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윤치호, 이광수가 왜 거짓 우상(偶像)들보다 욕을 더 먹나 나라 망한 것은 일본 탓도, 이완용 탓도 아니다. 그것은 실력이 없어서였다.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진실 또는 거짓을 말했을 때 어느 쪽이 강해질까> 소독(蘇獨) 전쟁 전 소련 전쟁 선전물들을 보면 적들인 나치의 전투기들만 떨어지는 멋진 그림 천지였다고 한다. (미군기만 떨어지는 현재의 북한 선전물들이 똑같다.)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소련 전투기만 떨어짐에 모두 이상할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독일군을 물리치기는커녕 모스크바 턱 밑까지 들이닥친 것을 멈추어 내는데 그래도 성공한 장성은 쥬꼬브(주코프) 대장이었다. 이 공로로 원수가 된 쥬꼬브가 가장 애를 먹은 것은 허위 보고였다고 한다. 도무지 전선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스탈린 명령은 무조건 사수하라! 총살한다! 였지만 소련군 전패(全敗)의 결과 쥬꼬브에게 전선 재량권이 맡겨지자 그가 내린 명령은 거짓 보고하면 총살한다!로 바뀌었다. 그러자 점차 전세를 바로잡아 가게 되었다고 한다. 거짓 북한을 탈북하여 30여 년 동안 그 거짓과 나름 싸워왔다. 하지만 요즘 남한의 거짓들을 발견하고 놀라 자빠진다. 북한의 거짓을 욕할 자격을 상실할 정도의 거짓들이다. 북한처럼 폐쇄된 사회가 아닌 남한에서 거짓이기에 더욱 충격이다. 언론의 자유라면 저리 가라고 할 정도의 남한이기 때문이다. 거짓들임에도 언론 자유가 만발한 곳에서 쉬쉬하다 못해 국가의 최고 상들을 수여하고 영화로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창 김일성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할 시기인 1970년 초 김대(김일성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공산대학 다니시던 부친의 말이 기억난다. 한 똑똑한 대학생이 김일성 항일혁명역사 시간에 질문하기를 - 수령님의 찬란한 항일투쟁 기록들이 왜 1940년 후에는 없느냐. 거짓 왕초의 나라도 날조해내기 힘든 것이 1940년 후반의 항일 투쟁 사이다.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피하여 김정일 낳고 노닥일 때이기 때문이다. 학생으로서 당연한 질문 같지만 그 학생과 그 가족은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지고 말았다. 김일성 항일사는 당국이 말하는 대로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다. 부친은 나에게 이르시기를 <창조하지 말라! 창조하면 죽는다!> 부친이 말하는 창조를 피해 나는 청년 비서를 버리고 창조를 위해 과학자가 될 정도로 금기 지역을 피했다. 아마도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남한도 비슷한 금기 사항이 있다. 이 금기를 깨면 밥통이 짤리거나 매도당하는 것이기에 조용히 연구들은 다 해 놓고도 함부로 말을 못하는 것이다. 본인도 이런 말을 했다가 가장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그게 천 배, 만 배 부풀려졌든 할 일 없는 소리를 한다고 지적받았다. 당해보니 이해가 충분히 간다. 그럼에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알면서도 못하기에 오죽했으면 조지 오웰이 <진실 말하는 것이 혁명> 이라고 할 정도로 힘들다고 했을까도 이해된다. 그렇게 힘든 말들이 뭘까. 항일독립무쟁투쟁사에서의 거짓들이다. 북한에서 항일독립 우상은 김 부자뿐이다. 거짓말이 너무 진부하여 한 마디로 끝내련다. 일제 타승자로 나폴레옹 개선문보다 더 큰 개선문을 평양에 세웠고 그 아들 고향집은 하바롭스크가 아니라 백두산에 세웠다. 그 백두혈통으로 30살짜리 손자가 할아버지들을 쪼아리게 만든다. 남한에 오니 항일독립우상들은 다양하고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높이 세운 우상이 김구인 것 같다. 하지만 김구 자신이 서술한 자서전에 거짓말로 살인을 미화했고 반일독립 투쟁도 살인기가 서린 테러 방식이다. 그 후과로 자신은 유명해졌지만 안창호 같은 상식적인 독립 운동가들이 죽어나갔다. 김구의 테러 습성은 해방 후에도 이어졌고 그도 암살을 당한다. 가장 큰 우파 인사로서 대한민국 건국을 결사 반대한다. 그 이유가 통일 조국인데 국공 합작으로 B29 폭격기까지 갗춘 장개석이 망하는 꼴을 뻔히 보면서도 그런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화폐 10만 원 권에 올려야 한다고 할 정도로 항일 독립운동의 가장 큰 우상으로 우뚝 서있다. 저도 한때 백범일기 저서를 열심히 배포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다음 우상은 요즘 논란이 되는 홍범도를 먼저 짚는다. 그는 상관을 구타하고 탈영할 정도로 폭력성의 연발, 비구니를 임신시킬 정도의 성(性) 경력자이다. 그의 항일독립운동방식은 무장 투쟁이며 그 대표적 군상이 봉오골, 청산리 대첩이다. 국가적 정규군의 전투상보에는 봉오골에서 일본군 1명 전사, 장엄한 청산리 대첩에서는 11명이다. 임대료를 걱정하며 전전하는 임시정부의 독립신문에서는 수백 수천 명 일본군을 죽였다고 하는데 근거가 '카터라'뿐이다. 이 전투의 참전자인 또 한 분의 항일독립우상 이범석은 3300명의 일본군을 죽였다고 증언한다. 항일무장투쟁 참가자인 조선족 김학철은 300배 이상 부풀려졌다고 증언한다. 공산당원인 김학철보다도 훨씬 진실치 못한 인격들이다. 홍범도 일기에도 일반인을 상대로 공갈치고 강탈한 기록은 있지만 자신이 전투한 대첩 기록은 전혀 없다. 이런 항일무장투쟁 식으로 독립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역사는 냉정히 답한다. 독립은커녕 무고한 백성들과 상식적인 독립 운동가들을 멸족시켰다. 일본군 12명 죽인 대가로 수천 명의 한인 백성들과 학교를 32개나 세운 최재형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죽어나갔다. 한인들의 삶터, 가옥, 학교와 교회마저 깡그리 초토화되었다. 그 후과는 당장 독립군 자체의 목줄을 죄었다. 물고기의 생명인 물과 같은 독립군의 후방기지 한인 마을들이 사라진 것이다. 갈 데가 없는 그들에게 독이 든 사과를 보낸 것이 소련 공산군이다. 레닌의 돈을 받은 이동휘(이분도 독립운동의 우상)의 인도로 독립군이 향한 것이 자유 시이며 그 결과가 독립군 참변이다. 홍범도는 참변 후 재판관이 될 만큼 적군 편이었고 그 공로가 지대하여 모스크바에 초대되어 레닌으로부터 상금과 권총 선물까지 받는다. 이걸 애써 부인한다 쳐도 토사구팽되어 강제 이주되어 극장 경비원으로 사망 부고가 전부를 결론한다. 부고에는 분명하게 레닌, 스탈린 당에 충실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자유 시 참변 후 한인 독립군은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 홍범도, 이동휘 같은 독립 운동의 우상들이 사실은 독립군과 한인들을 몰살시킨 장본인이 아니란 말인가. 일본군이 더 악독하다. 그렇다. 하지만 그 악독함이 봉오골, 청산리 전투 전이었으면 얼마나 더 말하기 좋았을까. 이제 남은 두 독립 투쟁의 우상 김좌진과 안중근이다. 김좌진은 자유시로 가지 않은 현명함이 있어 되돌아왔다. 하지만 보급이 없이 어떻게 무장독립투쟁을 할 수 있을까. 자료에 의하면 다 떠나고 50여 명 남았다고 한다. 하루 이틀 못먹어도 벌벌 길 판에 어떻게 보급이 없는 만주벌판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굶은 자가 도둑이 됨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일본인을 해치면 일본군이, 중국인을 해치면 중국군이 나선다. 빈약한 독립군이 일본군과 중국군을 대적하기는 바위에 계란치기이다. 남은 것은 한인들이다. 한인들도 살기 힘들다. 독립이란 대의가 있다고 해도 살기 힘든데 거기서 내라고 하니 자각적일 수 없다. 이에 독립군도 살기 위해 강제하다나니 반발이 일어난다. 그래서 반발하는 한인들을 처형까지 한다. 이에 한인들의 보복을 받아 김좌진 부하는 맞아죽고 결국 그도 암살당한다. 공산당이 죽였다고 하지만 이런 보복의 일환 속에 있었다. 마황(魔皇)이라고 할 정도로 원성을 받는 김좌진 부대를 공산당이 나서 속 시원하게 처리해준 격이다. 마황인 김좌진의 지난 내력을 보면 놀랍게도 강도였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독립운동의 우상 안중근을 보자 너무나 의로운 독립 우상이어서 누구보다 말하기 참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역사자료로 말해보자. 이등박문은 조선을 빨리 먹으면 부담이 된다는 유화론자이다. 러일전쟁 후과로 재정난의 일본으로서 거지 꼴의 조선을 일찍 먹는 것은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수천 년 역사를 가진 한민족을 병합하기보다는 부강하게 키워 연합국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하는 친한파였다. 이런 이등박문을 안중근이 암살했다. 그 후과로 안중근의 염원대로 독립이 되고 동양 평화가 이루어졌을까. 유화론자 이등방문이 사라지자 강경파들이 득세하여 조선은 더 빨리 병합되었다. 중국 있는 청일전쟁 기념관을 가본 적이 있다.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자부하는 중화 대국이 섬나라 일본에 진 것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그럼에도 진(眞) 사실 그대로 전시하였다. 왜 그럴까. 있는 그대로 보면서 다시는 저런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후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공산당의 중국도 이런 정직함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엄청난 거짓과 뻥튀기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란 양의 몸에 그 양을 잡아먹는 늑대 두상들을 세우고 경례를 붙이게 만든 격이 아니란 말인가. 또 살인과 강도, 테러를 추앙하라는 격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에게도 위대한 진실이 있다.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독립 운동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이들은 애써 외면하고 심지어 친일로 몰아가려는지 그게 더 이상한 대한민국이 아니란 말인가. 그 대답을 안창호가 정확히 지적했다. 나라 망한 것은 일본 탓도, 이완용 탓도 아니다. 그것은 실력이 없어서였다. 독립하려면 실력을 배양하고 정직해야 한다. 결국 일제 타승도 실력있는 외세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실력 있는 자들에 의해서 독립과 건국도 이루어진 역사를 왜 안 보려 하는가. 항일무장투쟁과 테러 방식은 무모한 독립운동이라고 한 이승만, 윤치호, 이광수 등이 왜 저 위의 거짓 우상들보다 욕을 더 먹어야 하나. 최소한 청일전쟁 기념관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이들을 광화문 광장에 세워지고 10만 원권 지폐에 올려져야 정상적이 나라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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