 싱그러운 연둣빛이다.

퇴촌교에서 천변을 따라 창원천 상류로 올라가 창원대학 앞에서 도청 뒤를 지났다. 역세권 상가 빌딩에서 중앙역에 이르러 철길 굴다리를 지난 용추계곡 들머리로 갔다. 평일 아침 이른 시간이라 산책이나 산행을 나선 이가 아무도 없는 적요한 숲길을 걸었다. 비교적 늦게 트는 아카시나무도 이파리가 나오면서 허연 꽃망울 달고 나올 테다. 꿀벌들한테 좋은 밀원이 될 아카시꽃이다.

용추정을 지나면서 응달 계곡을 자생지로 삼는 미나리냉이가 하얀 꽃을 피웠다. 냉이가 키가 큰 미나리처럼 생겨 그렇게 이름을 붙은 미나리냉이는 식용이 가능한 산나물이기도 했다. 물봉선이 자라는 서식 환경과 겹쳐 늦여름이나 초가을이면 선홍색 꽃을 피울 물봉선의 어린 순도 같이 보였다. 역시 자잘한 하얀 꽃잎을 단 콩제비꽃도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돌부리가 드러난 등산로를 따라가니 바위틈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올봄은 비가 잦아 예년에 비해 넉넉하게 흐르는 물이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을 산새들의 조잘거림과 물소리는 화음을 이루어 계곡을 찾은 이의 귀를 즐겁게 했다. 용추1교를 건너면서 덩굴식물에서 꽃잎을 넓게 펼쳐 자란 으아리꽃을 만났다. 개체수가 흔하지 않은 야생화로 정원에 옮겨 심어 가꾸는 이도 봤다.

용추2교를 지나면서 관목으로 자란 나무에서 하얀 꽃망울이 달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고추나무가 피우는 꽃이었다. 초여름에 향기가 향긋한 하얀 꽃을 피우는 쥐똥나무보다 키가 높은 고추나무였는데 보드라운 나뭇잎을 훑으면 산나물이 되기도 한다. 나무 이름에 ‘고추’가 붙게 됨은 매워서가 아니라 이파리 생김새가 고춧잎을 닮아서라고 들었는데 살펴보니 고개가 끄덕여져졌다.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연한 보라색 꽃을 피운 벌깨덩굴을 봤다. 향기를 맡은 벌들이 찾아와 밀원이 되는 벌깨덩굴 여린 잎줄기는 산나물로도 좋아 지난주 감재를 넘으면서 몇 줌 따 왔었는데 용추계곡은 등산로 주변이라 야생화 감상으로 충분했다. 북면 양미재 언저리에도 벌깨덩굴 군락지를 알고 있는데 틈을 내서 채집해 오면 이웃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전을 부쳐 먹을 수 있으려나.

포곡정으로 나뉘는 갈림길 쉼터에서 간식으로 삶은 고구마를 꺼내 먹으면서 계곡을 오르며 남긴 야생화 사진을 지기들에게 안부로 전했다. 삼림욕을 겸해 숲속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용추고개로 올라 산마루에서 북향의 숲길을 따라 우곡사로 내려섰다. 약수터에는 차를 몰아와 샘물을 받아 가려는 이들이 빈 물통을 가지런히 줄지어 놓고 샘물을 채워 담았다.

층계를 밟아 법당 뜰로 오르니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연등이 하늘을 머리에 일듯 걸려 있었다. 법당 아래 샘물을 함 모금 받아 마시고 뒤돌아 노티재 산등선을 바라보니 신록은 눈이 부셨다. 절집에서 산책로를 따라 자여로 가니 수위를 가득 채운 저수지가 나왔는데 가장자리에는 갯버들이 무성했다. 초등학교를 지난 정류소에서 시내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 도중에 내렸다. 24.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